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여행기/경기도

하남역사박물관

Lesley 2022. 4. 14. 00:01

 

  하남시 덕풍동에 있는 하남역사박물관에 다녀왔다.

  대중교통으로는 전철 5호선 하남시청역을 통하는 게 가장 간단할 듯하고, 그 밖에 하남시청역 근처에 서는 버스가 여러 대 있다. (나는 38번 버스를 이용했는데 다른 버스도 있음.)  우리나라 상당수 공공 박물관이 그러하듯 여기도 무료 관람이다.

 

 

  하남역사박물관은 아파트촌 한가운데에 있는 3층짜리 건물이다.

 

 

  1층에 물품보관소가 있다.

  관람 순서가 3층부터 내려오며 보게 되어 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로 곧장 가느라 계단 옆에 있는 물품보관소를 보지 못했다.  가방을 물품보관소에 넣었더라면 편안하게 구경할 수 있었을 텐데, 내내 들쳐매고 다녔으니... ㅠ.ㅠ

 

 

  3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보게 되는 것은, 바닥에 타일로 만들어 놓은 하남시 지도다. (꽤 크다...!)

  지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지도 위에 올라서서 하남과 서울 송파구 일대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하남에 속한 동네라도 섬(?)이라 할 수 있는 우리 동네는 안 나온다.  지도 맨 밑의 가운데에 남한산성까지는 표시되어 있는데, 그 남한산성에서 남서쪽에 있는 우리 동네는 잘려서 안 나온다...! ㅠ.ㅠ 

 

 

  전부터 생각한 건데, 고고학자들은 저런 석기 시대 유물과 그냥 돌덩이(!)를 어떻게 구별하는 걸까...

  산길 돌아다니다 보면 위의 이미지 속 유물들과 비슷하게 생긴 돌덩이가 종종 눈에 띄던데...  아마 나 같은 사람은 대단한 유물을 우연히 봐도 그냥 돌덩이거니 하며 지나갈 것 같다.

 

 

  그렇지, 유물이라면 마땅히 이렇게 생겨야지...!

  이 정도 특별한(!) 생김새는 갖추어야 나 같은 사람도 '이거 혹시 유물 아닐까?' 라고 생각하며 관계기관에 신고할 수 있지 않을까? ^^

 

 

  이렇게 지도로 보니 하남은 선사시대의 보고 같다.

  미사리 유적지야 역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곳이라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미사리 말고 하남의 다른 동네에도 구석기 시대 유적지니 청동기 시대 유적지니 하는 것들이 줄줄이 표시되어 있다.  

  하남이 개발이 늦은 곳이라 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남에서 가까운 서울은 조선시대부터 수도였기 때문에 인구도 많고 이런저런 공사도 많아서, 유적지가 많았는데도 일찌감치 파괴되었을 것이다.

 

 

  관람실 터치 스크린에 뜨는 미사리의 미(渼) 자를 보고 '으잉?' 했다.

  얼른 스마트폰을 검색해 봤더니 물놀이, 강 이름, 못 이름 등의 뜻을 갖고 있는 한자다. (역시 스마트폰은 좋은 것이야~~~)  미사리가 한강 지류 바로 옆에 있고, 사(沙)는 모래라는 뜻이니, 미사리 하면 '강과 모래가 있는 동네' 라는 매우 직관적인 이름이 된다. 

 

 

  2층에는 고려시대에 만든 철불이 있는데, 지금 우리나라에 있는 철불 중 가장 크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절터에 허리까지 잠겨 있던 것을 발견하여 건져다가 수리를 했다고 한다.  다만, 하남역사박물관에 있는 철불은 3D 스캔을 통해 복제한 것이고, 실물은 중앙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유길준 묘소가 하남에 있다는 연고로, 이 박물관에 유길준 코너(?)도 있다. 

  짤막한 영상으로 유길준이 보빙사 민영익을 수행하여 미국에 갔을 때의 일화가 나온다.  여러 매체의 기사나 TV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내용이다.  공화정에 대한 이해도도 낮고 서구 문화도 잘 알지 못 했기 때문에, 민영익 일행은 미국 대통령을 조선의 국왕 비슷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이 박물관 전시 내용과 상관없는 여담으로...

  훗날 주미 대사로 미국에 간 박정양 일행도 미국 대통령을 만나 큰절을 올렸다고 한다.  그래도 이때는 미국 대통령과 그 수행원들이 먼저 번 민영익 일행에게 큰절을 당한(?) 전례가 있어서, 조선 외교사절단의 행동에 당황해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정양은 미국 상류층의 파티에 참석했다가 문화 충격을 겪기도 했다.  파티에 여자들도 많이 참석한 것을 보고 '저 여자들은 기생인가?' 라고 그 시대 조선인다운 질문을 했다가, '아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의 아내와 딸이다' 라는 대답을 듣고 놀랐다고 한다.  훗날 미국 생활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거기에 '남녀가 서로 끌어안고 춤을 추는가 하면, 심지어 여자들이 저고리를 벗어 맨살을 드러냈다' 라고 쓰기도 했다. (박정양 눈에는, 어깨와 가슴이 파인 드레스가 저고리 벗어붙인 패션으로 보였던 듯.) 

 

 

  하남 관련한 일제강점기 때 신문 기사 내용도 전시되어 있는데, 지금 상황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차이가 느껴진다.

  먼저, 부업차 가내 수공업으로 만든 제품이 파리채다.  요즘 같으면 '웬 파리채?' 라고 생각할 일이다.

  그리고 수해가 나서 배를 타고 피난가던 사람들이 배가 전복되며 대부분 익사했다는 기사를 보면, 배에 탄 사람이 300여명이라고 한다.  지금처럼 수리시설이 제대로 안 되었던 시절인데다가, 그때는 하남도 농촌이었을 테니, 이재민 숫자가 무척 많다.     

 

 

  2층 일부에는 옛날 풍경을 재현해 놓았다.

  돌리는 채널에다가 다리까지 있는 옛날 TV에, 고답적인(?) 미싱에, 추억의 드라마 '육남매' 에 나오는 중.고등학생이 들고 다니던 시커먼 가방에... 

 

 

위의 방에 이어진, 연탄 아궁이 쓰던 옛날 부엌도 재현해 놓았고...

 

 

  이런 주황색 공중전화기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있었다.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있는 공중전화기는 나름 최첨단(?)을 달리는 디자인이었지만, 조그마한 가게 옆에 부스 없이 있는 공중전화기는 사진과 같은 단촐한 모습이었다.   

 

 

  옛날 교실 모습이다. 

  옛날 교실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드럼통 난로...!  우리 세대도 드럼통 난로를 썼지만 보통은 초.중학교 때까지만 쓰고 고등학교 때는 온풍기나 전열기를 썼다.  그러나 나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드럼통 난로만 썼다.  내 말을 듣고 '너 집이 서울이라고 하지 않았어?  혹시 시골에서 살았어?' 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는... -.-;;

 

 

  1층에는 어린이를 위한 코너가 있다.

  옛날 산성 모양으로 만든 것 같다. 

 

 

  규모가 작은 곳이라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경주박물관 수준의 다양한 문화재를 기대하고 가면 곤란하다.

  하지만 향토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거나, 사람 우글거리는 박물관을 싫어하고 짧은 시간 동안 가볍게 관람하기를 원하는 사람이거나, 어린이를 동반한 사람이라면, 들려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