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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연의 '애총' - 사이비 종교에서 층간소음까지

Lesley 2020. 6. 7. 00:01

 

  한혜연은 내가 만화를 즐겨보던 학창시절에 좋아했던 만화가다.

  한혜연의 작품으로 '금지된 사랑', 'M.노엘', '그녀들의 크리스마스' 등을 봤다.  장르가 무엇이든 간에, 제각기 상처를 지닌 채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따뜻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낸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소소함(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줍기 같은...)을 작품 속에 집어넣어 인물의 심리묘사에 잘 활용한다.

  다만, 그 시절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만화가들이 거의 그러하듯이 한혜연도 최근에는 활동이 뜸하다.  우리나라 만화 시장의 주력 상품(?)이 종이 만화에서 웹툰으로 빠르게 바뀌면서, 기존의 만화가들이 웹툰 작가들에게 밀려난 듯하다. 

 

  그런데 최근에 한혜연의 작품 중 '애총' 을 다시 봤다.

  오래 전에 1권만 보고 어쩌다 보니 더는 보지 못 했던 만화다.  인터넷 서점에서 찾아봤더니 벌써 10년(!) 전에 완결이 나서, 예전에 본 1권부터 마지막 권인 4권까지 몽땅 구해서 봤다.

 

  갑자기 이 만화가 생각난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우리나라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널리 퍼지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이비 종교 '신천지' 때문이다.  신천지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사이비 종교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한 라디오 방송을 들었는데, 거기에 '백백교' 에 대한 것이 나온다.

  백백교는 일제 강점기 때의 사이비 종교인데, 교주와 그 추종자들이 무려 300명(!) 이상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애총이란 작품이 바로 그 백백교 관련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신천지 덕분에(?),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애총의 내용이 1권 이후로 어찌 되었나 궁금해져서 다시 보게 된 것이다.

 

 

 

 

2권 표지의 순덕, 3권 표지의 동주.

 

 

 

 

  그런데 읽어나가다 보니,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1권 앞부분에 나오는 백백교 관련한 사건이 충격적이었기에, 당연히 백백교가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소재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백백교 사건은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던 '순덕' 이 유명한 무당으로 살게 된 배경 내지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순덕이 지은 타운하우스 단지에서, 세상 빛도 못 보고 죽은 영혼이나 어린 시절에 죽은 영혼 등 어린 아이들의 영혼이 원인이 되어 이런저런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더니 끝에서는 아파트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층간소음 문제가 나온다.  사람에 따라서는 좀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전개인데, 나에게는 꽤 묵직한 반전으로 다가왔다.

 

  순덕은 1930년대에 백백교 신자인 부모와 함께 백백교 신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신자들이 자기네 자식들을 좋은 세상으로 보내주겠다는 교주의 꼬임에 넘어가, 아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생매장(!)하는 엄청난 짓을 저지른다.  당시 순덕은 운 좋게 살아남아 도망쳤지만 평생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자기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충격과 슬픔(그것도 살해라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버림이었으니...), 그리고 동생들과 친구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는데 자기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짓눌려 살았다.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인지, 순덕은 언젠가부터 죽은 동생들과 친구들의 영혼을 보며 무당의 길을 걷게 된다.  무당이 된 계기가 그래서인지, 어려서 죽은 영혼을 알아보고 그 영혼들의 사연을 들어주는 쪽으로 탁월했다.  나중에는 정계나 재계의 유명인사들까지 찾아올 정도로 잘 나가는 무당이 되어 큰 재산을 모았다.  환갑이 넘도록 그렇게 살았으니, 어쩌면 죽는 날까지 무당으로 살았을 지도 모르는데...

 

  어느 날 '동주' 라는 여중생이 찾아온다.

  동주는 화재 사고를 겪은 충격으로 5년 동안 학교 무단결석에, 가출에, 자살 시도까지 하며 한 마디도 안 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용한 무당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엄마에게 이끌려 순덕에게 온 것이다.

  어린 동주와 남동생 두 사람만 집에 있을 때 화재가 났는데, 동주의 아빠는 자식들을 구하겠다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동주만 구해서 나왔다.  원래 아빠가 구하려던 아이는 동주의 남동생이었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1970년대라, 두 아이 중 하나만 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빠는 아들을 선택했다.  그런데 동주가 남동생의 옷을 입고 있었던 탓에, 동주를 아들로 착각한 것이다.

  아빠는 구해낸 아이가 동주라는 것을 알고서 "어째서 너냐?" 라고, 마치 구하지 말았어야 할 아이를 구해냈다는 식으로 말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불길 속에 남기고 온 충격에서 한 말이지만, 심한 화상을 입고 다 죽다 살아난 아이에게는 큰 충격일 수 밖에 없었다.

 

  동주를 만난 일로, 순덕은 늙으막에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순덕은 동주에게서 자신이 가진 것과 같은 상처를 본다.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슬픔과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거기에 같은 운명까지 느낀다.  즉, 동주도 참혹한 경험을 한 뒤로 아이들의 영혼을 볼 수 있는 신기를 지니게 된 것이다.

  순덕은 동주와 함께라면 평생 떨쳐내지 못 했던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동주가 성장하기를 기다리며, 무당 일을 그만 두고 길거리에서 떡볶이 장사를 시작한다.  일종의 신분세탁(!)에 들어간 것이다.  나중에 동주와 함께 살게 되면서, 무당 시절 모았던 돈으로 건설회사를 세운다.  그리고 세상에는 '평생 떡볶이 장사를 하며 악착같이 모은 100억대의 돈으로 건설회사를 차린, 자수성가의 대명사 같은 할머니' 로 알려지게 된다.

 

  그 후 옛날 생매장 사건이 있었던 곳을 찾아가 여생을 보낼 집을 짓고, 근처에 타운하우스 단지를 만들어 분양한다.

  순덕은 그저, 그곳에서 비참하게 죽었던 어린 동생들과 친구들의 영혼을 그제라도 달래주고 싶었던 것 뿐이다.  하지만 애초에 터가 그러했는지, 그 지역은 백백교의 생매장 사건이 있기 훨씬 전인 조선시대에 이미 애총(어린 아이들의 무덤)이었던 곳이다.

  순덕도 동주도 그 사실을 미처 모르고 타운하우스를 지었다.  애총의 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순덕과 동주의 기운 때문인지, 타운하우스에는 주로 아이 관련한 사연을 가진 입주민들이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모인 입주민들 사이에서 끔찍하고 기괴한 일가족 살인사건이 터진다.

 

 

  자,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여러 입주민들의 사연은 거의 생략하도록 하고...

 

 

  결말부에서는 살인사건의 원인이 층간소음으로 인한 악연이었음이 드러난다.

 

  평화롭던 타운하우스가 엽기적인 사건으로 뒤집어진다. 

  '정화''은경' 은 사이 좋은 이웃이었다.  화 부부가 타운하우스로 이사오던 날 은경이 이모저모 챙겨주었으며, 마침 정화와 은경이 동갑이기도 해서, 금세 친한 사이가 되었다. 

  은경 남편의 생일에 두 집안 식구가 은경의 집에서 파티를 즐기기로 했는데, 은경네 식구는 모두 살해되고 정화는 중상을 입은 채 발견된다.  야근으로 뒤늦게 은경의 집에 간 정화 남편만 화를 피했다.  범인이 일가족(은경 부부는 물론이고 아직 학생인 두 아들마저)을 잔인하게 죽인 것으로도 모자라 임산부인 정화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가기까지 했으니, 세상이 떠들썩해 질 수 밖에 없다.  처음에 담당 형사는 혼자만 무사한 정화 남편을 의심했는데...

 

  범인은 정화였다.

  정화는 오래 전에 사산한 뒤로 다시 임신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자연스레 성격이 점점 어두워졌고 남편과의 관계도 데면데면해졌다.  그런데 경쟁률 높은 타운하우스를 분양 받던 날 드디어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게다가 타운하우스로 이사하던 날에 만난 서글서글한 성격의 은경 덕분에, 정화의 성격이 한결 밝아지기까지 했다.  정화 부부는 타운하우스에 입주한 뒤로 좋은 일만 생긴다며, 자기 부부에게 앞으로는 행복한 일만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런데 은경 남편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던 중에, 정화가 우연히 은경의 옛 주소와 옛 가족사진을 보게 되었다.  과거에 정화네 윗집에 살면서 한밤이고 새벽이고 소음을 내어서, 정화가 사산하는 원인을 제공했던 이들이 바로 은경의 가족이었다.  충격을 받은 정화 앞에 웬 어린 아이가 나타나 정화를 부추겼고, 정화는 뭔가에 홀린 듯 은경의 식구 모두를 죽였다.  그 후에야 어쩐지 낯이 익은 듯했던 그 아이가 오래 전에 사산한 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아이를 다시 품기 위해 스스로의 배를 갈랐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또 한 가지 반전이 있으니, 정화는 애초에 임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점점 지쳐서 자신에게 떠나가려는 남편의 마음을 잡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스스로도 자기 거짓말을 믿게 되어 상상임신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층간소음으로 사산된 아이의 원혼이 엄마의 마음을 자극하여 층간소음을 냈던 일가족에게 복수한다는 스토리는 분명히 비현실적이지만,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은 오히려 현실적으로 묘사된다.

  과거에 은경 부부가 정화부부에게 퍼부었던 말은, 현실에서 층간소음으로 싸울 때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당신네도 애 낳아 키워 봐, 그게 마음대로 되나!  이 정도도 이해 못 하면 단독주택에서 살지, 왜 아파트에서 사는 거냐?"

  그리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일단 갈등으로 발전하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게 되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가해자이면서 오히려 큰 소리 쳤던 은경 부부도, 설마 자기네 집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아랫집 사람이 사산하는 결과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정화가 사산한 게 자기네 탓이라는 걸 알았는지는 불명확 함.)

 

  정화 부부 말고도, 층간소음으로 인해 망가진 다른 가족들이 등장한다.

 

  먼저, 은경네 식구가 내는 층간소음 때문에 복수의 화신처럼 변한 여자가 있다.

  수사 초기만 해도, 그 여자는 은경 남편을 일방적으로 좋아해서 이사간 곳까지 쫓아간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즉, 스토커로 보였음.)  그렇기 때문에 은경네 가족 살해사건의 용의선상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층간소음의 또 다른 피해자였다.  여자의 어머니가 층간소음으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다가 마침내 폐인 상태가 되자, 복수를 위해 은경네 식구를 쫓아다닌 것이다. 

  여자가 은경네 식구가 잘 죽었다는 식으로 말하자, 형사는 '죄 없는 아이들' 마저 살해당했는데 그렇게 말하느냐고 비난한다.  그러자 여자는 "그 애들이 죄가 없다고 누가 그래요?" 라고 반문한다.  한창 때의 남자애들이 요란하게 뛰어노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라도, 그로 인해 누군가의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다.  식물인간처럼 병원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둔 딸 입장에서 보자면 '악의 없이' 뛰어놀았던 아이들이라도 소름끼치는 악마인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가해자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겠다는 의도가 전혀 없었지만 피해자는 엄청난 피해를 입은, 아이러니하고 묘한 상황이다.   

 

  나중에는 살인사건을 담당한 형사조차 층간소음 문제에 휘말린다.

  형사 아내는 새로 이사온 아파트에서 층간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남편의 총으로 윗집 식구들을 살해하고 자살하고 만다.

  다만, 이 사건은 위의 두 사건과는 결이 좀 다르다.  그동안 아내가 이사가자는 말을 여러 번 했지만, 형사는 흘려들었다.  이사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이사를 한다는 게 말이 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살인사건 수사로 정신없이 바빴던 탓에 아내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아내가 윗집이 시끄럽게 굴어 화가 난다는 말을 몇 번 하기는 했지만, 형사라는 직업상 원래도 가정을 세심히 돌보지 못 해서 무심히 넘겼다.  아내 역시 자기 감정이 극에 달했다는 걸 남편에게 제대로 표현하지 못 했다.  항상 바쁜 남편은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되어 쓰러져 자기 일쑤라, 부부간에 대화가 별로 없었던 탓이다.

  얄궂게도 형사가 타운하우스가 있는 도시로 이사온 이유가, '가족에게 좀 더 신경쓰기 위해서' 였다.  형사는 아들이 자살한 후에야 아들 학교 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고, 평소 가족에게 신경 못 쓴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이제라도 남은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살려고 한적한 지방 도시로 전근 신청을 한 것이다.  그런 목적으로 이사온 곳에서 아내의 말에 신경쓰지 못 해 아내가 극단적인 일을 벌이도록 방치한 셈이 되었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요 몇 년 층간소음 때문에 윗집과 아랫집 사이에 주먹이 오가거나 아예 살인까지 났다는 뉴스를 몇 번 접했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공사비 아끼겠다고 어지간한 층간소음도 막아주지 못 할 정도로 건물을 지은 건설사의 잘못이 크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랫집 사람이 유별나서 별 것 아닌 소음인데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윗집에서 나는 소음으로 아랫집이 고통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 소음이 나는 것 자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아랫집 사람에게 정중히 사과를 해서 마음이라도 다독여 주는 게 옳다.  그리고 아이들의 소음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수시로 주의시키는 게,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은경이 한 "당신도 자식 키워 봐, 조용히 시키는 게 되나!" 는 상당히 뻔뻔한 말이다.  일단은, 미안해 하며 앞으로 좀 더 조심시키겠다는 말이라도 했어야 한다.  솔직히 세상 모든 아이들이 아랫집에서 항의 들어올 만큼 시끄럽게 구는 것도 아닌데, 그런 말은 자기합리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기타

 

  1. 한 사람이 여러 사람에게 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뻔한 사실이, 새삼 소름끼치게 다가온다.

 

  은경은 타운하우스에서 모든 이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호감형' 인물이었다.

  남편 및 두 아들과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고, 뛰어난 요리 솜씨로 만든 과자와 빵을 이웃이나 택배기사에게 아낌없이 나눠주는 친절한 가정주부였다.  과거 회상 장면을 보면, 남편 직장 동료들을 수시로 초대해 거하게 대접했던 듯하다. (어지간한 가정주부라면 손님 치르는 게 귀찮기도 하련만...)  그리고 타운하우스에서 다시 만난 정화에게도 다정다감하게 굴었다. (물론 알아보지 못 했으니까 가능한 일이지만...)

 

  하지만 '현재의 정화' 를 친절히 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과거의 정화' 에게는 날 선 목소리로 사납게 대했다.

  아파트에서 어느 정도의 소음을 감내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새벽 3시까지 손님을 치르며 소음을 내고 "집들이도 하지 말라는 거냐!" 라고 오히려 따지고 들었다.  상대방이 임신 중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원래는 괜찮은 사람인데, 그저 정화 부부와는 뭐가 좀 안 맞아 갈등을 빚은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화 부부 외에 다른 모녀와도 심한 갈등을 빚다가 마침내 그 모녀 중 어머니를 정신질환에 걸리게 만들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자기 아이들이 내는 층간소음에 항의하는 아랫집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만 친절한 사람' 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여러 모습을 갖고 있어서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곤 한다.  하지만 은경네 경우를 보면 그 당연한 사실이 무섭게 느껴진다.

 

  2. 이 만화에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정화와 은경이 다시 만났을 때 서로를 전혀 못 알아봤다는 점이다.

 

  물론 어지간한 경우라면 10년 정도의 세월이 흐르면 서로 얼굴을 잊을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길 가다가 어깨 좀 부딪쳤다고 한바탕 싸우고 헤어진 것 같은 '어지간한 사이' 가 아니었다.  같은 아파트의 윗집과 아랫집에 살면서 남편끼리, 아내끼리, 번갈아가며 몇 번씩이나 심하게 다툰 사이다.

  심지어 정화 부부는 은경네 식구 때문에 소중한 아이를 사산했고, 은경은 아이 시신을 자기네 집 우유 배달 주머니 속에서 발견하는 일을 겪었다. (정화가 사산의 충격과 원망으로, 은경도 보라는 뜻에서 은경네 우유 배달 주머니 사산된 아이를 넣었음.)

 

  이쯤 되면 악연도 보통 악연이 아니다.

  그런데 아이들이야 자라면서 모습이 많이 달라져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하다 하더라도, 어른들끼리 못 알아봤다는 것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정화도 은경도, 두 사람의 남편들도, 모두 상대방 부부를 전혀 알아보지 못 했으니... (갈등을 극대화하기 위한 설정인가?)

 

  3. 이 만화 제목은 '애총' 인데, 부제 비슷하게 한자로 '兒塚' 이라고 되어 있다.

  

  兒는 아동이니 고아니 할 때 쓰는 '아이 아' 자다.

  그런데 왜 '아총' 이 아니고 '애총' 일까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아이의 무덤을 보통 애총이라고 하고, 유의어로 아총이란 한자어가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