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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 75(Plan 75) - 노인 안락사는 선택인가, 강요인가?

Lesley 2024. 4. 18. 00:10

 

  설 연휴 때 인상 깊게 본 영화를 이제야 포스팅한다.

  2022년에 칸느 영화제에 출품되어서 주목을 끌었던 일본 영화인데 이제야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된다며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데, 일본은 우리보다 한 발자국 먼저 초고령화 사회에 들어섰다.  그러한 일본의 노인 문제을 소재로 '히야카와 치에' 감독이 만든 영화가 오늘 소개할 '플랜 75' 다.

 

 

 

 

 

  이 영화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일본에 노인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그에 따른 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정부 재정에도 큰 부담이 되고 청년 사이에서도 노인 혐오가 심해진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플랜 75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한다.

 

 

 

  플랜 75는 75세 이상의 노인들을 안락사 시키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무법천지도 아닌데 75세 넘었다는 이유로 아무나 데려다가 마구잡이로 죽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법적으로 문제 없다는 구색은 맞추기 위해, 75세 생일을 맞게 된 노인들에게 이런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신청을 받는다.  즉, 신청자에 한해서 안락사를 시킨다.  게다가 중간에 마음이 바뀌면 취소할 수도 있다.

  그러니 보기에 따라서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정부가 국민에게 안락사를 강요한다면 큰일이겠지만, 안락사에 대한 선택권과 취소권을 주었으니 괜찮은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말이 선택이지, 사실상 안락사를 선택하라며 떠미는 분위기다.   

  노인들이 검강검진을 받으려 모인 병원의 TV에서는 플랜 75를 홍보하는 광고가 나온다.  광고 속 여자 노인은 너무나 해맑은(!) 표정으로 플랜 75를 신청하니 안심이 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건강검진 차례를 기다리던 남자 노인이 못마땅한듯 TV 채널을 바꾸려고 하는데, 채널이 고정되어 있어 바꾸지 못한다.  즉, 그 병원에 온 노인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플랜 75 광고를 봐야 한다.  결국 그 노인은 TV 전원 코드를 뽑아버린다.

  저소득층 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소에서도 플랜 75를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급식소에 플랜 75 포스터가 붙은 광고판을 세워놓고, 플랜 75 관련 단체 직원들이 식사하러  온 노인들에게 플랜 75 전단지를 나눠주면서 신청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즉, 노인들이 모일만한 장소에서는 플랜 75라는 말을 안 보거나 안 들을 수 없게끔 한다.  75세 즈음한 노인들이 플랜 75를 신청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플랜 75 신청자를 늘이기 위한 당근책도 제시한다.

  신청자에게 죽기 전에 맛있는 것을 사먹거나 여행을 다녀오라며 용돈인지 위로금인지 알 수 없는 10만엔을 준다.  10만엔이면 우리 돈으로 90만원 조금 넘는 돈이다.  많은 노인들에게 10만엔씩 나눠주려면 정부 입장에서는 상당한 예산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주는 이유는, 노인들이 일찍 죽어주면(!) 10만엔씩 주는 돈보다 훨씬 많은 금액(노인들에게 들어가는 의료비와 복지비)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사들이 하루에 달랑 10분일지언정 신청자에게 전화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신청자 대부분이 말동무가 없어 외로움을 겪는 것을 알고 죽기 전에 말상대 정도는 해주겠다는 뜻이기도 한데...  다른 한편으로는 신청자가 중간에 마음을 바꾸어 안락사 신청을 취소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화에 굶주린 노인들에게 온갖 상냥한 말로 위로를 해주어 이승에 미련이 남지 않게 하려는 수작(!)이기도 하다. 

 

  사회가 플랜 75에 거부감을 느끼다가 점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도 묘사된다.

  영화 초반부에는, '논란이 많았던' 플랜 75 관련 법률이 결국 국회를 통과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결국 플랜 75를 시행하기로 했다고는하지만, 그런 결정이 나오기까지 찬반 논란이 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중반부에는, 플랜 75 덕분에 지난 3년간 10조엔인지 100조엔인지 하는 큰 재정절감 효과가 있었다면서,플랜 75 신청 연령을 75에서 65세로 낮출 것을 논의중이라는 뉴스가 나온다.  어느덧 플랜 75를 시행한지 3년이나 되었고, 그동안 많은 노인이 안락사를 선택한(자기 뜻이든 남들에게 떠미린 것이든 간에 어쨌거나 표면적으로는 선택임.) 덕분에 노인에게 드는 각종 사회보장비를 절감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정부가 플랜 75의 효과에 고무되어 이제는 노인이 75세가 될 때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65세만 되어도 안락사를 선택하도록 유도하기로 한 것이다.

 

 

 

  주인공은 '미치(바이쇼 치에코)' 라는 여성 노인이다.

  미치는 자식도 없고 남편과도 사별하여 작은 임대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75세 생일 즈음하여 플랜 75 관련 단체 직원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조금 신기해 하는 정도였지 크게 관심갖지는 않았다.  다행히 건강한 편이라 호텔 객실 청소부로 일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고 비슷한 나이의 동료들과도 친하게 어울리며 그럭저럭 살고 있었으니, 굳이 안락사를 선택할 필요가 없었는데...  

 

  갑자기 실직하면서 플랜 75를 선택해야 할 상황으로 몰린다.

  미치의 동료 중 한 사람이 근무중에 쓰러지는 일이 생기자, 노인 직원들에게 부담을 느낀 호텔 측이 '노인을 부려먹는다고 손님들이 항의했다' 라는 핑계를 대며 노인 직원들을 한꺼번에 퇴직시킨다.  그런데 75세의 나이에 퇴직을 하니 새 직장을 구할 수가 없고, 임대 아파트 측에서도 고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직업이 없으면 임대 계약을 연장해주지 않겠다고 한다.  생활비를 벌 수 없는 것도 큰일인데 아파트에서 쫓겨나 길거리에 나앉게 생긴 것이다.

  게다가 호텔에서 일하다가 쓰러진 동료가 퇴원한 뒤로 계속 전화를 받지 않자 걱정되어 찾아갔다가, 그 동료가 홀로 사는 집에서 사망한 것을 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보도되는 고독사...)  그 동료처럼 나이도 많고 혼자 사는 미치 입장에서는 남의 일 같지가 않았을 것이다.  자기도 사망하고 며칠 후에야 썩은 냄새 풍기는 시신으로 발견되느니, 차라리 아직 건강할 때 깨끗이 죽자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안락사가 아닌, 상황에 몰려서 선택한 안락사는 마지막 순간에 공포로 다가온다.

  처음에 미치는 담담한 태도로 삶의 마지막 시간을 맞는 것 같았다.  상담사를 따로 만나 예전에 남편과 함께 갔던 카페에 다시 가기도 하고 난생 처음 볼링도 즐긴다.  안락사를 하기로 한 날에는 오랫동안 살아온 자그마한 아파트를 깨끗이 청소한 후, 안락사 시설로 가서 침대에 누워 인공 호흡기(이 경우에는 독가스 호흡기라고 해야 하나...)를 쓴다.

  그러나 미치의 침대와 옆 침대 사이의 가림막이 어쩌다가 벌어지면서, 옆 침대에 누운 남자 노인이 운명하는 순간을 보게 된다.  남자 노인의 눈동자가 처음에는 미치를 응시하더니 점점 흐려진다.  그리고 눈을 반쯤 감은 채 사망한다.  바로 옆에서 본 타인의 죽음 때문에 그동안 마음 밑바닥에 묻어두었던 죽음의 공포가 살아난다. 

  결국 미치는 안락사 시설을 나온다.  붉게 타오르는 저녁놀을 보며 민요인지 시인지를 나즈막히 읉조리던 미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안락사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안락사는 20세기에도 21세기에도 항상 뜨거운 감자였다.

  안락사는 소극적 안락사(연명치료 반대)만 적극적 안락사(강력한 진통제와 독극물로 사망하게 하는 것으로 보통 안락사라고 하면 이쪽을 말함.)로 나뉘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소극적 안락사만 허용되고, 흔히 안락사라고 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스위스나 네덜란드 등 몇몇 국가에서만 허용된다. 

  죽고 싶다는 이유로 아무나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게 하면 국가가 자살을 조장하는 꼴이 될 테니,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라고 해도 다음의 조건을 갖춘 경우에만 허용한다.  첫째, 환자가 현대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질병에 걸렸고 그로 인해 심각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것.  둘째, 환자가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 죽음을 간절히 원하고 있고 의사나 심리상담사 같은 전문가들이 그런 환자의 뜻을 최소한 두 번은 확인할 것. 

 

  안락사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보통 다음과 같다.

  앞으로 나을 가능성이 있다면야 당장의 고통을 견딜 수 있지만, 현대 의학으로 어찌할 수 없는데도 끔찍한 통증을 겪으며 자연사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잔인하다.  물론 환자가 기적이 일어날 희망을 놓지 않거나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면야 괜찮지만, 환자 스스로 고통에 찬 삶보다는 편안한 죽음을 원하는데도 강제로 살려둔다면 고문이나 다를 바 없다.

  또한 안락사 반대자들은 사람의 목숨을 인위적으로 끊게 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고 하지만, 삶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질이 확보가 되었을 때(흔히 말하는 '인간다운 삶'.) 의미가 있는 것이다.  중환자실에 누워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고 온갖 호스와 전선을 몸에 매단 채 기계의 힘으로 숨만 겨우 쉬는 것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다. 

 

  의학의 발달로 예전 같으면 이미 사망했을 사람이 중환자실에 누워 기계의 힘으로 장기간 연명하는 일이 많이 생기면서, 안락사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나 역시 찬성하는 쪽이었다.  어떤 일이든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보다 당사자가 가장 힘든 법이다.  고통을 겪는 당사자인 환자가 너무 힘들어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죽음을 원하는데, 당사자 아닌 사람들이 왈가왈부하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의학 수준이 낮았던 예전 같으면 차라리 깨끗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사람이, 이제는 음식을 씹거나 대소변을 가리는 기본적인 것조차 하지 못하고 시체처럼 누워서 기계의 힘으로 숨만 쉬고 욕창에 시달리며 서서히 죽음을 맞게 된다는 것도 끔찍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나니 안락사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도 '회복 가능성이 없고 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 스스로가 원하는 경우' 에는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를 본 후에는, 환자가 빠른 죽음을 간절히 원하더라도 이런저런 까다로운 조건을 붙일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안락사가 보편화된 세상이 되고 환자의 뜻을 존중한다는 명분으로 안락사의 조건이 간단해진다면(예를 들어 '본인의 신청' 만 있으면 안락사를 허용해준다면) 악용하는 경우가 줄줄이 생길 것 같다.  가령 환자가 죽음을 원하지 않는데도 주위 사람들(주로 치료비와 간호를 떠맡아야 하는 가족)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안락사를 맞게 될 것 같다.  더구나 건강이 악화된 환자가 아니라, 이 영화의 주인공 미치처럼 건강하게 살던 노인들마저 노인들을 짐스러워 하는 사회 분위기에 떠밀려 안락사라는 이름의 '사회적 사형' 에 내몰릴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1월이었나, 2월이었나, 한 외국발 뉴스가 우리나라에 전해서 큰 화제가 되었다.

  네덜란드의 전 총리 부부가 같은 날 자택에서 손을 맞잡고 함께 생을 마감했다.  부부 모두 90세를 넘긴데다가 몇 년 간 질병으로 고통 받았다고 하니, 부부의 죽음 자체에 애석해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 부부가 안락사로 사망했다는 점에 주목하는 분위기였다. (위에 썼듯이 네덜란드는 안락사가 합법인 국가임.)

  그런데 인터넷 기사 아래 붙은 댓글들을 보다가 놀랐다.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해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환자를 위하는 쪽에 방점 찍는 댓글'들도 보였지만...  가뜩이나 노인들이 늘어나는 와중에 소생할 가능성이 없는데 노인을 계속 병원에 두어야 한다면 가족들이 그 치료비를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환자 가족의 경제적 부담에 방점 찍는 댓글' 이 훨씬 많았다.

  물론 인터넷 댓글이라는 게 원래 극단적이고 과격한 편이라 사회의 여론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터넷 댓글로 여론의 추세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 댓글만 보면, 우리나라에서 안락사를 허용하면, 중병에 걸렸지만 살고 싶어하는 노인들이 경제적 부담에 힘들어하는 자식들의 눈치 때문에 마지못해 안락사를 선택하는 일이 줄줄이 생길 것 같다.  까딱하면 가난한 집안 노인들만 안락사 신청서에 서명하게 될 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도 미치처럼 가난한 노인들이 안락사를 선택한다.

  사실 노인이라도 부유하다면야 본인의 돈으로 생활비도 의료비도 간병인 비용도 얼마든지 댈 수 있으니, 사회에서도 그런 부유한 노인에게는 굳이 안락사를 권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플랜 75 프로젝트가 넘쳐나는 노인 때문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의 재정 부담을 줄여보겠다고 만든 정책이었으니, 국가 재정에 부담 줄 리 없는 부유한 노인이야 100세 넘어서까지 살아도 상관없겠지... 

 

  불공평한 일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 그래도 공평한 것은 '죽음' 이라고 말한다.

  돈이 많든 돈이 적은, 권력이 많든 권력이 없든, 남자든 여자든,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언젠가는 죽을테니 죽음이야말로 모든 이에게 공평한 것이다... 라는 말인데...

  이 영화를 보고나면 그 죽음조차 불공평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연사는 부유한 노인의 전유물이 되고, 안락사는 가난한 노인들의 전유물이 되고...  그렇게 죽음에도 빈부귀천이 있는 세상이 올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