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룸메이트에 얽힌 사연(上)

Lesley 2009. 3. 29. 09:27

 

 

  기숙사 생활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점이야 한 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룸메이트와 사이가 좋으냐 나쁘냐일 것이다.

  시설 안 좋은 거야 그냥 저냥 참으면 되지만, 사람 싫은 것은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다. (물건이면 내다 버리기나 하지, 사람은 내다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  우리 기숙사에서 일어났던 룸메이트 관련한 황당한 사연 3가지를 소개해볼까 한다.  스크롤바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두 편으로 나누어 사연을 쓰겠다. ^^

 

 

 

  1. 나의 친한 무리 중 한 사람인 J와 몽골인 룸메이트

 

  J는 개인적으로 또는 교환학생의 신분으로 어학연수 온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중국정부 초청 장학생의 신분으로 왔는데, 그 '중국정부 초청 장학생'이라는 특별한 신분이 문제가 되었다.

  보통의 경우, 서로 다른 국가에서 온 학생들끼리 문화차이로 갈등 겪는 것을 막기 위한 기숙사측의 배려인지, 같은 국적의 학생들끼리 한 방을 쓰게 된다.  또한 기숙사측에서 같은 층에 가급적 같은 국적의 학생들끼리 있도록 배정하고, 같은 층에 다른 국적 학생들이 섞여 살게 되더라도 가급적 같은 국적의 사람들을 한 쪽으로 몰아넣는다. (물론 그래봤자 같은 층 또는 같은 층 한쪽 구역에 몰아넣을 정도로 숫자가 많은 건 우리 한국 학생들과 러시아 학생들 뿐임 ^^;;)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중국정부 초청 장학생들의 경우에는, 국적을 불문하고 전부 5, 6층에 몰아넣었다. (정부 장학생이라고 특별관리라도 하는 건가? -.-;;)  중국정부 초청 장학생들은 워낙 다양한 국가 출신으로 이루어진데다가, 각 국가별로 소수이기 때문에 같은 국적끼리 한 방 쓰도록 짝지어주는 것이 좀 곤란하다.

  그래서 J는 다른 한국학생들과는 달리 외국인 룸메이트와 짝지어졌는데...

 

  J는 처음에 도착해서는 당장 룸메이트가 될만한 사람이 없어서, 룸메이트 없이 2인 1실을 혼자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했다가 방에 돌아가보니, 룸메이트는 안 보이는데 룸메이트의 짐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고 한다.  잠깐 어디 나갔나보다 했는데, 그 뒤로도 며칠 동안 그 룸메이트를 볼 수가 없었고(심지어는 밤에 잠자러 들어오지도 않더란다. -.-;;  그런데 옷은 갈아입는지 가끔 못 보던 옷이 벗어져 있더란다 -0-;;), 마침내 우리 무리들도 J를 볼 때마다 '오늘은 룸메이트 얼굴 봤어?'하고 물으며 궁금해 할 지경이 되었는데... 

 

  어느 날 무슨 일로 평소 같으면 방에 안 들어가던 시간에 들어갔더니만, 문제의 룸메이트가 방에 있다가 J를 보고는 당황해했다고 한다.  (아마도 보통 때는 J가 그 시간에 방에 없는 걸 생각하고, 방에 머물고 있었던 듯...)

  잠시 얘기를 해보니, 그 사람은 몽골 출신인데 그 동안 친구방에서 잤다고 하더란다.  그리고 그 후로도 계속 밤에 안 들어오고 친구방으로 가더란다. -.-;;  좀 황당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외국에 처음 나와 낯설고 외로워 같은 나라 사람과 있고 싶어하는 모양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 몽골인 룸메이트의 친구가 '그냥 친구'가 아니라 '여자 친구'였다. -.-;;

 

  그리고 여기서부터 J는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게 되었고...

  J는 전에 북경에 있는 한 대학에서 방학 동안 단기연수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룸메이트였던 러시아인이 밤마다 여자를 끌어들이는 통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 러시아인은 또 뭥미... 혼자 쓰는 방이라도 기숙사라는 환경상 좀 그럴 것 같은데, 다른 사람도 있는 방에서 그러고 싶니... -.-;;)  물론 이 몽골 사람이야 J와 함께 쓰는 방으로 여자 친구를 끌어들이는 게 아니라, 자기가 여자 친구 방으로 가는 것이긴 하지만, 앞으로 어찌될지 누가 알겠는가...

 

  결국 J는 기숙사측에 사정 얘기를 해서, 마침 때맞춰 도착한 다른 한국인 학생과 룸메이트가 되었다.

  그런데 그 몽골인 룸메이트는 J에게 '네가 다른 룸메이트에게 가면 난 지금 혼자 방 쓰는 러시아인과 룸메이트가 되어야 하는데, 그 러시아인과 한 방 쓰기 싫다' 라며 계속 같이 한 방 쓰자고 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처음에 룸메이트랑 시간 좀 같이 보내며 친하게 지내지 그랬니... 버스는 이미 떠나버렸고, 열심히 손 흔들어봤자 아무 소용 없을 뿐이고... -.-;;)

 

 

 

  2. 나에게 아주 잠시 생겼던 룸메이트

 

  나는 애초에 1인 1실을 신청했다.

  2인 1실에 비해 가격이 많이 비싸서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연수생이 나보다 훨씬 어린 대학생들이라는 점을 고려했다.  아무래도 나이를 많이 따지는 우리나라 정서상 너무 나이 차이 나는 사람과 한 방 쓰면 서로 여러가지로 많이 불편할 듯 하고, 싸워도 비슷한 나이의 사람과 싸워야지 한참 어린 애들과 싸우기도 그렇고...  그래서 '그래, 남보다 돈 더 쓰는 대신 더 열심히 공부하면 되는 거야.' 하면서 좀 무리를 해서 1인실을 쓰게 되었는데...

 

  하얼빈에 온 뒤로 처음 맞는 일요일이었던 15일, 외출했다가 기숙사로 돌아와 방문을 열려했더니 안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앗, 내가 나올 때 불을 안 끄고 나왔던가?' 하며 문을 열었더니만, 내 방이 웬 낯선 짐들로 가득 차 어수선하게 변해있고 역시 웬 낯선 사람이 짐정리 하다가 나를 바라보는 게 아닌가?   놀라서 '누구세요?' 했더니, 그 사람 왈 '룸메이트인데요.'... -0-;;   깜짝 놀라서 나는 룸메이트 없이 혼자 방 쓴다고 했더니, 그 쪽은 그 쪽대로 황당해하고... (도대체 이 기숙사 프론트 데스크에서는 일을 어찌 처리하는 건지...!! >.<)

  왕초보라 중국어를 거의 못 한다는 사람을 못 본 척 할 수 없으니 함께 프론트 데스크로 가서 발음 파괴, 문법 무시의 전투 중국어에 손짓발짓 섞어가며 사정 설명하고, 몽골인 룸메이트 관련해서 황당한 사연 겪었던 J와 함께 새로 온 사람의 짐을 다른 방으로 옮기는 일을 도왔다.  그리고 마침 J도 저녁을 못 먹은 터라, 혼자 도착해서는 그 때까지 저녁도 못 먹고 졸지에 방까지 옮기게 된 '잠깐 동안의 나의 룸메이트'를 식당으로 데려갔다.

 

  식사를 하며 어찌된 일인지 이야기를 들었다.

  S(잠깐 동안의 나의 룸메이트)는 나와 같은 유학원 통해 어학연수 온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인데, 사정이 있어 단체출국일에 못 오고 수업 시작하기 바로 전날인 그 날에야 왔다고 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은 며칠간 유학원 관계자가 이런저런 등록과 신청에 도움을 줬는데, S는 뒤늦게 와서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유학원측에서도 '현지에 가서 룸메이트 만나 물어보면 다 해결된다.' 라고 했다고 한다. -.-;;

  하여튼 나와 아주 아주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룸메이트가 되었던 인연 때문에, S는 우리 무리에 합류해서 다음 날 우여곡절 끝에 학교와 기숙사 등록을 마쳤다.  그리고 개강 바로 전날 오후에 도착했기 때문에 분반시험도 못 치러서 반 배정을 못 받았으니 당연히 교과서도 구입 못 한 상태였는데, 다행히도 우리 무리에 S와 마찬가지로 입문반 수업을 듣게 될 M이 있기에 바로 다음날 개강수업에도 별 무리 없이 참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개강 1주일 전쯤에 도착하여 적응할 시간을 가졌던 우리와는 달리 적응기간 없이 곧장 수업을 듣게 되어 며칠 힘들어하는 듯 하더니, 요즘에는 그럭저럭 적응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