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각종 행사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오르세미술관전'

Lesley 2017. 2. 1. 00:01


  지난 달에 '오르세미술관전' 에 다녀왔다.

  이 전시회의 정식 명칭은 '이삭줍기展 - 밀레의 꿈, 고흐의 열정' 이다.  하지만 얼른 입에 달라붙는 간결한 명칭도 아니고, 언론이나 인터넷 포털의 안내문에서도 그냥 '오르세미술관전' 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여기에서도 '오르세미술관전' 이라고 하겠다.

  이 전시회는, 올해 우리나라와 프랑스가 수교한 지 130주년이 된 것을 기념하는 뜻에서 여는 것이다.  프랑스의 오르세미술관은 주로 19세기에서 20세기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데, 그 중 엄선한 131점이 이번 전시회에 나온 것이다.  특히 고흐의 '정오의 휴식' 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전시하는 것이라고 하니,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관람 정보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자세한 건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 참조)

  장소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이고 전시기간은 '올해 3월 5일' 까지다.  입장료는 13,000원인데 매달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의 날' 이라 50%를 할인받을 수 있다. (단, 문화의 날이라고 하루 종일 할인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저녁 6시 이후로 입장하는 사람만 할인받을 수 있음.)  주머니 사정 안 좋은 이라면 전시기간 중 마지막 문화의 날인 2월 22일을 노려봄직하다.  나 역시 문화의 날인 1월의 마지막 수요일에 가서, 나처럼 할인을 노리고 온 많은 동지(?)들과 함께 관람했다. ^^


  이번 전시회에 나온 작품은 습작으로 그린 스케치 등을 합쳐 131점이다.

  미술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상태에서 많은 작품을 한꺼번에 봤더니, 나중에는 머리에 과부하가 걸릴 지경이었다. -.-;;  전시회 전반부에 소개된 그림은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한 화가(고흐, 밀레 등)의 작품이라, 미술의 문외한인 나도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후반부에 낯선 화가들의 작품이 쏟아져 나오며 조금씩 멍해지다가, 막바지에는 아예 뇌의 주름이 쫙쫙 펴지는 경험을 했다. 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운 날씨에 따로 시간 내어 전시회에 간 보람이 있었다.  관람을 끝내고서 내 머리 속에 남은 작품은 10개도 안 된다.  하지만 그 소수의 그림만으로도 내 눈은 충분히 호강했고, 요즘 날씨만큼이나 건조해진 내 마음도 모처럼 윤기가 촉촉히 흐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포스트에서는 예닐곱 점의 작품만 소개하겠다.

  고흐의 '정오의 휴식' 이 한국에 처음으로 공개된다고 해서 많은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나는 '별이 빛나는 밤'(이 작품은 오르세미술관이 아니라 뉴욕현대미술관에 있어서 이번 전시회에서 볼 수 없음.) 말고는 고흐의 그림이 좋다는 걸 잘 모르겠다.  죽기 전에 고흐의 그림을 막연하게나마 감상할 수 있을 만큼 미술적 안목을 높일 수  있을까나... ㅠ.ㅠ  

  그래서 이 포스트에서는 화가나 그림의 유명세나 예술적 가치와는 상관 없이, 그저 내 소박한(!) 기준에서 인상적이었던 작품들만 소개하려 한다.  그리고 전시회장에서는 그림을 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등 미술 사조별로 분류해놓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주의 같은 건 잘 모르기 때문에(-.-;;) '농촌을 소재로 한 작품' 과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 두 가지로만 구분하겠다.




  ◎ 농촌을 소재로 한 작품



밀레의 '이삭 줍기'

(혹은 '이삭 줍는 사람들' / '이삭 줍는 여인들')



밀레의 '양치는 소녀'

(혹은 '양떼와 양치는 소녀)


  이번 전시회에서 제일 좋았던 그림은 밀레(Jean Fransois Millet )의 그림이다.

  밀레는 19세기 프랑스의 농촌 풍경을 사실적이면서도 종교적으로 그렸다.  당시 가난한 농촌의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사실적이고, 그러면서도 경건한 느낌을 자아낸다는 점에서 종교적이다.


  위의 두 그림 중 '이삭 줍기' 의 경우 농촌의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잘 표현한 수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추수가 끝난 밭에서 초라한 옷차림의 여인들이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남은 이삭을 줍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 속에는, 여인들과 대비되는 부유한 사람, 그리고 여인들의 삶과 대비되는 풍요로움의 상징도 함께 나온다.  여인들 뒤편의 오른쪽으로 멀찍히 떨어진 곳에는 이 밭의 주인으로 보이는 말 탄 남자가 있다. (이 포스트에 실린 작은 이미지로는 거의 안 보이는데 실물에서는 보임.)  그리고 여인들 뒤편 왼쪽으로는 수확한 곡식더미가 높다랗게 쌓여 있다. 

  지금이야 누구나 밀레의 작품을 높게 평가하지만, 정작 밀레가 살아있던 시절에는 평가가 엇갈렸다고 한다.  농촌의 빈곤과 빈부격차를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점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은 밀레의 작품을 높게 평가했고 보수주의자들은 볼온하게 생각하며 비판했다.


  그리고 '양치는 소녀' 를 보고 뒤통수를 한 대 맞는 충격을 느꼈다.

  이 그림을 학생 시절부터 몇 번이나 봤다. (물론 그 동안에는 책이나 인터넷에 나오는 사진으로 봤고 실물은 이번 전시회에서 처음 봤음.)  그런데 이번에 실물을 보니, 그리고 오디오 도슨트 설명을 들어 보니, 그림 속 소녀는 두 손으로 뜨개질을 하고 있다...!  여지껏 소녀가 나무 지팡이를 짚은 채로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우째 이런 일이...! -0-;; 



브르통의 '이삭 줍고 돌아오는 여인들'



  브르통(Jules Adolphe Aimé Louis Breton)은 이 전시회에서 처음 알게 된 화가다.

  그런데 브르통이 그린 '이삭 줍고 돌아오는 여인들' 은 바로 위에 소개한 밀레의 '이삭 줍기' 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밀레나 브르통이나 같은 소재(농촌 여인들이 이삭을 줍는 일을 하는 것)로 그림을 그렸건만, 두 사람의 그림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밀레의 그림 속 여인들은 그저 가난하고 고달파 보인다.  하지만 브르통의 그림 속 여인들은 경제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한결 나은 삶을 누리는 듯하다.


  일단, 양쪽 여인들이 모은 이삭의 양이 너무 다르다.

  밀레 쪽 여인들은 앞치마를 묶어 만든 주머니를 채울 정도의 이삭만 모았을 뿐이다.  그래서 겨우 저 만큼의 이삭으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그림을 보는 사람이 안타까울 지경이다.  반대로 브르통 쪽 여인들은 머리에 이거나 양팔에 가득 끼고 갈 정도로 이삭을 잔뜩 모았다.  저 많은 이삭을 집의 창고에 쌓아두면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지도 모른다.


  또한, 양쪽 여인들의 자세가 다른 것도 그림 분위기를 갈라놓는다.

  밀레 쪽 여인들은 허리를 굽히고 고개도 숙이고 있어서 더욱 피곤하고 애잔해 보인다.  하지만 브르통 쪽 여인들은 이삭 줍기를 이미 끝내고 돌아가는 길이라 그렇겠지만, 몸을 똑바로 세우고 얼굴도 당당히 들고 있어서 좀 더 힘찬 느낌이다.   

 


롤의 '농부, 망다 라메트리'



  롤(Alfred Philippe Roll) 역시 이번 전시회 덕분에 알게된 화가다.

  '농부, 망다 라메트리' 란 제목 중 '망다 라메트리' 는 그림 속 주인공의 이름이다.  현대인이 보기에는 그림 주인공의 이름을 그림 제목에 붙이는 게 뭐 그리 대단한가 싶지만, 당시에는 이 제목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 전까지는 상당한 지위나 부를 갖춘 사람의 이름만 그림 제목에 들어갈 자격(?)이 있었다.  가령, 어느 나라 국왕 아무개의 사냥하는 그림이라든지, 무슨 백작 부인의 초상화라든지...  그래서 19세기에 여러 프랑스 화가가 농촌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림을 그렸지만, 정작 그림 속 주인공의 신원은 미상이었다.  드라마로 치면 극 중 주인공에게 따로 이름이 없는 것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롤은 특이하게도 망다 라메트리라는 평범한 농촌 여인의 이름을 그림 제목에 그대로 붙였다.  그 시절 기준으로는 꽤나 파격적인 제목이라 화제가 되었고, 망다 라메트리까지 유명해졌다고 한다.  만일 요즘처럼 교통이 편리한 시대였다면, 영화 '집으로' 나 '워낭소리' 가 히트쳤을 때 벌어진 일처럼, 너도 나도 이 여인을 보겠다며 여인이 사는 동네로 몰려갔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그림이 내 눈길을 끈 이유는 따로 있다.

  이 그림을 본 순간 토마스 하디의 소설 '테스' 의 주인공 테스가 떠올랐다.  테스는 훗날 남편이 되는 에인젤과 스치듯 잠시 만났다가 나중에 어떤 목장에서 우유 짜는 일을 하면서 재회하게 된다.  그래서 우유가 가득 찬 양동이를 든 망다 라메트리의 모습을 보고 테스를 떠올렸다.  비록 망다 라메트리의 통통하고 건강미 넘치는 모습이, 소설이나 영화 속 테스의 가녀린 이미지와는 좀 어긋나지만 말이다. ^^;;

 


르파주의 '건초더미'



  르파주(Jules Bastien-Lepage)가 그린 '건초더미' 도 밀레의 그림처럼 농촌의 고달픈 삶을 표현하고 있다.

  부부로 보이는 한 쌍의 남녀가 건초더미(...라기 보다는 그냥 건초를 바닥에 깔아놓은 것처럼 보이는데... ^^;;)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았기에 집에 가서 편히 쉬지 못 하고, 잠시 후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건초 위에서 되는 대로 눕거나 앉아서 쉬고 있다. 


  다만, 그림 속 여자의 표정이 좀...  뭐랄까...

  처음 이 그림을 봤을 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오디오 도슨트의 설명으로는 여자가 고된 노동으로 지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설명을 듣기 전에 여자의 표정을 보면 즉시 '멍 때린다' 는 말이 떠오른다. (죄송해요, 르파주님. ㅠ.ㅠ)  이런 생각을 나 혼자만 한 게 아닌 모양이다.  내 옆에 서서 관람하던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야, 이 여자 표정 왜 이러냐?" 하고 작은 소리로 말하며 킥킥거렸다.  참 다행이다, 명작을 보면서 엉뚱한 생각이나 하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서... ^^;;

  그런데 달리 생각해 보면, 여자 얼굴 위에 떠오른 멍 때리는 표정은 무척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얼굴을 찌푸리며 귀찮다는 표정을 짓는 것도 어느 정도로 피곤할 때 이야기다.  피곤함의 정도가 지나치면 아예 넋이 나갈 지경이 되어 저렇게 멍한 표정을 짓지 않던가? 




  ◎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



보나의 '빅토르 위고의 초상화'



  보나(Leon Joseph Florentin Bonnat)라는 화가는 모르지만 그림 속 위고는 안다. ^^;; 

  '빅토르 위고의 초상화' 에서는 눈밑 주름과 팔자주름에 보이는 그림자, 조끼에 집어넣은 오른손 위로 불룩 솟은 정맥까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럼 섬세함 덕분에 그림인데도 대문호의 관록, 위엄, 고집스러움, 개인적으로 겪은 불행함까지 슬쩍 보인다.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가 그린 '피아노 치는 소녀들' 은 밀레의 그림과 다르면서도 통하는 면이 있다.

  일단, 두 화가가 그림에 담은 대상은 전혀 다르다.  밀레가 농촌 사람들을 주로 그린 데 비해, 르누아르는 상류계층 사람들을 많이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밀레의 그림처럼 르누와르의 그림도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면, 그림 속 인물의 신분이나 부유한 환경을 짐작할 수 있는 소품이 나온다고 한다.  예를 들어 상류층 여자인 경우에는 주로 피아노 같은 악기나 책 등의 소품이 나왔다고 한다.  그 시대에 학문과 음악을 배울 수 있는 여자는 거의 상류층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 뱀발



  1. 오디오 도슨트

  

  이번 전시회에 가서 처음으로 오디오 도슨트를 이용해봤는데 유용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무 것도 모른 채 가서 보는 것과 설명을 들으며 보는 것과는 큰 차이가 났다.  그리고 일반 도슨트(가이드)를 이용할 때와는 다르게, 못 들은 부분을 다시 들을 수 있고 소리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먼저 131개나 되는 작품 중 23개(24개였던가?) 작품에 대한 설명만 나온다.  물론 131개 전부를 설명해 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설명이 나오는 작품 개수가 너무 적은 것 같다.

  그리고 이어폰을 1인당 한쪽만 제공해준다.  어쩌면 사람이 많이 몰리는 전시회장에서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즉,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으면 주변 소리를 잘 듣지 못 하게 되니까 한쪽 귀는 외부에 터놓으라는 뜻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조금 불편했다.     


  2. 정말 오래간만에 가 본 예술의 전당 


  예술의 전당을 대학 시절에 한 번 가보고 내내 안 갔다가, 이번 전시회를 보러 십수 년 만에 다시 갔다.

  가끔 인터넷을 통해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괜찮은 전시회 소식을 접하곤 했다.  하지만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예술의 전당 전시회는 외면했다. 


  대학 때,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전시회에 갔더랬다.

  그 때만 해도 미술 전시회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친구가 무척 가고 싶어해서 친구를 위한 봉사활동(!) 하는 셈 치고 갔다.  딱히 보고 싶지도 않았던 전시회를, 그것도 학생 신분에 부담이 되는 액수의 입장료까지 내면서 들어갔건만...  전시회장에 나온 그림들은 전부 모사품이었다...! ㅠ.ㅠ

  몰론 내 수준으로는 진품과 모사품을 구분해 낼 수 없으니, 어찌 생각하면 진품과 모사품의 구별이 무의미하다.  그리고 그 모사품들이 그냥 짝퉁(!)이 아니라, 진품을 소장한 기관에서 해외 전시를 위해 감수를 맡아 제작한 '특별한 모사품' 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유료 전시회인데 모사품이 웬 말이냐...  그나마 친구 따라 얼떨결에 간 나는 그렇다 치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작품을 볼 수 있다고 큰 기대를 하고 간 친구는 단단히 충격 받았다.  포스터와 팜플렛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는 글자만 대문짝만하게 써놓고, 모사품이라는 글자는 아랫부분에 개미처럼 작은 글씨로 써놓아서 친구도 미처 몰랐던 것이다. (낚였네, 낚였어~~ ㅠ.ㅠ)


  이번 전시회도 혹시 모사품 전시회인가 하며 눈을 부릅뜨고(!) 전시회 소개글을 읽었다.

  다행히 진품이라는 글자가 꽝꽝 박혀있어서 안심하고 보러 갔다.  앞으로도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전시회는 진품이 나오는지 모사품이 나오는지 꼭 확인하고 가야겠다. (예술의 전당, 너는 나한테 찍혔어~~~!!!)  


  3. 책이나 인터넷에 실린 이미지로 보는 그림과 전시회에서 보는 실물은 전혀 다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일부러 돈과 시간 들여서 운동경기나 콘서트에 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 했다.

  또 다른 고등학교 시절 친구는 배구와 야구 보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  지금은 물론이고 고등학교 때도 운동경기에 관심 없던 나에게, 그 친구는 희귀종(!)이었다.  얼마 안 되는 용돈을 열심히 모아 경기장에 가서 순식간에 탕진(?)해 버리니 말이다.  무엇하러 경기장까지 직접 갈까?   TV로 보면 공짜(!)인데다가 카메라가 클로즈업도 해주니 경기장에서 보는 것보다 더 자세하게 볼 수 있는데...

  그리고 대학 때 친구는 종종 콘서트를 보러 갔다.  하지만 많은 관객이 흥분해서 요란하게 악악거리는 콘서트장에서 가사가 정확히 들리기나 할까?  그냥 집에서 테이프나 CD로 음악 들으면 좀 좋아?

  물론, 두  친구 모두 내 반응에 '어이구~~ 이 화상아~~ 도대체 너를 어찌하면 좋니~~' 하는 표정을 지었다. ^^;;  두 친구가 내게 한 말은 거의 비슷했다.  현장에서 선수나 가수가 온 힘을 다 해 뛰거나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다른 관객들과 함께 열심히 응원하거나 따라 부르는 그 기분은, 직접 가 본 사람만이 안다고 말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가끔 전시회를 다니다 보니, 이제야 그 친구들의 기분을 알겠다.

  그림을 책이나 인터넷에 나오는 이미지로 보는 것과 실물로 보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사진으로 보면, 아무리 대단한 그림이라도 원래의 느낌이 반감된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예로 들자면, 학창시절에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섬세한 필치가 돋보이는 수작 어쩌구 저쩌구 하며 배웠다.  하지만 미술 교과서에 그렇게 써있으니 그런가 보다 했을 뿐, 교과서에 실린 미인도 사진을 보면 수작인지 졸작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몇 년 전 간송 미술관에 가서 직접 보니 미인도가 어째서 대단하게 평가받는지 알 수 있었다.  미술 교과서의 사진은 미인도의 '대략적인 형상' 만 보여줄 뿐, 머리카락 한 가닥 한 가닥을 그려낸 그 섬세함까지 보여주지는 못 했기 때문이다.


  이 포스트를 쓰느라 그림의 이미지를 찾으면서도 답답함을 느꼈다.

  유명한 그림들이라 구글에서 이미지를 쉽게 구하기는 했다.  하지만 전시회장에서 본 실물과는 분명히 다르다!   모양새는 같은데, 실물보다 밝거나 어둡거나 부드럽거나 거칠다.  그러다 보니 실물을 볼 때 느꼈던 그 감정이 안 느껴진다.    

  그래, 직접 보는 것과 TV, 책, 인터넷 같은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는 것은 다르다.  다른 친구들이 학생 때 이미 알았던 그 사실을, 나는 한~~참~~ 후에야 겨우 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