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여행기/'05년 둥베이(동북)3성

갈 수 없는 우리 땅, 북한...!

Lesley 2006. 1. 26. 21:35

  단동(丹东) 호산산성(虎山长城)에서 본 북한

 

  호산산성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압록강의 이쪽이 중국이고 저쪽이 북한이라는 게 도무지 실감이 안 난다. 저기 기껏해야 무슨 작은 개천 같아 보이는 압록강 위에 있는 다리 하나만 건너면 북한이라니…

  중국 여행하면서 강 하나 사이에 두고 이쪽은 중국이고 저쪽은 북한, 또는 이쪽은 중국이고 저쪽은 러시아라는 사실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동쪽, 서쪽, 남쪽 3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있고 나머지 북쪽은 철조망으로 막혀있는 나라에서 살다 보니, '국경'이라는 개념이 너무 관념적으로 머리에 박혀있었나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못해 시시하기(?)까지 한 국경을 보니 적응이 안 된다.    

 

 

  단동(丹东)의 압록강에서 배타고 본 북한 신의주 (1)

 

  지금 내가 탄 배가 압록강을 건너 북한 신의주 쪽으로 출발하려는 찰나에 찍은 사진이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저 다리는 이름하여 중조우호교(中朝友好桥)이다. 신의주가 경제개발특구로 지정되어서 외부와의 물자교류가 활발해서, 저 다리를 통해 북한과 중국으로 심심찮게 화물트럭이 오간다.

 중조우호교를 보면 중국 쪽 부분이 두 겹으로 보이는데, 중조우호교 옆에 있는 압록강단교(鸭绿江端桥)와 겹쳐 보여서 그렇다. 압록강단교는 말 그대로 '압록강의 끊어진 다리'란 뜻인데, 한국전쟁 때 중국군이 개입하는 것을 막으려고 미국 공군이 폭격해서 저렇게 되었다. 중국은 저 단교를 역사적 유물로 삼기 위해 그 상태 그대로 두고 있다. 

 

 

  단동(丹东)의 압록강에서 배타고 본 북한 신의주 (2) 

 

  내가 탄 배가 신의주 쪽을 향하고 있다. 북한이 워낙 폐쇄적인 곳이라 그런지, 아니면 그저 외국이라는 점 때문에 신기해서 그런지, 꽤 많은 중국인들이 북한 신의주 구경하려고 배를 탄다. 내 앞에 저 중국 아저씨도 쌍안경으로 열심히 신의주를 보고 있다. 신의주 바로 앞에 강물이 옅은 곳에서 북한 아이들이 물에 들어와 놀다가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든다.

 

 

  단동(丹东)의 압록강에서 배타고 본 북한 신의주 (3)

 

  이제는 북한 배에 달린 인공기도 보인다. 내가 단동에서 처음에 적응이 안 되었던 것이 바로 저 인공기이다.

  머리로는 '여기는 중국 땅이고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외교관계 수립한 국가 중 하나이니, 북한 국기가 있는 게 하나도 이상한 게 아니다'라고 알겠는데, 시내 상점이나 음식점 곳곳에 인공기가 걸려있는 것을 보면, 심지어는 우리나라 태극기와 나란히 걸려있는 것을 보면 뚫어지게 쳐다보게 된다. 반나절 쯤 지나고 나니 겨우 적응이 되었다.

  그래도 내가 정치적·사상적으로 우리 윗세대에 비해 개방적으로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초등학교 시절에 받은 반공교육이 골수에까지 미쳤나보다. 그러고 보면 내 또래(7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세대)가 6월 25일이 될 때마다 반공 포스터 죽어라 그려야 했던 마지막 세대인 것 같다.

 

 

  단동(丹东)의  압록강단교(鸭绿江端桥)

 

  압록강단교의 초저녁 때 모습과 해가 지고 나서의 모습.  중조우호교는 밤만 되면 화려하게 네온싸인을 켜기 때문에 그 옆에 있는 압록강단교까지 덩달아 화려해 보인다. 

 

  입장료를 내면 압록강단교 위에 올라가 볼 수가 있다.  압록강단교 위에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에 관한 자료 사진이 있고, 그 사진 아래 설명을 보면 '미국침략자가...'라고 되어 있다.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의 시각이 우리의 시각과 다르다는 걸 팍팍 느끼게 해주는 글이다. 그러고 보니 통화에서 집안으로 가는 버스에서 만난 중국인 아저씨가 '한국전쟁 때 중국이 북한 편을 든 것에 대해서 한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 난처했던 기억이 난다. 내 중국어 실력으로는 절대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ㅠ.ㅠ

  그런데 그 '미국침략자'의 만행을 후세에 알리겠다고 보존한 이 다리 위에 틀어놓은 음악이 공교롭게도 그 '미국침략자'들의 음악이다!  바로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히트쳤던 영화 '사랑과 영혼'의 주제곡  Unchaind Melody이다 -.-;;

  압록강단교 위에서 보면 바로 그 옆에 있는 중조우호교가 잘 보인다. 북한 신의주에서 중국 단동으로 계속 화물차가 온다. 중조우호교를 통과하는 화물차는 단동해관(海官)을 통과하여 단동 시내로 들어간다. (중국에서는 '세관'을 '해관'이라고 하던데 왜 그럴까?) 단동해관에 가보면 북한 무역업자와 공무원들이 인민복을 입고 가슴에 김일성 뱃지를 달고 왔다갔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집안(集安)에서 바라본 북한 만포 (1)

 

  집안도 단동처럼 압롱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보고 있다. 압록강 건너 보이는 저 땅이 북한의 만포이다. 집안은 고구려의 초기 도읍지였던 곳인데, 과연 한 나라의 도읍이 될 만하다. 경치가 너무 아름답다.압록강 너머 북한의 만포 역시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중국 쪽보다는 조금 경치가 떨어졌던 것이, 형편이  어려운 북한에서 논밭을 조금이라도 늘리려고 나무를 잔뜩 베어내어 중간 중간 민둥산이 보였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그림을 깨는 광경이 하나 있었으니, 사진 오른쪽의 산 위에 보이는 하얀색 글씨이다. '김일성 수령님의 유지를 받들자'였던가, 뭐 그런 비슷한 문구가 커다랗게 써져 있는데, 정말 자연보호라는 개념을 북한 당국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

 

 

  집안(集安)에서 바라본 북한  만포 (2)

 

  집안에서도 단동에서와 같이 배를 타고 북한 만포 근처로 갔다.

같은 압록강이라도 단동-신의주 쪽 압록강은 어느 정도 산업화된 곳이라 그런지 물이 좀 더러웠는데, 집안-만포 쪽은 시골이라 그런지 압록강이 맑다. 그래서 그런지 북한 여자들이 저렇게 강물에서 빨래도 하고 아이들은 그 옆에서 목욕을 한다.

  저 평화로운 광경만 보면 북한 경제가 엉망이어서 사람들의 고생이 심하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집안(集安)에서 바라본 북한 만포 (3)

 

  남한의 시골과 별 차이 없는 광경이다. 북한 사람 두 명이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가고 있고, 강물 위에는 예쁜 오리떼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고

  오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중국에서는 오리나 닭은 물론이고 양이나 소도 그냥 풀어놓고 키운다.그렇게 자유롭게 풀어놓고 키워서 자기 마음대로 자주 물 속에 들어가 헤엄을 쳐서 그런지, 중국 오리는 하얗고 뽀얀 게 여간 예쁜 게 아니다. 그런 깨끗하고 예쁜 오리들이 조류독감에 걸리다니…!! 난 조류독감이 돌거나 말거나 중국에서 그냥 닭고기 먹고 다녔다. KFC에 가보면 닭고기 먹는 중국인들이 넘쳐났다. 중국인들이 먹어서 안 죽는 음식이라면 나 역시 먹어도 안 죽지 않겠나?  

 

 

 도문(图们)에서 본 북한 남양 (1) 

 

  단동과 집안에서는 압록강 건너 북한을 봤는데, 도문에서는 두만강 건너 북한을 보게 된다. 두만강변에 있는 두만강 공원에 서 있는 중국-북한 국경 표지판이다. 그런데 두만강은 이 사진에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색깔이 영… 여행안내책자에도 오염이 심하게 되어 '두만강 푸른 물의 노 젖는 뱃사공'이란 노래를 생각하며 두만강을 보면 안 된다고 써있더니, 정말로 완전히 갈색이다. -0-

 

 

 도문(图们)에서 본 북한 남양 (2) 

 

  두만강변에 있는 두만강 공원에는 한국에서 온 실향민으로 보이는 노인들이 눈에 많이 띈다. 부부끼리, 또는 자식에 손자까지 데려와서 북한쪽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또 결혼식 야외 촬영을 하는 중국인 신랑, 신부(아마도 조선족이 아닐까? 이 근처는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다)도 보인다. 그런데 저 신부를 얼핏 보면 별다른 점이 없는 것 같지만, 놀랍게도 하얀 웨딩 드레스 속에 새빨간 내복을 입었다. -0-  사진만 보면 저 날의 날씨가 따뜻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람이 많이 불어 제법 추웠다. 그 추운 날씨에 소매도 없는 데다가 얇은 옷감으로 만든 드레스 입고 촬영하려니 왜 안 춥겠는가… 그러니 속에 내복 껴입은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왜 그 내복 색깔이 빨간색이냐는 것이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드레스 자락이 무릎 위로 올라갈 때마다 빨간 내복이 보이는 데 정말 가관이었다.-.-;;

 

 

 도문(图们)에서 본 북한 남양 (3) 

 

  두만강은 압록강 보다 강폭이 좁다더니 정말 그랬다. 특히 내가 간 때가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접어드는 때여서(아무래도 북쪽 지방이라 겨울이 빨리 온다) 강수량이 적어 더 그랬다. 덕분에 원래 계획했던 대로 뗏목을 탈 수 없었다. 뗏목, 배 모두 두만강의 수량이 적어 운행을 중지했기 때문이다.

  두만강 공원을 따라 죽 걸어가다 보니, 일부 지역은 수심이 얕아 종아리까지만 물이 찰 것 같고 강폭도 너무 좁아서 열 걸음만 걸어도 북한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중국에 탈북자들이 넘쳐날 만하다. 나라도  저 정도 강은 충분히 건널 수 있을 것 같다.

  나중에 훈춘(珲春)에 갔을 때 중국인 택시기사 말이 북한 사람들이 한밤중에 강을 건너와서 중국인들의 식량이나 돈을 자꾸 훔쳐가는 통에 그 지역 중국인들이 북한 사람들을 싫어한다고 했다. 이것 봐, 김정일씨, 이 상황 좀 어떻게 해보란 말이야…! 어쩌다 국민들을 다른 나라 사람들한테 몽땅 도둑놈 취급 받게 만들었냐? >_<

 

 

 도문(图们)에서 본 북한 남양 (4) 

 

  중국의 도문과 북한의 남양을 잇는 도문대교를 도문해관 옥상 위에서 촬영했다.

  도문해관 옥상 위에 올라가 도문대교와 북한을 바라보는 데 인민폐로 20원(한화 약 2700원)을 내야 한다. 북한 땅이야 두만강 공원에서도 볼 수 있는데, 굳이 돈 내고 옥상 위에 꼭 가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20원에는 기막힌 보너스가 하나 포함되어 있다. 아래 사진을 보면 군인(오른쪽 끝 사람)이 평상복 입은 남자 두 사람과 다리 위를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저 군인은 중국의 국경수비대 병사이다. 즉, 20원을 내면 옥상에서 북한 땅을 볼 수 있는 것 뿐 아니라, 중국 군인과 함께 다리 중간(중국과 북한의 경계선)까지 갈 수 있다. 정말 돈 버는 방법도 가지가지이다. -0-;;

 

  나도 중국국경수비대 병사의 호위를 받으며 도문대교 위를 걸어가 북한과의 경계선까지 갔다. 사실 북한 사람들이 날 납치할까 봐 호위해주는 건지, 내가 북한으로 넘어갈까 봐 감시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감시를 받는다'는 쪽보다는 '호위를 받는다'는 쪽이 기분 좋지 않은가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내 뒤에 있는 철판으로 된 긴 선이 중국과 북한의 국경이다.

  아무래도 국경지역이고 또 바로 옆에 군인까지 붙어 있으니 조심스러워질 수 밖에 없다.

내 든든한 호위병(?)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난 북한 쪽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는 뜻으로 물은 건데, 이 군인은 내가 자기한테 사진 좀 찍어주겠느냐고 부탁하는 뜻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나한테 카메라를 달라고 하더니 경계선 쪽에 가서 서라고 한다. 저 경계선 앞에 저렇게 서 있으니 내가 '공동경비구역 JSA'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아무래도 군인 앞에 서니 긴장해서 자연스러운 폼이 안 나온다. 나까지 군인이 된 것 마냥 부동자세가 나온다.

  그런데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인터넷 검색하다가, 한국인들이 저 다리 위의 경계선을 한 발자국 정도 넘어가 사진 찍은 걸 보았다. 아, 너무 아쉽다 나도 조금만 용기 내어 북한땅 한번 밟아 보는 건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