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흑하(黑河)로 출발...!
흑하로 떠나기 전날(하얼빈에서의 마지막 날)은 기분 나쁠 정도로 안개가 잔뜩 끼어서 숙소에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중국어 드라마를 열심히 보며 시간을 보냈다.(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도 화면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 그런데 하룻밤 자고나서 막상 흑하로 떠나는 날은 어이없을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중국에 오기 전에 흑하가 저 북쪽 끝에 있는 곳이라 겨울이 엄청 일찍 찾아온다고 해서 과연 갈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현지상황에 따라 흑하로 갈지 말지를 정하자고 마음먹고 여행길에 오른 건데, 일기예보를 보니 다행히 낮에는 영상 8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북방민족(北方民族)의 젖줄기인 흑룡강
한국인들에게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흑하에 굳이 왜 가려 하느냐... 바로 흑룡강(黑龙江)을 보기 위해서이다.
아주 먼 옛날 북방민족의 한 갈래였던 우리 조상들도 흑룡강 근처에서 살았다. 우리와 같은 조상 밑에서 갈라져 나온 우리 사촌쯤 되는 몽고족․만주족․야쿠트족․오로촌족 등의 민족들은 아직도 그 근처에서 산다.
흑룡강, 아무르강, 하라무렌강...
흑룡강은 중국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러시아에서는 아무르강, 퉁구스어로는 하라무렌강(검은 강)이라고 한다. 같은 퉁구스계인 우리 조상들도 아마 하라무렌강이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사실 중학교 때 김혜린의 ‘불의 검’을 읽기 전에는 흑룡강이 어디에 붙어 있는 강인지, 한민족과 관련 있는 강인지 아닌지 전혀 관심 없었다.(역시 만화는 철부지들의 심심풀이 땅콩이 아니라 제9의 예술이다...! 잘 골라 읽기만 하면 어지간한 교양서적보다 더 유익하다.)
흑룡강은 검은색이 아니다...!
그런데 흑룡강에 대해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 중국인들이 흑룡강이라고 부르고, 퉁구스인들도 '검은 강'이라는 뜻의 하라무렌강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니, 강 색깔이 당연히 검은색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그저 조금 거무스름한 색을 띠고 있을 뿐, 그냥 다른 강과 비슷한 색이다. ㅠ.ㅠ
나를 강가로 태우고 갔던 택시기사 아저씨가 내 얘기를 듣더니 웃었다. ‘황하(黄河)나 황포강(黃浦江)은 정말 노란색인데, 왜 흑룡강은 검은색이 아니냐’고 내가 반문했더니, 더 큰 소리로 웃는다. (내 말의 내용이 우스운 건지, 내 중국어 발음이 우스운 건지... -.-;;)
북국(北國)의 정취
박경리의 '토지'에서 오가다가 전쟁이 끝나면 유인실과 아들 쇼지를 데리고 떠나겠다고 하던 북국이 바로 이곳이 아닐런지... 용정에서는 느닷없는 폭설과 추위 때문에 날아가 버렸고, 하얼빈역 앞에서는 중국 기차역 특유의 어수선함 때문에 박살났던 토지에 대한 낭만이 이곳에서 살아나는 것 같다. 토지에 오가다가 말한 북국이 어디인지는 안 나오지만, 나는 그 북국을 흑하로 정하련다. 누가 뭐라고 하던 내 마음이다.
아이훈(爱珲)역사박물관(아이훈은 80년대 초반에 흑하에 편입된 지역 이름인데, 청나라와 러시아의 영토분쟁의 중심지이기도 했고 그에 따른 아이훈조약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 이름을 아직 박물관에 쓰는 모양이다.)에 너무 일찍 가서 문 열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 동안 박물관 근처의 흑룡강을 구경했는데, 유빙(遊氷)이 떠내려 오다가 강변에 얼어붙은 얼음과 마찰을 일으키며 내는 소리가 그렇게 큰 줄 몰랐다. 강물 전체가 얼어붙은 것은 봤어도 유빙이라는 것은 본 적이 없어서 꽤 볼만했다.
애국적인 박물관...?
아이훈역사박물관에서는 선사시대부터 북방기마민족이 활약하던 시기, 흑하가 중국에 편입된 시기, 러시아와 중국간의 영토분쟁,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흑하 지역의 역사를 대충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오랜 세월 동안 러시아와의 영토분쟁의 무대가 되었던 흑하라, 역사박물관의 전시물은 ‘러시아인이 얼마나 많은 중국인을 잔인하게 죽였는가,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중국인들이 목숨을 잃었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뭐, 중국의 박물관에서 중국인들의 애국심 고취한다는 데야 할 말 없지만, 박물관에서 너무 노골적인 정치색을 보이니까 제3자로서 보기가 좀 민망했다.
중국-러시아의 국경도시, 흑하
저 강 너머 보이는 땅이 러시아다.
북한을 보면서도 느꼈던 거지만, 정말이지 서울의 한강보다도 폭이 좁은 흑룡강․두만강․압록강을 경계로 해서 이쪽은 중국이고 저쪽은 러시아나 북한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있고 나머지 한쪽은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땅에서 살다보니, 왠지 국경하면 높은 담벼락이 서 있고 많은 군인들이 죽 늘어서 있어야만 할 것 같다.
여기도 국경도시이다 보니 해관(우리나라의 ‘세관’에 해당함)이 있어서, 얼음이 잔뜩 낀 강을 헤치고 온 러시아 선박이 드나든다.(아, 나도 얼어붙은 강에서 배타고 싶다... ㅠ.ㅠ) 흑하해관 근처에는 노란머리에 늘씬한 몸매를 지닌 러시아인들이 많다. 뭔가 바리바리 잔뜩 들고 있는 것이, 중국을 오가는 보따리 장사꾼인 모양이다.
흑하 강변의 한가한 모습
흑하에 도착한 날은 추웠는데, 다음날은 낮 기온이 제법 올라가 포근한 편이었다. 많은 노인들이 강가에 나와 산책을 하고 담소를 즐겼다.
강변이 꽤 단단하게 얼어서 주민들이 얼음 위에서 미끄럼을 타며 노는데, 강 건너편의 러시아가 유난히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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