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여행기/경기도

하남 광주향교

Lesley 2016. 10. 10. 00:01


  오늘 소개할 곳은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에 있는 '광주향교'

  향교라는 것은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인데, 요즘으로 치면 국공립 중.고등학교에 해당한다.  향교(鄕校)라는 이름에 걸맞게 큰 고을마다 하나씩 설치해서, 국가에서 교사와 책을 지원해줬다고 한다.  


  그런데 광주향교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전에, 이 광주향교라는 이름에 얽힌 두 가지 문제부터 짚어봐야겠다.


  첫째, 광주(廣州)향교와 광주향교(光州)향교를 헷갈리면 안 된다.

  오늘 소개할 광주향교는 광주광역시가 아니라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유적지다.  공교롭게도 광주광역시에도 광주향교라는 곳이 있어서, 인터넷에서 광주향교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광주광역시의 광주향교가 먼저 뜬다.  이쪽은 '하남 광주향교' 라고 검색해야 뜬다.


  둘째, 광주향교의 위치가 참 뜬금없다.

  바로 위에 쓴 것처럼 광주향교가 광주광역시에 있는 게 아니라면, 경기도 광주시에 있어야 맞을 것 같다.  이름이 광주향교가 아닌가?  그런데 광주향교는 엉뚱하게도 광주시 바로 옆 동네인 하남시에 있다. 

  여기에는 광주의 슬픈(?) 역사가 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경기도 광주는 행정적인 면에서나 군사적인 면에서나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고, 면적이 지금보다 훨씬 넓었다.  오죽하면 지역 이름에 '넓을 광(廣)' 을 썼겠나...  그런데 1963년에 광주의 일부분이 서울로 편입되더니(지금의 서울 성동구, 송파구, 강남구 일대), 1973년에는 또 다른 일부분이 별도의 시로 독립했고(성남시), 1989년에 그나마 남아있던 부분 중 일부분이 또 독립했다.(하남시)  그래서 이제는 '넓은 고을' 이라는 뜻의 광주시가 '특별히 넓지도 좁지도 않은 고을' 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광주향교는 하남이 아직 광주 소속이었던 시절에 건립한 향교라, 이름이 광주향교인 것이다.  



광주향교 옆쪽에 있는 하마비.



  하마비의 하마(下馬)는 말 그대로 '말에서 내려야 한다.' 는 뜻이다.

  왕릉처럼 지엄한 곳에 '여기에서는 누구나 말에서 내려 경의를 표하시오.' 하는 알림판의 뜻으로 세운 비석이다.  그런데 왕릉 뿐 아니라 향교에도 세웠다는 것을, 이 날 광주향교에 가서야 알았다.  향교가 단순한 학교가 아니라 공자나 맹자 등 유교의 성현들을 모신 사원의 역할도 했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는 잠자리. ^^



  향교 겉모습을 찍을 때는 몰랐는데, 집에 와서 살펴보니 잠자리 한 마리가 찍혀있다.

  가을은 가을인지, 이 날 향교 안팎으로 짝짓기하며 날아다니는 잠자리들이 눈에 띄었다.  엄숙하고 딱딱한 이미지가 강한 유학을 가르치는 곳에서 짝짓기하는 잠자리라니, 참 맹랑한 녀석들이다. ^^



저 커다란 나무는 무엇인고?



  당연히 오전부터 관람이 가능할 줄 알고 갔는데, 오후 1시부터 문을 연다고 한다.

  1시가 될 때까지 그냥 앉아있기도 좀 그래서, 향교 담벼락을 따라 한 바퀴 돌면서 탐색전(?)을 벌였다.  그런데 하마비가 있는 쪽 반대편 담벼락 쪽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는 게 보였다.  저 나무는 어떤 나무일까 하며 가까이 가봤더니...



앗, 이것은 밤송이 무덤...!

(아기 고슴도치가 옹기종기 모인 것처럼 보임. ^^)



  그 나무는 바로 밤나무였다.

  나무 바로 옆에 밤송이들이 잔뜩 쌓여있고, 나무가 서있는 잔디밭 여기저기에도 밤송이들이 널려있었다.  혹시나 밤 알갱이가 든 밤송이가 있을까 찾아봤는데, 그럴 리가 있나...  벌써 누가 다 빼내가서 전부 빈 방송이다. ^^;;



광주향교의 외삼문(정문).



  1시가 되었는데도 문이 안 열려서, 외삼문 맞은편에 있는 관리사무소로 찾아갔다.

  1시가 될 때까지 근처에서 기다렸다고 했더니, 관리직원이 진작 찾아오지 그랬냐고 한다.  자신이 좀 일찍 출근했기 때문에 관람객이 있는 줄 알았으면 문을 일찍 열어줬을 것이라면서... (그러니 1시 전에 광주향교를 찾은 관람객은 일단 관리사무소에 가보시기 바람. ^^;;)

  어쨌거나 관리직원이 향교의 문을 열어줘서 안으로 들어갔다.  단, 외삼문이 아니라, 외삼문에서 좀 떨어진 수복사(향교를 관리하는 하인들이 살던 곳)의 문을 열어줘서 그 쪽으로 들어갔다.



외삼문 맞은편으로 보이는 명륜당.



  외삼문 안쪽 마당 정면에 명륜당이 있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공부하던 장소다.  그런데 명륜당이란 이름이 귀에 익은 것 같아서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역시나 서울에 있는 성균관에도 명륜당이 있다.  전국에 퍼져있는 다른 향교에도 전부 명륜당이 있다고 한다.  즉, 향교의 건물 배치는 기본적으로 똑같다.



동재와 서재.



  명륜당 양옆으로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길쭉한 모양으로 서있다.

  동재는 양반 학생들의 기숙사고 서재는 평민 학생들의 기숙사라고 한다.  동재나 서재나 얼핏 보면 크기도 모양도 거의 같다.  그래서 양반 기숙사와 평민 기숙사를 구별해놓기는 했어도 사실은 별 다를 게 없구만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것이 바로 양반과 평민의 차이...!



  마루로 올라가는 댓돌의 높이가 다르다.

  양반 기숙사인 동재는 댓돌 높이가 7~8센티미터는 되는데, 평민 기숙사인 서재의 댓돌 높이는 3~4센티미터다.  양쪽 학생들의 신분이 차이가 지는 것처럼 양쪽 댓돌 높이도 차이 지는 것이다. (댓돌 높이로라도 양반 지위를 내세우려고 한 알량함이라니...!  에잇, 치사뿡이다~~!) 



내삼문 사이로 보이는 대성전. 



  여기에서 예상치 못 한 문제 발생...!

  명륜당에서 대성전 쪽으로 가려면 내삼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내삼문이 쇠사슬로 묶여있어서 다시 관리사무소로 가서 관리직원에게 문의했다.  관리직원 왈, 바로 전 주에 이 향교에서 석전(공자 등 유학의 성인들에 대한 제사 의식.)이 있었는데, 아마도 석전이 끝난 후 행사 참여자들이 잠가놓은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관리직원에게 쇠사슬을 풀 열쇠가 없다고 한다. ㅠ.ㅠ

  내 몸이 날씬하다면 빠꼼히 열린 내삼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내 몸매로는 도무지... -.-;;  내삼문에 이어진 담이 내 가슴 정도 밖에 안 되는 높이라, 마음만 먹으면 담을 넘어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고, 또 내가 무슨 자객도 아닌데 담 넘어가는 것도 웃겨서 포기했다. ^^;;


  타이밍이 참 안 좋다.

  그 전 주에 왔더라면, 대성전도 들어갈 수 있었을테고 석전까지 구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뭐 어찌 하리요...  다음 기회를 노려보는 수 밖에...



아쉬움을 담아 담벼락 너머로 찍은 대성전 모습.



  대성전은 공자, 맹자 등 유학의 성현들을 모신 장소다.

  그리고 대성전 양옆으로 어.설.프.게 보이는 건물은 동무와 서무다.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유명한 유학자들을 모시는 곳이라고 한다. 



명륜당과 대성전 사이를 가르는,

내삼문이 있는 담.



  이 사진은 향교 문이 열리기 기다리며 밖을 서성일 때 찍은 것이다.

  그 때는 향교 바깥쪽 담과 내삼문이 있는 내부의 담이 수직으로 연결된 게 어쩐지 재미있어 보여서 찍었을 뿐이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보니, 저 내삼문 달린 담이 나와 대성전 사이를 가로막는 38선처럼 느껴진다. -.-;; 



광주향교 관리사무소 옆에 있는 500살짜리 은행나무.



  은행나무 앞 설명판에 따르면, 이 은행나무는 조선시대 태조 5년 광주향교를 지을 때 심은 나무라고 하는데...

  문제는 광주향교가 언제 건립되었는지 공식적으로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저 원래는 광주의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숙종 때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은행나무 설명판에 따르면 광주향교를 건립한 시점이 태조 5년이라고 하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  아무래도 태조 5년 이야기는 그냥 전해지는 말인 듯하다.


  그리고 이것도 설명판에 나온 이야기인데, 이 은행나무는 수나무이고 향교 주변에 있는 암나무 네 그루를 거느리고 있다고 한다.

  유학을 가르치기 위한 향교 앞에 심은 나무이건만, 어쩐지 좀 이슬람교 비슷한 느낌이다.  이슬람교에서 한 남자가 아내를 네 명까지 맞을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

  여담으로, 은행나무의 수나무는 특이하게도 30~40살이 되면 암나무로 저절로 성전환(!)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골머리를 앓는다고 한다.  자동차 매연에 강한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심으면서 나중에 은행열매 때문에 냄새가 날 것을 우려해 일부러 수나무를 심지만, 세월이 흐르면 그 수나무 일부가 암나무로 변해 은행열매가 열리기 때문이다. (거 참, 특이한 나무일세... ^^) 




  사실, 광주향교는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다.

  향교의 문을 열어준 관리직원이 나에게 한 말을 들어도 그렇고, 관람시간이 1시부터라는 것을 봐도 그렇고, 주로 학교 같은 곳에서 단체관람객이나 가끔 오는 곳인 듯하다.   그래서 하남에 사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타지 사람에게 그저 광주향교 하나 구경하러 하남에 가보라고 권하기는 힘들다. ^^;;  하지만 하남의 다른 장소(스타필드 하남, 미사리 카페촌 등)나 바로 옆 동네인 남양주(정약용 생가 등)에도 구경거리가 제법 있으니, 다른 곳에 가는 길에 잠시 들리기에는 좋다.  비록 큰 볼거리는 없어도 옛 건물의 분위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잠깐 마루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멍때리는(!) 여유를 즐기기에 딱이다. 




강서구 구경하기(1) - 양천향교 / 궁산땅굴(http://blog.daum.net/jha7791/157915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