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여행기/'05년 둥베이(동북)3성

백두산이다...!

Lesley 2006. 1. 26. 21:09

  중국 호객꾼들의 머릿속에는 안테나가 있다...?

 

  통화(通化)역에서 밤기차를 타고 백두산 근처의 백하(白河)역으로 갔다.

  이틀 연속 난방이 안 되는 기차 침대칸에서 새우잠을 자서 제 정신이 아닌데다가 머리까지 산발한 모양으로 잉워 맨 아래칸에 멍하니 앉아 있는 나에게, 웬 중국 청년(알고 보니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지프 운전사)이 오더니 ‘당신 한국인인가? 장백산('백두산'의 중국 이름)에 갈 건가?’라고 물었다. 아직 잠도 덜 깨서 멍하고 안경도 안 써서 그 청년의 얼굴도 제대로 안 보이는 상태에서도 ‘당신은 내가 한국인인 것을 어떻게 알았나?’하는 질문이 먼저 튀어나온다.(평소 일부러 말하려면 잘 안나오던 중국어가, 너무 황당한 상황이 되니 아주 자연스럽게 잘 나온다. -.-^)

  같은 동양인이다 보니 선글라스․카메라․한국어로 된 여행안내책자 등 외국인 관광객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할만한 물건을 안 보이게 하고 입만 다물고 있으면,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모른다. 아무래도 여자 혼자 하는 배낭여행이라 남의 눈에 띄는 행동은 삼가게 된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 중국인’들에게나 통한다. 관광지의 호객꾼(흔히 ‘삐끼’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림도 없다. 도대체 뭐를 보고 눈치를 채는 건지, 기가 막히게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달라붙는다. (그들의 머릿속에 중국인과 외국인을 구분해낼 수 있는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든다... -0-) 그나마 백두산은 워낙 많은 한국인이 오는 곳이라 ‘당신 한국인인가?’라는 질문을 듣게 되지만, 중국 대부분의 장소에서는 ‘당신 일본인인가?’라는 질문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듣게 된다. ('한국인이냐'는 질문은 바라지도 않을 테니, 제발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만 물어줘...! 일본인이냐는 질문은 이제 너무 지겨워...! ㅠ.ㅠ)  

 

 

  드디어 백두산에 오르다!  

 

  그 지프 운전사와 새벽 5시에 백하(白河)역에서 내려 덜덜 떨면서 조선족 식당에서 바가지만한 그릇(절대로 과장이 아님. 정말 바가지 만했음…!!)에 나오는 된장국으로 식사를 하고, 6시 반에 중국인 5명과 한 팀이 되어 지프를 타고 장백폭포 입구까지 올라갔다.

  폭포 입구에 도착했을 때 이미 8시였는데도, 산봉우리가 워낙 높아서 햇빛이 저 위에만 들고, 우리가 올라가는 길에는 안 들었다. 백두산은 10월 초면 이미 눈이 내린다더니, 정말로 올라가는 길 간간히 이미 내려서 녹지 않은 눈이 보인다.

 

 

  백두산은 휴화산이다.  

 

  백두산을 사화산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많던데, 백두산은 언제 다시 폭발할지 모르는 휴화산이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폭발 기록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조선왕조 숙종 때 폭발했다는 것이 마지막 폭발 기록이라고 한다. 통일되기 전에 폭발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백두산을 직접 보면 백두산이 정말 화산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 산을 이루는 바위와 흙, 그리고 산세가 다른 산과는 정말 다르다.

 

 

   백두산 봉우리에 나타난 태양, 골짜기에 비치는 햇빛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등산용 장갑 끼고도 시린 손에 입김 불며 장백폭포를 향해 부지런히 올라가는데, 산봉우리 사이로 해가 나는 게 보인다. 8시가 넘었는데도 어스름했던 골짜기에 순식간에 밝은 햇빛이 비치는 데, 직접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 광경을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어두컴컴했던 골짜기에 갑자기 강한 햇빛이 쏟아지자, 햇빛이 비친 부분이 마치 강물처럼 보인다.

 

 

 

 

  중국 관광지의 계단 이야기

 

  장백폭포 아래에서 천지로 가는 길은 콘크리트 지붕이 씌어진 계단(올해 완성했다고 들었다)이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마침내 계단이 끝난 곳에서 웅장한 장백폭포를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었다. 수량과 수압이 사시사철 떨어지지 않아 한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는 장백폭포이다.

  장백폭포 올라가는 길이 돌계단이니, 잠시 계단 이야기를 하자면…

  중국을 돌아다니며 느끼는 점 중의 하나는 계단이나 도로를 만드는 중국인들의 솜씨가 엄청나다는 점이다.  1500미터가 넘는 태산(泰山)에, 맨 아래에서 맨 꼭대기까지 계단을 놓은 것을 보았을 때는 놀랍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백두산에 가기 전에 들렸던 집안(集安)과  통화(通化)를 잇는 도로를 봤을 때는 놀란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기가 질려버렸다. 말 그대로 첩첩산중인 곳에 그렇게 깨끗하게 포장도로를 한참 깔아놓은 것을 보니 좀 무서운 생각조차 들었다. 로마가 주변국으로 세력을 확장해나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뛰어난 건축술을 바탕으로 도로와 수도 등 사회간접시설을 만들어나갔기 때문이라는데... 에구... 조금 섬찟하다.

 

 

  송화강(松花江)의 원천인 천지의 물…   

 

  장백폭포를 지나 천지 부근까지 올라오니, 천지에서 흘러나온 물이 햇빛에 반짝이며 장백폭포로 흘러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 물은 다시 장백폭포를 지나 우리 한민족을 비롯한 여러 북방민족의 젖줄기였던 송화강으로 이어진다. 우리 조상들은 송화강을 중심으로 부여를 세우기도 했다.

  송화강을 제대로 보고 싶은 사람은 하얼빈 대신 길림으로 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용담산 공원에서 내려다 본 길림의 송화강은 너무 아름답다. 하지만 하얼빈의 송화강은 너무 실망스럽다.

 

 

  민족의 소원, 통일의 염원을 담았을 돌탑…  

 

  천지로 올라가는 길에는 장백폭포 근처보다 훨씬 많은 돌탑이 있다. 저 수많은 돌탑은 거의 한국인들이 만든 것인데, 아마도 통일의 염원을 담아 만들지 않았을까...

  천지 입구에 텐트 쳐놓고 컵라면을 팔던 조선족 아저씨가 (세상에! 컵라면을 산 아래에서보다 5배의 가격으로 판다. 산 아래에서 빵, 음료수 등 먹거리를 미리 사가기를 잘 했다. -0-;;)  '저 돌무더기는 전부 한국인이 만든 거다. 저게 무슨 뜻이냐'라고 물었는데, 글쎄... 한국의 산에 가면 흔히 보는 돌탑인데도 그 돌탑에 어떤 의미가 있는 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민간신앙과 관련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하여간 눈에 익은 광경이라 정겹다. 나도 검은 화산암 하나 집어 돌탑 위에 조심스레 얹었다.

 

 

  북방민족의 성산 백두산

 

  역시 화산이라 그 모습이 독특하다.

  천지로 옮기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저 큰 바위와 비탈에 있는 작은 바위들 모두 화산암이라 만져보면 우리가 흔히 보는 돌과는 그 느낌이 전혀 다르다. 장갑을 벗고 흙을 만져보니, 역시 화산암이 부서져 만들어진 흙이라 보통의 흙보다 입자가 굵으면서 둥글고 습기가 별로 없다. 생각 같아서는 기념품으로 백두산 흙이랑 돌을 조금 가져오고 싶었는데, 부산에서 11월부터 열리는 APEC 회의 때문에 공항에서 농산물과 광물에 대한 검색이 강화된다기에 포기했다.  에구... 난 왜 이리 소심하냐... ㅠ.ㅠ

  우리는 흔히 ‘우리 한민족의 영산 백두산’이란 표현을 쓰지만, 사실 백두산을 성산으로 숭배하는 민족은 우리만이 아니다.

  우리 민족과 사촌쯤 되는 북방의 기마민족은 모두 백두산을 자기 민족의 성산으로 생각한다. 백두산 천지에서 만났던 몽고족 아저씨도 백두산이 몽고족의 성산이므로 보러 왔다고 했다. 몽고족뿐만 아니라 만주족, 그 밖의 여러 퉁구스 계통의 민족들이 백두산을 성산으로 생각한다. 저렇게 보통 산과는 확연히 다른 백두산의 모습을 보면 왜 옛날 북방민족들이 백두산을 특별하게 생각했는지 알 것 같다.

 

 

 

  천지(天池)다, 숨이 막힌다…!! 

 

  조물주께서 날씨 부조 해주신 덕에, 몇 차례나 백두산에 올라간 사람도 못 보기 일쑤라는 그 천지를 나는 보게 되었다. 천지의 날씨는 변화가 너무 심해서, 백두산 아래 날씨가 좋더라도 천지 근처는 비가 내리거나 안개가 자욱한 날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천지를 볼 수  있는 날은 1년 중 30일도 채 안 된다고 한다. 나는 정말 행운아다..!^0^

  그것도 안개에 싸인 어슴푸레한 천지가 아닌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운 모습의 천지를 봤다. 심장이 멎어버릴 것만 같다. ‘한 폭의 그림 같다’는 말은 정말 진부한 말이지만, 이 말이외의 다른 표현을 찾을 수가 없다. 심봤다...!!! 

  정말 한국에서나 중국에서나 이렇게 맑은 물은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다. 등산용 장갑을 땅바닥에 내던지고 천지의 물을 몇 번이나 손으로 떠서 마셨는데, 그렇게 맑고 달 수가 없다. 매일 이런 깨끗한 물을 마시면 내 피부가 좀 고아지지 않을까나...^^

 

 

 

 

  천지에서 만난 몽고족 아저씨

 

  천지 앞에서 우연히 만난 내몽고에서 온 몽고족 아저씨가 찍어준 사진이다. 날씨도 너무 좋았고 배경인 천지도 너무 아름다웠고 아저씨가 잡은 카메라 구도도 훌륭했고, 이래저래 중국에서 찍은 내 사진 중 제일 잘 나온 사진이 되었다.

  그 몽고족 아저씨와는 다시 장백폭포 아래로 내려갈 때까지 이런저런 얘기하며 재미있게 잘 놀았다. 그리고 헤어질 때는 백두산 온천물로 삶은 계란을 4개나 사서 선물로 주셨다. (어이구~ 내가 계란 좋아하는 건 어찌 아시고…^^) 그런데 아저씨가 한국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묻자, ‘한국인과 몽고인의 조상이 같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하셨다. (오오…단지 그 이유만으로 한국에 관심을 갖는단 말이야? @.@)  한국인도 아닌데 ‘남한과 북한은 반드시 통일해야 한다. 그래야 발전해서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시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남한, 북한? 남조선, 북조선? 한국, 북한?  

 

  천지에서 나처럼 혼자 여행 온 한국인 아저씨를 한 분 만났다.  그 분이 저 북한 쪽 봉우리를 가리키며 '저기 통해서 왔으면 백두산 오는 데 시간이 덜 걸렸겠죠?'라고 하셨다. 멀쩡한 내 나라 땅 두고 남의 나라 땅 통해서만이 백두산 올라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슬프다.

  이번 여행의 시발점인 심양(沈阳)에서 백두산까지 가는데 1주일도 안 걸렸는데, 그 짧은 기간에 만난 중국인 중 북한 사람을 못 봤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아무래도 중국-북한 국경지대에 사는 사람들이라 북한인(주로 탈북자)과 접촉도 잦은 편이고, 남한-북한 관계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중국인들 모두 북한 사람들이 너무 힘들게 산다고 고개를 절래 절래 젓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내가 ‘북한’이라고 하면 알아듣지 못한다.  ‘조선’ 혹은 ‘북조선’이라고 해야 알아듣고, 주로 ‘조선’이라는 말을 훨씬 많이 쓴다. 남한에 대해서는 간혹 ‘남조선’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한국’이라고 한다.

  기분 정말 묘하다. 남쪽에서 ‘남한과 북한’이라고 하고 북쪽에서 ‘북조선과 남조선’이라고 할 때에는, 그래도 양쪽 모두 남과 북이 하나라는 인식이 밑에 깔려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한국’과 ‘조선’이란 말로 남과 북을 완전히 별개의 국가 취급을 한다. ㅠ.ㅠ

 

 

  천지에 왠 공룡…?   

 

  천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정신없이 카메라에 담다가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는데, 저 공룡(?)과 눈이 마주쳐 깜짝 놀랐다. -.- 가끔 천지에 출몰한다는 정체불명의 괴물의 모습을 본 딴 동상을 천지 옆에 만들어놨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저 공룡이 그 괴물인가 보다. 그런데 저 동상 좀 어디다가 치워놨으면 좋겠다. 덩치는 아기공룡 둘리의 엄마만한데 둘리 엄마라면 표정이나 부드럽지, 저건 찡그린 표정이어서 무섭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