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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카(Gattaca) - 1

Lesley 2017. 1. 13. 00:01


  새해 첫날, 영화 '가타카' 를 정말 오래간만에 다시 봤다.

  이 영화를 대학 시절에 비디오 테이프로 처음 접하고 나중에는 인터넷에서 다운받아서도 봤다.  이 영화를 본 횟수를 전부 합치면 20번은 넘을 것이다.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교수가 되었을 지도 모르고 돈을 이렇게 벌었으면 재벌까지는 아니어도 지역 유지 정도는 되었을 듯... ^^;;)  한동안 이 영화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영화 대본까지 구해서 봤을 정도다.  SF영화로는 좀 이질적이기는 했지만, 내가 본 SF영화 중 가장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작품이다.

  그 만큼 좋아했던 이 영화를 지난 몇 년 잊고 살다가, 어째서인지 신정에  갑자기 생각나서 복습한 것이다.  영화를 보고서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서 인터넷을 검색해 봤더니, 역시나 이 영화가 개봉된 해가 1997년이다.  개봉한 지 20주년 된 해에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다니, 뭔가 감개무량하기도 하고 이 영화와 함께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유전자 조작으로 운명이 결정되는 시대

  - "제롬 모로우의 인생에 다른 특별한 것은 없다.  내가 제롬 모로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영화는 주인공 '제롬(에단 호크)' 의 샤워 장면에서 시작한다. 

  처음에는 화면 가득 투명한 플라스틱 조각 같은 것, 하얀 가루, 전선 혹은 나뭇가지로 보이는 것들이 슬로우 모션으로 바닥에 떨어진다.  알고 보니 이것들은 제롬이 몸을 씻으면서 떨어져 나온 각질과 체모다.

  그런데 제롬이 샤워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보통 샤워라고 하면 몸에 비누 거품을 묻혀 가볍게 문지르는 것인데, 제롬은 솔 같은 것으로 맨몸을 세게 문지른다.  제롬의 손길을 따라 북북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다.  이 정도면 몸을 깨끗이 씻어낸다기 보다는 차라리 몸을 한꺼풀 벗겨내려 한다는 게 맞을 정도다.

  샤워를 끝낸 제롬이 샤워부스 밖으로 나오는데, 방금 전 샤워가 평범한 샤워가 아니었듯이 샤워부스 또한 평범한 샤워부스가 아니다.  제롬이 버튼을 누르자  샤워부스 안에서 불길이 확 솟구치며 그 안에 남은 각질과 체모 등을 태운다.  즉, 제롬이 들어가있던 샤워부스는 소각장 역할도 겸한 곳이다.


  그 후로도 제롬은 비밀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실리콘 같은 것으로 만든 인공 피부에 조심스레 혈액을 주입하더니, 그 인공 피부를 자신의 손가락 끝부분에 씌운다.  마치 첩보영화에서 지문 인식 보안 시스템을 뚫기 위해 타인의 지문을 떠오는 것 같은 장면이다.

  이상한 행동은 '가타카(우주탐사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인데 가타카의 직원은 누구에게나 엘리트로 대접받음.)' 로 출근한 후에도 이어진다.  컴퓨터 작업을 끝낸 후 자판을 미니 청소기로 깨끗이 청소하더니, 자신이 따로 준비한 피부 각질 가루를 자판 여기저기에 뿌린다.  그리고 역시 따로 준비해 온 머리카락까지 자기 자리에 놓인 빗에 걸어놓는다.  출근 전에는 자신의 각질이나 체모가 세상에 남으면 안 되는 것처럼 다 불태워 없애버리더니, 정작 출근해서는 누군가가 발견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일부러 여기저기에 남긴다.   


  제롬의 나레이션으로 제롬의 현재 상황이 설명된다.

  "일등 항법사 제롬 모로우는 1년 동안 토성의 14번째 위성인 타이탄을 탐사할 예정이다. 이 명예로운 임무는 제롬이 태어났을 때 이미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제롬은 이 임무에 필요한 모든 재능을 갖추고 있고, 누구도 가지지 못 한 우수한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면서 '나' 라고 하지 않고 마치 남 이야기 하는 것처럼 '제롬 모로우' 라고 3인칭화 한다.  일종의 복선이다.

  어쨌거나 우리 관객은 위의 나레이션을 듣고서, 제롬이 유전자로 모든 게 결정되는 이 시대의 총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우 우수한 유전자를 지닌 사람만 모아놓은 가타카에서도 최고의 엘리트로 꼽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 나레이션에 나오는 제롬의 완벽한 경력은, 앞에서 보여준 비밀스럽고 수상한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때 가타카에 큰일이 벌어진다.

  직원들이 어떤 사무실 밖에 피가 홍건하게 고인 것을 보고 모여들어 웅성거린다.  제롬 역시 걸어오다가 그 광경을 보고 멈추어 선다.  그 순간에는 몰랐지만, 그 일은 가타카에서 승승장구하던 제롬에게 큰 위기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위의 나레이션을 뒤집는 또 다른 나레이션이 흐른다.  "제롬 모로우의 인생에 다른 특별한 것은 없다.  내가 제롬 모로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즉, 영화 속 가타카 사람들이 제롬이라고 믿고 있으며 영화가 여기까지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이 제롬이라고 알고 있던 주인공은, 사실은 제롬이 아니다...!




  ◎ 신의 아이란 굴레

  - "나는 어째서 어머니가 유전학자 대신 신의 섭리를 믿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인공수정으로 유전자를 조작하여 우수한 아이를 만들어내는 일이 가능한 시대에, 주인공은 자연잉태 방식으로 태어났다.

  (여기서 잠깐!  주인공의 진짜 이름이 제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당분간은 그냥 주인공이라고만 하자.)  주인공 어머니는 출산할 때 천주교 묵주를 손에 들고 있고, 주인공 아버지의 이름은 천주교 신자가 많은 이탈리아 계통인 '안토니오' 다.  이 두 가지 사실로 보아, 이 부부는 종교적인 신념에 따라 자연잉태로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것 같다.


  하지만 부모가 유전학자 대신 신에게 모든 것을 맏긴 건 주인공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 되어 버린다.

  병원 직원이 세상빛을 처음 본 주인공에게서 피를 뽑아 기계에 집어넣는다.  겨우 한 방울의 피로, 이제 막 태어난 주인공의 미래가 예측되고 결정된다.  신경계 질병 가능성 60%, 우울증 가능성 40%, 집중력 장애 가능성 89%, 심장 질환 가능성 99%, 그리고 예상수명은 겨우 30.2년.  병원 직원 입에서 나오는 암담한 수치를 들으며, 첫아들의 탄생에 들떠있던 부모의 얼굴에 당혹스러움과 충격이 스친다.

  자연잉태로 태어난 아이는 사랑의 결실이라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다.  그런데 순진하기 짝이 없는 부모의 결정으로, 주인공은 남보다 불리한 출발선에서 인생이란 마라톤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주인공은 이 때의 상황에 대해 "나는 어째서 어머니가 유전학자 대신 신의 섭리를 믿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라고 토로한다.  담담한 말투지만, 자신의 운명을 그렇게 결정지은 부모에 대한 원망과 굴곡 많았던 자기 인생에 대한 회한이 묻어나오는 말이다. 


  태어나기도 전에 미래를 빼앗긴 아이는, 원래 자기 것이었던 이름마저 빼앗긴다. 

  아이의 이름을 묻는 병원 직원에게 어머니는 '안톤' 이라고 대답한다.  질문을 받자마자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것으로 보아, 그리고 안톤이란 이름이 아이 아버지의 이름 '안토니오' 의 변형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부부가 미리 의논해서 정해놓은 게 분명하다.

  그런데 어머니 입에서 안톤이란 이름이 나오기가 무섭게, 아버지가 다급하게 나서서 '빈센트 안톤' 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이게 좋은 이름이야." 라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이 때 아버지의 표정을 보면, 얼마 못 살 것으로 보이는데다가 그나마 별 볼 일 없이 살 게 뻔한 아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물려주는 걸 꺼려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빈센트(이제 주인공을 본명인 빈센트로 부르도록 하자.)의 어린 시절은 순탄치 못 했다.

  다른 아이라면 아장아장 걷다가 넘어지는 것 정도는 별일 아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넘어진 빈센트가 당장 죽기라도 할 것처럼 겁에 질려 뛰어와 빈센트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댄다.  빈센트가 심장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99%나 된다는 말을 들었으니,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다른 아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게 들어갈 유치원에도 가지 못 한다.  유치원 측에서 '결함투성이 유전자' 를 지닌 아이를 받았다가 무슨 사고라도 생길까봐 부담스러워하며 거부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아무리 신앙심 두터운 부부라도 둘째 아이만큼은 유전자 조작으로 낳으려 할 수 밖에 없다.  

  '신의 아이' 빈센트가 여러 불리한 신체적 조건을 갖고 태어난 것과는 달리, '과학의 아이' 인 동생 '안톤' 은 모든 불리한 유전적 요소(조기 탈모, 근시, 알콜 중독, 폭력 성향, 비만  등)를 제거한 몸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완벽하게 태어난 둘째 아들을 자랑스러워 하며 자신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빈센트는 어린 마음에도, 자신이 어린 동생보다 열등하다는 사실과 부모가 동생을 편애한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어린 시절부터 우주에 관심을 보였던 빈센트는 성장해서도 우주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 한다.

  하지만 이른바 '부적격자' 인 빈센트가 우주 비행사가 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아버지는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아들을 답답해하며 냉정하게 말한다.  "네가 우주선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바로 우주선을 청소하는 거지." 

  유감스럽게도 아버지의 말이 맞다.  우주 비행사가 되려면 방대한 지식과 강건한 육체를 모두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집중력 장애를 겪을 가능성이 89%인데다가 심장 질환에 걸릴 가능성도 99%나 되는 빈센트를, 어떤 회사에서 우주 비행사로 채용하려 하겠는가?  이 세상에는 빈센트보다 모든 조건에서 월등한 '적격자' 도 많은데 말이다.

  법률로는 직원을 채용할 때 유전자로 차별하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법이란 게 어차피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니, 그 법을 피하는 것 또한 사람의 힘으로 가능하다.  회사는 마약 중독자를 가려낸다는 명분으로 소변 검사를 요구하면서 구직자의 유전자 정보를 알아낸다.  그런 방법으로 부적격자들은 사실상 채용 시장에서 배제된다.  



  ◎ 운명에 대한 도전

  - "유리가 깨끗하면 반대편에 비치는 제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잖아요."


  결국 빈센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출한다.

  구직활동을 하면서 유전자의 벽에 부딪치는 아픔을 겪었기에, 어쩌면 아버지의 충고 아닌 충고를 받아들여 현실에 순응하며 살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뜻밖의 사건이 벌어지면서 빈센트는 실현 가능성 낮은 꿈에 도전하게 된다.


  문제의 사건은, 빈센트-안톤 형제가 어린 시절부터 종종 벌이던 위험한 수영 경기에서 비롯된다.

  부모 몰래 둘이서 헤엄을 쳐서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갔다가 먼저 포기하고 되돌아오는 사람이 지는 것이다.  물론 지는 건 언제나 빈센트였다.  동생 안톤은 빈센트보다 어려도 육체적 조건이 월등히 좋기 때문에 오랜 시간 헤엄칠 수 있다.  하지만 빈센트는 얼마 안 가 힘이 다 빠져서 헤엄치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빈센트가 안톤과 대등하게 경기를 벌이고, 안톤 쪽에서 먼저 힘이 다 떨어져 물에 빠지는 일이 벌어진다.  빈센트는 하마터면 익사할 뻔한 동생을 건져내어 해변으로 돌아온다.  그 일로 자신이 '대체적으로' 동생보다 떨어질 뿐 '절대적' 으로 떨어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날 밤 빈센트는 가출한다.

  자신은 이제 가족의 일부가 아니라는 듯 가족 사진에서 자기 얼굴 부분만 찢어내더니, 가방 하나만 든 채 집을 나간다.  가출하는 사람은 보통 도둑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떠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빈센트의 모습은 너무 당당하고 자연스럽다.  마치 그 동안 가족과 함께 살았던 게 잘못된 일이었고, 이제라도 그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옳은 행동을 하는 것처럼...

  마침 안톤이 거실로 나왔다가 떠나는 빈센트를 보게 된다.  빈센트도 안톤을 보지만 아무 말 없이 나가고, 안톤 역시 차마 빈센트를 부르거나 붙잡지 못 한다.



대본에는 있지만 영화에서는 생략된 부분


  영화만 보면 형제가 벌이는 수영 경기 장면과 가출 장면이 좀 어색하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하지만 반복해서 봤더니 '그 동안 항상 빈센트가 뒤쳐졌는데 어째서 저 날만 안톤이 뒤쳐진 거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날의 승부가 평소와 달랐던 이유가 틀림없이 있을텐데 전혀 언급이 안 된 것이다.  그리고 안톤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형과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고 우월감을 보였는데, 가족 몰래 떠나는 빈센트를 '안 붙잡는 게' 아니라 '못 붙잡는 것' 처럼 행동하는 것도 이상해 보였다.  영화에 나온 재수없는(!) 안톤의 모습으로는, 가출하는 형을 비웃거나 한심해하며 뼈아픈 소리 한 마디 내질러야 마땅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 빈센트가 자신의 꿈을 위해 집을 떠나는 계기를 설명하려고, 상황을 작위적으로 만들었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대본을 보면 위의 부분이 보다 개연성 있게 나온다.


  대본에서는 빈센트-안톤 형제의 은근하고 미묘한 갈등이 여자 문제로 표면화 된다.

  빈센트가 17세가 되었을 때 한 여자와 사귀며 깊은 관계가 된다.  그런데 자신이 부적격자라는 것을 숨긴 채 여자를 만났다.  영화 가타카 속 세상에서는 재력, 학력, 직업, 인종 같은 것은 다 필요없고 오직 유전자만이 사람의 가치를 재고 계급을 나누는 절대적인 기준이다.  그러니 부적격자는 이성과 사귈 기회조차 얻을 수 없어서 적격자인 것처럼 행세한 것이다.  "나는 여자들에게 무척 인기 있었다.  내가 오래 사귈만한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나중에 그 여자는 빈센트가 부적격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적격자인 동생 안톤과 사귀게 된다.  그리고 빈센트는 그 여자와 동생의 데이트 장면을 보게 된다.  "나는 여자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전도유망한 남편이어야 주택담보대출을 받거나 생명보험에 가입할 자격이 있고 좋은 직장도 잡을 수 있을테니까." / "나는 안톤이 아무 노력없이 쉽게 여자를 사귀는 걸 비난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해서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사람인 이상 울분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안톤에게 수영 경기를 하자고 한다. 

  영화에도 대본에도 안 나오지만, 분위기상 두 사람은 제법 오랜 시간 수영 경기를 안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빈센트가 갑자기 다시 경기를 제안하자, 안톤은 반은 건방지고 반은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어차피 질텐데 정말로 이 짓을 또 하자는 거냐 식의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뜻밖에도 처음으로 빈센트가 안톤을 앞서게 된다.  그 여자의 일로 오랜 시간 동생에게 쌓아온 감정(부모의 애정과 관심을 동생 혼자 독차지 한 것에 대한 분노, 자신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 동생에게는 너무나 간단한 일이라는 사실에 대한 좌절감)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어떻게든 동생을 이기고 싶다는 마음에 필사적으로 헤엄을 쳤기에, 그 날만큼은 평소보다 수영을 훨씬 잘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안톤이 힘이 빠져 물 속으로 가라앉게 되자 안톤을 건져내어 해변으로 되돌아온다.


  뒤늦게 이 일을 안 부모가 놀라서 달려온다.

  빈센트는 동생을 구하느라 마지막 체력까지 짜낸 뒤라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고통스러워 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런 빈센트를 염려하는 대신 분노를 터뜨린다.  "빈센트, 이 멍청한 놈!  바보같은 경기나 하자고 해서 안톤을 죽일 뻔하지 않았냐!  어째서 네 동생이 너를 구하느라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거냐?  언제 그 둔한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거냐?  너는 동생의 상대가 못 된다고!  그런데 왜 이런 짓을 해!" 

  아버지는 두 아들 중 누가 물에 빠졌고 누가 구조를 했는지 묻지도 않는다.  아주 당연하게 빈센트가 물에 빠졌다가 안톤에게 구조되었다고 단정한다.  아버지 마음 속에는, 부적격자인 큰아들은 보나마나 인생의 실패자가 될테고 적격자인 작은아들은 분명히 인생의 승리자가 될 것이라는 편견이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큰아들이 부적격자로 태어난 것은 자신과 아내가 내린 결정 탓이다.  하지만 그로 인한 결과와 죄책감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서인지, 그 동안 알게 모르게 큰아들에게 상처를 주고 작은아들만 편애했다.  그런 아버지의 비틀린 심리가 이 사건으로 노골화 된 것이다.


  이 날의 일로 빈센트는 집을 나가기로 결정한다.

  수영 경기에서 동생을 이기면서, 의지만 있으면 부적격자도 적격자를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아버지에 대한 최소한의 정마저 떨어져나갔다.  그러니 더 이상 집에 머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자신의 꿈을 이해하지도 못 하고 또 이해하려 들지도 않는 가족을 떠나 자신의 길을 가기로 한 것이다.


  안톤은 가출하는 형을 보고도 차마 붙잡지 못 한다.

  아버지가 물에 빠진 사람이 형이라고 오해하며 화를 낼 때, 안톤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안톤은 어려서부터 자신보다 못 한 형을 무시했다.  그러니 부적격자 형과 수영 경기를 해서 진 것으로도 모자라 목숨 빚까지 졌다는 사실을, 적격자의 자존심으로는 도무지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형 빈센트마저 아버지 앞에서 입을 다물자, 자신이 부적격자에게 배려를 받고 부적격자보다 못나게 구는 것 같아서 더욱 비참해졌을 것이다.  정작 빈센트는,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실패작으로 여기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반항심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말이다.



  가출한 빈센트는 우주 탐사 업체인 가타카에서 청소부로 일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네가 우주선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바로 우주선을 청소하는 거지." 라던 아버지의 말대로 된 셈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아버지는 아들이 청소만 하게 될 줄 알았지만, 아들은 두 손으로는 청소를 하면서 눈길은 항상 우주선이 날아가는 하늘에 두고 꿈을 키워나간다.


  어느 날 빈센트가 유리벽을 닦으면서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가타카 직원들의 모습을 동경하듯 바라본다.

  그러자 늙은 고참 청소부가 다가와 말을 건다.  이 때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이, 영화를 처음 볼 때에는 그냥 평범한 업무상의 대화로만 들렸다.  하지만 영화를 되풀이해서 보다 보면 처음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들린다. 


  고참 청소부 : "유리를 닦을 때 너무 잘 닦으려 하지 마."
  빈센트 : "무슨 말씀이세요?"
  고참 청소부 : "무슨 말인지 알잖아."
  빈센트 : "유리가 깨끗하면 반대편에 비치는 제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잖아요."


  위의 대화는 중의적이다. 

  고참 청소부의 말을 겉으로만 해석하자면, 한 곳의 유리벽만 계속해서 닦고 있는 빈센트에게 적당히 끝내고 이제 다른 곳도 청소하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속뜻은, 빈센트가 가타카 직원들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고, 못 올라갈 나무는 애초에 쳐다보지도 말라고 충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빈센트가  "유리가 깨끗하면 반대편에 비치는 제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잖아요." 라고 대꾸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사실, 유리는 깨끗이 닦으면 닦을수록 반대편에 있는 사물만 더 잘 보이게 될 뿐, 정작 유리를 마주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오히려 안 보이게 된다.  그러니 빈센트의 말은 이왕 유리를 닦을 바에는 아주 깨끗이 닦겠다는 뜻이 아니라, '언젠가 유리 반대편에 보이는 저 가타카 직원들 속에 함께 있을 제 모습을 상상하고 있어요.' 라는 뜻이 된다.



  ◎ 빈센트에서 제롬으로 변신하기

  - "결국, 운명을 결정짓는 유전자는 없다."


  빈센트는 불법적으로 신분증명을 거래하는 브로커를 찾는다.

  집중력 장애는 천체나 우주비행에 관한 책을 남보다 훨씬 열심히 공부하는 걸로 해결할 수 있고, 좋지 않은 심장 상태는 미친 듯이 신체를 단련하는 것으로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타고난 유전자만큼은 노력한다고 해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돈이 필요한 적격자' 와 '우수한 유전자가 필요한 부적격자' 사이를 중개해주는 불법 브로커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브로커가 빈센트와 이어준 적격자가 바로 '제롬(주드 로)' 이다.

  브로커의 입에서 나오는 제롬의 신체상태와 경력은 말 그대로 최고다.  IQ는 너무 높아서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고, 시력은 2.0을 넘으며, 심장은 매우 튼튼해서 벽이라도 뚫고 달릴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실제로 제롬은 올림픽에 나가 은메달을 땄을 정도로 대단한 수영선수였다.

  이렇게 완벽했던 제롬이 그만 자동차 사고로 척추를 다쳐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그런데 그 사고와 장애 상태가 기록에 남지 않아서,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신체강건한 상태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부적격자와 거래할 수 있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영화 가타카의 세계에서는 어떤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났는가에 따라 개인의 운명이 결정된다.  하지만 정작 운명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얼핏 보면 두 가지 사실이 완전히 모순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충분히 양립한다.  사람의 앞날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법이라, 우수한 유전자라고 해서 앞날의 모든 사고를 예방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얄궂은 상황에 대해서 빈센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전적으로 우수한 사람에게 성공이란 얻기 쉬울 것일 뿐,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운명을 결정짓는 유전자는 없다."   운명을 결정짓는 유전자는 없다는 것, 그 사실이 빈센트가 희박한 성공 확률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도박을 벌이는 이유다.


  그렇게 빈센트는 제롬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머리 모양을 제롬과 같은 스타일로 바꾸는 것은 너무나 간단하다.  부적격자의 여러 징표 중 가장 흔하고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근시와, 제롬과 다른 눈 색깔은, 콘택트 렌즈로 해결한다.  들쑥날쑥한 치열을 제롬의 치열처럼 고르게 바꾸는 것도 좀 번거롭기는 해도 어쨌든 단기간에 해결한다.

  하지만 키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자신보다 2인치 큰 제롬과 키를 맞추기 위해 멀쩡한 정강이 뼈를 잘라내고 한동안 꼼짝달싹 못 한 채로 지내야 했다.  제롬은 그 고통을 겨우 이겨냈다.  자신이 다시 일어서게 되면, 자신이 꿈꾸는 우주의 별들과 자기 사이의 거리가 2인치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 제롬과 유진

  - "그건 내 이름이야." / "나를 유진이라고 불러."


  제롬은 빈센트와 함께 살면서, 차츰 자신처럼 변해가는 빈센트의 모습에 심사가 복잡해진다.

  빈센트에게 돈을 받는 대신 자기 유전자와 신분을 빈센트에게 빌려주기로 한 것은, 분명히 제롬 스스로의 결정이다.  하지만 제롬은 아직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였던 과거에 사로잡혀 있어서, 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 현재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 한다.  적격자로 태어난 자신은 앞으로 남은 인생을 휠체어에 앉아 보내야 하는데, 부적격자로 태어난 빈센트는 온갖 풍상을 다 겪었다고는 해도 더 나은 미래로 한 발자국씩 나가고 있다.  제롬으로서는 결코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빈센트는 제롬으로 살기 위해 제롬의 필체를 흉내내어 서명하는 연습을 한다.

  남의 필체를 똑같이 흉내내는 것도 은근히 어려운 일인데, 빈센트가 원래 왼손잡이라 제롬처럼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려니 더욱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이 때 빈센트가 '제롬 모로우' 란 이름을 중얼거리는데, 그걸 들은 제롬이 날카로운 반응을 보인다. 


  빈센트 : (글씨 연습에 몰두하며 혼잣말처럼) "제롬 모로우...  좋은 이름이야."
  제롬 : (날카로운 시선으로 빈센트를 본 후에 목소리는 담담하게) "그건 내 이름이야."
  빈센트 : (제롬의 표정 변화를 보지 못 하고 여전히 글씨를 쓰면서) "네 이름 없이 네가 될 수 없지."
  제롬 : (날카롭게) "네가 완벽하게 내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휠체어를 밀어 빈센트에게 다가가 자신의 은메달을 내밀면서) "이걸 봐."

  빈센트 : "멋지네, 인상적이야."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냐는 식으로) "이 메달 진짜야?"

  제롬 : "너 색맹이냐, 빈센트?  이건 은색이잖아.  제롬 모로우는 시상대에서 절대로 은메달 아래를 딴 적이 없어.  비록 그런 일을 겪었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은메달 수상자라고."
  빈센트 : "..."
  제롬 : "그게 나라고!  그런데 네가 어떻게 나처럼 할 수 있어?"


  하지만 빈센트가 길고도 어려운 준비를 끝냈을 때, 제롬은 한결 누그러진 태도를 보인다.

  두 사람은 한밤중에 밖으로 나가 멀찍히 있는 가타카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제롬은 그 동안 빈센트와 함께 지내면서 냉소적 혹은 적대적인 태도만 보였다.  그런데 불리한 상황에서도 기를 쓰고 자신의 꿈에 다가가고자 하는 빈센트를 보면서, 처음으로 계약상의 의무 때문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빈센트를 돕겠다는 뜻을 넌지시 내비친다. 


  제롬 : (가타카를 바라보며) "정말로 저기에 가고 싶어?"
  빈센트 : "저기에 가고 싶은 게 아니야."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저 위로 가고 싶어."
  제롬 : (빈센트를 따라 밤하늘을 쳐다보자
무수한 별이 반짝이는 게 보이는) "저 위에 뭐가 있는데?"
  빈센트 : "뭐가 있는지 알고 싶어서 가려는 거야, 제롬."
  제롬 : (빈센트를 보며) "나를 유진이라고 불러.  내 미들 네임이야.  네가 제롬이 되려면 그 이름에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그 날 밤 이후 빈센트는 제롬이 되고 제롬은 유진이 된다. (여기서부터 주인공을 다시 제롬이라고 부르자.) 

  가타카 입사에 합격한 제롬이 집으로 돌아와 "나 합격했어." 라고 짤막하게 말하자, 유진은 제롬 쪽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당연히 합격했겠지." 라고 대꾸한다.  무심한 말투인데다가 자신의 옛모습에 자부심이 대단한 유진이라서, 얼핏 들으면 '나의 대단한 유전자를 빌려쓰고도 설마 불합격 할 줄 알았냐?' 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휠체어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제롬을 기다리던 유진의 뒷모습은 초조해 보였다.  그리고 제롬의 합격 소식에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담배를 든 손을 내리는 유진의 모습에서는 안도감이 엿보인다.  유진 또한 당사자인 제롬 만큼이나 가타카 입사 여부에 신경을 곤두세웠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제롬의 꿈은 제롬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그 후로도 두 사람은 이인삼각 경기의 파트너가 되어 가타카에서 우주로 향하는 길을 부지런히 걷는다.

  제롬은 영화 첫머리에 나온 장면에서처럼 매일 아침 기묘한 샤워를 한다.  피부 조직, 머리카락 등의 체모는 원래 일정 시간을 주기로 사람의 몸에서 자연스레 떨어져나간다.  하지만 유전자 정보를 속이고 가타카에 입사한 제롬으로서는, 자신의 유전자를 가타카 내부에 흘릴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줄여야 한다.  그래서 출근하기 전에 항상, 피부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피부 껍질을 벗겨낼 것처럼 몸을 문지르며, 그 날 몸에서 떨어져나갈 것들을 미리 떨어뜨려 없앤다.

  유진은 유진대로 수시로 자신의 혈액과 소변을 의료용 팩에 담는가 하면, 머리카락이나 면도기 속 수염 조각도 따로 모아둔다.  그러면 제롬은 그것들을 이용해서 가타카를 출입하거나 가타카에서 불시에 시행되는 각종 신체검사에 응한다.  유진은 장애인이 된 후 실의와 냉소에 빠져있었는데, 제롬을 돕는 일로 삶의 활력을 되찾은 듯하다.  


  제롬이 가타카에 들어간 후 타이탄행 우주선 비행사로 뽑힐 때까지의 상황은 영화에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틀림없이 가타카에 입사할 때만큼이나, 가타카에서의 생활도 긴장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출근 때마다 행해지는 혈액검사와 불시검문처럼 수시로 행해지는 소변검사, 사실은 다른 가타카 직원보다 신체적으로 뒤쳐지기에 이를 악물고 남들의 몇 배나 짜내야 하는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 누가 자신이 부적격자라는 것을 눈치챌 지 모른다는 긴장감과 공포감...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번거로움과 정신적인 압박감을 장기간 겪는다면 지친 나머지, 들키지 않더라도 자신이 먼저 포기하거나 노이로제에 걸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롬은 용케도 그 상황을 잘 견뎌내어, 마침내 타이탄으로 갈 우주선 비행사로 뽑히기까지 했다.


  이제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가면 저 멀리 우주로 가는 꿈을 이룰 수 있는데...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가타카에서 살인 사건이 터진다.  그리고 이 사건 때문에 제롬에게 큰 위기가 닥친다.




  ◎ 살인 사건 와중에 다가온 출발과 이별

  - "무언가는 있겠지."


  가타카 내부에서 누군가에게 잔인하게 살해된 사람은 어떤 감독관이다.

  평소 워낙 깐깐하게 굴어서 직원들이 무척 싫어했던 사람이며, 수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제롬의 정체를 캐내려 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니 어찌 생각하면 그 감독관이 죽은 게 제롬에게는 잘된 일이다.  일단, 제롬의 정체를 알아낼 뻔한 사람이 없어졌다.  또한 그 감독관 때문에 제롬의 꿈을 이루어 줄 타이탄행 우주선의 출발이 지연되었는데, 이제 출발 날짜가 며칠 후로 확정되기까지 했다.


  제롬과 유진은 제롬의 출발을 축하하러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술을 마신다. 

  둘 다 좀 복잡한 기분이다.  제롬은 자신의 꿈이 실현된다는 게 기쁘면서도, 자신의 뒤를 캐내던 감독관이 누군가에게 죽었다는 사실과 자신이 떠난 뒤 유진이 홀로 남게 된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유진은 유진대로, 제롬이 마침내 출발하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 한다.


  유진 : "지금 타이탄은 어떨까?"
  제롬 : (웃으면서) "타이탄이 어떠냐고?  타이탄은 바로 이런 상태지." (입에서 담배를 떼어내더니 유리잔에 담배 연기를 내뿜어 가득 채운다.  연기가 신비로운 모양으로 유리잔 안에서 넘실대는 것을 보며) "언제나 타이탄 주위를 두꺼운 구름이 감싸고 있어서, 그 밑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몰라."
  유진 : "어쩌면 거기에 아무 것도 없을 수도 있겠네."
  제롬 : "무언가는 있겠지."


  두 사람이 술을 마시며 주고받는 말 속에는 두 사람이 과거에 했던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다. 

  제롬이 가타카에 들어가기 전의 어느 날 밤, 두 사람은 가타카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 때 제롬은 자신의 목표가 가타카 그 자체가 아니라, 가타카를 통해 위(우주)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위에 뭐가 있기에 가려는 거냐고 묻는 유진에게 "뭐가 있는지 알고 싶어서 가려는 거야,"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두꺼운 구름에 휩싸여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어쩌면 유진의 말대로 아무 것도 없을 지도 모르는 타이탄에 대해서 "무언가는 있겠지." 라고 말한다.  제롬은 타이탄에 무언가 있기 때문에 가려는 게 아니라, 타이탄에 무엇이 있는지 자신의 눈으로 보려고 가는 거다. 


  제롬이 어린 시절부터 그토록 우주를 꿈꿨던 이유는, 그냥 호기심이 넘쳐서가 아니라 우주와 자신을 동일시 했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은 과학이 정해준 자신의 능력범위에 맞추어 살지 않았다.  자신의 잠재력에는 과학이 미처 예측 못 한 미지의 영역이 틀림없이 있을 거라 믿고, 세상의 통념을 뛰어넘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처럼 미지로 가득찬 우주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제롬에게, 우주란 곧 자신이다.


  (뒷부분은 다음 포스트에서...)



가타카(Gattaca) - 2(http://blog.daum.net/jha7791/15791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