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여행기/'05년 둥베이(동북)3성

한국의 항일독립운동 유적

Lesley 2006. 1. 26. 22:37
 

  용정 (龙井) - 용정제1중학(龙井第1中学)

 

  용정은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의 활동무대였으며 내가 좋아하는 박경리의 '토지(土地)'의 주요 배경 중 한 곳이라, 큰 기대를 안고 간 곳이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이냐…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낮 기온이 17도까지 올라가 니트에 윈드자켓까지 입은 나를 땀 빼게 만들더니, 이 날은 아침부터 연변(延边)지역 전체에 눈이 쏟아지는 것이다! ㅠ.ㅠ  용정에 간다고 들뜬 나머지 아침도 안 먹고 연길(延吉)의 숙소를 나왔는데 눈이 펑펑 쏟아지는 걸 보니 정말 황당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10월 중순에 눈 내리는 것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연길에서 미니버스 타고 1시간을 가서 용정에 도착했는데, 추위와 배고픔 때문에 독립운동이니 토지니 하는 건 털끝만큼도 생각나지 않았다. -.-  아침 8시도 안 되어 도착했기 때문에 문을 연 음식점이 없어 눈 맞으며 거리를 헤맸다. ㅠ.ㅠ   그러다가 저 용정제1중학 앞에 있는, 우리나라로 치면 조그만 분식점쯤 되는 가게가 문 연 것 보고 들어가 水 (보통 물만두라고 번역하던데, 국물 없이 나오기 때문에 찐만두에 가깝다) 한 접시 먹고 겨우 정신차렸다.

  저 용정제1중학은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 등을 배출한 대성중학교, 독립운동가 이동휘가 설립한 광성중학교 등 용정 지역의 몇몇 학교들을 일제 패망 후 통합한 학교이다.

  그런데 중국의 학교는 7시 30분에 1교시를 시작하고(세상에 , 고3 수헙생도 아니고 모든 학생들이 그 시간에...! @.@ ) 2교시 수업이 끝나면 저렇게 전교생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체조를 한다고 한다. 추운 날씨에 눈 맞으며 운동장에 집합했던 학생들이 ‘오늘은 눈이 와서 체조 안 한다’는 안내방송 소리에 한꺼번에 ‘으아~’ 소리 지르며 흩어지고 있다.  조선족자치주에 있는 학교라 그런지 안내방송을 우리말로 한다.

 

 

  용정(龙井- 구 대성중학교(旧 大成中学校)  윤동주 기념관

 

  용정제1중학 안에 있는 옛날 대성중학교 건물을 지금은 민족시인 윤동주의 기념관으로 쓰고 있다. 저 건물 2층에는 대성중학교, 광성중학교 등 용정제1중학으로 통합된 학교들의 연혁, 역대 교장, 졸업생들을 소개하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오른쪽 밑에 보이는 시비에는 윤동주의 시 '서시'가 새겨져 있다.

  난 문익환 목사가 용정 출신이고 윤동주와 친구 사이였다는 것을 여기에 와서 처음 알았다. 그래도 문익환 목사는 내가 철들 때까지 살아계셨던 분이라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세상을 뜬 윤동주 시인과 동시대 사람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난다.

  그리고 상해임시정부의 요인이기도 했던 이동휘가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라는 것도 여기에서 처음 알았다. 정말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현대사가 엉망이라는 게 맞긴 맞나 보다. 

 

 

 용정(龙井) - 거룡우호공원(巨龙友好公园)의 용두레

 

  '용정(龙井)'이란 말이 '용두레'의 한자식 표기이다. 용두레라는 우물 이름이 그대로 지명이 된 것이다.  용정 한 복판에 있는 거룡우호공원(위의 사진)에 가면 용두레가 있고 그 앞에는 '용정이라는 지명의 기원이 된 우물'이란 안내비가 서 있다.(아래의 사진) 가곡 '선구자'의 가사에도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 소리 들릴 때…'라고 나온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느긋하게 둘러보지는 못 했지만 눈꽃이 핀 용두레와 그 주변은 정말 예뻤다.

 

 

  용정(龙井) -  비암산(琵岩山)의 일송정(一松亭)

 

  여행안내책자를 보니, 용정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비암산 기슭까지 가서 1시간 정도만 걸어 올라가면 일송정에 도착한다고 해서, 그렇게 올라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전날보다 기온이 20도 이상 떨어져서 너무 추워 택시를 타고 갔다.

  택시 타기를 잘 한 게, 일송정까지 올라가는 비암산의 길이 100% 비포장도로인데 눈과 흙으로 뒤범벅이라 택시로도 어렵게 꾸불꾸불 올라갔다. 만일 내 다리로 올라갔으면 신발과 옷도 엉망이 되고 추운 날씨에 체력 소모도 심했을 것이다. 그렇게 올라가는 길이 안 좋긴 했지만 길 양옆의 나무 위에 눈꽃 핀 광경은 멋졌다.

  일송정이라는 게 '정자 정(亭)'자를 쓰기는 했지만, 원래는 정자가 아니다. 그냥 소나무다. 키가 별로 크지 않은 소나무가 옆으로 넓게 가지를 친 모습이 정자 같다고 해서 '일송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일송정 주위에서 반일, 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회합이 자주 열리자, 일본군이 일송정에 총을 쏘고 후춧가루를 뿌리고 쇠못까지 박아서 죽여 버렸다. 그러다가 1980년에 연변의 조선족들이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뜻에서 일송정이 있던 자리에 저 정자를 세우고 이름도 똑같이 일송정이라고 붙였다. 지금은 저 정자 앞에도 작은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용정(龙井) - 일송정(一松亭)에서 내려다 본 비암산(琵岩山)의 풍경

 

  일송정도 그렇고 비암산도 그렇고 용두레와 마찬가지로 가곡 '선구자'에 나온다. 일송정에 올라 내려다 보는 눈 내린 비암산의 풍경은 정말 굉장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일송정에서 용정을 내려다보면 해란강(海蘭江)이 보인다는 데, 눈이 많이 내려서 도대체 어디까지가 들판이고 어디서부터 해란강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박경리의 토지를 보면 주인공 중 하나인 유인실이 자포자기하여 간도에 왔다가 소년들이 해란강가에서 목이 터져라 선구자를 부르는 것을 보고 독립운동에 투신하겠다고 의지를 다지던데… 에구… 그 해란강을 못 봤다, 아쉬워라… ㅠ.ㅠ


 

 

  하얼빈(哈尔滨) - 하얼빈역(哈尔滨站)

 

  하얼빈역도 큰 기대를 품고 간 곳이다. 안중근 의사가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현장이기도 하고, 토지 4부 마지막 장면에서 오가다가 마차를 타는 유인실을 발견하고 쫓아가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대한 숙연함도, 토지에 대한 낭만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중국의 기차역이 다 그렇듯이 하얼빈역도 완전히 도깨비시장이었다… ㅠ.ㅠ 

 

  중국의 인구가 세계 1위라는 것을 가장 잘 실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기차역이 아닌가 싶다. 중국의 기차역 하니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작년에 청도(青岛)에서 처음 중국 기차 탈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우습다.

  기차가 출발하려면 30분이나 남았는데 사람들이 죽어라 뛰기에 출발시간이 앞당겨진 줄 알고 나도 덩달아 뛰었다. 그때는 첫 배낭여행 할 때라 짐 싸는 요령이 없어서 배낭 무게가 11Kg이나 나갔는데, 그거 들쳐 메고 뛰느라 죽는 줄 알았다. -.-  알고 보니 중국에서는 기차 탈 때 원래 그렇게 뛰는 거였다. -0-;; 

  물론 아무 이유 없이 죽기살기로 뛰는 것은 아니다. 땅덩이가 워낙 넓다 보니 장거리 여행하는 사람이 많고, 장거리 여행이다 보니 당연히 짐도 많다. 한 사람 당 가방이나 쌀 푸대 2개씩은 기본이다. -0- 특히 표 가격이 가장 싼 보통열차의 경우 입석으로 타는 사람이 많아서 빨리 타지 않으면 짐칸에 자리가 남지 않아 곤란해진다. 사람이야 10시간 넘게라도 서서 가면 된다지만, 그 많은 짐은 어쩌겠는가? 사람이 빽빽히 들어선 기차 바닥에 짐을 놓을 자리가 있을리 없으니, 어떻게든 짐칸에 짐을 올려놓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마지막 떠나는 피난열차 타듯이 목숨 걸고 탈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