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여행기/경기도

성남 봉국사 - 도시 높다란(!) 곳에 있는 한적한 절

Lesley 2016. 9. 13. 00:01


  며칠 전에 성남에 있는 봉국사라는 절에 다녀왔다.

  볼일이 있어서 성남 시내로 나가게 되었는데, 이왕 가는 김에  성남 지리도 익힐 겸 그 근처를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이사온 곳에 아직 편의시설이 부족해서 앞으로도 바로 옆 동네 성남을 자주 다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처에 갈만한 곳이 있는지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는데, 봉국사라는 절이 눈에 띄었다.  사진을 보니 도시 한복판에 있는 절이기는 해도, 서울에 있는 봉은사처럼 현대적인 느낌이 나는 곳은 아니다.  혼자 산책하며 구경하기에 딱 맞는 곳으로 보였다.  그래서 봉국사로 낙점~~!!!



다리품을 팔아서 도착한 봉국사.



  봉국사는 영장산이라는 산 아래 자리잡고 있는데, 이런 위치 때문에 생기는 두 가지 결과가 있다.


  하나는, 도시에 있는 절이지만 옛스럽고 조용하다는 점이다. 

  봉국사가 도시 한복판에 있는 절인데다가 이 날이 토요일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불교신자들과 나 같은 구경꾼이 우글거릴 것을 각오하고 갔다.  그런데 마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절처럼 조용해서 좋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봉국사를 대중교통과 도보로 찾아갈 이에게는 이쪽이 정말로 중요한데, 절이 고지대에 있어서 본의 아니게 다리운동(!)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스마트폰 지도로만 볼 때에는 절 바로 뒤에 산이 표시되어 있기는 해도, 막연하게 절이 평지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산은 그냥 절 뒤편에 있.기.만. 한 것이겠지 했다.

  그런데 이 날 봉국사를 찾아가면서 성남이라는 도시가 '오르막길 천국'(!)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봉국사까지 900미터 조금 넘는다고 지도에 나와서 '겨우 900미터 정도야, 뭐!' 하고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평지일 때 이야기다.  처음 100미터 정도를 빼면 죄다 오르막길이다.  아마 이 날 오르막길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내 살이 500그램은 빠졌을 것이다. ^^;; 



일주문을 통과하면 사천왕상이 있는 천왕문이 나옴.



  일주문을 통과하면 바로 천왕문이 보이는데...

  한적한 절 분위기에 안 어울리게 뜬금없이 시위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그 플래카드에만 눈길이 쏠려,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천왕문 위에 범종루가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어떻게 그걸 못 볼 수가 있는지 황당하다. ^^;;

  봉국사와 담벼락 하나 사이에 둔 바로 옆 부지에서 아파트 공사를 하는 중인데, 그것 때문에 시비가 생긴 것이다.  나중에 절에서 나가면서 절 담벼락 바깥쪽에 붙어있는 항의문을 보니, 그 공사 때문에 절 건물 여기저기에 금이 가고 소음이나 먼지 문제도 생긴 모양이다.  그런 현실적인 피해 말고도, 나중에 아파트가 완공되면 모양새가 좀 이상할 것 같기는 하다.  서울의 봉은사야 워낙 현대적인 분위기라 고층빌딩 사이에 있어도 위화감이 안 들지만, 이런 고풍스러운 절 바로 옆에 아파트가 있으면 어색하지 않을까?



봉국사 경내의 전경.



  천왕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절의 경내가 보이는데, 처음 오는 곳인데도 눈에 익다.

  바로 오른편에 보이는 하얀색 뚱뚱한(!) 아저씨가 어쩐지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계단 제일 윗칸에 서서 '어, 어, 저 아저씨 분명히 어디서 봤는데?' 하며 사진 한 장 찍고 가까이 가봤더니만, 역시나...



싱글벙글 포대화상...!



  배가 잔뜩 나온 모습으로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이 아저씨는, 부산에 처음 갔을 때 해동용궁사에서 봤던 포대화상이다...!

  포대화상은 중국 당나라 후기에 살았던 유명한 승려인데, 엄청나게 뚱뚱해서 뱃살이 앞으로 잔뜩 늘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위의 사진만 봐도 뱃속에 세 쌍둥이는 들어가 있을 것 같음. ^^)  항상 과자와 과일 등 먹거리를 커다란 포대에 넣어 갖고 다니다가 아이들을 만나면 나눠주었기 때문에, 원래 법명이 따로 있지만 포대화상이란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아이들을 아끼고 아이들에게 덕을 베풀었기 때문에 미륵불의 화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고...

  그런데 포대화상이 아이들 뿐 아니라 고양이에게도 먹을 것을 나누어줬나 보다.  봉국사의 포대화상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팬(?) 중에는 아이들 뿐 아니라 고양이도 두 마리 끼어 있다. (포대화상은 어쩌면 당나라판 캣맘이었는지도... ^^)



아이들과 함께 범종각 쪽을 바라보고 있는 포대화상.



포대화상과 좀 떨어진 곳에 있는 탑과 석등.



주위에 하얀 천막이 없었다면 좋았을텐데...



봉국사의 정전인 대광명전.



  대학에서 교양수업을 들을 때, 절의 정전 이름은 그 전각 안에 모시는 본존불에 따라 다르다고  배웠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 극락전 또는 무량수전에는 아미타불,  대광명전에는 비로자나불을 주로 모신다는데...  솔직히 석가모니불 하나 빼고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  설명을 읽거나 들으면 그 순간에는 '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막상 돌아서면 다시 깜깜절벽이다. -.-;;

  어쨌거나 이 전각에는 대광명전이라는 현판이 붙어있으니, 안에 모신 불상은 비로자나불일 것 같다.  그런데 의외로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해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함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예외가 자꾸 생기면, 그렇잖아도 헷갈리는데 더 헷갈리는... ㅠ.ㅠ)


  대광명전 옆에 붙어있는 설명판을 읽어보니, 봉국사의 유래가 좀 의외다.

  봉국사는 조선 제18대 국왕인 현종 때, 일찍 죽은 두 공주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왕명으로 지었다고 한다.  다만, 지금의 전각들은 6.25 전쟁 때 폐허가 된 것을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짧은 역사치고는 전각이 옛스러워 보이는 게 또 의외임. 관리를 잘 안 했나? ^^;;)

  불교를 억압한 조선왕조에서, 그것도 아직 왕실에서는 불교를 숭상하는 분위기가 강했던 조선 초기도 아니고 성리학이 완전히 뿌리내린 조선 후기에, 왕명으로 지은 절이라니...!  왕릉의 경우에는 국왕이나 왕비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원찰이라는 절을 하나씩 지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왕조시대에 국왕과 왕비는 워낙 특별한 사람들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등급(?)이 떨어지는 공주들의 명복을 빌기 위한 절을 따로 지었다는 건 뜻밖이다. 



대광명전 앞의 양옆을 지키고 있는 돌짐승.



  설명판에는 이 돌짐승이 사자를 닮았다고 적혀있는데...

  사자가 이렇게 생겼던가요? ^^;;  둘리처럼 요리 보고 조리 봐도, 보고 또 봐도, 도대체가 사자와는 거리가 멀게 생겼다.  게다가 목에 방울까지 달고 있어서 무서운 사자 이미지와는 영 안 어울린다.  저 녀석 얼굴만 봐서는 사자라기 보다는 원숭이 같다.  머리카락(?)이 긴 개코원숭이 종류 말이다. (여봐라, 돌짐승!  너의 정체를 밝히거라~~!)



삼성각.



  불교는 여러 나라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그 나라 고유의 토착신앙과 결합한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하긴 불교가 전래된 지 1,700년 가까이 지났는데 토착화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불교가 무속신앙의 요소를 흡수해서 산신, 호랑이, 칠성신(북두칠성을 주관하는 7명의 신) 등이 그려진 삼성각이 절에 있는 경우가 있다.



목탁 주인은 어디 가고 목탁 혼자 밖에 있을까?

주련 중 두 개만 찰칵~~!



  한 전각 안에서 승려들과 신자들이 무슨 수업을 하는 것 같았다.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그 전각 주위를 조용히 한 바퀴 도는데, 멋진 글이 담긴 주련 두 개가 눈에 띄어서 찍어봤다.  솔직히 말하면, 주련 중에 해석되는 게 이 두 개 뿐이었다. ^^;;  나머지 주련에 더 좋은 글이 적혀있을 수도 있지만, 무슨 뜻인지 모르니 패스~~!!

  두 주련 중 하나는 '사람은 푸른 연과 같아서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고, 또 다른 하나는 '마음은 푸른 바다와 같아서 능히 만물을 포용한다.' 다.  처음에는 감탄하며 쳐다봤다.  인생살이에 지표로 삼을만한 교훈을 시처럼 너무 멋지게 표현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곧 그렇게 사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하는 회의감이 들면서 한숨이 나왔다. (저는 속세의 인간일 뿐이니까요... ^^;;)



범종루.

(봉국사에 들어올 때는 플래카드에 치여

존재감이 희미했던 바로 그 범종루. ^^;;)



범종루 안의 범종.



  범종 표면에 저렇게 절 이름을 커다랗게 부조해놓은 것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처음에는 절 이름이 없는 게 더 깔끔하고 멋있어 보였을텐데 하고 생각했지만...  좀 다른 각도로 생각하면 아주 실용적(?)인 것 같다.  몇 년 전에 고철값이 한창 올랐을 때, 고철 도둑이 남의 집 대문이나 거리의 맨홀 뚜껑까지 훔쳐간 황당한 사건이 TV 뉴스에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저렇게 범종에다가 주인(?)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부조해놓으면, 어지간히 간 큰 도둑놈 아니고서는 감히 훔쳐갈 엄두를 못 내겠지... ^^


  오른쪽 사진을 보면 구름을 타고 공중에 떠있는 두 사람이 보인다.

  비천인 것 같은데, 왼쪽 비천은 하프나 리라 비슷한 악기를 연주하고 있고 오른쪽 비천은 생황 같은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다른 범봉을 보면 표면에 온갖 그림과 문양으로 된 복잡한 부조가 있어서, 문외한의 눈으로는 그게 사람인지 동물인지 뭘 하고 있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범종의 부조는 아주 간단하고 명료해서 금세 알아볼 수 있다.




  범종루에서 내려와 범종루 아래층의 천왕문을 다시 통과하는 것으로, 봉국사 구경은 끝났다.

  절에 갈 때 올라왔던 긴 오르막길을 다시 내려가는데...  오르막길 올라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내리막길 내려가는 것도 좀 힘들었다.  올해 들어 유독 체력이 떨어졌는데 내 육중한(!) 무게가 무릎에 실리자 몸에 살짝 무리가 간다는 느낌이었다.  대중교통과 도보 이용해서 봉국사 찾아갈 사람이라면 며칠 전부터 다리운동을 하며 예행연습을 해야 할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