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파란만장 국제우편물 보내기

Lesley 2009. 3. 22. 08:42

 

 

  지난 금요일에 하얼빈에 와서 처음으로 편지를 두 통 써서 항공우편으로 보내게 되었는데, 아주 짜릿한(?) 경험이었다.

 

  오후수업이 없기에 점심 먹고 A취에서 기숙사로 돌아왔는데, 입학식 예행연습인지 뭔지를 한다고 하여 모두 A취의 강당으로 4시까지 다시 가야 했다. (입학식을 얼마나 대단하게 하려고 예행연습씩이나 하나 했더니, 실제로는 예행연습이라기 보다는 신입생에게 각종 주의사항 알리는 자리였음.)  다른 사람들은 1주일간 피로가 잔뜩 쌓여 잠시 눈 붙인다고 했는데, 내 생각에는 남은 시간이 참 애매했다.

  그래서 차라리 그 시간에 편지를 쓰면 되겠다 생각했다.  중국으로 오면서 편지 한 통 띄우라고 주소 알려준 사람들이 제법 되었고, 나 역시 오래간만에 학창시절 기분 내며 편지 써보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하여 흔쾌히 그러마 했다.  하지만 막상 이 곳에 오니 하루 하루가 모험의 연속이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모처럼 시간 나는 때에 편지를 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C취의 슈퍼마켓 겸용 문구점에서 사온 얇은 레포트 용지에 편지를 써서 누런 봉투에 넣어 주소도 다 쓰고(한자로 학교의 긴 주소 쓰는데 참 힘들었음. 잘못 써서 봉투 하나 구겨서 버리고... -.-;;), '이제 우체국에 가져다 내기만 하면 되겠군' 하고 생각하며 홀가분해 했는데... 

  역시나 내가 지금 두 발을 딛고 있는 이 곳은, 사람 심심할 틈 없게 만드는 모험으로 가득찬 땅임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

 

  C취에 있는 우체국에 가서 줄 서있다가 겨우 내 차례가 되어 국제우편이라고 말하며 봉투를 내밀었다.   

  그러자 우체국 직원이 뭐라고 말하는데, 중간 중간 들리는 단어로 보아 우표가 없으니 바로 옆 문구점에 가서 5원짜리 우표를 사오라는 소리 같다.  그런데 문구점에 갔더니만 5원짜리 우표는 없고 6원짜리는 있으니, 그냥 6원짜리 붙이라 한다. (이건 뭥미~~ -.-;;) 

  상황도 황당하고, 학생식당에서 쌀밥 한 그릇이 0.5원이고 빠오즈(한국식으로 말하면 만두)3개가 1원이니 돈도 아까운 생각도 들었다.

 

 

※ 참고

 

1. 2009년 3월 현재 중국 인민폐 1원 = 한화 약 225원

즉, 중국의 대학 학생식당에서는 쌀밥 한 그릇을 우리 돈 약 112원이면 먹을 수 있음. ^^

 

2. 중국 또는 우리보다 물가 저렴한 나라를 여행할 때, 한국 물가만 생각하며 '와~ 정말 싸다...! 기분 좀 내자.' 하고 돈 펑펑 쓰면 안 됨.

  단체여행 오시는 연령대 높으신 분들 중 그런 경향 있는 분들이 가끔 계신데, 그건 현지인들에게 '한국인은 봉이다' 라는 인식 심어줘서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물가를 껑충 뛰게 하는 행동임.  패키지 관광하는 분들이야 며칠 놀다 가시니 돈 좀 뿌리고 다녀도 크게 부담될 것 없겠지만, 장기간 체류해야 하는 교민이나 유학생들에게 그 영향이 미치게 됨.  처음에는 한국인 쪽에서 '옛다, 기분이다.'하며 돈을 펑펑 썼던 것이, 나중에는 현지인 쪽에서 '너희는 돈 많잖아. 그러니까 째째하게 굴지 말고 돈 좀 많이 내란 말이야.' 하는 상황이 되어, 한국인은 현지인보다 돈을 많이 내는 것이 아주 당연하게 되어 버림.

  현지에서는 현지 물가수준에 맞추는 것이 자신에게도 좋고(돈 펑펑 쓰며 돌아다니면 범죄의 표적 되기 딱임.), 현지에서 장기간 살아야 하는 유학생이나 교민에게도 폐 끼치지 않는 행동이니, 외국 나가시는 분들은 각별히 행동거지에 신경써주시기 바람.

 

 

  하지만 입학식 예행연습에 참석해야 해서 시간이 촉박한지라, 그냥 사기로 했다.

  그런데 아까 우체국에서 봤던 한국인 여학생도 우표 사러 와서는 '이 사람들 더 싼 우표가 있는데 안 주는 것 같아요'라고 귀뜀해주며, 유창한 중국어로 문구점 아줌마에게 뭐라고 말한다.  그제서야 문구점 아줌마가 아래 선반의 상자를 뒤지더니 여러 종류의 우표를 주섬주섬 꺼낸다. ㅠ.ㅠ  가격이 제각각인 우표를 이것저것 합쳤더니 5.1원이다. (그래도 낭비하게 생긴 돈이 1원에서 0.1원이 되었으니, 10분의 1로 팍 줄어들었군. -.-;;)

 

  그렇게 우편물 하나당 우표를 5장씩이나 붙이게 되었다. -.-;;

  그 한국인 여학생은 하얼빈이공대인가 하얼빈공업대인가 하는 학교에서 유학 중인데, HSK(한어수평고시 : 영어로 치면 TOFLE에 해당하는 중국어 시험) 신청하러 흑룡강대학에 왔다가 우체국에 들렀다 한다.  그 여학생에게 우표 붙일 풀도 빌려주고 서로 몇 마디 주고 받으면서 함께 우표를 붙이는데...

  편지봉투에 우표를 5장이나 붙이려니 자리가 부족해서 우표끼리 서로 겹쳐 덕지덕지 붙이게 되었다.  그렇잖아도 편지봉투가 없어 보이는 누런색 재생용 종이로 된 것이었는데, 누더기 같이 마구 붙인 우표 때문에 더욱 더 없어 보이게 되고... ㅠ.ㅠ  그러자 지켜보던 문구점 아줌마가 뭐라고 쏼라쏼라 말한다. 그 한국 여학생이 통역해주는데, 봉투 앞면에 우표 붙일 자리가 없으면 뒷면에 붙여도 된다는 말이라고 한다.

  (여보슈, 문구점 아줌씨, 저 이미 봉투 앞면의 좁아터진 자리에 우표 5장 붙이는 처절한 몸부림 전부 끝냈거든요?  첫번째 봉투 위에서 생쇼 벌이는 동안 말씀해주셨으면, 나머지 봉투에라도 편하게 우표 붙일 수 있었을텐데, 왜 다 끝낸 이제서야 알려주시는게요... 아줌씨가 밉소... 어흐흑... ㅠ.ㅠ) 

 

  하여튼 그렇게 우표를 다 붙여서 그 여학생과 다시 우체국 갔더니, 우체국 직원이 또 쏼라쏼라~~~

  우체국 안에서 항공우편물을 받는 게 아니라, 우체국 문 옆에 서 있는 우체통에 집어넣으란다. (으잉? 국제우편물을 우체통에? @.@)  시키는대로 조용히 우체통에 우편물 집어넣고, 잠시 동안 나의 동지(?)가 되어 주었던 그 한국인 여학생과 작별한 후, 입학식 예행연습인지 주의사항 전달자리인지에 참석하러 자리를 떴다.

 

  그렇잖아도 1주일간 100% 중국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25학점이나 듣느라 몸은 파김치인데, 우편물 부치며 이런 난리 부르스까지 겪었으니...

  중국어와 한국어로 번갈아가며 주의사항 듣는 동안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게 되었다. -.-;;  그나마 나는 양반인 것이, 내 맞은편 쪽을 보니 어떤 여학생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서 아예 머리가 무릎에 닿을 수준으로  머리 수그린채 졸고 있고, 저 끝에 앉은 남학생은 심하게 졸아서 의자에서 굴러 떨어질 뻔하다가 가까스로 자세 바로 잡고... -0-;;

 

  뭐, 그래도 다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올 때는 웃으며 우표 사건을 회상할 수 있게 되었고, 나중에는 이런 일도 다 재미있는 추억거리 될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겠는가?  피할 수 없다면 즐길 수 밖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