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서점 등

2015 사도세자, 혜경궁(1) - 한중록(정병설 번역본)

Lesley 2015. 9. 20. 00:01

 

  사도세자의 부인으로 유명한 혜경궁 홍씨가 쓴 회고록 '한중록' 을 최근에 다시 읽었다.

  고등학생 때와 대학생 때 각각 한 번씩 읽어본 한중록을 새삼스럽게 다시 읽은 이유는, 지난 5월 시사회 담첨으로 본 영화 '혜경궁 홍씨(DnC Live)' 때문이다.  이 영화는 작년에 좋은 반응을 받은 연극 '혜경궁 홍씨' 를 그대로 영화로 옮긴 것이다.  특이하게도 연극 대본을 각색해서 영화를 만든 게 아니라, 연극을 그대로 영화로 옮겼다.

 

  그런데 한중록 내용을 충실히 반영한 것으로 알려진 이 연극 겸 영화에 의아한 장면이 나왔다.

  주인공 혜경궁이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과 20년만에 만나는 장면이다.  학창시절 한중록을 읽을 때는 그런 대목을 본 기억이 없다.  그 장면이 영화 전체의 내용을 좌우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래 내가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성격이다. ^^;;  그래서 그 부분이 한중록에 없는데 대본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집어넣은 건지, 아니면 정말로 한중록에 있는데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것 뿐인지 확인하려고 한중록을 구입해서 읽었다. 

 

 

 

 

  ◎ 한중록 정병설 번역본 

 

  이번에 구입한 한중록은 정병설이라는 국문학자가 현대어로 번역한 것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정병설이라는 이름으로 검색해 보니, 조선시대 고전문학 관련하여 집필한 책이 줄줄이 나왔다.  그 중에는 한중록 혹은 사도세자 관련한 책도 몇 권 있는데, 최근 개봉한 영화 '사도' 관련한 책도 있다. (사도의 이준익 감독이 추천했다는 광고문구가 써진 띠지가 둘러진 책... ^^) 

 

  시중에 다양한 버전(?)의 한중록이 있는데, 그 중에서 정병설 번역본을 고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이 책이 지난 몇 년 동안 가장 많이 읽힌 한중록인 듯하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보는 책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별 것 아닌 책이 요란한 홍보 덕분에 많이 팔리는 경우도 있으니, 많이 팔렸다는 사실 하나 뿐이라면 이 책이 간택(?)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정적인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아래 '둘째' 참조)

  둘째, 한중록은 필사본으로 전해지는 책이라 여러 이본(異本)이 있는데, 이 책이 지금까지 발견된 거의 모든 이본을 포괄하여 가장 최근(2010년)에 새로 번역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구입하면서 처음 안 사실인데, 기존에 나와있는 많은 한중록 번역본(적어도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을 상대로 시중에 나온 번역본)은 1940년대에서 1960년대에 나온 초기 번역본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저 내용을 축약했느냐 아니냐, 혹은 단어를 좀 더 현대적으로 손보았느냐 아니냐 정도의 차이만 있는 모양이다.  한중록이란 책의 유명세를 생각했을 때, 그리고 기술의 발전으로 예전과는 다르게 고전연구 관련 자료를 보다 손쉽게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을 때, 수십 년 동안 새 번역본이 안 나왔다는 점이 정말 의외다. 

 

  한중록을 구입하기 위한 사전조사(?)차 이 블로그에 오신 이가 있다면, 이 정병설 번역본을 강추한다...!

  첫째, 내가 학창시절에 읽었던 한중록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내용이 충실하다.  완역본인데다가 여러 이본을 포괄해서 번역했기 때문에 내용이 풍부할 수 밖에 없다.  고등학교 때 읽은 것은 문고판이라 당연히 축약본이었고, 대학교 때 읽은 것은 고등학교 때 읽은 것보다는 내용이 많았지만 그래도 정병설 번역본에 없는 부분이 제법 있었다. 

  둘째, 편집 상태가 워낙 깔끔해서 가독성이 좋다.  문장 사이의 간격도 적당하고 여백도 충분해서 눈이 피곤하지 않다.  게다가 한중록 원본에는 목차라는 게 없어서, 그 긴 내용을 그대로 주저리주저리 읽으려면 독자 입장에서는 좀 난감하다.  그런데 번역자가 친절하게도 내용별로 토막을 내어 큰 목차 작은 목차 나누고, 목차별로 그 내용에 걸맞는 제목까지 붙여줬다. (친절한 금자씨... 가 아니라 친절한 정병설씨... ^^)

  셋째, 본문 말고도 많은 각주나 참고자료가 서비스로 들어가 있다. (이 부분이 가장 큰 장점!!!)  먼저 한중록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저자 혜경궁의 시각과 다른 해석이 있는 경우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라는 부가설명을 붙여준다.  객관적 사실과 다른 몇 가지 오류, 즉 어떤 사건의 발생일을 잘못 기록했다든지 혹은 어떤 사건의 원인이 한중록에 기재된 것과 다르다든지 했을 때, 일일이 출전 등의 근거를 대며 지적해준다.  그리고 혜경궁이 너무 짤막하게 써놓은 사건에 대해서는, 그 사건이 일어난 배경이나 전후상황을 따로 설명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 학창시절 접한 한중록

 

  고등학교 때 한중록을 처음으로 읽었는데(문고판으로 읽음) 그 때는 별 느낌이 없었다.

  애초에 그 때 한중록을 읽은 게, 혜경궁이나 사도세자에 큰 관심을 가졌다든지 해서가 아니다.  그저 학급문고(요즘 학교에도 이런 게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 때는 학생 한 명당 책 한 권을 헌납(?)하게 해서 각 반마다 초미니 도서관 비슷한 걸 만들어 학급문고라고 이름 붙였음.)에 다른 읽을거리가 눈에 안 띄어서 골라서 봤던 것 뿐이다.   

  그렇잖아도 '배고픈데 먹을 게 없으니 맛없는 거라도 먹자' 식의 기분으로 고른 책인데, 문고판의 특성상 내용이 많이 축약되어 있기까지 하니 더욱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하였더라' 혹은 '~~하지 않느뇨?' 식의 옛날식 문장이 너무 어색하고 눈에 거슬렀던 기억만 남아있을 뿐이다. -.-;;

 

 

  대학교 때는 문고판이 아닌 제법 두툼한 책으로 읽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흥미롭게 읽었다.

 

  우선, 사도세자의 정신질환보다는 오히려 영조의 잔뜩 꼬인 성격이 더 인상적이었다.

  한중록 속 영조가 사도세자와 화협옹주를 대하는 모습을 100% 진실이라고 본다면, 사도세자가 정신병자가 된 것은 순전히 그 아버지 영조 탓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부모가 여러 자식을 '적당한 수준'(?)으로 차별해도, 차별받는 자식은 마음에 상처를 받고 비뚤어질 수 있다.  그런데 영조는 사도세자나 화협옹주를 다른 자식들보다 차별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수준의 행태를 보였다.

  영조는 강박증과 결벽증 등 이상성격의 소유자였던 모양이다.  뭔가 더럽고 험한 일을 처리할 때면 부정탄 것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입과 귀를 씻는 버릇이 있었다.  그냥 입과 귀만 씻어낸다면야 누가 뭐라고 하겠느냐만은(오히려 자주 씻으면 위생에 좋지...), 문제는 자신의 아들딸인 사도세자와 화협옹주를 '부정탄 것 씻어내는 도구' 로 이용했다는 점이다.

  즉, 중죄인 심문 같은 험한 일을 한 후에는, 한밤중이라도 꼭 사도세자를 불러서 "밥 먹었냐?" 같은 사소한 질문 하나 툭 던지고 "네." 라는 대답을 들은 후 귀를 물에 씻어낸 다음, 그 물을 화협옹주 처소 담벼락에 내버리게 했다.  마치 사도세자는 영조의 몸에 붙은 더러운 것을 닦아내는 휴지이고, 화협옹주는 그 휴지를 내버리는 쓰레기통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일을 수시로 겪고 자란 사람이 구김살 없이 반듯하게 자라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어린 혜경궁이 인간의 간사함을 느끼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혜경궁이 세자빈으로 결정되자 혜경궁네 집안은 손님으로 미어터질 지경이 된다.  원래 가깝게 지내던 친척이야, 혜경궁이 궁에 들어가면 다시 보기 힘들테니 작별인사를 하러 찾아오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평소에는 찾아오지도 않던 친척까지, 이제 곧 세자빈이 될 혜경궁에게 눈도장(!) 한 번 받아보겠다고 줄줄이 방문한다.

  그 중 최강적(!)은 혜경궁의 재종조부(혜경궁 할아버지의 사촌)다.  이 양반은 혜경궁이 그 때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혜경궁네 집안과 왕래없이 지냈다.  혜경궁네가 별 볼 일 없이 지낼 때는 그렇게 뜸하더니만, 막상 혜경궁이 미래에 왕이 될 세자와 결혼한다고 하니 찾아와서는 "제 이름이 000니 궁에 들어가시면 생각해주옵소서." 라고 한다.  평소에는 전혀 신경 안 썼던 10살짜리 손녀뻘 되는 꼬맹이에게 '제발 저 좀 기억해주세요.  당신이 출세했으니 저한테도 떡고물 좀 나눠주셔야죠.  어쨌거나 우리는 친척이잖아요.' 하며 청탁을 한 것이다. (뭐 이딴 재수없는 영감탱이가 다 있나...! -.-;;) 

 

 

 

  ◎ 새로 읽은 한중록(정병설 번역본) 

 

  학창시절에 읽었을 때는 사도세자의 비극에 초점을 맞춰 봤다.

  아무래도 사도세자 이야기가 우리나라 사극의 단골 소재다 보니 그쪽으로 관심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알고 보니, 대학 때 읽은 한중록도 고등학교 때 읽은 한중록처럼 완역본이 아니라서 사도세자가 나오는 부분 이외에는 부실했던 것 같다. (물론 고등학교 때 읽은 문고판과는 비교가 안 될만큼 내용이 충실한 편이었지만.)  이번에 정병설 번역본 한중록을 보니 과거에는 못 봤던 듯한 대목이 제법 나왔다.  그래서 더욱 사도세자 이야기 이외의 부분에는 큰 관심을 못 가졌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한중록을 읽으니, 사도세자 부분보다는 오히려 혜경궁의 아버지 홍봉한 부분이 더 흥미진진했다. 

  내가 너무 딴지 거는 독자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중록 속 홍봉한에 대해서 혜경궁이 서술한 것과 반대 방향으로 생각하게 된다.

 

  일단, 혜경궁이 홍봉한에 대해 한중록에 써놓은 것을 보면 어마어마하다.

  시집간 여자들은 원래 다 친정부모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품게 된다지만, 특히나 혜경궁은 아버지에 대해 절절했다.  혜경궁이 사도세자 문제로 온갖 풍상을 겪으며 마음고생을 할 때, 친정아버지가 항상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평범한 부녀 관계를 떠나서, 함께 파란만장한 삶을 헤쳐나간 둘도 없는 동반자 같은 감정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중록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천재 수준의 
학식을 지니고 있고 성인 수준의 인격을 갖추고 있는, 도무지 평범한 인간 같지 않은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아버지가 척신(외척 출신 신하)이라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척신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름을 떨쳤을 거라는 대목도 나온다.  그것도 몇 번이나 반복해가면서 말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홍봉한이란 인물이 그 정도로 대단한 것 같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홍봉한이 형편없는 인물이란 뜻은 결코 아니다.  홍봉한은 영조의 측근 관료로서 영조의 이런저런 명령을 받들어 여러 공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러니 홍봉한이 보통 이상의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혜경궁이 한중록 안에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정도로 대단한 것 같지는 않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반에서 1등을 한 아이가 우수한 학생이라는 것은 맞는데, 반에서 1등 한 것 가지고 자꾸 천재니 영재니 하는 건 지나치다는 뜻이다. ^^;;

 

  일단, 홍봉한이 과거에 합격하게 된 과정을 보면 부정합격의 냄새가 솔솔 풍긴다. 

  홍봉한은 23세에 소과에 합격했다.  그러나 실력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시험운이 없었는지, 3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대과는 번번히 낙방했다.  결국에는 생계 문제 때문이었는지 음보(음서)로 참봉(왕릉을 관리하는 말단 관리)이 되었다.

  그랬던 홍봉한이, 딸 혜경궁이 사도세자와 결혼한 바로 다음 해에 대과에 합격했다...!  10년간 불합격하던 선비가 왕과 사돈이 된 후 별안간 합격하다니, 이게 과연 순수하게 자신의 능력으로 합격한 게 맞을까?

 

  게다가 합격 후의 승진과정을 봐도 결코 정상이 아니다.

  합격한 그 해에는 비교적 평범한(?) 직책인 사관에 임명되었는데, 바로 다음 해 광주 부윤으로 승진했다.  문제는 이 부윤이란 자리가 사극에 흔히 나오는 어느 작은 고을의 사또가 아니라는 점이다.  부윤은 지방의 몇몇 주요도시인 부(府)의 수장으로, 자그마치 관찰사(지금의 도지사)와 같은 품계인 종2품의 관직이다.  요즘으로 치면 도지사와 동급인 특별시장이나 광역시장에 해당하는 고위직인 셈이다.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기 전의 관선시장 시절에 비유하자면, 작년에 막 행정고시 합격한 왕초짜 공무원이 겨우 1년 지난 올해에 벌써 대전광역시장에 임명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   

  이런 벼락승진이 현대인의 눈에만 이상해 보였던 게 아니라서, 당시에도 조정신하들이 너무 지나친 인사라고 비판하며 나섰다.  하지만 영조는 붕당 간의 치열한 정쟁을 막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방책으로 외척 출신 신하들을 측근세력으로 키웠던 왕이다. (홍봉한의 대과 합격부터, 홍봉한을 측근세력으로 키우려는 영조의 의도가 반영된 부정합격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솔솔 피어나는...)  그런 영조이니만큼 홍봉한의 벼락승진에 대한 비판여론 따위는 무시하고 자신의 뜻을 밀어붙였다.  그렇게 홍봉한은 영조의 비호 속에서 단기간에 조정 권력자로 부상했다.

 

  그리고 홍봉한이 사리사욕 없는 인물이라고 혜경궁이 애써 강조하는 부분도, 내 눈에는 삐딱하게만 보일 뿐이다.
  사도세자의 정신질환이 심각해지면서 동궁전은 경제난(!)을 겪게 되었다.  그 때 홍봉한이 비밀리에 몇 번이나 경제적 지원을 해주어서 혜경궁은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혜경궁은 아버지가 워낙 청렴결백한 인물이라 따로 모아놓은 재산도 없고, 이런저런 관직을 역임할 때도 다른 공직자처럼 관청의 재물을 사적으로 내다쓰지 않아 재정을 넉넉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그런 홍봉한이 어디에서 어떻게 마련했는지, 매번 혜경궁이 재정부족으로 힘들어할 때면 재물을 대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어디에서 어떻게 마련했는지' 가 문제다.  애초에 집안에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라면서, 그렇다고 홍봉한이 도깨비 방망이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동궁전 살림에 보탤 재물을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마련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답은 뻔하다.  대놓고 뇌물을 받든지, 아니면 소위 대가성 없는 기부금이라는 것이라도 받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물론 혜경궁이 아버지를 좋게만 쓴 것이 전혀 이해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일단 그 시대에는 효라는 관념이 워낙 절대적이라, 자식이 부모의 허물을 입에 올리는 게 죄악시되었다.  더구나 혜경궁은 사도세자의 일로 항상 애쓰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하나의 이데올로기처럼 '판에 박힌 부모의 은혜' 가 아니라 '진정한 부모의 은혜' 를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그렇잖아도 자기네 부부 때문에 여러가지로 노심초사하던 아버지였는데,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재물까지 조달해주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아버지의 청렴결백함을 한두 번 언급했더라면, 혜경궁의 특수한 상황을 생각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과도한 칭찬을 몇 번씩이나 반복하고 있으니 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혜경궁도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인데, 아버지가 재물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고 해서 그 재물을 어떻게 조달했는지 전혀 짐작 못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꼭 그렇게까지 거듭 강조해야 하는 건지...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 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전에는 홍봉한이란 인물에 대해 전혀 신경 안 썼더랬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이렇게 한중록의 조연(?) 밖에 안 되는 홍봉한에게만 눈길이 가던지...  그것도 따뜻한 눈길이 아닌 삐딱한 눈길... ^^;;  좋게 말하면 과거에 비해서 나름 비판적인 안목이라 할 만한게 생겼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보다는 더 이상 무언가를 보고 들을 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수함을 잃고 의심부터 하게 된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는데, 혜경궁의 과도한 칭찬에 짜증이 나서 필요 이상으로 홍봉한에게 시비거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잖아도 고전문학 특유의 과장된 수사법(예를 들면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거룩한 은혜' 같은 거창한 문장)이 거북한데, 그런 수사법으로 몇 번이나 같은 칭찬을 늘어놓은 것을 읽다 보니 나중에는 울컥 화가 치밀었다. (이 독자 참으로 난감한 독자로세... -.-;;)

 

 

  어쨌거나 포스트 앞부분에 쓴 것처럼, 이 정병설 번역본 한중록은 다른 이에게 읽어보라고 추천할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최근 개봉작인 영화 '사도' 를 볼 예정인 사람이라면 먼저 이 책을 읽고서 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중록을 먼저 읽고서 그 영화를 보면 영화를 이해하고 즐기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인원왕후가 숙원 문씨를 벌한 일 때문에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양위하겠다며 분란을 일으키는 부분은, 정병설 번역본에 따로 실린 보충설명을 읽고 나서 보면 '오~ 그 내용을 저렇게 각색하다니, 개연성 넘치는 상상력이군!' 하며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게 된다. ^^ 

 

 

2015 사도세자, 혜경궁(2) - 단막극 '붉은 달'(http://blog.daum.net/jha7791/15791235)

2015 사도세자, 혜경궁(3) - 사도 / 혜경궁 홍씨(DnC Live)(http://blog.daum.net/jha7791/1579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