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여행기/'05년 둥베이(동북)3성

일제시대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의 유적들

Lesley 2006. 1. 26. 23:45

 

 하얼빈(哈尔滨) - 731부대유적(731部队遗迹)

 

  한국 사람들도 다 아는 그 악명 높은 731부대의 본부로 쓰던 건물이다. 저 건물 안에는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는 사진과 여러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어두운 역사를 강조하느라 그랬는지 전시실 자체가 무척 어두컴컴하고 전시된 자료를 볼 수 있도록 자료 주변만 밝게 해놓아 음산한 느낌이다.

  작년 중국여행 때 남경대학살기념관(南京大屠杀纪念馆)에 갔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 731부대유적지에 갔을 때도 그렇고, 검표원이 딱딱한 태도로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日本人? ’ 하고 묻는다. 죄 지은 것도 없는데 괜히 쫄아서 작은 목소리로 ‘韩人’ 이라고 대답하면 태도가 누그러진다. 만일 내가 ‘나 일본인이에요’ 라고 대답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진다.(한 대 맞을려나...? -.-;;)

  내 생각에는 나라를 통째로 빼앗겼던 한국이 중국보다 반일감정이 더 심할 것 같은데, 의외로 중국이 더 심한 것 같다. 특히 동북지방은 일본이 괴뢰국인 만주국(중국인들은 ‘위만주국’이라고 부른다.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닌 괴뢰국이라는 것을 강조하느라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을 세웠던 곳이라 그런지 반일감정이 더 높은 것 같다. 한국도 그렇지만 중국에서도 택시기사들이 승객한테 말을 거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면 만주국 시대 일본군이 만든 건물을 가리키며 흥분해서 설명을 한다. 내 중국어 실력으로는 그런 빠른 설명은 못 알아듣는데도, 내가 알아듣거나 말거나 열심히 설명을 하며 ‘한국인, 러시아인, 독일인은 다 좋지만 일본인은 싫다’라고 한다.(동북지방에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러시아에서 온 러시아인은 물론이고, 자동차 산업과 관련해서 온 독일인도 많다. 80년대 후반에 독일 폭스바겐이 장춘을 중심으로 중국 동북지방에 자동차 공장을 만들어서 대히트를 친 적이 있다) 

 

 

 장춘(长春) - 위만황궁박물관(伪满皇宫博物馆) (1) 


  일본이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의 황궁으로, 영화 ' 마지막 황제' 로 유명한 부의(溥仪)가 살았던 곳이다. 입구에 있는 저 비석에는 '9.18을 잊지 말자'는 장쩌민 전 주석의 글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위만황궁박물관을 본 다음 날 위만주국무원(满洲国务院)을 갔는데, 마침 거기 직원이 조선족이라 여러 가지 설명을 해주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다가 '만주사변'이라는 말을 썼더니, 그 직원 말이 일본인들이 '만주사변'이란 말을 쓰고 중국인들은 '9.18사변'이라는 말을 쓴다고 한다. 이런, 그 설명 들을 때까지 나는 '9.18 사변''만주사변'이 별개의 사건인 줄로만 알았다 -0-

 

 

 장춘(长春) - 위만황궁박물관(伪满皇宫博物馆) (2)

 

  부의의 황후 완용(婉容)의 침실(위의 사진)에는 아편에 중독된 완용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형이 전시되어 있다. 

  후궁 상귀인 담옥령(祥貴人 潭玉齡)의 침실(아래의 사진)에는 담옥령의 사진이 걸려있다. 담옥령은 무척 밝은 성격이라 남편인 부의는 물론 황실 사람들이 모두 좋아했는데, 20대에 갑작스럽게 요절했다. 부의는 담옥령이 일본 관동군에게 독살되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 뒤로 일본군이 자신도 독살할 것이라 의심하고 병적으로 자신의 신변을 걱정했다. 

 

 

 

 장춘(长春) - 위만황궁박물관((伪满皇宫博物馆)) (3)

 

  화려한 연회실과 열렬한 불교 신자였던 부의의 불당이다.

  부의의 조카가 쓴 글을 보면, 부의는 불교를 너무 열심히 믿은 나머지 살생을 꺼려서 소련군에게 붙잡혀 포로생활을 하면서도 자기 방의 파리나 빈대를 죽이지 않고 생포해서 창문 밖으로 방생(?)했다고 한다. -0- 

 

 

 

 

 장춘(长春) - 위만주국사법부(伪满洲国司法府)

 

  만주국 시절 사법부 건물이다. 현재는 길림대학 의학부로 쓰고 있다.

  장춘의 신민광장(新民广场)에서 문화광장(文化广场)까지 이르는 대로를 신민대가(新民大街) 라고 하는데, 이 신민대가에는 만주국 사법부 건물을 비롯한 만주국 시절에 지은 여러 서양풍의 관공서가 남아있다. 이 건물들은 좋은 구경거리가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끔찍했던 역사를 되새기게 하는 역할도 한다.   

  10년 전쯤에 우리 정부가 일제의 잔재를 청산한다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던 일제시대 총독부 건물을 철거했었는데, 당시에 반대 의견도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본이 만들었다고 다 부술 것이 아니라, 남겨서 후손들에게 수치스런 역사를 기억하게 하여 다시 그런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교훈을 줘야 한다는 이유에서이다. 나도 그 의견에 동감한다. 수치스런 역사의 현장을 때려부순다 하여 그 수치스런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오히려 저렇게 남겨서 교훈으로 삼는 게 좋을 것 같다. 

 

 

 장춘(长春) - 위만주국무원(伪满洲国务院)

 

  과거 만주국의 최고행정기관이었던 국무원 건물이다. 지금은 길림대학 의학부와 연계된 의학센터로 쓰고 있다.

  건물 앞에 있는 노먼 베쑨(Norman Bethune) 박사의 동상을 보고, 중국에 처음 서양의학을 소개한 의사 정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곳에서 일하는 조선족 직원을 우연히 만나 설명을 들으니, 중국의 항일투쟁을 도왔던 캐나다 출신의 의사로 팔로군 병사를 수술하다가 메스에 손가락을 찔려 세균에 감염되어 세상을 뜬 인물이라고 한다. 길림대학 의학부도 전에는 베쑨 박사의 이름을 붙인 의대였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베쑨 박사에 대한 자료를 찾아봤다. 베쑨 박사는 세균이든 사회체제든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좀 먹는 것이라면 저항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파시즘이란 인간사회를 파괴하는 집단적 정신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페인 내전과 중국의 항일투쟁에 참가하여 의료활동을 펼쳤다. 정말 굉장한 사람이다!

 

 

 장춘(长春) - 위만주국군사부(伪满洲国军事府), 지질궁(地质宫)

 

  만주국 시대에 군사부로 쓰였던 건물이다.(위의 사진) 신민대가에서 문화광장 쪽으로 가다가 신민대가가 끝나는 곳에 있다. 

  지질궁(아래 사진)은 만주국 시대에 천단(天坛)이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위만주국무원에서 만났던 조선족 직원의 설명으로는, 원래 만주국에서는 저 궁을 북경의 자금성을 본 따서 문화광장 전체를 포함하는 대규모로 짓기로 하고 공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가 패망하면서 공사가 중지된 채 방치되었다가, 1980년대에야 저 건물 하나만 완성시켰다고 한다. 지금은 지질대학 건물로 쓰고 있어서 지질궁이라고 한다.

  그 조선족 직원을 만났을 때 처음에는 조선족인 줄 몰랐다. 그래서 여행안내서를 보이며 중국어로 질문했더니, 한글로 써진 여행안내서를 보고 우리말로 '아, 한국인이세요? '라고 물었다.  건물을 너무 열심히 쳐다봐서 일본인인 줄 알았다고 한다. 아니, 건물 열심히 쳐다봐서 일본인인 줄 알았다니, 이게 무슨 말인지?   -.-

  그 직원의 설명을 계속 들어보니 무슨 말인지 알겠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찾아와서 만주국 시대에 일본의 힘으로 지은 건물이라고 감격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남의 나라 침략해서 아무 죄 없는 사람들 잔뜩 죽이고 제멋대로 건물 지은 게 뭐가 감격스럽고 자랑스럽다는 건지… -.-;; 정말 이 세상에는 한심한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장춘(长春) - 중국인민은행(中国人民银行), 인민위원회(人民委员会),

                 시정부(市政府)

 

  반일감정이 대단했던 택시기사 아저씨의 설명으로는, 중국인민은행(위의 사진)이 만주국 시절에는 일본의 대동은행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은 대동이라는 말 정말 좋아했던 것 같다. 무슨 대동아 전쟁이니, 대동아 공영이니

  장춘시 인민위원회 건물(가운데 사진)은 그 악명 높은 일본의 관동군의 사령부였다고 역시 택시기사 아저씨가 설명해줬다.  장춘시정부 건물(아래 사진)은 입구에 붙여놓은 설명을 보니, 만주국 시절에 무슨 일본 금융단체에서 쓰던 건물이라고 한다. (중국어가 짧아서 그 이상은 도무지... -.-;;)

 

 

 

 

 

 심양(沈阳) - 9.18사변박물관  (九一八事变博物馆)  

 

  일본 관동군이 본격적으로 중국 동북지방을 침략하기 위해서 일으킨 9.18사변(만주사변)의 기념관이다. 9.18사변으로 기세등등해진 일본군은 그 다음 해에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우고 부의를 괴뢰 황제로 즉위시켰다.

  난 여행안내서에서 저 특이한 모양의 건축물(위의 사진)을 보고 9.18사변의 희생자를 위한 추모비일 거라고 생각했다. 여행안내서의 실린 사진만 봐서는 별로 커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접 가서 내 눈으로 보니 굉장히 컸다! (사진 속의 사람들 키와 비교해보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여행안내서에는 저 특이한 건물 안에 여러 가지 자료를 전시해놓았다고 써져 있는데, 내가 갔을 때에는 건물 안이 아수라장이었다. 온갖 잡동사니가 뒤엉켜있고 바닥은 물바다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

  대신 특이한 건물 뒤에 있는 또 다른 건물(아래의 사진) 지하에 많은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일본군의 만행을 보여주는 끔찍한 사진들이 많고, 우리나라 정신대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에게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사진도 있다.

  남경대학살기념관(南京大屠杀纪念馆)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군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유골도 전시하고 있다. 유골의 사진이 아닌 실제 유골을 그대로 전시하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숙연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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