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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숫자 표현의 영어 - 영어 숫자 좀 제대로 읽어봅시다!

Lesley 2022. 5. 1. 00:01

 

  특이한 영어책을 한 권 소개할까 한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되는 영어책은 보통 두 종류로 갈린다.  하나는 토익, 토플, 수능시험 등을 위한 문법책이나 독해책 같은 수험서다.  또 하나는 좀 더 실용적이면서 흥미롭게 공부할 수 있는 책인데 주로 회화책이다. (그게 정석적(?)인 회화책이든 영화나 드라마를 이용한 회화책이든 간에...)   

  그런 점에서 '조나단 데이비스''유현정' 이 함께 쓴 '거의 모든 숫자 표현의 영어' 는 독특하다.  제목 그대로 숫자 표현만 목표물로 잡아서 쓴 영어책이다.  

 

  

 

  많은 사람이 영어로 각종 숫자를 읽는 법을 모르는 이유는, 평소 영어 회화를 할 일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유학생이나 주재원처럼 외국에서 장기간 살아야 하는 사람이거나, 국내에 머물더라도 외국인과 영어로 자주 소통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일상생활 속에서 온갖 숫자를 영어로 표현하며 살아야 한다.  전화번호, 주소, 길이.무게.부피 같은 도량형, 온도와 습도, 혈압과 심박수, 학교의 수학이나 과학 시간에 나오는 여러 수식, 직장의 문서에서 나오는 온갖 수치 등.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은 영어를 글로 접하기 때문에 읽는 법을 몰라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가령 영어로 된 글 속에 10÷2=5라든지 1:30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나왔을 때, 어떻게 읽는지는 몰라도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으니 독해에는 아무 문제 없다.  초등학생 때 배우는 쉬운 것들이며 만국공통으로 쓰는 것들이라, 한글로 된 글에서도 자주 보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인과 직접 영어로 대화해야 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먼저 10÷2=5부터 살펴보자.  영어로 말할 때 숫자는 문제가 없는데 ÷와 =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난감해진다.  ÷는 우리말로 '나누기' 라고 하니까 divide일 것 같고, =는 수학 시간에 '이퀄' 이라고 불렀으니까 equal 정도면 될 것 같다.  그러면 ten divide two equal five라고 하면 되는 건가?  꽝이다.  답은 ten divided by two makes five다. (웬 make?  넌 어떻게 갑툭튀 한 것이냐...!)

  또 1:30은 뭐라고 해야 할까?  우리말로는 '일 대 삼십' 이라고 하면 된다.  하지만 :를 영어로 콜론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설마 one colon thirty는 아닐테고...  그나마 위에 나온 10÷2=5는 엉터리로 찍기라도 할 수 있었는데 이쪽은 찍을 엄두도 안 난다.  답은 one-to-thirty다. 

 

  해외로 여행이나 출장을 갔다가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가도 숫자가 우리 발목을 잡게 된다. 

  체온까지는 알겠는데 혈압에서 막힌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120에 90이예요.' 식으로 말하는데 이래서는 영어로 말하는데 도움이 안 되고...  다행히(?) 혈압측정기에서 나오는 기계에는 120/90이라고 표시되어 나온다.  이걸 이용하면 영어로 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120/90를 one hundred and twenty per ninety라고 하면 될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에도 꽝이다.

  답은 one hundred and twenty over ninety 또는 one twenty over ninety다.  /를 over라고 읽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120을 one twenty 라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더욱 당황스럽다.

 

  물건을 살 때 흔히 쓰는 '가로 몇 미터, 세로 몇 미터' 라는 표현도 막막하다.

  가로 3미터, 세로 2미터짜리 가구를 사고 싶다면 뭐라고 말해야 하나?  세로(길이)는 length, 가로(너비)는 breadth니까 3 meters in breadth, 2 meters in length 정도면 될 것 같다.  나름 머리 굴려서 meter라고 안 하고 meters라고 복수형으로 쓰기까지 했으나 이번에도 틀렸다.

  답은 3 meters by 2 meters다.  우리말로는 가로니 세로니 하지만, 영어에서는 원래 앞에 나오는 숫자가 가로고 뒤에 나오는 숫자가 세로이기 때문에 굳이 가로, 세로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다. 

 

  이렇게 책 한 권이 전부 숫자 표현으로 가득차 있다.

  위의 표지 그림에 나오는 선착순 열 명 , 36개월 할부로 , 3타수 2안타 , 1865년산 위스키 같은 표현은 물론이고 월세, 월급, 시력, 법률 0조 X항, 옷이나 신발 사이즈 등등.  이런 온갖 숫자 표현을 여러 개의 예문과 함께 수록하고 있다. (예문엔 대한 mp3 파일도 제공함.)

 

  딱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일종의 사전이라 할 수 있다. (활자가 크고 여백이 많은 사전이랄까?)

  토익 수험서 같은 영어책처럼 첫 페이지에서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차례로 읽고나서 처분할 책이 아니다.  '책이라 함은 모름지기 처음부터 차례로 읽어야지' 하고 덤벼들어 독파해봤자 책을 덮고 돌아선 순간 어지간한 것은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보다는 책장에 꽂아두고 가끔씩 영어 숫자에 대해 읽는 법을 알 필요가 있을 때 목차를 보면서 골라가며 보면 좋은 책이다.  예를 들어 영어 쓸 일이 잦은 회사원이라면, 분기니 영업실적이니 할인이니 급여니 하는 것들이 나오는 9번째 챕터인 '경제 직장 관련 숫자 표현' 를 제일 먼저 보면 좋을 것이다. 

 

  어쨌든 간에 유용한 책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다른 책에서는 영어 숫자 표현을 안 가르쳐주거나 단편적으로 두세 개만 가르쳐준다.  이렇게 영어 숫자 표현에만 중점을 두고 나온 책은 못 본 것 같다.  영어로 말할 일이 많은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될 테고, 영어 회화와는 거의 인연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동안 뜻만 알고 어떻게 읽는지 몰랐던 것을 알게되는 기쁨(과연? ^^)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