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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계(色戒)

Lesley 2008. 6. 13. 14:17

 

 

 

 

 
  작년 초겨울에 의정부까지 가서 친구와 함께 양조위, 탕웨이 주연의 '색계'를 보고 왔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색계...
  처음에는 양조위와 탕웨이의 베드신에 대해서 '정말 연기 맞냐, 아무래도 실제로 성관계를 갖는 걸 촬영한 것 같다' 하며 왁자지껄 하더니, 나중에는 베드신에서 나오는 탕웨이의 겨드랑이 털을 두고 '그 시절에는 면도를 안 했네', '그게 아니라 원래 중국 여자들이 겨털 관리를 안 하네'하며 설왕설래... (실제로 인터넷 포털에서 탕웨이의 이름을 치면 자동완성검색기능으로 '탕웨이 겨털'이란 검색어가 나오는 황당한 상황이... -0-;;)
  좀 의외였던 게,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는 무삭제판으로 개봉되었습니다. (영화 홍보할 때 '완전 무삭제판'이라는 문구 하나로 밀고 나가더군요. 하긴 다른 요란벅적한 미사여구보다 그 문구가 가장 효과가 컸던 것 같습니다. -.-;;)  하지만 중국 본토에서는 베드신을 중심으로 30분 가까이 삭제되어 개봉된 탓에, 주말마다 본토 젊은이들이 무삭제판을 보러 홍콩으로 몰려가는 황당한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0-;;

 

 

  색계는 예전과 달리 중국영화(홍콩과 대만의 영화도 포함)가 그다지 인기 없는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흥행에 성공한 작품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고나서 '정말 잘 만든 영화구나, 그리고 양조위야 이미 훌륭한 배우니 그렇다치고 탕웨이라는 저 신인배우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함께 관람한 친구도 신인배우가 어쩌면 연기를 저렇게 잘 하냐고 감탄하더군요. 하지만 '실연에 가까운, 어쩌면 실연일 수도 있는 베드신'이 너무 화제가 되어, 정작 배우들의 수준 높은 연기라든지 탄탄한 완성도는 완전히 묻혀버린 느낌이어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이 영화가 더 인상깊었던 것은, 예전에 봤던 장국영 주연의 '패왕별희'와 공통된 소재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두 영화 모두 현실과 연극을 구별 못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배우를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패왕별희...

 

 

  패왕별희에서 주인공(장국영)은 어린 시절에 예쁘장한 외모 때문에 여주인공역을 맡게 됩니다.

  그러자 '나는 여자로 태어나 남자도 아닌데...'라는 경극 가사를 계속 '나는 남자로 태어나 여자도 아닌데...'로 바꿔 부르며 고집스럽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지키려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의지하는 사형의 요구로 결국에는 '나는 여자로 태어나 남자도 아닌데...'라고 대사를 읊으며 여자 역할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연극과 현실을 별개로 인식하던 사형과는 달리, 장국영은 연극과 현실을 동일시합니다.

  즉, 사형은 연극 속에서는 일세의 영웅 항우이며 절세미인 우희만을 지극히 사랑하지만, 현실에서는 우희 역을 맡은 장국영을 친형제나 다름없는 사제로서 대하며 기루에 가서 기생을 만나기도 하는 등 평범한 남자로서의 삶을 즐깁니다. 그에 비해 장국영에게는 연극이 곧 현실이며 현실 속에 연극이 녹아있어서, 연극에서는 우희로서 항우를 사랑하고 현실에서는 사형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연극과 인생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 괴리 속에서 주인공의 인생과 사랑은 자신이 원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비극적으로 흘러가 버립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 사형과 관객 하나 없는 텅 빈 무대에서 두 사람만의 패왕별희를 공연하다가, 항우의 칼로 자살한 우희처럼 사형의 칼로 자살하여 현실 속에서 연극을 완성시킵니다. 

 

 


  색계...

 

 

  색계 역시 처음에는 연극으로 시작을 했다가, 결국 연극과 현실이 뒤섞여 파멸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때, 주인공인 탕웨이가 홍콩으로 피난을 갔다가 왕리홍이 이끄는 대학생들의 연극동아리에 참가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연극동아리가 공연한 연극은 홍콩에 사는 동포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일본군에게 형을 잃은 경험이 있는 왕리홍은 연극을 통한 애국활동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 하고, 친구들에게 엄청난 제의를 합니다. 마침 홍콩에 와 있던 친일괴뢰정부의 정보부 간부(양조위)를 암살한다는 엄청난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왕리홍을 은근히 좋아하던 탕웨이는 이 위험천만한 연극의 주연을 맡게 됩니다. 즉, 탕웨이가 양조위의 부인(조안 첸)에게 접근해서 친하게 지내며 양조위를 유혹해내면, 남학생들이 양조위를 암살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세상물정 모른 채 그저 애국심과 정의감만 불태우는 이 대학생들의 계획은 처음부터 너무 무모하고 엉성했습니다.

  그래서 돌발상황이 벌어지자 어이없게 실패합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조안 첸의 일상적인 질문에도 비지땀 흘리며 대답도 제대로 못 하는 탕웨이 남편 역을 맡았던 남학생, 양조위가 탕웨이의 유혹에 넘어가 집안으로 들어올 듯 보이자 잔뜩 흥분하고 당황해하며 중국요리집 주방장이 쓸 법한 커다란 식칼 들고 설치던 또 다른 남학생, 자신들의 계획을 눈치 챈 친일파 고향선배를 칼로 찌르고서는 부들부들 떨던 왕리홍... 만일 이들의 계획이 성공했더라면 그게 이상했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게 엉성했고, 양조위가 갑자기 홍콩을 떠나게 되면서 계획은 흐지부지되어 버립니다.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상하이의 친척집에서 신세지며 학교를 다니던 탕웨이는 항일조직의 일원이 된 왕리홍과 재회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직의 지도와 지원으로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다시 한번 위험한 연극에 도전하게 됩니다. 양조위는 이미 몇 번이나 미인계에 당할 뻔한 경험이 있어서, 탕웨이에게 마음이 끌리면서도 의심합니다. 그런 양조위를 유혹하기 위해 탕웨이는 정말로 그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려 혼신을 다해 연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연극과 현실이 뒤섞이게 되고, 연기와 실제감정의 경계가 모호해집니다.

 

 

  탕웨이가 자신에게 키스하는 왕리홍을 밀어내며 "3년 전이라면 받아들였을텐데, 왜 이제서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왕리홍을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을 몰랐던 것도 아니면서 그때까지 모른 척 했던 왕리홍에 대한 원망뿐 아니라, 연극 속에서만 가능한 양조위와의 사랑에 빠져 현실 속에서도 가능한(또는 가능했던) 왕리홍과의 사랑으로 돌아설 수 없게 된 스스로에 대한 회한도 묻어나오는 장면입니다.

 

 

※  그런데 "3년 전이라면 받아들였을텐데, 왜 이제서야..."라는 이 한국어 자막이 원래의 대사를 엉터리로 번역했다는 말이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게시판에 올라와 있더군요.

  원래의 중국어 대사는 "3년 전에는 왜 네가 하지 않았니?", 즉 3년전 양조위를 유혹하기 위한 준비 단계로 탕웨이가 연극 동아리 남학생 중 한 사람과 성관계를 맺게 되었을 때, 왜 왕리홍이 직접 나서지 않고 다른 남학생에게 탕웨이를 상대하게 했느냐는 원망 섞인 대사라고 합니다. (어느 게 맞는 것인지, 진실은 저 너머에... -.-;;)

 

 

  이렇게 탕웨이가 양조위에 대한 감정으로 혼란스러워 하는 와중에, 조직에서는 이제 그만 양조위를 처단하기로 결정합니다. 

  암살계획 실행 직전, 양조위가 탕웨이에게 귀한 반지를 선물합니다.  그 반지를 낀 자신의 손을 잡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양조위를 보며, 탕웨이는 어찌해야 하나 갈등합니다. ("반지에는 관심 없어. 반지를 낀 당신 손이 보고싶었을 뿐이야" 라고 하던 양조위의 흐뭇한 표정...  비싼 반지를 끼고 거리에 나가기 무섭다며 반지를 빼내려는 탕웨이에게 "나와 함께 있으니 괜찮아" 라고 하던 양조위의 눈빛... ㅠ.ㅠ) 그리고 결국 양조위를 피신시키고, 자신은 연극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파멸하게 됩니다.
  

 

 


  배우는 원래 연기를 하는 사람이니, 배우가 자신이 맡은 역에 몰두하여 그 역할에 녹아드는 것은 모든 배우들의 지향점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역할에 몰입하는 것은 한 배우로서는 대단한 일일지 몰라도, 현실의 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한 인간으로서는 큰 불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연극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사람들이 연극이나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일들이 연극이나 영화에서는 가능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그런 연극 속의 인물과 완벽하게 하나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현실적인 파멸(영화 속 장국영이나 탕웨이와 같이 죽음을 맞는 경우 - 꼭 자살이 아니더라도 알콜이나 약물중독 등으로 죽음 맞는 경우도 있음 -, 일반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낭비벽으로 경제적으로 곤란해지는 경우, 일반인들보다 유난히 요란하고 파경이 잦은 결혼생활, 기행을 일삼아 결국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배우들의 경우 등등)을 전제로 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