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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야방(琅琊榜) 51회~54회(완결) - 밝혀진 진실 / 임수로 죽다.

Lesley 2016. 5. 27. 00:01

 

  이번 포스트로 랑야방 시리즈가 끝이다...!

  시작할 때는 4~5편으로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뒤로 갈수록 한 포스트 안에 많은 회차를 집어넣는 게 힘들어졌다.  그래서 점점 포스트 수가 늘어나면서,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 건 본 거고 포스트를 쓰는 게 버겁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사람이 일을 시작했으면 끝을 보아야 하는 법...!  마침내 이렇게 끝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원래는 3월 안에 끝낼 생각이었는데, 포스트 숫자가 늘면서 자칫하면 6월까지 끌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데 이렇게 5월 안에 끝내게 되어 다행이다. 

 

 

 

 

 

 

 

적염군 사건의 진상 폭로 계획

 

 

  마지막 폭탄 - 녕국후 사옥이 남긴 글

 

  드라마 중반부에 생부를 만나러 남초로 떠났던 소경예가 금릉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기막히게 때를 잘 맞춰서, 어머니 리양장공주가 자객에게 화를 당할 뻔했을 때 돌아와 어머니를 보호한다.  습격을 받은 리양장공주는 놀라면서도 의아해한다.  남편을 잃고 세상사에 관심을 끊은 채 조용히 사는 자신을, 도대체 누가 어떤 이유에서 해치려한단 말인가?  하지만 소경예는 어머니가 몸에 지니고 다니는 주머니(사옥이 귀양가는 길에 써서 리양장공주에게 맡긴 글을 담은 주머니)가 원인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소경예의 짐작이 맞다.

  그 자객은 하강이 보낸 사람이다. (여자인 것으로 보아 홍수초 조직원인 것 같음.)  드라마상에서 명확히 나타나지는 않는데, 사옥이 귀양지에서 어이없게 채석장의 돌에 깔려 죽은 것도(-.-;;) 아마 하강 쪽의 음모인 듯싶다.  어찌되었거나 사옥이 죽은 이상 적염군 사건 진상에 관한 증거는 사옥이 남긴 글 밖에 없다.  그래서 하강은 자신의 죄악을 영원히 묻어버리기 위해 그 글을 빼앗아 없애려고 리양장공주를 노린 것이다.

 

 

 

사옥이 남긴 적염군 사건에 관한 글을 읽는

진양장공주와 소경예.

 

 

  이 습격사건을 계기로 하여 진양장공주-소경예 모자는 사옥이 남긴 글을 읽게 된다.

  그 동안 진양장공주는 사옥의 글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도 읽지는 않았다.  남편 사옥이 과거에 무슨 추악한 죄를 저질렀을지 생각조차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경예가 앞으로 또 있을지도 모르는 자객의 습격에 대비하려면 일의 전말을 확실히 알아야한다고 하자, 판도라의 상자가 될 주머니를 열어 글을 읽는다.

  그리고 모자는 그 글에 담겨진 엄청난 진실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매장소정왕이 진작 알게 되었던 적염군 사건의 끔찍한 진상을, 이 모자는 이제야 알게된 것이다. 

 

 

 

 

사옥의 글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소경예.

큰 화를 입게 될 것이라며 말리는 리양장공주.

 

 

  소경예는 그 글을 황제에게 보이고 세상에 알리겠다고 하지만, 리양장공주가 필사적으로 말린다. 

  리양장공주는 자기 오빠인 황제가 얼마나 잔인한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황제는 제대로 된 조사나 재판도 없이 7만명이나 되는 적염군을 몰살하고, 친아들 기왕과 매제 임섭 및 조카 임수를 죽였다.  가장 총애하던 후궁 신비와 친누이동생 진양장공주의 자살도 따지고 보면 황제가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그런데 그 엄청난 일이 알고보니 전혀 정당성 없는 행위였다는 것을, 권력의 화신 황제가 순순히 인정할 리 있겠는가...!  그러니 소경예가 진실을 밝히겠다는 좋은 뜻에서 사옥의 글을 공개한다 하더라도, 황제는 소경예가 황제의 치부를 드러내고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게 뻔하다.  그렇다면 황제는 소경예를 결코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아들 기왕조차 죽인 마당에 조카 소경예를 죽이는 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그러니 리양장공주는 눈물로 아들을 말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억울하게 죽은 이들은 어쩌느냐는 소경예의 말에 리양장공주도 흔들린다.

  가까운 친인척들의 억울한 죽음을 알고도 그냥 덮어버린다면 앞으로 어떻게 마음 편히 살 수 있을까...  잠을 자도 자는 게 아니고 밥을 먹어도 먹는 게 아닌 삶이 될 게 뻔하다.

 

  결국 리양장공주는 그 글을 태자가 된 정왕에게 가져다주기로 한다.  

  좋게 말하자면, 기왕 및 임수와 절친한 사이였던 정왕이라면 그들의 억울함을 밝히는 일을 잘 처리할 거라는 믿음에서 내린 결정이다.  하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자신과 아들이 위험해지는 게 싫어서 정왕에게 모든 위험을 떠넘기겠다는 이기적인 결정이라 할 수 있다. 

 

 

  ◎ 리양장공주를 포섭하다.

 

  정왕을 찾아간 리양장공주는 그 자리에 매장소도 있는 것을 보고 불쾌해한다.  

  리양장공주는 매장소가 자기 언니 진양장공주의 아들 임수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한다.  리양장공주 입장에서 보자면, 매장소는 머리는 좋을지 몰라도 음흉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그저 착하기만 한 자기 아들 소경예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후 예왕의 편에 서서 남편 사옥을 파멸시키더니, 막상 예왕이 몰락하자 어느새 정왕 곁에 찰싹 달라붙었다.  즉, 권력의 향방에 따라 수시로 말을 갈아타는 박쥐 같은 자일 뿐이다.

 

  매장소에게 가시 돋힌 소리 몇 마디 한 리양장공주가, 조카 정왕에게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사옥의 글을 넘겨준다.

  리양장공주는 그 글만 넘겨주면 자기 할 일은 전부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어디 자기 마음대로 흘러가던가...

 

 

 

조카 정왕의 요청에 경악하는 리양장공주.

 

 

  뜻밖에도 정왕이 엄청난 요청(사실, 요청이라기보다는 압박에 가까운 요구.)을 한다.

  "부황의 탄신 축하연 때, 그 글을 가지고 오셔서 만조백관 앞에서 사옥을 대신하여 죄상을 자백해주십시오."  애초에 리양장공주가 정왕을 찾아온 이유가, 사옥이 남긴 글을 소경예가 공개하면 황제에게 무서운 보복을 당할 것 같아서 그 글을 정왕에게 떠넘기기 위함이다.  그런데 정왕은 리양장공주 스스로의 입으로 그 일을 밝히라고 요구한다.

  그것도 뒤에서 은밀히 글의 내용을 흘리라는 것도 아니고, 아예 황제가 바라보는 앞에서 모든 이에게 글의 내용을 폭로하라니...! (혹 떼려다가 혹 붙인 상황...)  리양장공주는 처음에는 너무 놀라서 말도 못 하더니, 그 다음에는 겁에 질려버린다.   

 

  아연해하던 리양장공주가 자신을 압박하는 정왕에게 반격이라도 하듯이 도전적으로 묻는다.

  자신이 정왕의 요구대로 한다면 자신에게는 어떤 이익이 있는 거냐고.  리양장공주로서는 그렇게 뻔뻔스럽게 나갈 수 밖에 없다.  남편이 적염군 사건을 조작한 것은 역모에 버금가는 죄다.  그 죄상이 밝혀지면 자신과 두 아들도 죄인의 가족으로 무사하지 못 할 것이다.  그러니 이 엄청난 모험에 협력하는 대가로 자식들의 안위만은 보장받고 싶어서 '거래' 를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옆에서 그 말을 듣는 매장소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자신의 어머니 진양장공주와 우애가 두터웠던 이모 리양장공주가, 진양장공주 일가를 파멸시킨 음모를 밝히는 일을 두고 이익 운운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왕에게 협력의 대가를 요구하는 리양장공주.

실망한 표정으로 입을 다무는 정왕.

드물게 감정적으로 따지는 매장소.

 

 

  리양장공주 : "만일 제가 태자의 말대로 한다면, 저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 겁니까?"

  정왕 : (굳은 표정으로 눈길을 돌리며 아무 말도 안 함.)

  매장소 : (유들유들해 보일 정도로 침착하던 태도를 내던지고 따지는) "장공주께서는 자백을 하면 어떤 이익이 있느냐고 물으셨습니까?  이미 당시의 비극적인 진상을 알고 계시면서도, 그들의 억울함을 밝히면 장공주께 어떤 이익이 있느냐고 물으시는 겁니까?  설마 죽어간 원혼들에게 일말의 동정심조차 품고 있지 않으신 겁니까?  설마 그들이 장공주께는 그저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인 겁니까?"

  리양장공주 : (죄책감에 아무 말 못 하고 고개를 숙임.)

 

  정왕에게 사실상 축객령을 받고 나갔던 리양장공주가 다시 정왕의 처소로 돌아온다.

  나가는 길에 아들 소경예와 대화를 나누고서 마음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소경예는 정왕의 말대로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머니의 태도를 비판하거나 정왕의 말대로 하라고 권하지 않았다.  자식들을 보호하려는 어머니의 입장 또한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런 아들의 배려심 깊은 태도가 리양장공주에게 위안이 되면서 동시에 용기를 준다.  그래서 정왕의 말을 따르기로 결심한 것이다.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이상적인 아들, 소경예...!

아들에게서 용기를 얻는 리양장공주.

 

 

  황제의 생일에 사옥의 글을 폭로하겠다고 약속하는 리양장공주에게, 정왕이 큰 선물을 준다.

  리양장공주가 아직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사옥이 저지른 죄에 관하여 사씨 가문의 다른 누구도 연루시키지 않겠다고 보장한 것이다.  이미 자신의 의도를 알고 있었던 것이냐며 놀라는 리양장공주...  정왕은 이번 일이 보통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리양장공주가 아무런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나서주기를 원했던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리양장공주와 그 자식들의 안전은 보장해 줄 생각이었다고 덧붙인다.

 

  정왕의 말을 듣고 리양장공주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정왕과 매장소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또 다른 정치적 야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폐태자나 예왕과는 달리, 정왕은 예전에 죽은 기왕처럼  정과 의를 중요시하며 한 번 마음을 준 이는 항상 굳게 믿는다.  즉, 그런 정왕이 가까이 하는 인물이라면 정과 의리로 묶인, 서로를 굳게 믿는 사이인 것이다.  정왕과 매장소 사이에 흐르는 것은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 욕망이 아니라,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한을 반드시 풀어주고 진실을 밝히겠다는 정의감과 끈끈한 동지애인 것이다.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정왕에게 놀라는 리양장공주.

정왕이 진심으로 매장소를 믿고 있음을 깨닫는 리양장공주.

 

 

 

오랜 악연의 끝 - 하강과 한씨 부인 모자의 마지막 만남

 

 

 

  언궐의 도움으로 한씨 부인 모자가 사형을 기다리는 하강을 찾아간다.

  하강은 전 부인과 아들을 보고 무척 놀란다.  그럴만도 한 것이, 하강은 전 부인과 아들이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  전에 매장소가 위쟁을 구출하려고 계획을 세우면서, 언궐에게 하강을 만나 거짓말을 하게 했기 때문이다.  ☞ 랑야방(琅琊榜) 34회~42회 - 매장소의 반격 / 예왕과 하강의 몰락(http://blog.daum.net/jha7791/15791283)

 

 

 

 

죽은 줄로만 알았던 모자를 보고 놀라는 하강.

너무나 태연하게 말하는 한씨 부인.

 

 

  가장 무서운 것은 분노나 원한이 아니라 냉담함이라고 했던가...

  한씨 부인은 과거에 선기공주와 외도를 하며 가정을 버린 남편에게 "이 꼴이 되려고 그런 짓을 했느냐?" 고 질책하거나 비웃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 태연한 눈빛과 목소리로 아들에게 말한다.  사람은 마음을 올바르게 가지고 부귀공명을 탐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라며, 하강을 타산지석 삼아 항상 올바르게 살라고.

  하강은 장성한 아들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게 된 건데, 그런 자리에서 한씨 부인은 아들에게 하강을 '아버지' 가 아닌 '악행을 저지르면 결국에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는 본보기' 로 소개한 것이다.  아들 또한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네." 라고 대답하고, 타인을 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하강을 바라볼 뿐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언궐도 은근히 놀라는 빛을 보이는데, 한씨 부인의 말은 그걸로 끝이 아니다.

  이제는 남이 된 하강을 응시하며 차분하면서도 냉담하게 말한다.  하강의 처형이 집행된 뒤 아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매년 제사도 지내줄 거라고.  한 때 부부로 살던 정을 생각해서 그렇게 한다는 게 아니다.  그저 아들은 절대로 하강 같은 몰염치한 인간으로 살면 안 되기 때문에, 아들에게 인간의 도리를 지키게 하기 위함이라는 식이다.     

 

 

 

전 부인의 말을 듣고서

회한으로 눈을 감아버리는 하강.

 

 

 

진실이 밝혀져도 양지로 나올 수 없는 사람들

 

 

  ◎ 살아돌아왔으나 결코 살아돌아올 수 없는 임수

 

  리양장공주-소경예 모자가 정왕을 만나러 오기 전, 매장소가 먼저 정왕을 찾아와 오랫동안 품어온 생각을 밝힌다.  

  매장소는 적염군 사건의 진상이 밝혀져 당시 죽었던 이들의 명예가 회복되더라도, 자신이 임수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겠다고 한다.  즉, 임수는 13년 전 매령에서 죽은 것으로 두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처구니 없어하는 정왕에게 그 이유를 설명한다.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겠다는 매장소.

그런 매장소의 말에 놀라는 정왕.

 

 

  우선, 적염군 사건 희생자들의 진정한 명예회복을 위해서다.

  지난 2년 간 매장소가 정계에서 벌인 일련의 일 때문에 이제 금릉에서 매장소의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이가 없다.  사람들 뇌리 속에 매장소란 인물은 '기막히게 좋은 머리로 온갖 계책을 꾸며 많은 정적을 거꾸러뜨린 음흉한 책사' 로 박혀있다.

  이런 상황에서 매장소가 임수라는 게 드러나면, 적염군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  적염군 사건 희생자들이 정말 억울하게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사건 당사자인 매장소(임수)가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위해 또 교묘히 음모를 꾸며 역적들을 억울한 희생자로 바꾸었다고 오해할 것이다.  그래서 적염군 사건 희생자들의 명예가 공식적으로는 회복되더라도,  세상 사람들은 두고 두고 그들이 진짜 반란군이었을 거라고 의심할 수 있다.  

 

  또한, 장차 황제가 될 정왕에게 정치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간교한 책사로 알려진 자신이 정왕 곁에 둘도 없는 친구 겸 동지로 서게된다면, 정왕이 그 동안 쌓아온 깨끗하고 올곧은 이미지에 금이 가게 된다.  그러면 정왕 주변에 능력있고 깨끗한 인재들이 모여들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정왕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사람들은 매장소가 어떤 숨겨진 목적을 위해 뒤에서 정왕을 교묘히 움직였다고 여길 것이다.    

 

 

 

씁쓸한 미소를 짓는 매장소.

매장소를 눈물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정왕.

 

 

  정왕은 처음에는 세상 사람들 눈치 볼 것 없다며 화를 내지만, 결국 매장소의 말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아무리 천하의 정왕이라지만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전의 정왕이라면 남들이 뭐라고 수군대거나 말거나 매장소의 신원을 회복시켜 당당히 자기 곁에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정왕은 일개 친왕이 아니라 장차 황위에 오를 태자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될 사람이 자기 마음 내키는대로 움직일 수는 없다. 

 

  하지만 머리로 받아들였다고 마음으로 수긍되는 것은 아니다.

  정왕은 눈물 어린 눈으로 매장소를 바라본다.  자신의 소중한 친구 임수는 온갖 고난을 다 겪고 겨우 살아돌아왔건만, 공식적으로는 결코 살아돌아올 수 없는 것이다.  임수라는 이름은 13년 전 그 눈보라 치는 매령에서 더러운 음모에 걸려 아군의 손에 처참히 살해된 것으로 역사에 남아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이끌어갈 시대를 위해 밝은 햇빛 아래 나오지 못 하고 평생 그늘 속에 묻힐 친구를 생각하니, 정왕의 가슴이 미어진다.

 

 

 

  ◎ 태어났으나 아예 태어난 적이 없는 정생

 

  매장소와 정왕은 정생이 활쏘기 연습을 하는 것을 바라보며, 정생의 앞날에 관하여 의논한다.

  정생 또한 매장소와 같은 처지다.  이제 곧 정생의 아버지인 기왕의 억울함이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정생은 원래 자리인 황족의 신분으로 돌아가지 못 하고 평생 노비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한다.  공.식.적.으.로.는. 기왕에게 아들이 없기 때문이다.

  13년 전 적염군 사건으로 노비가 된 기왕비는 비밀리에 정생을 낳은 후, 정생을 다른 노비(기왕비처럼 적염군 사건 연루자의 가족이라서 노비로 전락한 여자)가 낳은 것처럼 꾸몄다.  사사된 기왕의 유복자가 태어났다는 게 알려지면 황제가 살려둘 리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덕분에 정생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대신 기왕에게는 애초에 아들이 없었던 것으로 되어 버렸다.  혈통을 무척 중시하는 황실에서 출생이 불분명하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라, 정생이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정왕은 정생을 자신의 의자(의리로 맺어진 의형제처럼, 의리로 맺어진 아들.)로 받아들여 키우겠다고 한다.

  한글자막에는 '의자' 대신 '양자' 라고 표시되었기 때문에, 이 드라마 방영 당시 시청자들 사이에서 '그러면 나중에 정왕 아들과 정생 사이에서 황위 다툼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 는 우려가 나왔던 모양이다.  하지만 정왕은 분명히 정생을 의자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원래 황실의 핏줄로 태어난 정생이 황족의 신분을 회복 못 하는 이유가 바로 불분명한 출생 내력 때문이다.  그렇게 불분명한 출생 내력을 지닌 이라면 평범한 귀족 가문의 양자가 되는 것도 곤란한데, 하물며 황실 족보에 오르는 정식 양자가 되는 게 가능할 리 없다...! 

 

 

 

 

정생의 앞날을 열어주려 의논하는

매장소와 정왕.

 

 

  살아돌아왔지만 결코 살아돌아올 수 없는 매장소의 일도, 태어났으나 아예 태어난 적 없는 정생의 일도, 정말 안타까우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잘못된 국가 권력 행사로 억울한 죄를 뒤집어썼던 이들이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명예를 회복하는 일은, 유감스럽게도 지금도 현실에서 종종 벌어지고 있다.  물론 뒤늦게라도 그런 억울한 이들이 법적으로 신원을 회복하고 언론을 통해 억울한 사정을 알릴 수 있게 되는 것은, 분명히 기쁜 일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겪었던 억울한 기억과 분노의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이미 죽은 이를 되살려내거나 심신이 망가진 이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상처는 아물더라도 흉터는 남는다.  그리고 상처가 크면 클수록 흉터는 더욱 선명하게 남아 지울 수 없게 된다.  매장소와 정생이 휘말린 적염군 사건이라는 게 너무나 엄청난 일이었기에, 그 사건이 두 사람의 인생에 남긴 상처 또한 엄청나다.  그래서 진상이 밝혀진 뒤에도 두 사람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매장소

 

 

  ◎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갖춘 죽음을 택한 매장소

 

  충성심 넘치는 매장소 부하들이 매장소의 병을 낫게 해준다는 빙산초를 어렵게 구해온다.

  하지만 매장소의 치료를 담당하는 랑야각 각주 린신은 고개를 젓는다.  화한지독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빙산초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 장정 열 명의 몸 속 피가 전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강좌맹에는 매장소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들의 피를 내놓을 이들이 넘쳐흐르지만, 매장소가 자기 살자고 다른 이들을 희생시킬 리가 없다. 

 

  게다가 그렇게 목숨을 건지게 되더라도, 그저 목숨만 부지하게 될 뿐 미쳐서 인간성을 잃고 야수 같이 살게 된다고 한다.

  즉, 육체적으로는 생존할 수 있으나 인간적으로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 없게 되는 것이다.  매장소는 짐승 같은 상태로 살기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갖춘 죽음을 택한다. 

 

 

 

린신의 설명을 들으며 실망하는 강좌맹 사람들.

그런 부하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매장소. 

 

 

 

  ◎ 정왕-매장소가 아닌 소경염-임수

 

  리양장공주가 정왕에게 협력하기로 약속하고 돌아간 뒤, 매장소가 정왕에게 조심스럽게 부탁을 한다.

  리양장공주가 진실을 폭로할 황제의 생일축하연에 자신도 참석하고 싶다는 것이다.  매장소 입장에서는 당연히 참석하고 싶다.  이 날을 위해 13년이란 세월 동안 온갖 고난을 다 헤치며 이를 악물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 정왕과 함께 참석하여 정왕에게 정치적인 부담을 주는 게 마음에 걸린다.  적염군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목숨을 건 매장소이건만, 마침내 적염군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에 신중함을 기할만큼, 매장소에게 정왕이란 친구는 어떤 상황에서도 최우선인 것이다.

 

 

 

매장소의 말에 굳은 표정을 짓는 정왕.

안타까움과 섭섭함을 토로하는 정왕.

 

 

  정왕은 그런 매장소의 태도에 기막혀하며 화를 낸다.

  물론 매장소가 자신을 위해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알기 때문에 더욱 울화가 치솟는다.  13년 동안 온갖 고초 다 겪은 친구가, 죽을 힘을 다 해 여기까지 온 친구가, 이 와중에도 스스로보다 정왕 자신을 더 위하는 게 너무나 안타깝다.

  그리고 섭섭하다.  자신은 매장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자신이 매장소를 위해 그 정도 위험부담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음을 매장소가 믿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매장소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당히 숙원을 푸는 것을 보고 싶다.  

 

  매장소 :  (조심스러운 태도로 어렵게 말을 꺼내는) "그리고 전하께 부탁드릴 일이 하나 있습니다."

  정왕 : (무슨 부탁이든 들어주겠다는 태도로) "자네와 나 사이에 무슨 예의를 차리나?"

  매장소 : "황상의 탄신 축하연이 열리는 그 날 저도 데리고 가주시겠습니까? " (정왕의 표정이 굳어지자) "전하께서 곤란하시겠습니까?"

  정왕 : (아무 말 없이 얼굴을 돌려버리는)

  매장소 : (정왕의 태도를 거절로 받아들이고 설득하려는 태도로) "어찌되었든 간에 저도 객경(어떤 나라의 정식 관료는 아니지만 관료로 대우받는 외부인.)의 신분이니, 탄신 축하연에 나타나더라도..."

  정왕 : (더 이상 못 참고 벌떡 일어나버리는)

  매장소 : "왜 그러십니까?"

  정왕 : (흥분한 태도와 목소리로) "자네가 나에게 부탁을 한다고?  자네는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지!  지금 여기까지 온 게 전부 자네가 심혈을 기울이며 고생했기 때문인데!  내가 어떻게...! (감정이 격해져서 말이 끊기는) 자네에게 최후의 결과를 못 보게 할 거라 생각할 수 있는 건가!"

  매장소 : (정왕을 빤히 쳐다보다가 시선을 떨어뜨리며) "전하..."

  정왕 : "전하는 무슨 전하!" (매장소가 자신을 바라보자) "내가 자네 말대로 자네가 임수라는 걸 밝히지 않는다고 해서, 설마 내 면전에서 계속 매장소로 행세할 생각인가?"

  매장소 : (물끄러미 정왕을 바라보다가) "경염."

  정왕 : (매장소가 예전처럼 자기 이름을 부르자 이내 태도를 누그러뜨림.)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너스레를 떠는 매장소.

옛날의 임수를 보는 듯한 마음에 미소 짓는 정왕.

 

 

  흥분을 가라앉힌 정왕이 매장소의 건강에 대해 묻는다.

  매장소가 무서운 독 때문에 허약해졌다는 것만 알 뿐 시한부 인생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는 정왕.  그런 정왕 앞에서 매장소는 일부러 너스레를 떨며 장난을 친다.  정왕도 자신을 주군이 아닌 친구로 대하는 매장소의 태도에 녹아들어 피식 웃으며 맞장구를 쳐준다. (매장소의 상태를 아는 시청자의 가슴은 이 따뜻한 장면에서 찢어지고...! ㅠ.ㅠ)

 

 

 

마침내 드러난 진실

 

 

  ◎ 황제의 생일 축하연 - 진실 폭로를 위한 무대

 

 

 

곧 어떤 일이 터질지 상상도 못 한

축하인사를 받으며 기뻐하는 황제.

 

 

  드디어 황제의 생일 축하연이 시작된다. 

  황제는 황족들과 조정 대신들에게 축하인사를 받으며 마냥 즐거워한다.  무희들이 나와 춤을 추며 잔치 분위기를 돋우지만, 그 분위기에 흥을 느끼는 사람은 오직 황제 뿐이다.

  축하연 하객들은 곧 일어날 일을 기다리며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 한다.  앞뒤 상황을 보면, 축하연에 참석한 사람 대부분이 정왕에게서 이 날 벌어질 일에 대해 미리 귀뜀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축하연에 불청객으로 온 리양장공주.

(붉은 옷을 입고 뒤로 물러나는 무희들 사이로

검은 옷을 입은 리양장공주가 들어서는 연출이 훌륭함!)

 

 

  한바탕 춤을 춘 무희들이 물러가는데 리양장공주가 등장한다...!

  리양장공주가 무슨 일로 왔느냐며 황제가 어리둥절해 하는 것으로 보아, 리양장공주는 이 축하연에 초대받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붉은 옷을 입은 무희들이 두 줄로 늘어서서 뒷걸음질 치며 물러나는 가운데, 검은 옷을 입은 리양장공주가 결연한 표정을 지은 채 무희들 사이로 들어선다.  이 장면이 옆에서 보는 각도와 위에서 보는 각도로 번갈아가며 슬로우모션으로 나오며 긴장감을 극대화 한다. (이 멋진 화면연출은 꼭 동영상으로 봐야 함...!) 

 

 

 

모두가 리양장공주에게 시선을 돌리는데

매장소만 술잔을 들어 번뜩이는 시선을 감추는...

 

 

  축하연 하객들이 '드디어 시작이구나!' 하는 눈빛으로 리양장공주 쪽을 바라보는데, 매장소는 매섭게 빛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비록 매장소가 겉으로는 무서우리만큼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그 자리의 누구보다 긴장하고 흥분했을 것이다.  지난 2년 간 벌인 온갖 일들이 모두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어떤 경우라도 이 날의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된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냉정하고 이성적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리양장공주 쪽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 리양장공주의 폭로

 

  리양장공주는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사옥이 남긴 글을 두 손으로 받쳐든 채 폭탄선언을 한다.

  13년 전 양나라 전체를 피비린내로 진동하게했던 적염군 사건이 사실은 사옥과 하강의 손에 조작된 것이라고...!  그 말을 듣고 황제는 처음에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만 뻐끔거릴 뿐 말도 하지 못 한다.  하지만 그 놀라움은 곧 엄청난 분노로 바뀐다.

  그 분노는 사옥과 하강이 적염군 사건을 조작하여 자신을 속인 것에 대한 분노가 아니다.  황족과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일을 밝히는 누이동생 리양장공주에 대한 분노다. 

 

  리양장공주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은 세상에 둘도 없는 암군이며 폭군이라는 말이 아닌가...! 

  즉, 자신은 한 나라의 통치자로서 국가 대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 하고 간신들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 아무 죄없는 7만명의 적염군과 여러 친인척을 죽인 잔인무도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황제에게는 리양장공주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리양장공주가 자신의 권위와 체면을 무너뜨리는 엄청난 발언을 했다는 게 중요하다. 

 

 

 

죽을 힘을 다 해 두려움을 누르고

적염군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리양장공주.

그런 누이동생에게 분노한 황제.

 

 

  황제가 리양장공주를 당장 끌어내라고 소리치지만...

  궁궐의 호위 책임자로서 황제의 명령에 따라야 할 몽지가 오히려 리양장공주 편에 선다.  몽지는 리양장공주가 하던 이야기를 마저 끝낼 수 있게 해달라고 황제에게 호소한다.

  황제는 항상 자신의 명령을 묵묵히 따르던 몽지가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것을 보며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곧 제2의, 제3의 몽지가 나타난다. 

    

 

 

리양장공주, 몽지, 예황, 채전 모두 몸을 낮추었지만

사실은 황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음.

 

 

  몽지의 뒤를 이어 예황군주가 나선다.

  그것도 몽지처럼 신하로서 황제에게 요청하는 형식을 취하는 게 아니라, '임수의 정혼녀이며 임씨 가문의 며느리' 라는 신분을 들어 적염군 사건의 재조사를 요.구.한.다.  임수를 역적으로 규정한 사람이 바로 황제인데, 그런 황제 앞에서 임수와 정혼했다는 사실을 너무나 당당히 입에 담는 예황...!  황제는 적염군 사건이 터졌을 때 예황도 임씨 가문과 연좌시켜 처리해야 했다며 펄펄 뛴다.

 

  이번에는 형부상서 채전이 나선다.

  성격 꼬장꼬장하기로 유명한 이 원칙주의자는, 황제가 분노하거나 말거나 리양장공주의 이야기가 상당히 논리적이라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며 재조사를 촉구한다.  이제 황제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 해 온몸을 부들부들 떨 정도가 된다.

 

  그러나 그 후에도 이 사람 저 사람이 계속해서 나선다. 

  태자비(정왕의 아내)의 할아버지인 중서령 류징과, 항상 정치와는 거리를 두며 몸을 사리던 기왕(황제 동생)까지 나선다.  뒤이어 연회에 참석한 조정 대신들 모두가 나서서 적염군 사건의 재조사를 요청한다.

 

 

 

중서령 류징과 기왕(황제 동생)도 나서고...

급기야는 조정 대신들이 모조리 나서는...

 

 

  이제 황제는 그냥 화를 내는 게 아니라 반쯤 울 정도가 된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분 좋게 생일을 즐기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조금 전까만 해도 자신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던 사람들이 이제는 모두 작당하여 자신에게 반기를 들고 있다...!

   

 

 

무너진 늙은 호랑이

 

 

  ◎ "너는... 너는 되살아난 역적이 분명해!"

 

  일이 여기까지 진행되는 동안 있는 듯 없는 듯 앉아만 있던 정왕이 드디어 움직인다.

  조용히 일어서더니 바닥에 엎드려있는 리양장공주에게 다가가 부축해 일으킨다.  황제가 놀란 표정으로 지켜보는데, 정왕도 다른 이들처럼 적염군 사건을 재조사하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주청한다.

  마침내 황제는 알았다.  이 일의 주동자가 다른 사람이 아닌 정왕이라는 것을...!  자신의 다섯째 아들이며 자신의 손으로 태자로 책봉한 정왕이라는 것을...!  그리고 정왕의 생모 정귀비 쪽으로 고개를 돌려 정귀비의 얼굴을 보고서 역시 알았다.  정귀비 또한 이 일을 미리 알고 있었고 그에 동조했음을...!

 

 

 

항상 순종할 줄 알았던 정왕과 정귀비에게

제대로 뒤통수 맞은 황제.

 

 

  배신감에 치를 떨던 황제의 눈에, 이 난리 북새통에도 조용히 앉아있는 매장소가 들어온다.  황제는 책사로 이름 높은 매장소가 이 일에 관여했다고 생각하며 매장소에게 따진다.  그런 황제에게, 매장소는 과거 자신의 아버지 임섭이 황제를 위해 했던 여러 일을 연도별로 줄줄이 읊는다.  그리고 평생 황제를 위해 충성을 다 한 임섭을 위해 진실을 밝히는 게 뭐가 문제냐고 당당히 말한다.  황제의 얼굴에 충격이 어린다.  매장소가 감히 황제에게 두 눈 똑바로 뜨고 대항해서가 아니다.  매장소가 마치 그 시절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임섭의 과거 행적을 너무나 소상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소 얄미울 정도로 냉정함을 유지하던 매장소의 목소리에 깊은 분노와 한이 실려있기 때문이다.  그저 황제와 임섭의 과거를 조사해서 안 것이라면, 매장소가 저토록 평상심을 잃고 감정적으로 나올 리 없다.
  그래서 황제는 마침내 알게 된다, 매장소가 임수라는 하강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것을...!    지금 자기 눈 앞에 서있는 병색이 완연한 책사가 소년장수로 이름을 떨치던 자신의 조카이며, 역적 임섭과 자신의 누이 진양장공주 부부의 아들이며, 적염군 사건에 연루되어 자신의 명령으로 매령에서 죽었다고 알려진 바로 그 임수라는 것을...! 

 

 

 

 

"너, 너, 너는 누구냐?

너는 소철(매장소)이 아니야!

너는... 너는 되살아난 역적이 분명해!"

 

 

  분노와 충격과 공포로 범벅이 된 황제가 매장소를 죽이라고 소리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황제의 친위대인 어림군은 몽지가 연회장 밖에 배치해놓은 금위군에 막혀 안으로 들어오지 못 한다.  어림군은 안 나타나고 연회장 안에 있는 사람 중 그 누구도 자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자, 황제가 직접 매장소를 죽이겠다며 칼을 빼든다.  하지만 지나치게 흥분한 나머지 넘어져 계단을 구른다.

  황제가 넘어지면서 마치 황제의 시대가 끝났음을 상징하는 것 같은 일이 벌어진다.  황제가 쓰고 있던 면류관, 황제의 지위와 권위를 상징하는 그 면류관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금위군에 막혀 안으로 들어가지 못 하는 어림군.

황제의 시대가 종식되었다는 듯 떨어지는 면류관.

 

 

  넘어졌던 황제가 일어서서 매장소에게 칼을 들이대는데, 정왕이 두 사람 사이에 끼여들어 그 칼을 막는다.

  황제가 정왕이라도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듯이 노려보지만, 정왕의 얼굴에는 일말의 두려움이나 망설임이 없다.  오히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동요한다. 누구는 정말로 정왕이 해를 당하면 어쩌나 걱정하고, 누구는 정왕을 지키기 위해 여차하면 황제에게 칼을 들이대겠다는 결의의 눈빛을 보이고, 누구는 겁을 먹는다.

 


황제와 정왕의 대치. 두 사람을 지켜보는 매장소.

황제 부자의 대치를 지켜보는사람들의 면면.

  폭군이든 암군이든 명색이 한 나라의 황제로 살았던 사람이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행태를 보았을 때, 그리고 불러도 오지 않는 어림군을 생각했을 때, 자신이 이미 권력을 잃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자신이 이 자리에서 정왕과 매장소를 죽일 수 없고, 설사 죽인다 하더라도 이미 자신의 시대는 끝났음을 안다.
  결국 황제는 칼을 떨어뜨리고 허탈하게 웃는 듯 우는 듯 자리를 뜬다.  황제가 나간 연회장의 용상에는 조금 전 황제가 흥분한 나머지 벗어놓은 옷이 그대로 있다.  황제는 사라지고 황제의 옷만 황제의 자리에 남았다는 것은, 명목상으로는 황제가 여전히 양나라의 최고 권력자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든 권력을 잃은 허수아비가 되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듯하다. (이 드라마는 연기.대본.음악 전부 좋지만, 무엇보다 탐미적인 혹은 상징적인 연출이 정말 훌륭함...!)

결국 아들을 죽이지 못 하고 자리를 뜨는 황제.황제의 옷만 덩그러니 남은 용상.

 

  ◎ "믿어다오, 짐은 소인들에게 속았다!"

 

  황제가 방 안에서 홀로 끓어오르는 분노와 배신감을 주체하지 못 하고 있을 때 정귀비가 찾아온다.

  황제는 정귀비에게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표시한다.  그러나 정귀비는 개의치 않는다.  자신이 남들에게 한 짓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남들이 자신에게 한 행동에 대해서만 분해하는 황제에게, 마치 어린 아이 타이르 듯 차근차근 말한다.

  이 때 정귀비가 황제에게 하는 말이 어찌나 구구절절 옳던지, 프린터로 뽑아서 국가를 위해서라는 거창한 말을 앞세우며 죄없는 이들에게 누명 씌어 감옥에 보내거나 아예 사형시키는데 앞장서거나 묵인했던 정치인들에게 한 장씩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정귀비의 말대로 아무리 강력한 독재자라도, 사람들의 양심의 소리와 훗날 역사의 평가만은 어찌할 수 없는 법이다.

 

  정귀비 : "적염군 사건을 반드시 재조사하여 관련자들의 억울함을 씻어야 하는 데에는, 저희의 깊은 바람도 있지만,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황제 : "무슨 이유 말이냐?"

  정귀비 : "진상입니다."
  황제 :  "!"

  정귀비 : "진상이 원래 그러합니다.  폐하께서는 천자의 귀한 몸이시니, 그 때 발생한 사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으신다면, 누구도 폐하께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단, 비록 지존의 제왕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예컨대, 폐하께서는 세상 사람들의 양심적인 주장에 영향을 끼치실 수 없습니다.  후세의 평가를 바꾸실 수도 없습니다.  또한 꿈 속으로 폐하를 찾아오는 죽은 이들을 막으실 수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차분히 말하던 정귀비가

여전히 막무가내인 황제에게 안타깝게 외치는...

 

 

  여전히 정왕과 신하들이 적염군 사건의 재조사를 요청하며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가운데, 황제는 매장소와 독대하겠다고 나선다. 

  한 때, 사적으로는 외삼촌과 조카의 관계이며, 공적으로는 주군과 신하의 관계였던 이들이다.  하지만 이제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지간으로 다시 마주한다.

 

 

 

황제에게 기왕의 마지막 말을 전하는 매장소.

 

 

  13년전 기왕은 아버지 황제가 내린 독주를 마시기 전, 아버지에게 전해달라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하지만 황제의 명령으로 독주를 전하러 갔던 예왕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말을 전하지 않았다.  13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황제는 큰아들의 마지막 말을 매장소의 입을 통해 듣게 된다.

 

  기왕은 마지막 순간까지, 설마 아버지가 정말로 자신을 역모의 수괴라 믿고 죽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을 사사하라는 교지를 눈앞에 두고도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세 번이나 읽게 했다.  그렇게 반복해서 듣고난 후에야, 아버지가 아들을 의심하여 죽이려 한다는 끔찍한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비는 자식을 모르고 자식은 아비를 모르는구나." 라는 말을 아버지에게 전해달라 말하고 독주를 마셨다.

 

  기왕이 남긴 말대로 아비와 자식은 서로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만일 황제가 아버지로서 아들의 됨됨이를 제대로 알고 있었더라면, 아무리 부자간의 정치적 견해가 다르더라도 아들이 자신에게 결코 반란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아들을 믿었을 것이다.  반대로 기왕이 자기 아버지를 제대로 알았더라면, 설마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겠느냐며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헛된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의심 많고 권력욕 대단한 황제는 아들도 자신처럼 반란을 통해 대권을 쥐려고 한다고 믿었고, 올곧은 기왕은 자신처럼 아버지도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경우에는 보통, 사악하고 잔인한 쪽이 착하고 부드러운 쪽을 이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훌륭한 황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던 기왕은, 젊은 나이에 독주를 마시고 죽었다. 

 

 

 

옥좌를 가리키며

정왕도 황제가 되면 변할 것이라 말하는 황제.

그런 황제에게 반박하는 매장소.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했던가...

  언제나 의심이라는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는 황제는, 과거에 자신의 잣대로 큰아들 기왕을 의심하고 죽였듯이, 이번에는 또 다른 아들 정왕에 대해서도 자신의 잣대로 그 미래를 함부로 예측하려 든다.  자신도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는데 황제가 된 후에 변했다면서, 정왕도 나중에 황제가 되면 자신처럼 변할 것이라 단정한다.

  그런 황제에게 매장소는 단호한 태도로 말한다.  황제는 기왕을 몰랐고 정왕은 더욱 모른다고.

 

  사실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면 황제의 예측이 맞을 가능성이 더 높다.

  멀쩡했던 사람이 권력을 쥔 후 잔혹하게 변하는 건 동서고금의 역사 속에 수없이 나오는 사실이니까...  그리고 적염군 사건을 시작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매장소가,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쉽게 변절하는지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매장소는 황제는 정왕을 모른다며, 정왕은 황제와 전혀 다른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당당히 반박한다.  그만큼 매장소에게 정왕이란 사람은 하늘이 무너져도 믿을 수 있는 친구인 것이다.

 

  이제 어쩔 수 없이 적염군 사건 재조사를 허락해야 하는 황제는, 마지막 발악처럼 조건을 하나 단다.

  적염군 사건 재조사는 허락하지만, 매장소가 임수라는 것은 밝히지 않을 것이며 조정에 출사도 못 하게 할 것이라고...  간단히 말해서 임수를 죽은 사람으로 그냥 두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매장소는 어차피 진즉부터, 적염군 사건만 해결되면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금릉을 떠날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조건은 매장소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황제는 자신이 내건 조건에 대해 매장소가 항의라도 하거나, 자기 정체를 밝히고 조정에 출사하기 위해 은밀한 거래라도 시도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만일 입장이 바뀐 상황이었다면, 황제는 당연히 그렇게 행동했을 것임. -.-;;)  그런데 매장소가 너무 순순히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는, 두 번 다시 서로 볼 일 없을 것이라는 말로 마지막 인사를 고하자, 당혹스러워 하는 빛을 보인다.

 

 

 

 

매장소가 임수라는 사실을 영원히 묻겠다는 황제.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매장소.

 

 

  권력의 화신 같았던 황제도 결국 나약한 인간이다.

  매장소와 마주한 내내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합리화 하기에 바쁘더니, 막상 매장소가 자신에게 등을 돌려 밖을 향해 걸어나가자 다급하게 매장소를 불러 멈추게 한다.  그리고는 드라마 중반부에서 죽은 신비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을 내비쳤던 이래 처음으로, 인간적인 회한과 죄책감을 드러낸다.  양나라의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무릎을 털썩 꿇고 울먹이는 모습으로... 

  "믿어다오, 짐은... 소인들에게 속았다!  임섭은 10년이나 짐을 보좌했다.  네 모친 진양은... 바로 짐의 친누이가 아니더냐...  짐이 너를 안아주고, 너를 데리고 말을 탔다.  너와 함께...  연도 날렸다.  너도 기억... 기억하느냐?"

 

 

 

지존인 황제가 조카 뒤편에서 무릎을 꿇음.

한때는 가까웠던 외삼촌의 말을 들으며

어긋난 관계와 되돌릴 수 없는 세월 때문에

눈물을 글썽이는 매장소.

 

 

 

뒤돌아보지 않고 나가는 조카의 뒷모습을

무릎 꿇은 채 지켜보는 황제.

 

 

 

 

문가에서 매장소가 잠시 멈추자

자신을 돌아봐줄 것을 기대했다가

결국 뒤돌아보지 않고 나가는 것을 보는 황제.

 

 

 

마지막 출전 - 임수로 죽다.

 

 

  ◎ 마침내 숙원을 풀다...! 

 

  적염군 사건을 재조사 한 결과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그래서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위한 위령제를 거행하기로 하는데, 그 위령제는 황제가 직접 참석하여 주관하기로 한다.  물론 황제 본인의 뜻이라기보다는 대세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겠지만...

 

  언궐은 적염군 사건 재조사 결과와 위령제 문제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던 중, 문득 생각한다.

  그 동안 매장소를 기막히게 머리 좋은 책사라고만 생각했는데, 여기까지 와서 보니 그냥 단순한 책사 같지가 않다.  이런저런 상황을 따져보았을 때 매장소 그 사람이 혹시... 죽었다던 임수가 아닐까?  하지만 옆에서 기왕(황제 동생)이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묻자, 뭐라고 대답할 듯하다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린다.

  언궐은 한 때는 황제의 친구였고 동지였으나, 황제가 권력을 잡은 후 변절하며 수많은 동지 및 친지들을 죽이는 걸 목격한 사람이다.  그리고 황제가 권력을 잡기 위해 일으킨 정변의 가담자 중 용케 지금까지 황제의 의심을 피해 살아남은 용의주도한 인물이다.  그런 언궐이라면 매장소의 정체를 확신했다 하더라도, 매장소의 복잡미묘한 입장을 고려하여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친구 임섭의 아들 임수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이기 때문이다.   

 

 

 

적염군 사건 재조사 결과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

매장소가 임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언궐.

 

 

  위령제에 앞서 원통하게 죽은 이들을 위한 사당이 건립되자, 정왕이 찾아온다.

  천천히 사당 안으로 들어선 정왕은 쭉 늘어선 위패 중 한 위패 앞에 멈추어서더니, 뭐라 말하기 힘든 복잡한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그 위패의 주인이 다름 아닌 임수이기 때문이다.  멀쩡히 살아있는 친구의 위패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니...

 

 

 

임수의 위패를 붉은 색 천으로 덮는 정왕.

 

 

  정왕은 붉은 천으로 그 위패를 덮는다.

  마치, 임수가 공식적으로는 죽은 몸이라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은 태도로...  매장소의 건강 상태를 제대로 알지 못 하는 정왕은, 아마 그 위패가 꽤 오랫동안 천으로 덮여있게 될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자신과 매장소가 함께 늙어 편안한 여생을 보내다가 매장소가 죽으면, 그 때서야 그 천을 걷어내게 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설마... 조만간 그 천을 치우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사당을 나서던 정왕과 상복 차림으로 사당에 들어서던 매장소가 마주친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상대방에게 정중한 예를 갖춘다.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로서의 인사가 아니라, 정의와 진실을 위해 생사고락을 함께 한 동지로서의 인사다. 

 

 

 

 

서로에게 예를 갖추는 매장소와 정왕.

부모와 전우들의 위패 앞에서 절을 하며 우는 매장소.

 



  ◎ 또 다시 터진 전쟁 

 

  모든 일이 다 해결된 것 같은 상황에서 큰 위기가 닥친다.

  소경예의 생일에 사옥을 실각시킨 후 매장소가 걱정했던 일, 즉 양나라 지도층이 내분을 일으키면 주변의 여러 나라가 그 기회를 틈타 양나라를 공격할 수 있다는 염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한두 나라도 아니고 무려 다섯 나라가 사방에서 동시에 양나라를 공격하는 비상상태가 벌어진다. 

 

  태자 정왕이 대신들을 불러모아 대책회의를 여는데 여러가지로 상황이 여의치 않다.

  여러 나라의 군대를 동시에 상대하려니 당연히 병력이 모자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수한 지휘관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여러 나라에게 동시에 공격을 받자 신하들이 지레 겁을 먹고 화친 쪽으로 기운다.  무장 출신의 고관조차 화친을 하자고 주장할 정도니, 예황군주가 기막혀 하며 한 마디 한다.  "화친이라니요?  본래 문신이 화친을 주장하고, 무장은 항전을 주장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우리 양나라는 어떻게 반대랍니까?  이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인데, 군대를 통솔해야 하는 군후들이 화친을 주장하다니요!"

 

 

 

 

대책회의를 하는 정왕과 신하들.

심추 때문에 화익후가 꿈꾸던 전쟁특수는 사라지고... ^^;;

 

 

  이 때, 이 드라마의 특징 중 하나인 '심각한 장면에서 나오는 깨알 같은 코믹한 장면' 이 또 나온다.

 

  정왕이 화익후라는 신하에게 최고 사령관 지위을 맡겠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화익후는 "이 미천한 신하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만 번을 죽는 것도 불사하겠지만, 군대를 지휘하여 적을 상대하는 일은 마음으로는 하고 싶으나 늙어서 기력이 딸립니다." 라고 어.쩔. 수. 없.이. 고사하는 것처럼 말한다.  하긴, 솔직하게 "전쟁터에 나가는 게 무서워서 사령관을 못 맡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호부상서 심추가 눈치 빠르게 나서서, 화익후의 목장에 당장 군마로 써도 될 정도로 훈련을 잘 시킨 말이 700필이나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심추의 말에 화익후의 눈에 허걱하는 빛이 스쳐지나간다. -.-;;  하지만 심추는 모르는 척 태연하게, 지난 봄사냥 때 황족이나 고관대작들이 서로 화익후네 말을 사고 싶어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덧붙인다. (이래서 재산 많다고 함부로 자랑하고 다니면 안 되는 겁니다... -.-;;)  즉, 이 화익후란 양반은 나라가 전쟁의 위기에 처한 이 때, 고위 공직자로서 앞장서서 위기를 타파할 생각은 안 하고 전쟁특수(!)로 한몫 단단히 챙길 생각이나 품고 있었던 것 같다. -0-;;  전쟁이 나면 군마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폭등할 게 뻔하니 말이다.

 

  하지만 심추의 기지로 정왕과 다른 대신들 앞에서 시커먼 속셈이 드러나게 되자, 화익후는 얼른 자진납세(!)에 나선다.

  그렇잖아도 조정에 바칠 좋은 말을 따로 뽑아놓았는데 깜빡 잊고 있다가 심추 덕분에 생각이 났다고,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늘어놓는다.  즉, 전시상황에 국가에 군수물자를 기부(?)하여 만백성에게 모범이 되는 고위 공직자 코스프레(!)를 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능구렁이 같은 고위 공직자들이 항상 있지요... -.-;;) 

 

 

  ◎ "그래도 나는 아직 적염군의 소년장수 임수란 말일세!"

 

 

 

  한편, 매장소는 참전할 결심을 한다.

  이제 수명이 겨우 몇 달 남았을 뿐이고, 몸이 많이 약해진 상태로 전쟁터에 나가면 그 얼마 안 남은 수명조차 줄어들 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란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위하여, 얼마 없는 기력을 끌어모아 마지막으로 불태울 생각을 한 것이다.

  정왕은 지휘관이 부족하다며 자신이 참전할 생각을 한다.  사실 정왕도 군대에서 잔뼈가 굵은 훌륭한 지휘관이니, 정왕이 직접 군대를 이끈다면 분명히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장소는 정왕이 전쟁터에 나가느라 수도 금릉을 비우면 황제가 그 사이 또 무슨 음모를 꾸밀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외부가 어수선할수록 내부를 더욱 안정시켜야 하는 법이다.  그러니 자신이 정왕 대신 나가 군대를 지휘하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매장소가 그런 결심을 한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조국에 대한 충성심이나 무장 가문 출신으로서의 의무감 뿐 아니라 개인적인 염원도 있다.  매장소는 원래의 자신, 즉 과거 속에 묻어버린 임수를 되찾고 싶은 것이다.  

 

 

 

 

지도를 보며 다시 한 번 장수로서 싸우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매장소의 뒷모습.

 

 

  정왕이 매장소의 몸상태에 대해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허약해진 매장소가 참전하는 것은 반대한다.

  그러나 매장소가 간절히 참전하고 싶어하자 한 가지 조건을 내건다.  매장소의 치료를 담당하는 의원, 즉 랑야각 각주인 린신이 매장소의 건강이 참전해도 괜찮은 상태라고 확인해준다면 참전을 허락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린신은 평소에 매장소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누구보다 매장소를 걱정하는 사람이다.  그런 린신이 매장소가 전쟁터에 나가도록 정왕에게 거짓말을 해주려 할 리 없다.  가만히 누워 요양에만 전념해도 몇 달 못 살 사람이 체력 소모가 극심한 전쟁터에 나가겠다니, 린신으로서는 기가 막히다 못 해 화가 날 지경이다.  

 

린신 : "어째서!  어째서 자네는 항상 가장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순간에 꼭 포기하려는 건가!"
매장소 : "이건 포기가 아닐세, 선택이지.  나는 이미 13년이나 매장소로 살았네.  만일 마지막에 임수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북쪽 국경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전쟁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네."
린신 : "나는 임수라는 사람 모르네.  내가 백방으로 애를 써서 살려내려고 하는 그 친구는 임수가 아니라고!  자네 스스로 말했지.  임수는 진즉에 죽었다고.  죽은 사람을 3개월 되살리기 위해서 매장소를 죽이겠다는 건가?"

매장소 : "매장소의 사명은 이미 끝났어.  하지만 임수에게는 아직 책무가 있어.  지금 북쪽 국경에 봉화가 타오르고 있고, 조정에는 장수가 없는데, 임씨 가문의 후손이 되어 나보고 그냥 앉아서 보고만 있으라고?  비록 자네들이 고생해서 빙속초를 구했다고는 하지만, 내가 겨우 3개월 더 살 수 있는 것 뿐이잖나!"

 

 

 

처음에는 린신을 침착하게 설득하다가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자기 정체성에 대한 미련과 염원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매장소.

 

 

매장소 : "나는 결국 임수네!  비록 13년이 지났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적염군의 소년장수 임수란 말일세!"
린신 : "!"
매장소 : "나는 돌아가야 해, 적염군 시절의 전쟁터로!  내가 속한 그 곳으로 돌아가야 해!"

 

 

  결국 린신이 진다.

  어쩌겠는가,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아직 살아있는 사람, 더구나 얼마 못 살 사람의 마지막 소원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대신 린신은 자신도 자원입대하여 매장소와 함께 가겠다고 한다.  매장소의 마지막을 지켜주겠다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다가 기막힌 사건으로 인생이 뒤틀려버린 매장소지만, 정왕이나 린신 같은 진정한 벗을 두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매장소의 인생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벗들의 우정 덕분에 기적처럼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매장소와 함께 전쟁터로 가겠다는 린신.

그런 린신의 뒷모습에 따뜻한 미소를 짓는 매장소.

 

 

  매장소가 가슴 아파하는 린신의 등에 대고 말한다. 

  "자네는 항상 임수를 모른다고 말했지.  하지만 자네가 임수를 알게 되면 절대로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 믿네."  린신이 지난 13년의 세월 동안 지켜본 이는 매장소였지만, 이제 얼마 안 남은 시간 동안 지켜보게 될 이는 임수다.  임수 때문에 매장소가 더 일찍 죽게되어서, 린신은 임수란 녀석이 도무지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매장소는 그런 린신에게, 자신은 매장소의 신분으로 그러했듯이 임수의 신분으로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최선을 다 하는 멋진 모습만을 보여줌으로써 린신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꼭 살아 돌아와서

자신이 좋은 황제가 되는 것을 지켜봐달라는 정왕.

결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는 매장소.

 

 

  날이 밝으면 매장소를 전쟁터로 보내야 하는 정왕은 너무 울적하다.

  적염군 사건이 터지기 전에도 항상 함께 전쟁터로 나갔지, 임수를 홀로 떠나보내고 정왕 혼자 후방에 남았던 적은 없었다.  더구나 13년만에 겨우 만난 임수를, 그것도 허약해진 임수를 전쟁터로 보내야 한다니 정왕의 속이 말이 아니다.

  반드시 살아돌아와 자신이 좋은 황제가 되는 것을 지켜봐달라고 말하지만, 정왕도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예감한 듯하다.  매장소 또한 돌아오겠노라고 지키지도 못 할 약속을 하면서, 서글픈 눈빛을 감추지 못 한다.

 

 

  ◎ 임수로 죽다.

 

  마침내 출정의 아침이 다가왔다.  많은 병사들이 금릉성을 나서 누구는 북쪽 국경으로, 누구는 남쪽 국경으로, 조국의 명운을 가르는 전쟁터로 떠난다.  성벽 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정왕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마음 같아서는 나라를 위해서도, 소중한 친구 매장소를 위해서도, 자신 역시 직접 나가 싸우고 싶다.  하지만 매장소와 신하들의 말처럼, 이제 정왕에게는 차기 황제로서 내부를 안정시켜야 하는 중요한 책무가 있다.   

 

 

금릉에서 출발하는 양나라 군대.

 

 

 

금릉성벽 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정왕.

 


  전날 밤 금릉성 안에서 정왕과 가슴 아픈 이별을 한 매장소는, 이 날 금릉성 밖에서 또 다른 이별을 한다.  정혼녀 예황과의 이별이다.  13년이나 헤어져 지냈던 이 연인은, 이제 한 사람은 대유국 군대를 막기 위해 북쪽으로 가야 하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남초 군대를 막기 위해 남쪽으로 가야 한다.  아무리 예황이 매장소가 앞으로 10년은 살 수 있다고 알고 있다지만, 허약해진 매장소에게 참전이 무리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적군의 창칼에 죽지 않더라도 체력의 고갈로 살아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황 스스로도 10년이나 전쟁터를 누빈 군인의 몸이다.  애닲아하면서도, 얼마 안 남은 목숨을 군인으로서 당당히 나라를 위해 쓰겠다는 매장소를 막지 않는다.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정혼자에게, 전쟁이 끝나면 제일 먼저 자신이 있는 운남으로 오라고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말한다.  매장소 역시 예황의 말대로 하겠다면서도, 다음 생을 기약하는 말로 이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임을 확실히 한다.  바로 조금 전에 전쟁이 끝나면 자신에게 오라던 예황도, 다음 생에는 꼭 평범한 부부로 만나자는 그 말을 받아들이고...    

 

 

 

 

이승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너무나 담담하게 나누는 연인들.

 

 

  그리고 얼마 후, 금릉의 정왕과 운남의 예황에게 각각 매장소의 소식이 전해진다.

  두 사람 모두 매장소와 헤어질 때 이미 각오하고 있었지만 역시 막상 접하고나니 가슴이 무너지는, 매장소의 죽음을 알리는 소식이다.

 

  정왕은 아무 말 없이 적염군 사건 희생자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가서, 바로 얼마 전 자신이 덮었던 붉은 천을 걷어낸다.

  모습을 드러낸 임수의 위패 아래에는 커다란 진주가 있다.  두 친구의 앞날이 찬란하게 빛나기만 하던 시절에 정왕이 임수에게 주려고 동해에서 구해온, 그러나 막상 정왕이 금릉으로 돌아와보니 그 동안 적염군 사건이 터져 임수가 죽었다고 하여 전해주지 못 했던, 그리고 무려 13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다시 만나 전해주었던, 바로 그 진주다.

  아마 매장소가 마지막 출정길에 오르기 전 놓고 간 것이리라...  매장소가 소중한 친구 정왕에게 남기는 마지막 선물이리라...  정왕이 13년 간이나 친구 대신 소중히 간직했다가 전해주었던 그 진주를, 이제 그 친구가 정왕에게 유품으로 되돌려준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씌었던 붉은 천을 다시 걷어내는 정왕.

모습을 드러낸 임수의 위패 앞에는

13년 전 정왕이 임수에게 주려고 구해온 진주가 있음. 

 

 

  예황은 매장소를 따라 전쟁터로 갔다가 자신을 찾아온 궁우에게서 매장소의 편지를 받는다.

  이미 각오했던 일이라고 해서 슬프지 않을 리 없다.  눈물 어린 눈으로 한 동안 궁우의 손에 들린 편지를 바라보기만 할 뿐, 차마 받지 못한다.  잠시 후 겨우 손을 뻗어 편지를 받아들지만, 편지 봉투 위에 써진 자신의 이름을 보고 아무 말도 못 하고 슬퍼한다. 

 

 

 

매장소가 남긴 마지막 편지를 받는 예황.

 

 

 

그 후의 이야기

 

 

  ◎ "이 궁궐 안에서 바람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매장소가 세상을 뜬 후 몇 년이 흐르고 정왕이 황위에 올라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세월의 흐름을 가장 쉽게 실감할 수 있는 방법은 아이들의 성장을 보는 것이다.  정생은 어느덧 훌쩍 자라 의젓한 소년이 되었고, 정왕에게도 너덧 살은 되어 보이는 아들이 생겼다.  원래 사촌형제 사이이며 지금 표면적으로는 의붓형제 사이인 두 아이가 서로 쫓고 쫓기며 장난치는 광경을,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정귀비가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바라본다.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

그 아래에서 천진하게 뛰노는 아이들.

흐뭇하게 손주들을 바라보는 정귀비.

 

 

  문득 고담이 기침을 한다.

  그러자 정귀비와 함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던 황후(정왕의 아내)가 늙은 태감의 몸을 걱정하며 옷을 더 챙겨입으라고 권한다.  그리고 마침 장대 위에서 깃발이 휘날리는 것을 보고 바람이 분다고 말한다.  황후는 바람이 불어 날씨가 싸늘해졌으니 보온에 신경써야 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 뿐이지만, 고담은 의미심장한 대답을 한다. 

 

  황후 : "보시오, 바람이 불기 시작했소."
  고담 : "아닙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게 아닙니다.  이 궁궐 안에서 바람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고담의 말대로 궁궐에서는 바람이 멈춘 적이 없다.

  상황에 따라 태풍이 불어닥치기도 하고 산들바람이 불기도 할 뿐, 바람 자체는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아마 언젠가는 또 다시 거센 바람이 불어와 많은 이들의 운명을 엉망으로 만들 것이다.  그 때 또 다시 매장소나 정왕 같은 사람들이 나와서 그 거센 바람을 잠시나마 잦아들게 해주기를 바랄 수 밖에...

 

 

  ◎ 황제가 된 정왕 / 장림군

 

  매장소가 한 줌 남은 생명을 불살라가며 지켜낸 북쪽 국경의 수비를 담당할 새로운 군대가 편성된다.

  신하들은 정왕에게 새로운 군대의 이름을 내려달라 청한다.  붓을 들고 잠시 생각하던 정왕이 깊은 눈빛으로 종이 위에 한 글자 한 글자 쓴다.  그리고 얼굴을 들어 맞은편의 신하들을  바라본다.  종이 위에 써진 새 군대의 이름은 장림군이다.

 

 

 

정왕에게 새로운 군대의 이름을 내려달라 청하는 신하들.

 

 

 

새로운 군대에 '장림군' 이라는 이름을 내린

황제가 된 정왕.

 

 

  아마도 '장' 은 매장소의 이름에서, '림' 은 '임수' 의 성에서 따온 듯하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는 한 나라의 황제로서 국가대사를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살고 있다.  하지만 매장소 혹은 임수라는 친구는 여전히 정왕의 마음 한 쪽에 자리잡고 있다.

  궁궐은 최고 권력이 있는 곳이기에 항상 음모의 바람이 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무서운 바람 속에서도 정의, 진실, 우정, 의리 같은 가치를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은 있는 법이고, 그런 가치를 위해 목숨 바친 이를 기억하는 것은 살아남은 이의 몫이기 때문이다.

 

 

 

기타

 

 

  1. 첫번째 랑야방 감상 포스트에 랑야방을 형식적으로는 '무협극 + 가상역사극(퓨전사극)' 이고 내용적으로는 '복수극 + 정치극' 이라고 했는데, 내용적인 면에 '자아를 찾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 라는 것도 덧붙여야 할 것 같다.

 

  언제나 남보다 한 수도 아니고 두 수 혹은 세 수를 앞질러 읽으며 그 어떤 적도 빠져나갈 수 없는 치밀한 계책을 만들어내던 매장소.

  하지만 매장소는 그런 뛰어난 책사로서의 자기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고, 과거 전쟁터에서 활약하던 소년장수로서의 모습을 그리워했다.  그저 적염군 사건 이전의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게 아니라, 아무리 정의와 진실을 위해서라지만 뒤에서 음모를 꾸미는 스스로의 모습에 염증을 느껴서다.

  스스로를 적의 창칼 앞에 노출시키고 당당히 직접 맞붙어 싸웠던 무인 임수에게, 남몰래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이런저런 함정을 파는 행동은 음침하고 지저분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안 남은 수명과 허약해진 몸으로서는 그렇게 권모술수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기에, 더 큰 슬픔과 절망을 느꼈다.

 

  그래서 가족과 전우의 억울함을 푸는 오랜 염원을 이루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죽을 줄 알면서도 기꺼이 전쟁터로 향했다.   

  물론 적염군 사건이 해결된 뒤에도 매장소가 임수라고 밝히지 않았기에, 공식적으로 임수란 인물은 13년 전에 이미 죽은 상태 그대로다.  그러니 이제와서 매장소가 임수로서 전쟁터에 나가 죽는다고해도 '공식적으로' 바뀌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매장소의 자기만족이 이루어지는 것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장소에게는, 전쟁터에 나가 적을 상대하다가 최후를 맞는 일이 얼마 안 남은 목숨을 최대한 잘 보존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남들이 알아주든지 말든지, 자신에 대한 공식적인 평가가 변하든지 말든지,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의 원래 모습을 찾고 싶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적과 싸우며 나라를 지키는 게 본래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매장수 주위 사람들(정왕, 예황, 린신)도 그런 매장소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매장소의 참전 결심을 듣고 처음에는 걱정을 하고 놀라고 말리다가 결국 그 뜻을 존중하기로 한 것은, 그들 역시 매장소에게 원래의 모습을 찾는 일이 죽음을 피하는 일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2. 랑야방 51회~54회에 나오는 멋진 대사의 원문이다.

 

  ① 황제의 생일 축하연에서 적염군 사건의 진상을 폭로할 계획을 세운 후, 매장소가 정왕에게 자신도 그 자리에 참석하게 해달라고 하자, 정왕이 안타까움과 서운함이 뒤섞인 질타를 함.

  - 还有一事我想拜托殿下。(그리고 전하께 부탁드릴 일이 하나 있습니다.)
  - 你跟我还客气什么?(자네와 나 사이에 무슨 예의를 차리나?)
  - 皇上寿典那天可以带我同去吗? 殿下有为难之处吗? 怎么说我也有客卿的身份,就算出现寿宴之上。。。 怎么了? (황상의 탄신 축하연이 열리는 그 날 저도 데리고 가주시겠습니까?  전하께서 곤란하시겠습니까?  어찌되었든 간에 저도 객경 - 어떤 나라의 정식 관료는 아니지만 관료로 대우받는 외부인 -의 신분이니, 탄신 축하연에 나타나더라도...  왜 그러십니까?)

  - 你这还要拜托我吗? 你当然应该在场了。 走到今天这一步煎熬的都是你的心血。我怎么。。。可能不让你见证最后的结果? (자네가 나에게 부탁을 한다고?  자네는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지!  지금 여기까지 온 게 전부 자네가 심혈을 기울이며 고생했기 때문인데!  내가 어떻게...!  자네에게 최후의 결과를 못 보게 할 거라 생각할 수 있는 건가!)
  - 殿下。。。 (전하...)
  - 殿什么下? 就算我听你的,不去争林殊这个身份,难道你在我面前还一直是梅长苏吗? (전하는 무슨 전하!  내가 자네 말대로 자네가 임수라는 걸 밝히지 않는다고 해서, 설마 내 면전에서 계속 매장소로 행세할 생각인가?)
  - 景琰。(경염.)

 

  ② 매장소가 임수라는 것을 비로소 안 황제가 놀라서 하는 말.

  - 你,你,你是谁? 你不是苏哲! 你是。。。你是那个复活的乱臣贼子,是吧! (너, 너, 너는 누구냐?  너는 소철(매장소)이 아니야!  너는... 너는 되살아난 역적이 분명해!)

 

  ③ 자신의 권위가 무너지는 게 두려워 적염군 사건에 관한 재조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황제에게, 정귀비가 아무리 대단한 권력자라도 사람들의 양심 어린 여론과 후세 역사의 평가는 피할 수 없다고 타이르는 말.

  - 赤焰之案之所以一定会被推翻洗雪,除了我们居心叵测以外,还有另外一个更加重要的原因。(적염군 사건을 반드시 재조사하여 관련자들의 억울함을 씻어야 하는 데에는, 저희의 깊은 바람도 있지만,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 什么原因? (무슨 이유 말이냐?)

  - 真相。(진상입니다.)
  - !

  - 真相原本就是如此。陛下贵为天子,只要您不想知道当年所发生的事实,谁也无法强迫您。但,即使是至尊帝王,也总有些做不到的事。比如,你影响不了天下人良心的定论。改变不了后世的评说。也阻拦不住那些在梦中向你走过来的旧人。(진상이 원래 그러합니다.  폐하께서는 천자의 귀한 몸이시니, 그 때 발생한 사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으신다면, 누구도 폐하께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단, 비록 지존의 제왕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예컨대, 폐하께서는 세상 사람들의 양심적인 주장에 영향을 끼치실 수 없습니다.  후세의 평가를 바꾸실 수도 없습니다.  또한 꿈 속으로 폐하를 찾아오는 죽은 이들을 막으실 수도 없습니다.) 

 

  ④ 내내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지 않던 황제가, 막상 매장소가 마지막 인사를 고하고 돌아서자 그 등에 대고 울먹이며 토로하는 인간적인 죄책감과 회한의 말.

  - 你要相信,朕是。。。受了小人的蒙骗! 林燮辅佐朕十年。你母亲晋阳。。。更是朕的亲妹妹呀。朕抱过你,带你骑过马。陪着你。。。放过风筝。你记。。。记得吗? (믿어다오, 짐은... 소인들에게 속았다!  임수는 10년이나 짐을 보좌했다.  네 모친 진양은... 바로 짐의 친누이가 아니더냐...  짐이 너를 안아주고, 너를 데리고 말을 탔다.  너와 함께...  연도 날렸다.  너도 기억... 기억하느냐?)

 

  ⑤ 수명이 얼마 안 남은 매장소가 전쟁터에 나가는 문제로, 매장소와 린신이 말다툼을 함.  

  - 为什么!  为什么你总是在最不应该放弃的时候偏要放弃! (어째서!  어째서 자네는 항상 가장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순간에 꼭 포기하려는 건가!)
  - 这不是放弃,而是选择。我已经当了整整十三年的梅长苏了。如果到最后我可以回到林殊的结局,回到北境,回到战场,那对我来说是  一件幸事。(이건 포기가 아닐세, 선택이지.  나는 이미 13년이나 매장소로 살았네.  만일 마지막에 임수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북쪽 국경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전쟁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라네.)
  - 我不认识林殊。
我千方百计让他活下来的那个朋友不是林殊。你自己也说过。林殊早就死了。为了让一个死人复活三个月,你要终结掉梅长苏吗? (나는 임수라는 사람 모르네.  내가 백방으로 애를 써서 살려내려고 하는 그 친구는 임수가 아니라고.  자네 스스로 말했지.  임수는 진즉에 죽었다고.  죽은 사람을 3개월 되살리기 위해서 매장소를 죽이겠다는 건가?) 

  - 梅长苏的使命已经完成了。可是林殊还有他的职责。如今北境烽火正炽,朝中无将,作为林氏后人,我岂能坐视不理? 既然你们千辛万苦的找到了冰续草,就许我三个月吧!(매장소의 사명은 이미 끝났어.  하지만 임수에게는 아직 책무가 있어.  지금 북쪽 국경에 봉화가 타오르고 있고, 조정에는 장수가 없는데, 임씨 가문의 후손이 되어 나보고 그냥 앉아서 보고만 있으라고?  비록 자네들이 고생해서 빙속초를 구했다고는 하지만, 내가 겨우 3개월 더 살 수 있는 것 뿐이잖나!) 

 

 

  ⑥ ⑤의 상황과 이어지는, 반드시 임수로서 전쟁터에서 최후를 맞고 싶다는 매장소의 말.

  - 我毕竟是林殊! 虽然十三年过去了,可我还是赤焰军的少帅林殊!(나는 결국 임수라네!  비록 13년이 지났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적염군의 소년장수 임수란 말일세!)
  - !
  - 我要回去,回到赤焰军当年的战场!我要回去那才是属于我的地方!(나는 돌아가야 해, 적염군 시절의 전쟁터로!  내가 속한 그 곳으로 돌아가야 해!)

 

  ⑦ 결국 매장소의 고집을 못 꺽고 함께 전쟁터로 나가 매장소의 최후를 지켜주겠다는 린신에게, 매장소가 고마움과 삶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함께 담아 하는 말.

  - 你总说你不认识林殊。我相信你在认识他之后一定不会失望的。(자네는 항상 임수를 모른다고 말했지.  하지만 자네가 임수를 알게되면 절대로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 믿네.) 

 

  ⑧ 황후(정왕의 아내)가 기침하는 고담에게 옷을 챙겨입으라면서 바람이 분다고 하자, 고담이 바람이라는 말에 궁궐 안 정치적인 음모의 의미를 담아 하는 말. 

  - 您看,起风了。(보시오, 바람이 불기 시작했소.)
  - 不,不是起风了。是在这宫墙内这风从来就没停过。(아닙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게 아닙니다.  이 궁궐 안에서 바람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 추가 - 이 부분은 6월 21일에 덧붙인 것임.

 

  랑야방 팬들이 바라고 또 바라던 랑야방 원작소설 한국어판이 드디어 출판된다...!

  전 3권인데 일단 6월 29일에 1권이 출판될 예정이다.  현재 알라딘에서 예약 구매를 받는 중인데, 예약 구매 기간 동안 기대글을 남기는 사람에게는 선착순으로 32페이지짜리 랑야방 화보집을 준다고 한다.  그런데 기대글이 벌써 335개나 달렸다. (다들 종주님과 정왕 전하의 사진 소장하겠다고 마구 달려드는... ^^)  화보집이 한정판이라고는 하는데 몇 부나 되는지 명시하지 않아 이미 다 떨어졌는지 아직 남아있는지는 알 수 없다.  관심있으신 분은 지금이라도 예약 구매에 도전해보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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