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여행기/경기도

성남 분당의 '신해철거리' / '신해철 스튜디오'

Lesley 2018. 6. 29. 00:01


  '신해철거리''신해철 스튜디오' 에 다녀왔다.

  신해철이 세상을 뜬 지 벌써 4년이 되었다.  전에 인터넷에서, 성남시 분당에 신해철이 생전에 쓰던 작업실이 있는데 그 작업실과 주변의 거리를 신해철을 기념하는 장소로 단장해서 공개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신해철의 노래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언제 한 번 가보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분당에서 친구와 만날 일이 있어서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심정으로 그 날 다녀왔다.



신해철거리의 신해철 동상.



  스마트폰 지도앱으로 검색해 보니, 분당선 정자역에서 신해철거리까지는 도보로 35~39분(2.2~2.5킬로미터)이 걸린다고 했다.

  그 날 만난 친구와 함께 가려다가 친구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촉박한 편이라 혼자 갔는데, 정말 현명한 결정이었다.  정자역에서 신해철거리까지 가는 길 중 상당 부분은 나무가 우거진 멋진 산책길이라 봄이나 가을에 갔더라면 절로 콧노래가 나왔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낮의 햇볕을 받으며 걸으려니 걷는 걸 좋아하는 나조차도 힘들고 진이 빠졌다.  저질체력(!)인 친구를 데려갔더라면 틀림없이 원망을 들었을 것이다.



신해철거리에 있는 신해철의 어록.

그리고 신해철 노래의 가사들.



헤매다가 겨우 찾은 신해철 스튜디오.

(미래공인중개사 간판의 존재감이 더 큰... -.-;;)



  신해철 스튜디오, 즉 신해철이 쓰던 작업실은 신해철거리에서 옆으로 비껴난 골목에 있다.

  이 몸이 워낙 길치인지라 경사진 신해철거리를 몇 번이나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겨우 찾았다.  나 같은 길치를 위해 팁을 주자면, 신해철 스튜디오란 간판을 찾기보다는 차라리 신해철거리 아랫부분에서 '미래공인중개사' 라는 부동산 중개업 사무실 간판을 찾는 게 빠르다. ^^;;



지하에 있는 신해철 스튜디오. 



신해철의 서재.



  사진에 안 나오는 반대편 쪽으로는 관리인으로 보이는 할머니 두 분이 앉아계셨다.

  아마도 신해철의 가족이나 친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분들께 내부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여쭤보자, 사진도 찍고 옆방으로 가서 음악도 들어보라고 시원시원하게 대답해주셨다. 



신해철의 책들.



  신해철은 다방면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고 하더니 종교, 이념, 논리학에 관한 책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런 책들과는 거리가 먼 판타지 소설이나 SF 소설도 눈에 띈다.

  책 중에서 '넥스트' 란 책을 보니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신해철이 한동안 넥스트란 그룹에서 활동했었는데, 혹시 이 소설을 너무 재미있게 읽고 그룹 이름을 넥스트라고 지었던 걸까? ^^



서재 옆의 음악감상실.



  서재 옆 작은 방에는 고풍스러운 턴테이블과 헤드폰 두 개가 있어서, 원하는 방문객은 음악을 들어볼 수 있다.

  레코드판 가운데에서 조용히 돌아가고 있던 바늘을 살짝 들어 외곽으로 옮기자, 헤드폰을 통해 신해철의 노래 '아버지와 나' 가 흘러나왔다.  1992년도에 나온 넥스트 시절 1집 앨범 HOME의 수록곡이다.  내가 신해철의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던 계기가 된 앨범이 바로 HOME이다.

  또래 여학생들 사이에서 신해철의 '재즈카페' 나 '안녕' 이 굉장한 인기를 끌던 때에도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독자노선 추구? ^^)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 2학년 때였나, 동생이 갖고 있던 이 앨범을 한 번 들어봤다가 그만 반하고 말았다...!  이 앨범에 나오는 또 다른 노래 '인형의 기사' 와 몇 년 후에 나온 '일상으로의 초대' 는 신해철의 노래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다. 

    


벽에 신해철의 어린 시절 모습이 보이는...



  의자에 앉아 신해철의 노래를 들으며 벽에 나타나는 신해철의 옛날 사진을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 한창 나이였던 신해철이란 가수가 너무 어이없게 세상을 뜬 것도 안타깝고, 내가 신해철에게 처음 빠졌던 때가 20년도 전의 일이구나 생각하니 아련한 기분도 들고... 



'자장면 계란 회복 전국민 운동' 이라니... ^^



  신해철의 장난기와 발랄함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80년대에는 자장면 위에 삶은 계란 반 토막이 당연하게 올라가 있었다.  그런데 물가상승의 압박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하여튼 언제부턴가 자장면에서 계란이 사라졌다.  신해철은 그 상황이 무척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자장면 위의 계란을 컴백시키기 위해 전국민 운동을 할 생각을 했다니...



신해철의 음악 작업실.



벽에 걸린 신해철의 앨범 자켓들.



나를 신해철에게 빠지게 만들었던

넥스트 시절의 앨범 HOME...!

그리고 신해철거리 아래편에 있는 신해철의 어록.



  신해철을 좋아하는 이에게 꼭 한 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당분간은 다시 신해철의 '인형의 기사' 와 '일상의로의 초대' 에 빠져지내게 될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