-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룸메이트에 얽힌 사연(下)

Lesley 2009. 4. 1. 16:27

  

 

 

  3. 잠깐 동안의 나의 룸메이트였던 S와 러시아인 룸메이트 

 

  '룸메이트에 얽힌 사연 (上)' 에서 소개한 아주 잠깐 동안의 나의 룸메이트였던 S는 외롭다며 다른 누군가와 한 방을 쓰기를 원했다.

  하지만 S가 남들보다 늦게 하얼빈에 도착한 탓에, 2인 1실을 신청한 사람들은 이미 룸메이트가 정해져서 당분간 혼자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1주일 넘게 혼자 방을 쓰던 S에게 드디어 룸메이트가 생겼다.

 

  S의 룸메이트가 도착하던 그 날 늦은 오후에 S가 내 방으로 전화를 했다.

  외출했다가 돌아왔더니 자신의 방에 웬 낯선 옷과 가방이 있는데, 룸메이트가 도착한 것인지, 이 기숙사의 중국인 직원이 놓고 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했다.  그래서 '그야 새로 온 룸메이트겠지, 기숙사 직원이 왜 어학연수생 방에 자기 옷과 가방을 두겠느냐?'라고 반문했더니, '룸메이트의 짐 치고는 너무 적다. 아무래도 기숙사 직원이 놓고 간 듯 한데, 프론트 데스크에 말해야 하는거 아닐까?'라고 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그 방으로 가봤더니만...

 

  과연, S의 말대로 코트, 핸드백, 비닐봉지가 침대 위에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

  확실히 이 곳에 오래 머물 룸메이트의 짐이라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은 짐이어서 어찌된 건가 하고 비닐봉지를 들쳐봤더니, 어학연수생들을 위한 중국어 교재가 나왔다.  기숙사 직원이 그런 교재 갖고 다닐리는 없으니 룸메이트가 도착한 게 맞긴 맞는 것 같은데, 도대체 사람은 어디 가고 짐만 침대 위에 있는 건지...?   (어째 일이 '룸메이트에 얽힌 사연 (上)' 1편에 나왔던 J의 몽골인 룸메이트가 도착했던 상황과 너무 비슷하게 돌아가서 불안해지기 시작... ㅠ.ㅠ  도대체 흑룡강대학으로 오는 한국 이외의 외국 유학생들은 왜 이렇게 신비주의를 좋아하는 것이냐... -.-;;) 

 

  이제 중국어 입문반 수업 듣는 S가 직원들과 얘기하는 것을 돕기 위해 함께 프론트 데스크로 내려갔다.

  프론트 데스크 직원들 말이 새로 룸메이트가 도착한 것이 맞단다.  그런데 그 룸메이트가 한국인이 아니라 러시아인이라 한다. -.-;;  그 말을 통역해줬더니 S는 기겁하며 차라리 돈을 더 내고라도 혼자 방을 쓰겠다고 하고, 프론트 데스크 직원들은 그 러시아인이 11일만 머물 것이니 그 동안 함께 쓴 후에 혼자 쓰라고 했다.

 

 

※ 참고

 

  한국인 유학생 눈에 비친 러시아인 유학생들의 모습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끼리 생활습관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고, 문화차이라는 것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우리의 정서로는 꽤 엽기적인 부분이 많다.

 

  내 방이 있는 층은 러시아인이 몇 명 있기는 하지만 모두 조용한 사람들인지 별 문제 없다.

  하지만 3분의 2 정도는 한국인, 3분의 1 정도는 러시아인이 사는 7층은 정말 문화충격의 도가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인들이 허구헌날 복도에서 담배와 술을 즐기며 밤 12시가 넘어서도 큰 소리로 떠들거나 노래 부르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불평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니, 자기 방이 없는 것도 아닌데, 술을 왜 복도에서 마시는 건지... -.-;; )   게다가 한국인들이 러시아인들의 개방적인 옷차림에 기겁하는 경우도 많고... (아무리 추운 나라에서 와서 추위에 익숙하다고 해도 그렇지, 3, 4월에 민소매에 핫팬츠 차림으로 돌아다니다니...!  그러면 나중에 한여름에는 뭐를 입고 다니려고? -0-;;)  

 

  먼저번에 친하게 지내는 무리들이 모여 맥주 한 캔씩 마시던 중에 러시아인들 얘기가 나왔는데...

  어찌하다보니 방을 옮기게 되어 러시아인들과 이웃하여 살게 된 B와 M의 불만과 놀라움이 보통이 아니다. 러시아 여자애들이 샤워를 한 후 큰 수건 한 장만 몸에 두른 채 아무렇지 않게 복도까지 나오는 통에, 같은 여자인 자신들이 더 기겁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말 들은 우리 한국 남정네들 갑자기 눈동자 빛내며 난리 났다. "어? 그 여자들 사는 방 번호가 몇 번이야?", "아니, 그런 걸 봤으면 우리한테 알려줬어야지!" ㅋㅋㅋ)   게다가 밤이면 밤마다 술을 마시고는 취해서 복도에서 큰 소리로 떠들고, 춤이라도 추는지 옆방과 윗방에서 쿵쿵대는 통에 잠을 설친다 했다.  한 번은 복도에서 방카드가 잘못 꽂힐 때 나는 삑삑거리는 소리가 계속 나는 통에 잠에서 깨어 짜증 내며 나가봤더니, 러시아 여자가 술에 취한 나머지 방카드를 계속 거꾸로 방문에 꽂아서 그 모양이더란다. -.-;;

 

  지난번에 엘리베이터에서 한국 초딩들(한명은 부모님 따라 중국으로 왔고, 또 다른 한명은 혼자 조기유학 온 모양임)을 만났는데, 그래도 그 전에 한 번 만난 적 있다고 나에게 인사하면서, 대뜸 러시아인들에 대해 불평을 했다.

 

초딩 1 : "러시아 사람들 왜 저래요?"

나 : "뭐가?"

초딩 2 : "남자들이요, 팬티만 입고 복도에서 담배 피워요."

나 : "정말?"  (아니, 이것들이 미쳤나, 애들 앞에서 뭐 하자는 거야... -.-;;)

초딩 1 : "그리고요, 여자들도 팬티랑 브라자만 하고 방문 다 열어놔요."

나 : "그 나라 사람들은 원래 그래."  (이것들아, 최소한 애들 앞에서는 좀 가리고 다녀라. -.-;;)

초딩 2 : "아무데서나 막 뽀뽀도 해요."

나 : "아, 그래?"  (왜 아무 상관없는 내가 괜히 난감해지니... -.-;;)

 

  우리와 친해진 기숙사 매점에서 일하는 한국어과 출신 직원 말을 들으니, 기숙사측에서도 러시아 유학생들 때문에 골머리 앓는 모양이다.

  러시아인들이 매일 술 마셔대는데, 술 마시고 싸우면 정말 무섭다고 한다.  남자들 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상대방 머리를 잡아 자기 무릎에 처박아가며 싸우더란다. (얘네들 혹시 이종격투기 선수 출신?  -0-;;)

 

 

  아무리 11일만 함께 지내면 되는 거라지면, 그래도 S는 그 러시아인과 한 방 쓰기 싫다고 했다.

  나는 차마 '러시아인이 싫다'는 말을 그대로 전할 수가 없어서 '이 사람은 러시아인을 무서워해요. 7층에 사는 러시아인들이 매일 싸우고 술 마셔서요.'라고 프론트 데스크 직원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그 러시아인은 아주 좋은 사람이고, 다른 방법도 없으니 그냥 같이 쓰라 했다. (아니, 오늘 도착한 사람이라니 댁들도 그 사람 처음 봤을텐데,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댁들이 어찌 그렇게 장담하슈? -.-;;) 

  그러고는 덧붙이기를, 혹시라도 그 러시아인 룸메이트가 문제 일으키면 자기들에게 알리라고 한다.  자기들이 그 룸메이트를 통제하겠다고... (그런데 나중에 그 러시아인 룸메이트 만나보니 키와 덩치가 보통이 아니었다.  여자인데도, 어지간한 한국 남자는 왜소하게 보이게 할 정도의 키와 덩치였다.  죄다 갸날프게만 생긴 기숙사 프론트 데스크의 중국 여직원들이 그 룸메이트를 통제하기는 커녕, 그 룸메이트가 주먹 한 번만 휘두르면 중국 여직원들 한꺼번에 날아가겠더라... -0-;;)

  뭐, 어쨌든 방법이 없다 하니, 어쩔 수 없이 S는 11일간 러시아인 룸메이트와 한 방 쓰게 되었는데...

 

  그런데 뜻밖이었던 것이, 그 날 저녁 먹으러 갈 때 우리를 따라 나선 그 러시아인 룸메이트는 다른 러시아 유학생들과는 달리 예의 바르고 얌전한 인상이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대학에서 복수전공으로 중국어를 5년간 배웠다는 오우리야('올리야'의 중국식 이름)는, 흑룡강대학에서 고급반 수업을 듣게 되었을 정도로 중국어에 능숙했다.  겨우 11일만 기숙사에 머무는 이유는, 외주(학교 밖에서 집을 사거나 세내어 사는 것)를 하고 싶은데 수속 밟는데 시간이 걸려 그 동안 기숙사에 살게 된 것이라 했다. (외주는 그냥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니라, 학교측의 허가를 받고 공안국 외사과에 등록하는 절차가 필요함.) 

  그 후 며칠 지나서 함께 점심식사 하며 들으니, 하얼빈에서 6개월간 어학연수를 받고 북경에 있는 대학으로 가서 석사과정을 밟을 예정인데, 석사 논문 주제가 '당나라 시대 예술사'라고 한다. (뭔가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 ^^;;)  그런데 놀랍게도 중국 하얼빈으로 올 때 비행기를 타고 온 게 아니라, 자신이 다닌 대학이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시베리아 어디에 있다는 고향까지 기차를 타고 횡단한 후(지도 보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시베리아까지는 말 그대로 대륙 횡단이다... -0-;;), 그 고향에서 하얼빈까지 버스를 3일간(!) 타고 왔다고 한다. (3일이라니...! @.@  난 3시간만 버스 타도 힘들던데...!)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인상 좋은 것은 좋은 거고, 이제 입문반 수업 듣는 S로서는 언어도 안 통하는 룸메이트와 어찌 지내냐고 걱정이 태산같았는데...

  처음 만난 날은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문제로 은근히 신경전 벌였다더니, 그 다음부터는 룸메이트와 나름 즐거운 생활을 꾸려나가게 되었다. ^^  그 오우리야라는 룸메이트에게 은근히 귀여운 면이 있어서, 다이어트 해야 한다고 저녁은 굶으면서 S가 준 초콜렛은 몽땅 먹더란다. ㅋㅋㅋ 그리고 자신이 몇 년 동안 밸리댄스를 배웠다면서 밸리댄스용 신발까지 갖춰 신고 방 안에서 한바탕 춤을 췄는데, S가 보기에는 무슨 거대한 하얀색 하마가 춤추는 것처럼 보여 웃겨 죽는 줄 알았지만 "헌 하오, 헌 하오(좋아, 좋아)" 하면서 박수 열심히 쳐줬더니 아주 좋아하며 추더란다. ㅋㅋㅋ

 

  그리고 원래 언어라는 게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 언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도 중요한 법인데, S는 자신이 중국어 왕초보라는 사실에 지레 겁을 먹고 중국어로 말할 엄두도 못 내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인 룸메이트와 한 방에서 살려니, 이제는 중국어로 말하는 것이 '선택 사항' 아닌 '필수 사항'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전자사전 두들겨가며 찾은 단어로 이런저런 말을 하다보니, 의외로 서로 의사소통이 그럭저럭 되더란다.  그렇게 며칠 지나고 나니, 이제는 누군가 중국어로 말하면, 자신의 귀에 들리는 몇 개의 단어와 대화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종합하여 대체적인 뜻을 짐작할 수 있게 될 정도가 되었고... ^^

 

  얼마 후면 오우리야는 기숙사 밖으로 나가 외주할 것이기에 헤어져야 하지만, 그 룸메이트를 만나 잠깐 동안이나마 함께 지내게 된 것은 S에게 아주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