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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화(滿城盡帶黃金甲) - 1

Lesley 2008. 7. 13. 13:13

 

 1. 황후화 소개

 

  '황후화'는 '붉은 수수밭', '홍등', '국두' 등의 영화로 유명한 장예모(장이모우) 감독의 영화인데, 공리, 주윤발, 주걸윤, 유엽 등이 나옵니다. 중국에서는 장예모 감독과 공리가 결별하고나서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함께 작업한 영화라고 화제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정작 우리나라에서 개봉했을 때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우연히 인터넷에 누군가가 써놓은 영화평을 보고서 궁금증이 생겨 감상했습니다.

 

 

 

  이 영화를 이야기하자면, 무엇보다 화려한 볼거리를 먼저 말해야 합니다.


  인터넷의 영화평을 보면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갈등하는 황실의 비극을 잘 그려냈다는 평'과 '줄거리가 어설프고 결말이 너무 허무했다는 평'으로 갈립니다. (후자의 의견이 훨씬 많음)

  하지만 어느 쪽이든간에 시각적으로 엄청나게 화려하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합니다. 어떤 사람은 '황금과 국화의 노란색 때문에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했다.'라고 감상을 말하더군요. 정말 영상이 보통 화려한 게 아닙니다. 황실 내부 장식이나 황실가족의 옷이나 병사들의 갑옷까지 온통 금빛인데다가, 장예모 감독이 만든 전 영화들처럼 붉은 빛까지 간간히 어우러져 영화 내용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될 정도입니다.

 

  그리고 요즘 중국영화는 어설프게 쓰면 차라리 안 쓰느니만 못한 컴퓨터 그래픽 보다는, 엄청난 사람과 물자를 쏟아부어 관객을 압도하자는 식인 것 같습니다.

  영화 도입부부터 수많은 궁녀들이 일사분란하게 동시에 일어나 세수하고 단장하는 장면으로 눈길을 잡아끌더니, 황궁 안에 수많은 국화꽃 화분을 배치하는 모습하며, 높은 국화대 앞에서 신하, 궁녀, 군사들이 빽빽히 늘어선 장면, 전투장면에서 황금빛 갑옷을 입은 군사들이 황궁을 가득 메우는 장면, 영화 결말 부분에서 전투가 끝난 후 벌어지는 중양절 행사 장면은 '중국영화의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게다가 자객들의 서커스에 가까울 정도로 현란한 몸놀림, 가슴을 훤히 드러낸 궁녀들의 의상까지... (차라리 옛날 서양 여자들의 드레스처럼 대놓고 가슴을 노출했다면 덜 야해 보였을텐데, 가슴을 힘껏 졸라맨 상태로 노출하니 더 야하게 느껴졌음 -.,-)

 

 

 

 2. 황후화의 원제와 출전


  그런데 '황후화'라는 제목은 우리나라에서 붙인 이름이고, 원제는 '만성진대황금갑(滿城盡帶黃金甲)' 라는 긴 제목입니다. (위의 포스터에도 이 제목이 붙어있음) 이 제목의 출전은 중국의 황소가 지은 시입니다.

 

 

  이런 황소가 아닙니다...!!  -,.-

 

  황소(黃巢)는 중국 당나라 말기에 '황소의 난'이라 불리우는 유명한 농민반란을 일으켜 당나라 대부분 지역을 약 10년간 휩쓸었던 인물입니다.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를 보면, 통일신라 시대 최치원이 중국으로 유학갔다가 이 '황소의 난' 때 토황소격문이라는 유명한 문장을 지었다고 나옵니다. (통일신라가 쇠퇴한 원인 중 하나로 지식계층인 6두품이 골품제에 막혀 뜻을 못 펴고 어쩌구 하면서 시험에 반드시 나왔던 대목. -.-;;) 

  영화를 보기 전에는 '뜬금없이 웬 황소의 시?'라는 생각이 들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정말 제목 잘 붙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菊花(국화) 또는 不第後賦菊(부제후부국)

 

 待到秋來九月八 (대도추래구월팔)  가을 9월 8일을 기다려
 我花開後百花殺 (아화개후백화살)  내 꽃을 피운 뒤에 다른 꽃은 모두 죽이리
 衝天香陣透長安 (충천향진투장안)  하늘을 찌를 듯 한 향내가 장안으로 스며들면
 滿城盡帶黃金甲 (만성진대황금갑)  온 성안 모두가 황금갑옷을 두르리라

 

 
  황소는 과거에 합격하여 높은 관직에 올라 세상을 경영해보겠다는 큰 뜻을 품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번번이 낙방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이나 과거에 낙방한 후 이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이미 몇 번이나 낙방했으니 차라리  깨끗이 포기했더라면 덜 불행했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에는 자신의 능력이면 충분히 합격할만한데, 자신보다 못한 이들은 줄줄이 합격하면서 자신은 불합격 하니, 기존 사회에 대해 분노와 절망을 품게 됩니다. 즉, 세상이 썩어빠진 탓에 자신처럼 유능한 사람이 출세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반체제적인 인물이 됩니다. (실제로 황소가 살던 당나라 후기에는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지면서 뇌물이나 연줄로 과거에 합격하는 부정부패가 극심했음. 이런 것을 보면 독재정권에서 우민화 정책 펴는 것도 이해가 됨. 아무래도 머리에 먹물 들어간 사람들이 기존 체제에 불만 갖게 되면 엄청난 결과를 낳을 수 있으니...)


  '我花開後百花殺 (내 꽃을 피운 뒤에 다른 꽃은 모두 죽이리)' 라는 둘째 행에는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고 기회도 주지 않는 기득권계층에게 '내가 권력 잡으면 너희는 모두 끝장이다'라고 다짐하는 증오심과 복수심이 짙게 배어 나오고, 영화의 원제인 '滿城盡帶黃金甲 (온 성안 모두가 황금갑옷을 두르리)' 라는 넷째 행에는 썩어빠진 세상을 무력으로 갈아 엎어보겠다는 의지가 철철 넘쳐흐릅니다.

  원래 이 시의 제목도 소재도 '국화'다 보니, 시에서 황소가 무력거사 하는 때를 국화가 만개한 중양절인 9월 9일로 써야 하지만, 둘째 연의 '殺'과 운을 맞추려다보니 첫째 연에서 '九' 대신 '八'을 써서 '가을 9월 8일'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침 영화 속  황실가족의 오랜 갈등이 폭발하여 파국을 맞는 때가 바로 9월 9일 중양절이니, 이 영화와 아주 잘 어울리는 시라 할 수 있습니다.

 


 

 3. 등장인물 소개

 

  영화의 주인공들은 황제, 황후, 3명의 아들로 이루어진 '콩가루 황실가족'입니다. 만일 '콩가루 집안 선발대회'라는 게 있다면, 이 가족이 유력한 1위 후보자일 겁니다. (일본 드라마 '화려한 일족'에 나오는 가족 이후로 이렇게 막 나가는 가족은 처음 봤음. -.-;;)

 

  

 

  서비스 차원에서 '콩가루 집안 선발대회'에서 '황후화'와 1위를 다투는 유력한 경쟁자인 일본 드라마 '화려한 일족(華麗なる一族)'의 가족을 소개하겠습니다.  본처와 첩이 한 지붕 아래 살지를 않나(가족사진 찍을 때조차 가장을 가운데 두고 본처와 첩이 양쪽에 앉아있음 -0-;;),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겁탈하지 않나, 자신의 큰아들이 어쩌면 이복동생일지도 모르는 상황에, 아버지는 자식들을 장기판의 말 정도로 취급하며 여기 저기 자기 마음대로 시집장가 보내고... 황후화에 버금가는 막장 집안입니다.

 

 

 

  황제(주윤발)는 원래는 전 황실의 하급 관리였습니다. 그런데 출세를 위해서 자신의 부인과 처가식구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공을 세우고, 당시 공주였던 황후와 재혼하여 마침내 황제가 되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내용의 흐름으로 보아 재혼한 부인인 황후의 친정도 몰살시킨 듯 합니다. 한 마디로 권력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 안 가리는 냉혹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황후가 전처의 자식인 큰아들과 불륜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후, 심복 의원인 양태의에게 황후가 매 시진마다 먹는 약에 몇 달간  꾸준히 복용하면 미쳐 죽게 된다는 독약을 조금씩 넣도록 시킵니다. 

 

 

 

  황후(공리)는 황제가 마음 속에서 전 부인을 못 잊고 있음을 알고 있고, 또한 영화에서는 확실히 나오지 않지만 자신의 친정이 황제에게 망한 것에 원한을 품고 있는 인물입니다. 영화 내용상, 황제가 전 황실의 공주인 황후와 결혼한 후 전 황실을 망하게 하고, 새 황실을 열어 황제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큰 갈등의 뿌리가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다뤄지지 않아서, 이 부부간의 깊은 증오심과 이 가족의 엄청난 갈등이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와닿지 않고 영화 줄거리가 엉성하다는 느낌을 준 것 같습니다. 

  자신의 약에 황제가 독약을 넣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상대가 황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약을 마셔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피 말리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중양절을 틈타 둘째아들을 끌어들여 엄청난 음모를 꾸밉니다.

 

 

 

  큰아들이며 태자인 '원상'(유엽)은 황후의 친아들이 아니라 황제의 전 부인의 아들인데, 계모인 황후와 3년째 불륜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원래 성격이 소심한 건지, 계모와 불륜관계라는 것을 아버지와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까 의식하며 살아서인지, 언제나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위축된 모습을 보입니다. 이 영화에서 여러가지로 운명에 농락당하는 기구한 인물입니다.

 

 

 

  둘째아들인 '원걸'(주걸륜)은 이복형과는 달리 씩씩하고 믿음직스런 인물이며, 어머니인 황후를 끔찍히 생각하는 아들입니다. 황후가 황제가 내린 독약으로 죽어가는 것을 알고 황후를 구하기 위해 황후의 음모에 가담합니다.

  그리고 가족의 비극적인 상황을 제대로 모르는 채 죽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어머니와 이복형이 불륜관계라는 사실, 자신의 아버지가 출세를 위해 전 부인과 그 일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막내아들인 '원성(배우이름 모름 -.-;;)'은 특별한 존재감 없이 그저 황후와 이복형 주변을 맴돌기만 하다가,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대형사고 치는 인물입니다. (이 영화에서 그 행동에 가장 개연성 없는 황당한 인물임.) 결국 아버지인 황제에게 비참하게 죽게 되는데, 어머니인 황후도 막내아들의 죽음을 막으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으니, 어찌보면 이 영화에서 가장 불행한 인물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