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각종 행사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광주박물관 특별전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

Lesley 2016. 9. 2. 00:01


  오래간만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다.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기사를 보다가 신안 앞바다에서 발굴된 난파선에서 나온 유물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신안선 800만개 동전의 수수께끼(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2&aid=0002722457)  기사가 워낙 흥미로운 내용이라 그 유물에 대해 좀 더 알아보려고 검색해봤더니, 마침 중앙박물관에서 그 유물에 관한 전시회를 하는 중이었다...!  이름하여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 인데, 14세기에 우리나라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중국 무역선의 발굴 40주년을 기념하는 뜻에서 개최한 특별 전시회라고 한다.  그래서 끔찍했던 폭염이 갑자기 물러나 서늘해진 지난 주말에 중앙박물관으로 고고씽~~!! 





  그런데 위의 포스터에 나온 것처럼, 이 전시회는 중앙박물관에서는 9월 4일까지만 열린다. (즉, 내 포스트는 뒷북이다... ^^;;)

  대신 10월 25일부터 내년 1월 30일까지는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열린다.  서울의 중앙박물관이야 가장 크고 중요한 박물관이니 그렇다 하더라도, 각 지방마다 국립박물관이 있는데 광주박물관에서만 전시회를 여는 이유는 그 배가 발굴된 곳이 전라남도에 속하는 신안 앞바다여서 그런 듯하다.  그러니 9월 4일 지난 후에야 이 전시회를 알게 된 사람 중에서 꼭 관람을 원하는 이라면 광주 나들이에 나서야 한다. (다만 전시회 입장료는 5천원인데, 다른 지역에서 광주까지 왕복하는 데 드는 차비는... ㅠ.ㅠ) 


  그리고 이 전시회를 보러 갈 사람에게 포스트 머릿부분에 링크 걸어둔 기사를 먼저 읽고 갈 것을 권하고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저 기사 하나만 읽고가도 전시회 관람에 훨씬 도움이 된다.  시간을 잘 맞추면 가이드 설명을 들을 수 있고 또 따로 가이드용 오디오를 대여해주기도 하는데...  알찬 전시회다 보니 관람객이 잔뜩 모여들어 전시회장이 어수선하고 시끄럽다.  그래서 가이드 설명이고 오디오 설명이고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차라리 저 기사 내용을 머리 속에 담아가서, 유물을 보면서 머리 속에서 재생(?)시키는 쪽이 나을 듯하다.

 


신안해저선의 원래 경로(주황색 실선).

태풍에 밀려 떠내려가게 된 경로(주황색 점선).



  이 배는 1323년 6월 3일(마지막 선적일이 6월 3일이라 그 날 출항한 것으로 추정.)에 중국 경원(지금의 닝보)을 출발해서 일본 하카타(지금의 후쿠오카)로 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제주도 부근을 지나던 중 태풍을 만나, 원래 경로에서 이탈해 다도해 쪽으로 떠내려가게 되었다.  원래도 크고 작은 섬이 많아 물살 거세기로 유명한 다도해인데, 태풍까지 불어닥쳤으니 더욱 위험했을 것이다.  신안 앞바다까지 밀려난 배는, 결국 더는 못 견디고 침몰하게 되었다.

 

  이 포스트 앞부분에 링크를 건 기사에 의하면, 원래 음력 6월부터는 8월까지는 배를 잘 띄우지 않는다고 한다.

  태풍이 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라도와 충청도 연해로만 다니던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조운선(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서울로 운반하던 배)도 4월에 배를 띄어 5월 안에는 한강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배는 자기 나라 연해를 왔다 갔다 하는 배도 아니고 먼 바다로 나가는 무역선이면서, 어째서 6월에 출항을 한 것인지... 

  틀림없이 어떤 사정이 있기는 했겠지만, 어쨌든 위험한 시기에 출항한 배는 결국 태풍을 만나 침몰하고 말았다.  그리고 60여명으로 추정되는 선원들은 이국의 낯선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고, 배와 물건들은 약 650년 동안 바다 밑에 묻혀있게 되었다.



신안해저선의 구조도.

(7개의 크고 작은 격벽이 보임.)



  신안해저선 내부에는 7개의 격벽이 있었다.

  잠시 가이드를 따라다닐 때(주말이라 가이드 따라다니는 사람이 하도 많고 어수선해서 앞부분 설명만 듣고 이탈했음. -.-;;) 격벽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은 영화 '타이타닉' 을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타이타닉호 내부는 그냥 하나의 커다란 공간으로 되어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개의 벽이 설치되어 여러 칸으로 나뉘어 있다.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해 선체에 생긴 구멍으로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방화벽 비슷한 벽을 내려 이미 바닷물이 들어온 칸과 다른 칸을 격리해버린다.  그러면 침몰을 아예 막지는 못 해도 침몰되는 시간을 지연시켜서, 사람들이 탈출할 시간을 좀 더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격리되는 칸에서 제때 나오지 못 한 선원들은 배가 침몰되기도 전에 먼저 익사하게 됨.)

  이렇게 하나의 배를 여러 공간으로 나누어주는 벽을 격벽이라고 하는데, 서양에서는 20세기에 들어서야 배에 설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타이타닉호도 20세기 초반의 배였음.)  그런데 동양에서는 이미 14세기에 배에 격벽을 설치한 것이다. 



가마쿠라 시대(12~14세기)에

일본 상류층에서 유행한 중국 복고풍 도자기.



  위의 사진 속 도자기를 보면, 우리가 보통 도자기 하면 떠올리는 그런 모양이 아니다.

  중국의 은나라나 주나라 시대 큰 제례를 올릴 때 쓰던 청동기 모양으로 생겼다. (그래서 청동기에 많이 달린 손잡이도 달려있음.)  중국에서는 송나라와 원나라 때, 훨씬 옛날인 은나라나 주나라 때의 청동기를 본 떠 만든 도자기를 만드는 복고풍(!)이 유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같은 시대(가마쿠라 시대)의 일본에서는 귀족, 상급 무사, 승려 사이에서 차를 마시고 향을 피우며 꽃을 키워 감상하는 중국 문화가 전파되어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그런 문화를 즐기는데 필요한 각종 도자기가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그런 중국붐을 타고 이 배에 엄청난 양의 도자기가 실린 것이다. (그 시절의 made in China와 요즘의 made in China는 차원이 달랐음...!) 



도자기 뿐 아니라 맷돌까지 수출품에 끼어있는... ^^

(찻잎을 가는 데 쓰는 맷돌이라고 함.)



요즘 사람들에게도 인기 끌만한

세려된 다완.



  청자나 백자보다는 이렇게 어두운 색깔로 된 그릇이 더 마음에 든다.

  지금의 내 취향에 딱 들어맞는 14세기 찻그릇!  만일 전시회장 바로 옆 기념품점에서 이 다완의 모방품을 만들어 판다면 하나 구입했을 것이다.



은덩어리.



  가운데를 잘록하게 만든 이유가 설명되어 있지는 않지만...

  한 손에 잡기 쉽게 가운데를 잘록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바다 한복판에서 해적이라도 만났을 때 가운데를 움켜쥐고 앞뒤로 해적들 머리를 마구 찍어대는 손도끼로 쓰기 위해서...? ^^ 



14세기판 택배송장인 목간.



  신안해저선 연구에 큰 도움을 준 게 바로 목간이다.

  목간이란 손가락보다 더 긴 납작한 나무 막대기에 물품의 종류 및 수량, 선적일자, 수령인의 이름과 주소를 적은 것을 말하는데, 배에 실은 많은 물품을 구분하기 위해서 이 목간을 물품에 꽂아두었다.  이 목간 덕분에, 신안해저선에 물건을 실은 날짜는 물론이고, 출발지는 중국 경원이고 도착지는 일본 하카다의 여러 불교 사찰과 신사라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말하자면, 목간이란 것은 14세기판 택배송장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전시관 입구.

이 관람객 저 관람객 입에서 '와~~' 하는 소리가 나옴. 



  첫 번째 전시관을 나와 두 번째 전시관으로 들어서는데, 들어서자 마자 입이 딱 벌어진다.

  배 한 척에서 나온 물건이 정말 엄청나게 많다...!!!  현대인의 고정관념과는 다르게 14세기에도 국가 간의 무역 규모는 매우 컸다.  그리고 지금보다 여러가지로 더 위험한 뱃길을 헤치고 이렇게 많은 물품을 수출했으니, 선주나 수출업자는 틀림없이 떼돈을 벌었을 것이다. ^^


 

종류별로 하나씩 가져가고 싶은 충동이 드는... ^^



이쪽은 조금 투박하게 생긴 도자기임.

아니, 도자기가 아니라 항아리인가? ^^



동물 모양의 청자 연적.

그리고 소와 사람 모양의 연적.



650년 동안 원형을 유지한 자단목 원목.



  자단목은 중국 남부, 동남아시아, 인도에서 자라는 나무다.

  색깔이 자주색이고 박달나무처럼 단단해서 자단목(紫檀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단단하고 향까지 은은해서 고급 가구를 만드는 데 많이 쓰고, 절에서는 불상이나 향을 만드는 데 쓴다고 한다.  문외한인 내 눈에는 그냥 아무렇게나 잘라낸 커다란 나무통을 쌓아놓은 걸로만 보이는데, 알고 보니 무척 귀한 물건이다. ^^;;

  신안해저선에서 자단목의 원목과 자단목으로 만든 가구가 함께 발견되었다.   배가 침몰했을 때 자단목들이 갯벌에 묻힌 덕에, 약 650년이나 지났는데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자단목 표면에 적힌 숫자다.

  아마 거래 과정에서 수량이나 무게 등을 표시하려고 적어놓은 모양인데, 이 숫자가 다국적이다.  중국 숫자(즉, 한자) 뿐 아니라 아라비아 숫자나 로마 숫자도 있다.  아시아 동쪽 지역의 몇몇 나라끼리만 무역을 한 게 아니라, 저 멀리 인도와 중동, 심지어 유럽의 나라까지 직접무역으로든 간접무역으로든 서로 얽혀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와~~ 돈이다...! ^0^




  도자기란 물건이 덩치가 커다랗고 모양이 아름다워서 눈에 더 잘 띄지만, 양과 무게로 따지자면 동전이야말로 이 전시회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신안해저선에서 개수로는 800만개, 무게로는 28톤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동전이 나왔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동전이 한두 종류가 아니라는 점이다.  서기 14년에 주조한 신나라(전한과 후한 사이에 15년간 존재한 왕조) 때 동전부터, 1310년에 주조한 원나라 때 동전까지, 무려 66종이나 된다...!  신안해저선 발굴로 우리나라가 중국의 옛날 동전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가 되었을 정도다.  대부분은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만든 동전이지만 베트남 동전도 일부 섞여있어서, 그 시대 여러 나라의 경제교역을 엿볼 수 있다.   


  신안해저선에는 어째서 이렇게 많은 동전이 실려있었던 걸까?

  이 문제에 관하여, 포스트 앞머리에서 언급한 기사는 두 가지 주장을 소개하고 있다.  그 중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는 아직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첫 번째 주장은, 일본이 중국 동전을 수입해서 유통하려 했다는 것이다.

  일본도 자기 나라에서 쓰려고 여러 차례 자체적으로 동전을 발행했지만, 일본 동전은 제대로 유통되지 않았다.  통화정책 실패로 일본 동전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탓이었다.  그래서 중국 동전을 수입해서 일본 동전 대신 유통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안해저선 침몰 사건 이전 시대에도 일본이 중국 동전을 수입해서 그대로 유통시킨 사례가 있었다.  그리고 일본 뿐 아니라, 고려나 베트남에서도 중국 동전을 수입해서 쓰곤 했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한 가지 약점이 있다.  중국 동전을 일본에서 그대로 사용하려고 했다면 몇 종류만 수입해야지, 자그마치 66종류나 수입했다는 것은 이상하다.  지금 우리나라 시중에 유통되는 동전이 10원짜리, 50원짜리, 100원짜리, 500원짜리 등 달랑 4종류다.  지폐 종류까지 합쳐서 계산하더라도 8종류다.  그런데 66종류나 되는 동전을 유통시킨다면, 돈을 내는 사람이나 돈을 받는 사람이나 너무 헷갈리고 불편해서 경제에 혼란만 생길 것이다. 


  그래서 나온 두 번째 주장은, 일본인들이 큰 불상을 만들 재료로 중국 동전을 수입했다는 것이다. 

  이 시대 일본에서는 불교가 완전히 뿌리를 내리면서 여기저기에서 청동대불 조성이 유행했다.  그런데 신안해저선이 침몰한 가마쿠라 시대 이전부터 이미 일본의 동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어, 불상을 만들 재료가 부족해졌다.  그래서 중국 동전을 수입해 녹여서 불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로, 이 시대에 만든 가마쿠라 대불의 납성분이 유독 높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 보다 몇 백년 앞서 만든 아스카 대불이나 나라 대불의 납성분보다 무려 6~37배나 높다.  마침 신안해저선에서 발견된 중국 동전 중 일부의 납성분도 매우 높다.  즉, 애초에 납이 많이 들어간 중국 동전을 녹여서 가마쿠라 대불을 만들었기 때문에, 가마쿠라 대불 역시 납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역시 내 눈에는,

청자보다는투박한 색깔의 녀석들이 좋아 보임. ^^



선원들이 쓰던 장기판과 장기말.



  신안해저선에는 60여명의 선원이 탑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배의 국적은 중국이고 배의 목적지는 일본이기 때문에, 선원 대부분은 중국인이나 일본인이었을 것이다.  다만, 수출품목 중에 약간의 고려청자도 포함되어 있고 또 고려 해역을 지나가는 배이기도 해서, 고려인 선원도 몇 명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어찌되었거나 선원들이 긴 항해기간 동안 비번인 때에 항상 잠만 잘 수는 없는 노릇이니, 무언가 오락거리가 필요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장기다.  위의 사진 속 장기말은 지금의 일본 장기말처럼 보인다.  일본 선원들이 쓰던 장기일까?



선원들이 쓰던 바둑알과 주사위.



  왼쪽에 푸르고 노란 바둑알이 특이해 보인다.

  원래는 현대 바둑알처럼 검은색이었는데 오랜 세월 바닷물에 씻겨 색깔이 변한 걸까?  아니면 원래 저런 색깔이었을까?



양쪽에 분홍색 나뭇잎을 커다랗게 그린 백자 접시.



  이 접시는 전시회장 출구 바로 옆에 있다.

  즉, 이 접시가 전시회의 끝을 장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다른 물품은 여러 개가 한 자리에 전시되어 있는데, 이 접시만 독방(?)에 전시해놓았다.  그래서 신안해저선에서 나온 도자기 중 가장 가치있는(경제적이로든 예술적으로든) 물건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접시 분홍색 부분에 써있는 시구 때문이다.

  양쪽 분홍색 부분에 流水何太急(흐르는 물은 어찌 저리 급한고)와 深宮盡日閑(깊은 궁궐은 종일토록 한가한데)라는 시구가 있다.  당나라 때 어느 궁녀가 궁궐 생활의 외로움을 읊은 시를 지었는데, 이 두 구절이 그 시의 앞부분에 해당한다.

  전시회 주최 측에서는, 이 시가 태풍 때문에 신안해저선의 선원들이 겪어야 했을 급한 파도를 연상케하고, 또한 선원들의 애틋한 마음을 전해주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모든 문화유산에는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 깃들어있으니 문화유산을 보면서 그 때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며, 신안해저선에 탔던 이들의 명복을 비는 말로 전시회를 끝낸다.


  '문화유산에는 사람의 마음이 깃들어있으니 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공교롭게도 전시회 가이드가 격벽을 설명하며 예로 든 영화 '타이타닉' 에 비슷한 취지의 대사가 나왔다.  영화에서 타이타닉호 발굴 작업단을 이끄는 사람의 목적은, 침몰한 타이타닉호 안에 남겨진 것으로 알려진 엄청나게 비싸고 유명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찾아 부와 유명세를 얻는 것이다.  그런데 타이타닉호 침몰 때 살아남아 노파가 된 로즈에게서, 당시 타이타닉호에 탔던 사람들의 절절한 사연을 듣게 된다.  그리고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몇 년 동안 오직 타이타닉호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살았지만, 정작 그 배 안에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것을... 

  신안해저선에서 발견된 수많은 유물은, 분명히 역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엄청난 가치를 지닌 보물이다.  하지만 물건의 가치에만 정신이 쏠려, 그 배에 탔던 사람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사람들 모두 육지에 가족을 남겨두었을 것이다.  그래서 무서운 태풍과 거센 파도 속에서 사투를 벌이면서, 부처에게든 용왕에게든 반드시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간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배가 침몰하게 되자, 끔찍한 절망감과 공포심을 느끼며 죽어갔을 것이다.  

  전시물품의 중요성에 대해서만 강조하는 다른 전시회와 다르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일깨워준 멋진 전시회다.  그리고 나도 수백 년 전 불의의 사고로 우리나라 바다에서 죽어야 했던 이국 선원들의 명복을 빈다. 



  뱀발 -1 


  전시회를 다 보고서 상설전시관에도 들렀는데, 나갈 때 보니 출구 쪽에서 설문조사를 하고 있었다. 

  박물관 이용에 대한 만족도 등을 조사하는 것인데, 마침 바쁜 일도 없어서 직원들이 권하는대로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설문지 마지막 항목이 박물관에 대한 건의사항을 쓰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평소 생각하던 것을 썼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보니, 방학이나 주말에는 소리지르며 뛰어다니는 어린이들이 너무 많아서 어른 관람객들이 제대로 관람을 할 수가 없다고.  그러니 좀 치사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입장료를 받거나, 아니면 어린이들의 관람에 무슨 조건(예를 들면, 학교나 그 밖의 단체에서 인솔자가 동행해서 진짜 교.육.차.원.에서 관람할 것)을 붙여서, 어린이 관람객 숫자를 좀 제한하자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린이차별주의자(?)인 것은 결코 아니다.

  비록 땅꼬마(!)라도, 박물관에서 조용히 구경하는 어린이는 괜찮다.  다만, 무슨 서부영화 속 버펄로떼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며 소리치고 깔깔거리는 어린이들을 보면, 정말 심란하기 짝이 없다. ㅠ.ㅠ

  아마 그런 어린이 대부분은 자신이 박물관에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닐 것이다.  자식에게 문화적 소양을 키워주려는 부모 손에 이끌려 온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문화적 소양이란 것도 그 나이에 맞게 키워야 하는 법이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중에서 박물관 유물에 흥미를 느끼는 아이들이 얼마나 있겠나...  그러니 지루하고 심심한 아이들이 박물관 내부에서 가로 뛰고 세로 뛰는 게 아닌가...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박물관이나 과학관이 많이 생겼다.  자식들을 위해서나 다른 관람객들을 위해서나, 부모들이 제발 자식들을 그런 어린이용 박물관으로 데려가기를 바랄 뿐이다. (부모님들,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부모님들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다닐 때 유물 같은 것에 털끝만큼도 관심 없었잖아요? -.-;;)   




  뱀발 - 2


  설문지 작성을 끝냈더니, 뜻밖에도 기념품으로 볼펜 한 자루를 줬다.

  직원들이 설문조사에 참여해달라고 권할 때, 바쁘다든지 혹은 설문지 양이 너무 많다든지 하는 이유를 대며 거절하는 사람도 많았다.  만일 설문조사 끝내면 볼펜을 준다고 미리 알려줬으면 대부분 참여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볼펜 받을 욕심에 일단 설문조사에 응하고서 아무렇게나 설문지 작성할까봐, 직원들이 일부러 볼펜 이야기를 안 해 준 것인지도 모른다. ^^



득템...! ^^


紅葉傳情(홍엽전정) - 단풍잎이 사랑을 전하다.(http://blog.daum.net/jha7791/15791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