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일반 전화에서 스마트폰까지

Lesley 2021. 12. 10. 00:01

 

  친구와 이야기하던 중에 우리 세대가 겪은 통신기기 변천사가 화제에 올랐다.

  다이나믹 코리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세대에 속하는 사람이든 간에 어떤 분야에서든 현기증 날 정도로 빠른 변화를 경험해봤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 세대(소위 'X세대')는 어지간한 개인용 통신기기는 다 거친 것 같다.  대화를 하며 '우리는 살아있는 역사였어.' 하고 서로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끄덕...   

 

 

 

  1980년대 - 다이얼식 일반 전화기와 버튼식 일반 전화기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1980년대에는 다이얼식 전화기가 사라져가는 중이었다. 

  옛날 물건을 파는 황학동 시장 같은 곳에서는 꽤나 귀족스럽게(!) 생긴 다이얼식 전화기를 볼 수 있다.  하얀색을 바탕으로 해서 금색으로 다이얼과 수화기 일부를 장식한 전화기인데, 호사스러운 모양새에 어울리게 옛날 드라마 속 부잣집 거실에 자주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꼬맹이 시절의 내가 본 다이얼식 전화기는 동네 슈퍼마켓이나 시장의 상점 등에 있는 것들이었다.  위에서 말한 '흰색 + 금색' 전화기와는 다르게 검은 색깔에 단순하게 생긴 녀석이었다. (검은색이라 때도 안 타고 워낙 단순하게 생겨서 닦기도 편했을 듯.) 

 

  가정집이나 좀 규모 있는 사무실에서는 버튼식 전화기를 썼다.

  다이얼식 전화기를 안 써본 사람이라면 그깟 다이얼을 돌리는 게 뭐가 대수냐 싶을 테고 어찌 생각하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겠지만...  전화를 여러 통 걸어야 할 때, 손가락을 다이얼 구멍에 넣고 돌리는 짓을 반복하고 있자면 은근히 시간도 걸리고 손가락도 아팠다. (그래서 가끔 볼펜을 다이얼 구멍에 넣어 돌리는 사람도 있었음.) 

  그에 비해 버튼식 전화기는 버튼을 가볍게 누르면 그만이라 간지(?)는 덜 흐르지만 편리했다.  또한 얼마 안 되기는 하지만 시간도 절약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초반 - 무선 전화기

 

  1990년대가 되면서 버튼식 전화기와 무선 전화기를 한 세트로 묶은 제품이 보급되었다.

  너도 나도 스마트폰 하나씩 들고 다니는 지금에 와서는, 전화기 본체로부터 5~6미터 이내에서만 터지는 무선 전화기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나마 무선 품질이 지금만큼 좋지 않아서 전화기 본체에서 어느 정도만 떨어져도 잡음이 많이 섞였다.  그래서 통화 상대방에게 "전화가 왜 이렇게 지지직거려?  지금 무선 전화기로 전화하는 거지?" 라는 불평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꽤나 신통방통한 물건이었다.  '전화기란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라 전화기 근처에서만 통화를 할 수 있다' 는 통념을 깨부순 최첨단(!) 제품이었다.  보통 전화기를 거실에 두니 거실에서만 통화가 가능했는데, 이제는 안방이나 마당으로 전화기를 들고 다니며 통화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생각하면 휴대폰의 원시 모델이었던 셈이다.

 

 

 

  1990년대 중반 - 삐삐(무선호출기)   

 

  삐삐의 정식 이름은 무선호출기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는 누구도 그런 거창한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삐삐거리는 호출음 덕분에 붙은 삐삐란 이름이 직관적이면서 귀여워서, 모두들 삐삐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서 삐삐 서비스가 시작된 시기가 의외로 1980년대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에는 특수 직종 종사자들이나 들고 다녔을 뿐, 일반인들은 그런 물건을 구경하지도 못했다.  첩보 장르의 드라마나 만화책을 통해서나 정보기관 요원들이 삐삐거리는 소리를 내는 사각형 모양의 물건을 품속에 넣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반인들도 삐삐를 쓸 수 있게 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였다.

  호빵이 200원이고 에이스 크래커가 300원 하던 시절이었는데, 보급 초기 제일 저렴한 삐삐가 10만원이 넘었다.  물론 물가와 비교해 따져도 요즘의 스마트폰이 더 비싸다.  하지만 지금 스마트폰이 비싸든 싸든 무조건 사야 하는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데 비해 삐삐는 막 등장한 녀석이었다.  삐삐 없이 그럭저럭 살았던 사람들이 굳이 그 돈을 내면서까지 구입할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에, 삐삐는 사치품 취급 받았다.

  그래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삐삐를 갖고 학교에 오는 것을 막았다.  소리가 울리거나 드르릉 하는 요란한 진동 때문에 수업에 방해되는 것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삐삐를 구입할 수 있는 학생과 구입할 수 없는 학생 간에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대학에 입학하고나니 삐삐가 본격적으로 풀리기 시작했다.

  여러 통신사가 삐삐 사업에 진출하고 삐삐 제조사도 늘어나면서 가격이 뚝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별히 예쁘고 작은 디자인을 고집하지 않는다면(즉, 커다랗고 투박한 모양과 시커먼 색깔을 개의치 않는다면), 통신사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단돈 1만원 또는 무료로 삐삐를 장만할 수 있었다. 

  삐삐 천하가 펼쳐지면서 공중전화 사업까지 활황을 맞았다.  삐삐로 호출받으면 삐삐에 찍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든지 아니면 음성 메시지를 들어야 하니, 공중전화마다 줄이 길게 늘어섰다.  전화카드라는 것도 새로 생겼는데, 공중전화 사용자수가 폭발하면서 공중전화에 쌓이는 동전의 양을 감당하지 못 해서 전화카드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음성 메시지를 남기면서 찍는 호출 번호는 보통 자기 집 전화번호의 뒷자리 4개를 썼는데, 숫자의 발음을 이용한 기발한 것들도 생겨났다.  제일 흔한 것은 급한 메시지이니 빨리 확인하란 뜻의 8282(빨리빨리)였다.  간호대를 다니던 친구는 '백의의 천사' 란 뜻으로 102(백의)1004(천사)를 썼다.

 

  초창기 삐삐에는 전화번호만 찍혔는데 조금 지나자 문자가 찍히는 개량형이 나왔다.

  통신사 직원에게 메시지 내용을 말하면, 그 직원이 상대방 삐삐에 문자로 보내줬다.  지금의 휴대폰 메시지나 카톡처럼 직접 타자를 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하다 보니 가끔 엉뚱한 일도 생겼다.  예를 들면 존댓말과 반말이 뒤엉킨다든지, 발음이 비슷한 다른 단어가 찍힌다든지...

 

 

 

  1990년대 후반 - 시티폰과 피처폰

 

  삐삐 세상은 몇 년 가지 못 했고 곧 이동전화의 시대가 열렸다.

 

  시티폰은 삐삐에서 휴대폰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아주 잠깐 사용되다가 사라졌다.

  수신은 불가능하고 발신도 공중전화 근처에서만 할 수 있다는 약점 때문이었다. (누가 이런 반쪽짜리 물건을 상용화했을까...)  게다가 시티폰이 등장하고 얼마 안 되어 PCS라고 하는 휴대폰(지금의 스마트폰 말고 피처폰)이 나온 게 결정적인 타격이 되었다.  피처폰은 수신도 발신도 다 되고 굳이 공중전화 옆에 붙어있을 필요도 없었으니, 어느 쪽이 최후의 승자가 될 지는 뻔한 일이었다.

 

  초창기 피처폰은 거짓말 좀 보태면 원시인이 쓰던 돌도끼만큼이나 커다랬다.

  세로 길이만 보자면 요즘 쓰는 스마트폰과 별 차이가 없지만 두께가 만만찮아서 훨씬 큼직하게 느껴졌다.  두꺼워서 그런지 견고성은 끝내줬다.  내가 처음 쓴 피처폰이 삼성에서 나온 제품이었는데, 몇 번을 땅바닥에 떨어뜨려도 겉에 흠집이나 날 뿐 고장나지 않았다.  몇 년 쓰다가 고장난 후에 대보름날 호두 까는 용도로 썼을 정도로 튼튼했다. 

 

  피처폰이 대세가 된 때부터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까지 약 10년 동안, 다양한 디자인의 피처폰이 나왔다가 사라졌다.

  초기 모델은 전부 플립형이었는데, 재미있게도 미국 드라마 '스타 트렉' 시리즈 에 나오는 커뮤니케이터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타 트렉이 처음 방영되었던 1960년대만 해도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크기의 통신장치' 인 커뮤니케이터는 매우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는데, 이 커뮤니케이터가 플립형이었다.  훗날의 피처폰 개발자들은 스타 트렉에서 본 커뮤니케이터에서 피처폰에 대한 영감을 얻었기 때문에 플립형 이의의 디자인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2017년부터 방영되고 있는 '스타 트렉: 디스커버리' 에서도 여전히 플립형 커뮤니케이터가 나오는데, 21세기의 우리가 바형으로 된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 보니 23세기 사람들이 플립형을 쓰고 있는 게 좀 웃겨 보임.) 

  몇 년 지나자 폴더형이 나타났다.  폴더형은 이름 그대로 폰을 반으로 접는 형태라서 플립형보다 크기를 줄일 수 있어 휴대성이 좋아진다는 장점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폴더형이 가장 오래, 가장 널리 쓰였기 때문에 지금도 피처폰을 말할 때 '폴더폰' 이라고 말해도 통할 정도다.

  피처폰이 저물어가던 시절에는 슬라이드형이나 바형도 등장했다.  외국에서는 많이 쓰였던 디자인이었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폴더형이 워낙 인기를 끌어서 그런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2010년대 - 스마트폰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이나 유럽보다 한 박자 늦게 스마트폰 시대가 열렸다. 

  해외에서는 2007년에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이 돌풍을 일으켰는데, 우리나라는 휴대폰의 통신규격이나 관련 제도가 다른 나라들과 달라서 초기 아이폰을 쓸 수 없었다.  블랙베리나 모토로라에서 나온 제품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사용할 수는 있지만, 아이폰만큼 생태계가 갖추어지지 않아서 널리 보급되지는 못 했다.

  2010년을 전후하여 삼성과 LG가 여러 제품들을 만들어내며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었다.  아이폰도 드디어 우리나라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무렵 삼성에서 출시했던 옴니아는 아마 삼성의 스마트폰 역사상 최악의 제품이었을 것이다.

  옴니아를 쓰는 지인이 있어서 잠시 옴니아를 만져본 적이 있는데, 터치 화면이 있고 인터넷 서핑을 할 수 있다는 것 말고는 피처폰과의 차이를 알 수 없었다.  요즘 삼성에서 나오는 스마트폰과 다르게 OS가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윈도우 모바일이였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 생태계조차 초기에는 iOS에 비해 허술해서 쓸만한 앱이 없다고 했을 정도였는데, 소수 중의 소수인 윈도우 모바일을 썼으니...   

  그런데도 가격은 피처폰보다 훨씬 비쌌으니, 큰 기대를 갖고 구입한 사람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경쟁자인 해외 기업들이 줄줄이 스마트폰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뒤쳐질 수 없다는 마음에 후다닥 만들었던 모양인데, '급히 먹은 밥은 체한다' 는 속담이 왜 나왔는지 제대로 보여줬다.

 

  내가 처음으로 쓴 스마트폰이 LG에서 나온 '안드로-1' 이란 녀석이었다.

  장점은 슬라이드형으로 되어 있어서 아래층(?)에 쿼티자판이 달렸다는 것이었다.  초기 스마트폰들은 화면 터치 반응이 빠릿빠릿하지 못 해서 액정화면 터치해가며 타자를 치려면 속도가 나지 않거나 오타가 나기 일쑤였다.  그에 비해 안드로-1은 물리 쿼티자판이 달려있어서 빠른 속도로 정확하게 타자를 칠 수 있었다.

  그런데 쿼티자판 말고는 몽땅 단점이란 게 함정...  기계의 사양부터 낮았고 깔려있던 안드로이드 OS 버전도 낮았다.  성질 급한 사람은 쓰다가 숨 넘어가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반응이 느렸고 멈춤 현상도 자주 일어났다.  웃기게도 다음 메일이나 다음 카페에는 접속이 되지만 다음 블로그는 접속이 안 되었다. (같은 다음인데 뭐는 되고 뭐는 안 되고 이게 뭐냐고~~!)  나중에 삼성에서 나온 갤럭시 넥서스를 쓰게 되었을 때 기분이, 하이힐 신고 뛰던 사람이 운동화 신고 뛰게 되었을 때의 기분이었다. 

 

  그래도 현대 과학기술이 워낙 빠르게 변하다 보니 스마트폰 완성도도 점점 높아져서, 곧 스마트폰이 우리 일상에 자리잡았다.

  스마트폰 세상이 되자 피처폰은 생산량이 줄어들어 귀해져서 오히려 가격이 비싸졌다.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못 한 노인들이 일부러 피처폰을 구하려고 해도 값이 비싸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을 살 지경이 되었다. 

  이제는 업무를 볼 때라면 모를까, 개인적인 일이라면 장시간의 글쓰기나 동영상 편집 작업 같은 것을 빼놓으면 스마트폰이 컴퓨터를 대신할 정도가 되었다.  말 그대로 '내 손 안의 컴퓨터' 인 셈이다.

 

 

 

  2020년대 - 얼마나 더 발전할까?

 

  스마트폰의 기술 발전 속도는 엄청나다.

  '폰' 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이제는 전화 기능보다는 다른 기능들이 더 많이 쓰이고 있고, 그래서 '기계 먹는 하마' 라고 할 정도로 기존의 휴대용 기기들을 흡수해버렸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되면서 그 전까지 잘 나가던 mp3 플레이어, 디지털 카메라(똑딱이), 전자사전, PMP, PDA 등 휴대용 기기들이 한꺼번에 전멸(!)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할지 모르겠다.  요즘은 화면을 늘일 수 있는 롤러블 폰 이야기도 많이 나오던데, 롤러블 폰 기술이 발달하여 화면을 몇 배로 키우는 게 가능해진다면 태블릿 PC마저 흡수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 아예 벽결이 TV마저 대신하는 세상이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