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여행기/강원도

현강원도 원주(1) - 박경리문학공원

Lesley 2018. 10. 10. 00:01

  친구와 함께 강원도 원주시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박경리문학공원에 꼭 한 번 가고 싶었다.  ☞ 박경리의 '토지'에 관한 추억들(http://blog.daum.net/jha7791/15791526)  그리고 친구는 뮤지엄 산이라는 박물관 겸 미술관에 가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 두 곳에 최근 인기를 끈다는 소금산 출렁다리까지, 모두 세 곳에 들리기로 했다.  다만 이 계획은 현지에서 급변경되었다.   중앙시장에서 점심을 먹다가, 소금산 출렁다리 대신 중앙시장 내에 있는 미로시장이란 재미있는 곳을 구경하는 걸로 말이다.  

 

  자, 이 포스트에서는 첫 번째 목적지였던 박경리문학공원을 소개하려 한다.

 

  다만, 박경리문학공원에 가보려는 이를 위한 주의점 하나...!

  박경리 작가 혹은 박경리 작가의 대표작 토지와 관련된 장소가 여러 곳이 있다.  그런데 이름까지 비슷하니 찾아갈 때 헷갈리지 않다록 주의해야 한다.

  먼저, 박경리 작가의 고향인 경상남도 통영시에 박경리기념관이 있고, 토지의 주요 무대인 경상남도 하동군에도 박경리문학관이 있다.  그리고 박경리 작가가 노년기를 보낸 강원도 원주시에도 두 곳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번에 내가 간 박경리문학공원(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이다.  박경리문학공원은 서울에서 살던 박경리 작가가 원주로 이사가서 처음 15년을 보냈던 집이며 토지를 완성한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토지문화관(강원도 원주시 매지리)은 박경리 작가가 원래 살던 단구동 집이 택지개발이 되어 수용된 탓에 새로 이사가서 말년을 보냈던 곳이다.

 

  박경리문학공원은 택지개발로 수용된 박경리 작가의 집을 중심으로 해서 만든 공원이다.

  원래대로라면 택지개발로 허물어버릴 뻔했지만, 원주시에서 대하드라마 토지를 완성한 곳이라는 문학사적 의의를 생각해서 공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박경리 작가가 살았던 2층 집, 그 주위에 새로 만든 박경리 문학의 집(작가 및 토지에 관한 각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음.), 북카페, 세 건물 주위를 감싸며 이어지는 산책길, 작은 호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서 친구와 빵 터지고 말았다.

  공원 바로 옆에 갈비집이 있는데 그 이름이 바로 '토지 갈비'...!  박경리 작가 생전에도 있었던 갈비집인지, 박경리 작가가 그 이름을 봤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

 

 

 

공원 정문에서 산책길로 들어가는 입구.

 

 

  파랗고 높은 하늘을 보니 곧장 실내로 들어가기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일단 산책길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박경리 작가나 토지에 별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조용히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봄직한 곳이다.  넓지 않은 공원이 아기자기하면서도 요란하지 않게 꾸며져 있어서, 한적함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게 분명하다.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케 해주는 담쟁이 덩굴.

 

 

 

산책길 한켠에 있는 텃밭.

 

 

  아마 텃밭은 공원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박경리 작가는 원주로 이사간 후 직접 농사를 지으며 토지의 4부 및 5부를 썼다.  후배 작가이며 역시 유명한 작가인 박완서 작가의 수필집에도, 박경리 작가가 단구동 집에서 직접 밭농사를 짓고 그 농산물을 친분 있는 이들에게 자주 나누어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박경리 작가가 직접 일구던 밭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좀 묘한 생각이 들었다.  주인은 이 세상을 떠나고 10년이 지났는데 밭은 그대로 있다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토지란 작품 이름을 두고 생각해 보면, 이 땅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가 죽었지만 땅만은 항상 그대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동산 투기꾼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들리려나? ^^;;)  

 

 

 

예스러운 전신주.

(그런데 전깃줄이 없네?  소품 같은 건가?)

 

 

 

작가가 생전에 살았던 집으로 들어서는 길.

 

 

  공원 입구 쪽에서 시작된 산책길을 따라 천천히 돌면 작가의 집이 있는 곳으로 들어서게 된다.

  입구 양쪽을 예쁜 담쟁이 덩굴이 덮고 있고, 바닥은 둥글둥글한 돌로 멋스럽게 포장해 놓았는데, 친구는 박경리 작가가 이렇게 꾸며놓고 살았을까 하고 궁금해 했다.  설마 그럴 리가...  당시의 사진을 보면 평범한 농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이곳이 공원으로 조성된 뒤에 꾸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추측일 뿐이지만, 맞을 확률 99%...! ^^)

 

 

 

박경리 작가가 원주 단구동 집을 소재로 쓴 시.

 

 

  집으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서면, 작가의 시가 적힌 팻말들이 쭉 늘어서 있다.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이 단구동 집을 소재로 한 '옛날의 그 집' 이다.  박경리 작가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의 앞부분에 나오는 시인데,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시집의 제목으로 삼았다.  노년의 작가가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일생을 정리하듯이, 자신의 유년기와 청.장년기 때의 일들을 소재로 삼아 쓴 시가 여러 편 수록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으로 적절한 제목이라 할 수 있다. 

  친구는 이 시를 비롯한 다른 시들을 읽으며 다른 작가의 시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라고 했다.  보통 사람들이 일상 중 많이 겪는 평범한 일을 소재로 한 시가 많고, 겉으로 표현된 글과 속뜻이 특별히 다르지 않아 그냥 글(산문)을 보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동감이다.  중의적이거나 난해하지 않아서 시에 대한 편견(?)을 갖고 보면 무척 의외란 느낌이 든다.  시답지 않고 산문마냥 술술 읽히는데, 그러면서도 묘한 여운이 남는다. 

 

 

 

박경리 작가가 15년 동안 거주했던 집.

 

 

  위에서 언급한 박완서 작가의 수필집에 등장하는 그 집이다.

  박경리 작가는 2층에 후배 문인들을 위한 작업실을 여러 개 만들어, 후배들이 다른 잡다한 일에 신경 안 쓰고 글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박완서 작가도 이곳에서 소설 '그 남자네 집' 을 썼는데, 글을 쓰다가 창밖을 보면 박경리 작가가 밭에 엎드리다시피 해서 일하는 모습이 보이곤 했다고 회상했다.

  박경리 작가 사후에도 여전히 문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집의 내부는 관람객이 들어갈 수 없게 잠겨 있다.

 

 

 

박경리 작가 집 옆에 있는 작가 동상.

작가 동상 양옆에 고양이 및 호미 동상도 있음.

 

 

  작가의 생전 모습을 꼭 닮은 동상이 집 옆 나무 그늘 아래에 있다.

  작가의 동상 옆에는 밭일을 상징하는 호미와, 혼자 살던 작가가 밥을 주며 식구로 삼았다는 고양이 무리를 상징하는 고양이 한 마리도 같이 있다.

 

 

 

박경리 작가 집 옆에 있는 텃밭.

 

 

 

원통형으로 생긴 북카페 모습.

전용 엽서만 쓸 수 있는 느린 우체국.

남녀 화장실 표시가 전통적(!)임. ^^

 

 

  우리는 시간 관계상 북카페는 잠깐 둘러보기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넉넉한 이라면 1층에서 책을 대여해서 2층의 독서 공간에서 읽으면 좋을 듯하다.

 

 

 

토지 관련 전시관인 '박경리 문학의 집'.

 

 

  5층 건물로 이루어진 '박경리 문학의 집' 은 토지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한 전시관이다.

  친구가 건물 바깥에 걸린 대형 현수막 사진을 보고 "저런 모습도 하셨구나." 라고 했다.  나도 박경리 작가 하면 넉넉하고 긴 갈색 계통 윗옷에 몸뻬 비슷한 작업복 바지 차림이 떠올라서, 도시 느낌이 물씬 나는 양장 차림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의 뒷부분에 부록으로 실린 박경리 작가의 사진을 보면, 요즘 여자들이 입어도 어색하지 않을 법한 원피스 차림의 젊은 시절 사진이 있어서 이색적이었다.

  

 

 

하동 평사리의 모습.

작가의 노년기 모습과 결혼식 때의 모습.

 

 

  '박경리 문학의 집' 은 5층 건물인데, 5층은 일반 관람객이 출입할 수 없는 세미나실이고 1~4층이 전시실이다.

  일단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서, 거기에서부터 한 층씩 관람하며 내려오도록 되어 있다.  우리와 중년의 여자 관람객 두 명 밖에 없어서, 느긋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26년에 걸친 대작이라 여러 출판사에서 책이 나왔는데, 그 여러 판본이 전부 전시되어 있다.  80년대 후반의 KBS판 토지를 기억하는 이에게는 반가울, KBS판 토지의 영상자료도 약간이나마 볼 수 있다.  다만, KBS판은 토지 1~3부까지의 내용만 다루고 있어서, 4~5부 영상자료는 2000년대에 나왔던 SBS판 토지로 되어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위의 이미지에 나오는 하동 평사리의 모습을 담은 파노라마 사진이다.  안개가 낀 듯한 평사리 들판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나중에 그곳에도 꼭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박경리 작가 관련한 곳을 한 바퀴 다 돌아보자...!  아자...!)

 

 

 

 

강원도 원주(2) - 원주 중앙시장 '신혼부부 / 미로시장'(http://blog.daum.net/jha7791/15791525)

강원도 원주(3) - 뮤지엄 산(Museum SAN)(http://blog.daum.net/jha7791/15791538)

박경리의 '토지'에 관한 추억들(http://blog.daum.net/jha7791/15791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