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서점 등

부활한 종로서적

Lesley 2020. 9. 30. 00:01

 

  오래간만에 종로에 나갈 일이 있었다.

  종각역 역사로 들어간 김에 종각역과 이어져 있는 '반디앤루니스' 에 들려 책이나 훑어볼까 했는데... 

 

 

 

  헉, 이게 무엇인고...???

  반디앤루니스는 어디로 가고 그 자리에 '종로서적' 이 떡하니 서있단 말인가...!  종로서적은 한참 전에, 거의 20년 전쯤에 사라지지 않았던가...! 

 

 

 

  얼른 휴대폰으로 검색해 보니 2016년 12월에 반디앤루니스가 있던 곳에 종로서적이 개장했다고 한다.

  3년하고도 9개월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2016년 늦봄에 내가 서울을 떠나 이사를 했다.  그 후로 종로 쪽으로 나간 적이 몇 번 없어서, 종로서적이 부활(!)한 줄 까맣게 몰랐다.

 

  원래의 종로서적은 종로 1가 혹은 2가쪽에 있었더랬다.

  초등학교 때 처음 간 뒤로 가끔 들렸는데, 꼭 책을 사거나 둘러보려고 할 때 뿐 아니라 친구와의 약속 장소로도 자주 이용했다.  나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랬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는 한데, 종로서적은 층당 면적이 좁지만 5층인가 6층까지 있었기 때문에 전체 면적으로는 우리나라 서점 중 최고라고 들은 듯하다.  그렇게 그 시절 기준으로 종로의 랜드마크 중 하나였으니 약속 장소로 꼽힐 수 밖에... 

 

  그런데 나중에 광화문 교보문고와 종각역 영풍문고가 생기면서 점점 밀려나는 분위기가 되었다.

  교보문고는 단층이고 영풍문고는 2층(지상1층과 지하1층)으로 되어 있는데, 종로서적보다 훨씬 널찍해서 고객들의 편의성 면에서 매우 유리했다.  후발주자다 보니 종로서적보다 세련된 맛도 있었고... (종로서적은 좋게 말하면 정겨운 분위기, 나쁘게 말하면 칙칙한 분위기였음. ^^;;)

  그렇게 종로서적은 점점 경영난을 겪다가 2000년대 초반에 문을 닫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서점이 문을 닫게 되었다며, 여러 언론사에서 기사를 내기도 했다.



 

  내가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연예인을 본 곳이 종로서적이었다.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을 거다.  종로서적에 가서 위층으로 올라가려다가, 가뜩이나 복잡한 계단에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고 위만 쳐다보고 있어서 길이 막혔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며 남들을 따라 위를 쳐다봤더니 TV 드라마에서만 봤던 배우 최수종이 보였다...!  최수종은 저 윗층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포즈를 잡고 있고, 한두 층 아래의 계단에서는 스텝들이 그 모습을 촬영하고 있었다.  TV에서만 보던 사람을 실물로 보니 어찌나 신기하던지... ^^

 

  뜻밖에도 지금의 종로서적은 옛날 종로서적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한다.

  그저 이름만 계승(?)했을 뿐이라고 한다.  지금의 종로서적 운영진 중에 옛날 종로서적 운영자나 그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따로 허락을 받은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도 종로서적이란 이름을 쓴 탓에 갈등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개장하고 4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 종로서적이란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어떤 식으로든 그 문제를 해결한 모양이다. 

 

 

 

  반디앤루니스 때보다 책이 차지한 공간이 줄어들고, 대신 카페나 음식점이 많이 들어와 있다.

  종로서적이 반디앤루니스 매장 중 일부만 임차를 한 건지, 아니면 전체를 임차해서 카페나 음식점을 들어오게 한 건지는 모르겠다.  후자일 가능성도 높다.  요즘 대형서점은 책보다는 각종 팬시용품이나 음식물 위주로 운영되는 분위기라서... 

 

  그나저나 사진 속 담벼락에 있는 '오늘.... 그대는 나의 달콤한 꿈이었습니다.' 라는 문구가 마음에 든다.

  그래, 영원히 누군가의 꿈이 될만한 이는 극히 드물 테고, 오늘 하루만이라도 누군가에게 꿈이 되어주는 사람이라도 넘쳐난다면 세상이 조금은 더 아름다워지겠지...  혹은 저기가 카페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저 문구 속 '달콤한 꿈' 은 사람이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달달한 커피일까나... ^^;; 

 

 

 

  종로서적에서 종각역 역사로 이어지는 길목이 전에는 광장 비슷한 공간이었다.

  가끔 무료 길거리 공연이 벌어지기도 했고, 연인끼리 친구끼리 계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작은 녹지대가 되었다.  이름하여 '종로청년숲' 이라고 한다.  공기가 텁텁한 전철역 역사 안에서 식물들을 구경하는 기분이 색달랐다.

 

 

 

  자리 잡고 앉아서 노트북으로 뭔가 작업하는 시민도 보이고...

  종로청년숲을 종로서적 측에서 꾸민 건지, 종각역에서 꾸민 건지, 종로구청이나 서울시청에서 꾸민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북적북적하고 바쁘게 사는 도시인들에게 잠시나마 쉼터가 되어줄 테니까.

 

  지금의 종로서적이 옛날 종로서적의 기운(!)을 받아, 오래오래 잘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