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서점 등

장샤오위안의 '고양이의 서재'

Lesley 2021. 2. 10. 00:12

 

  오늘 소개할 책은 중국의 천문학자이며 과학사학자 '장샤오위안' 이 쓴 '고양이의 서재' 이다.

  그런데 2015년에 출간되었던 종이책은 이미 절판(!)되어서, 지금은 헌책이나 전자책으로만 구할 수 있다. (즉, 이 포스트는 뒷북 리뷰라는... ^^;;)

 

 

 

  저자의 직업만 보면 이 책을 천문학이나 과학사에 관한 책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어느 중국 책벌레의 읽는 삶 / 쓰는 삶 / 만드는 삶' 란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수필 종류의 책이다.  책 크기도 작고 페이지당 글자수도 적어서 빠른 시간 안에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저자 스스로에 대한 책벌레스러운(?) 일화 및 저자가 만난 다른 책벌레들에 관한 일화를 담고 있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계기가 좀 우습다.

  '책으로서' 알았던 게 아니라 '에코백으로서' 알게 되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가끔 책 표지 디자인으로 만든 굿즈를 내놓곤 한다.  몇 년 전에 이 책 표지 디자인을 이용한 에코백이 굿즈로 나왔는데,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서 손에 넣었다.

  바로 위의 그림 그대로였다.  탁한 초록색 바탕에 굵은 붓으로 쭉쭉 그어 그린 듯한 그림이 묘하게 사람 마음을 끌었다.  더구나 '커피잔을 들고 생선 그림이 나오는 책을 읽고 있는 고양이' 이라 유머러스하기까지 했다.  고양이 뒤편으로 휑~~하니 아무 것도 없는 것도 오히려 멋져 보였다. (동양화에서 말하는 '여백의 미' 랄까... ^^) 

 

  그때에는 표지 그림이 재미있다고만 생각했을 뿐, 굳이 이 책을 읽고 싶어하지 않았는데...  

  작년에 어떤 헌책을 구하던 중에 이 책을 역시 헌책으로 충동구매(!)했다.  다른 책을 찾던 중에 왜 이 책이 눈에 띄었는지, 그리고 이 책의 존재를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내내 관심 없어하다가 왜 갑자기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 지금에 와서는 도통 모르겠다. (그러니 충동구매겠지... ^^) 

 

 

  

  자, 각설하고....

  책에 나오는 일화 몇 개만 소개하겠다. 

 

 

  1. 문화대혁명 와중에 베트남으로 수출된 중국 고전 문학

 

  여러 해 전에 포스팅한 '위화' 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처럼, 이 책에서도 문화대혁명 시기에 저자가 겪은 책에 관한 사연이 나온다.

 

  문화대혁명은 생각하면 할수록 기묘한 사건이다.

  차라리 전쟁 중에 적군이 중국의 문화를 말살하겠다며 중국의 각종 문화유산을 파괴했다면 말이 된다.  그런데 중국인 스스로가 나서서 자기 나라의 문화유산을 없애버렸으니, 도대체 이 무슨 뻘짓(!)인지...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중국 역사가 100년은 뒤쳐지게 되었고, 아시아에서 일류 수준이었던 인문학과 사회과학 수준이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소위 팀킬도 이런 엄청난 팀킬이 없다.

  물론,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독재자가 어떤 책을 금지하는 일이 종종 있기는 했다.  하지만 중국의 문화대혁명처럼 광범위하게 책과 책으로 대표되는 사상을 탄압했던 일은 없다.

 

  중국 전통 문학도 문화대혁명 와중에 봉건주의를 담고 있다는 이유로 금서 처분을 받았는데...

  뜻밖에도 당시 어렸던 저자는 금서 처분을 받은 삼국지연의(삼국지), 수호지, 홍루몽 등을 구해서 읽었다. 저자의 어머니가 그러한 책들을 베트남을 통해 구입한 덕분이다.

  그렇다고 베트남에서 출판된 책을 구했다는 뜻은 아니다.  놀랍게도 중국 출판사에서 출간해서 베트남에 수출한 책을, 어머니가 '역수입 + 밀수입' 한 것이다.  어머니는 베트남 실습생을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베트남 지인들을 통해 그러한 책을 몰래 구입할 수 있었다.

 

  황당하면서도 아이러니하다.

  저자도 썼듯이, 중국인들에게는 금지한 책들을, 같은 공산주의 국가인 베트남에 수출하여 베트남인들에게는 읽게 했으니 말이다.  물론 중국이 자기네가 금지한 책이라는 이유로 외국에게도 그 책들을 읽지 말라고 강요했다면, 그건 그거대로 어이없는 내정 간섭이다.

  하지만 자기네가 인민들의 정신을 망치는 독초(!)라며 금지한 책을, 외국에 수출하는 것은 또 뭐란 말인가...  남에게는 마약을 팔아 돈을 벌면서 정작 자신은 건강을 생각해서 절대로 마약을 안 하는 마약밀매업자 같은 심보인 건지, 아니면 '우리는 우리대로 살고 너희는 너희대로 살면 되는 거지, 뭐.' 식의 쿨한(?) 태도인 건지... 

 

 

  2. 한국에서 구한 삼국유사

 

  저자가 한국의 서점에서 삼국유사를 구입한 이야기도 나온다.

  저자는 책벌레답게 외국에 나갈 일이 있으면 꼭 크고 작은 서점에 가서 평소 마음에 두었던 책을 구입하곤 했다.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고 얼마 안 된 1993년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서점에 들렸다.  평소 일연의 삼국유사에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을 구하려고 발품을 팔아야 했다.  

  삼국유사란 책이야 우리나라에서 워낙 유명해서 저자가 들린 대형서점마다 여러 권씩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한국어를 몰라서 옛날식대로 된 한자본을 원했는데, 서울의 서점가에 있는 것들은 전부 한글 번역본이었다.  저자가 쓴대로 삼국유사는 '한국인들이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책' 이라 고전치고는 많이 읽히기 때문에 다양한 한글 번역본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한문본을 구입하는데 성공했다.  서점을 몇 군데나 돌아다니다가 최남선(아마 일제 강점기 때의 그 최남선인 듯...)의 해제가 붙은 한문본을 발견한 것이다.  꽤나 두꺼웠다는 그 책을 우리 돈 9,000원에 구입했다니,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희귀본을 득템(!)한 셈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정작 한국인인 나는 삼국유사를 통독해 본 적이 없다.  오래 전에 한 권 사놓기는 했는데 관심 가는 몇 군데만 들쳐보았을 뿐, 장식용처럼 책꽂이에 모셔두었을 뿐이다.  언제 한 번 진득하게 앉아서 읽어봐야겠다. 

 

 

  3. 저자보다 더 한, 진정한 책벌레

 

  저자도 책을 무척이나 아끼는 사람인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저자보다 더 한 책벌레가 등장한다.

 

  어느 날 L이라는 사람이 저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자의 책을 읽어봤다면서, 그 책과 관련된 다른 책을 보여주고 싶으니 만나자고 했다.  하지만 저자는 전혀 모르는 이와 만나는 것을 꺼려서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후로 L은 종종 전화를 해서 책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그 과정에서 저자는 L이 대단한 독서가이며 애서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L은 매일 같이 서점에서 사는 듯했으며, 저자가 쓴 책이나 잡지에 기고한 글을 모두 알고 있었고 그 밖의 다른 신문.잡지.책도 엄청나게 읽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L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집으로 초대했다. 

  L은 대만에서 나온 책을 5만 위안(2021년 환율로 한화 약 8백65만원)에 구했다며 저자의 집에 가져와서 보여줬다.  앞뒤 사정을 보면 저자가 L을 만났던 때가 1990년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2019년도 기준 중국 대졸자의 평균 초봉이 월 5,600위안(한화 약 97만원)이라고 한다.  즉, 지금 5만위안짜리 책을 구입하려 해도 대학을 갓 졸업한 직장인이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9달은 모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보다 물가와 임금 수준이 훨씬 낮았던 1990년대에 책을 사는데 5만 위안을 쏟아붓다니...  사실, 중국보다 소득이 높은 한국에서도 5만 위안을 들여 책을 살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혹은 그만한 여력이 되는 부자라도, 굳이 8백만원 넘는 돈을 책 사는데 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투자 차원에서 희귀한 책을 구입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이것만 봐도 L이 범상치 않은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L과 계속 만나면서 L의 엄청난 책덕후(!) 기질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L의 직장 생활은 불안정해서 자주 실직 상태가 되곤 했지만, 다행히 주식으로 돈을 벌어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다.  그렇게 번 돈을 책 사는데 아낌없이 써서 집에 만 권 이상의 책이 있었다.  집이 좁은 편이라 책이 여기저기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7살 때부터 서점을 누비는 버릇을 들였다는데, 이제는 하루라도 서점 순례를 하지 않으면 병이 날 지경이었다.  여러 서점을 돌아다니며 다른 손님에게 열심히 책을 설명하고 추천해서, 서점 직원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출판업계나 서점가 사정에도 훤해서, 수많은 책의 저자나 역자가 누구이며 모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이 다른 출판사에서 새로 출간되었다고 외우고 있을 지경이었다.  어떤 책을 서점에 들여놓기 위해, 자기 일처럼 나서서 서점 사장과 출판사를 연결시키기도 했다.

 

  저자는 L에 대해 연민 같은 감정도 느꼈다.

  L의 책 사랑은 보통의 취미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보기에 L의 생활은 처참한(!) 지경이었다.  L은 다른 사람들과 책에 대해 대화하는 것에 엄청난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대신, 정상적인 생활을 포기한 채 살고 있었다.  L의 생활 어떤 부분이 어떻게 처참하다는 것인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정상적인 생활을 포기했다는 것인지, 저자는 이 책에서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충 짐작이 간다.  L의 얼굴은 노랗고 몸은 비쩍 말랐으며 초췌해 보인다고 묘사한 것으로 보아, L은 책에만 신경쓴 나머지 기본적인 의식주도 제대로 안 챙기며 살았던 것 같다.  저자는 미혼인 L이 비슷한 책벌레 기질을 가진 여자를 만나 결혼하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책을 취미로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는 사람에게 평범한 결혼 생활이 가능할까...

 

 

 

  책벌레들의 소소하고도 따뜻한 일상, 진귀한(?) 이야기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추천하겠다.

  이 포스트 앞머리에 썼듯이 절판된 책이기는 하지만, 전자책으로 구할 수 있다.  혹은 꼭 종이책으로 읽고 싶어하는 사람이더라도, 인터넷이라는 신통방통한 물건 덕분에 자기 집에 앉아서도 전국의 헌책방을 뒤져볼 수 있으니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책벌레' 라는 말이 주는 느낌을 살리며 읽으려면,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이 훨씬 낫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