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김종길의 '설날 아침에'

Lesley 2021. 1. 1. 00:01

  새해맞이용 시를 한 편 소개하려 한다.

  몇 년 전 친구가 카톡으로 새해 인사를 하며 보내줘서 알게 된 시인데, '김종길''설날 아침에' 란 작품이다.  제목이 '설날 아침에' 니 우리 전통 설인 다음 달에나 포스팅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집이 특이하게 신정을 쇠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신정에 맞춰서 올리는 게 적당하다. 

 

 


  설날 아침에

                           - 김종길 -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마니라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처음 접했을 때는 '이런 시도 있구나.' 하고 말았는데 곱씹을수록 묘한 중독성이 있다.

  사실 나이가 들면서 설날의 의미를 실감 못 하게 되었다.  그저 식구들이나 친척들이 모여 떡국 먹는 날이라는 것에 의의가 있을 뿐이다. (네, 저는 설날 자체는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하면서 떡국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는 1人이랍니다... ^^;;)  그런데 이 작품은 잊혀져가는 설날의 설렘과 뜻을 은근히 강조한다.

 

  먼저, 1연의 '매양 추위 속에 /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을 보면...

  마치 내 속마음을 알고 넌지시 타이르는 듯하다.  어차피 매년 돌아오는 설날이라 별 것 아닌 듯하지만, 그래도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라고 한다.  새해의 첫날이니만큼 평범한 설날일지언정 마음만은 따스하게 갖자는 것이다.

 

  3연은 '새해는 참고 /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라는 구절이다.

  새해라고 마냥 좋은 일만 있을 리 없다.  정도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온갖 고민거리를 끌어안고 산다.  화가 치미는 일도 있고 억울하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하고...  왜 세상은 항상 이 모양 이 꼴인가, 차라리 확 망해버려라, 하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래도 새해 첫날이니만큼, 모든 것은 마음 먹기 나름이니 새해에는 좀 참자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그리고 나이 들수록 사그라드는 꿈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비록 작심삼일로 끝날지언정...!) 

 

  4연은 '오늘 아침 / 따뜻한 한 잔 술과 /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이고 5연은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이다.

  인생 뭐 있나... 고급 주택과 번쩍번쩍한 자동차가 있어야만 행복한 게 아니다.  요 몇 년 사이 유행하는 소확행이란 말처럼 소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찾을 줄 안다면, 그건 그거대로 기쁜 일이다.

  설날 아침에 따뜻한 술 한 잔과 떡국 한 그릇 먹는 것만으로도 푸지다고 느끼고 고맙다고 느끼면 좋은 일이다.  떡국을 워낙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 시에서 가장 가슴에 와닿는 구절이라 할 수 있다.  

 

  6연은 '세상은 /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 그러나 세상은 살만한 곳' 이다.

  요즘처럼 어수선한 시기에 위로가 되는 구절이다.  작년 1년 내내 기승을 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모두가 힘들어했고, 그 와중에 뻘짓(!)하는 일부 사람들 때문에 속이 터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세상이 망하지 않고 굴러가는 것은, 이상한 사람보다는 마음이 따뜻하고 서로를 배려할 줄 아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 아니겠나...  그러니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다. 

 

  마지막 9연은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 고운 이빨을 보듯 /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이다.

  우리 어른들에게는 당연하게만 느껴지는 게 치아인데, 잇몸만 있던 아이의 입에서 이 하나 솟아나는 것을 보면 신기해 보인다.  그런 어린 아이의 이를 보고 놀라고 감탄해 하듯이 새해도 설렘을 갖고 맞는다면, 어쩌면 특별한 한 해가 될 지도 모른다.  세상사가 사람 마음 먹기 나름이라고 하니 말이다.  

 

  작년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어수선하기만 했다.

  작년을 견뎌낸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새해는 작년과 달라질 것이라고 덕담을 건네고 싶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