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늦바람 - 예민의 노래에 빠지다.

Lesley 2015. 7. 28. 00:01

 

 

예민의 1집 앨범 자켓.

(1집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아니지만, 앨범 자켓 디자인은 제일 마음에 듦. ^^)

 

 

  벌써 한 달 넘게 '예민' 의 노래에 푹 빠져 살고 있다. (풍덩~~ 허우적~~)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지금 내가 딱 그 꼴이다.  정작 남들이 예민 노래 좋아라 할 때는 그런 가수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예민의 앨범 5개를 한꺼번에 다운받아 주구장창(!) 들을 만큼, 예민의 노래에 빠진 것이다...!

 

  그런데 예민의 노래에 심취한 계기가 좀 황당하다.

  지난 6월 미국에서 어떤 백인우월주의자가 흑인교회에 침입해 총기를 난사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그 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추도식에 참석해서 'Amazing Grace' 를 불러서, 미국 뿐 아니라 우리나라 등 외국에서까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실은 오바마도 Amazing Grace도 예민과 아무 상관이 없건만, 어째서인지 그 동영상을 보고나니 별안간 예민의 노래가 떠올랐다.  그래서 한동안 외장하드에 넣어두고 안 들었던 예민 노래 두 곡을, 다시 MP3 플레이어와 스마트폰에 옮겨 넣어 듣게 되었다.  그런데 듣다 보니 삘(!)을 받아서 그 날로 예민 앨범을 줄줄이 다운받게 된 것이다. (오래간만에 음악에 돈 좀 썼지요~~ ^^;;)

 

  예민의 노래 중 제일 먼저 알게된 것이 '아에이오우' 다.

  중학교 시절, 방송반에서 학생들에게 신청곡을 받아서 점심시간마다 틀어줬다.  언젠가 이승철의 '소녀시대' 를 틀어줬다가, 학생들이 점심 먹다 말고 말 그대로 집단광란(!) 상태에 빠져든 일도 있었다.  그래서 단단히 뿔이 나신 교장선생님이 댄스곡 신청받는 것을 금지하셨더랬다. ^^;;

  어쨌거나 우리 학생 뿐 아니라 선생님들도 가끔 신청곡을 적어내곤 했는데, 어느 날 음악 선생님의 신청곡으로 나온 것이 '아에이오우' 였다.  선생님 스스로가 음악을 가르치는 입장이다 보니, 노래 내용(어떤 학교 담장 너머로 들려오는 음악 소리를 들으며 어린 시절 선생님 오르간 반주에 맞춰 아에이오우 발성연습을 하던 추억을 떠올린다는 내용)이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다.  남자 가수 목소리도 좋고, 멜로디나 가사도 발랄하면서 따뜻한 느낌을 줘서 좋았다.  하지만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고,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서야 예민의 노래를 또 하나 알게 되었는데, 바로 '산골소년의 사랑 이야기' 다.

  이 노래는 예민 노래 중 처음으로 알게 된 곡은 아니지만, 나에게 예민이란 가수의 존재를 처음으로 각.인.시.킨. 곡이다.  이 노래를 알고난 후에야 '아에이오우' 도 예민의 노래인 줄 알게 되었다.  '산골소년의 사랑 이야기' 는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 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가사 내용에, 서정적인 노래 분위기까지 겹쳐서, 듣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며 차분히 가라앉곤 했다.

  그래서 그 후로 '산골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종종 들었는데...  어째서인지 '산골소년의 사랑 이야기' 와 '아에이오우' 만 반복해서 들었을 뿐, 예민의 다른 곡을 찾아서 들을 생각은 전혀 안 했다. (왜 그랬을까? 갸우뚱~ 아리송~)

 

  그러던 중, 오바마의 동영상을 보고서 충동적(!)으로 예민의 앨범을 한꺼번에 다운받게 된 것이다.

  노래를 한 번씩 듣고나니, 이런 좋은 곡들을 왜 지금까지 못 들었나 안타까운 생각이 들 정도다.  보통은 내가 좋아하는 가수라도 그 가수의 노래 전부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두어 번씩 들어보고 내 취향에 맞는 곡 몇 개만 골라서 반복해 듣게 된다.  그런데 예민 노래 중에서는 걸러낼 게 별로 없다.

  그리고 5개의 앨범 중 겹치는 곡들이 여러 개 있다.  즉,  같은 곡이 보컬 버전과 연주 버전으로 나뉘기도 하고, 아니면 반주의 편곡을 달리해서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겹치는 곡 모두, 이 곡은 이래서 좋고 저 곡은 저래서 좋다. ^^ 

 

 

2007년에 나온 5번째 앨범이자, 지금으로서는 마지막 앨범.

(그 동안 발매한 곡을 모아 편곡을 새롭게 한 특별판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앨범임.)

 

 

  '아에이오우' 와 '산골소년의 사랑 이야기' 외에, 특히 괜찮은 것들을 소개하자면... 

 

  먼저 '서울역' 이 있다.

  서울역에서 연인을 기차에 태워 떠나보낸 사람의 슬픔을 잔잔하게 노래한 곡이다.  남자 가수가 부른 곡이건만, 노래 속 주인공은 여자인 듯하다. (물론 남자라고 해서, 가사에 나오는대로 손수건에 얼굴 파묻고 울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

  이 노래를 들을 때는 예전 서울역을 떠올려야 노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새로 지은 서울역(유리로 떡칠 해놓은 지금의 서울역)을 생각하며 들으면, 노래 속 가사와 분위기에 전혀 공감할 수 없다. -.-;;  지금 생각해 보면, 옛 서울역에서 기차가 운행할 때만 해도 누군가를 마중나온 또는 배웅나온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스마트폰 몇 번 두들기면 초행길도, 갈아탈 버스나 전철도 쉽게 알아낼 수 있는 세상이 되어서 그런지, 누군가를 마중하거나 배웅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편리함의 대가로 정을 잃어버리다니... ㅠ.ㅠ) 

  그리고 매번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인데, 단편영화 '민우씨 오는 날'(문채원, 손숙 주연)의 배경음악으로 쓰면 딱 맞을 것 같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주인공이 남편을 배웅하던 장면 속 장소를 집앞 골목길이 아닌 서울역으로 바꾸고 이 노래를 깔아준다면 참 잘 어울릴 것이다.  

 

  '빛나호' 는 웬 인공위성 이름 비슷한 제목인가 했는데(아리랑호의 사촌 정도 되는...), 알고 보니 배 이름이다.

  외딴 섬마을에 사는 '빛나' 라는 아이의 아버지가, 딸(설마 '빛나' 란 이름이 남자아이 이름은 아니겠지... ^^;;)의 이름을 딴 빛나호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러 다닌다는 사연이다.  아버지와 딸이 나오는 것도 그렇고, 아버지 직업이 어부라는 것도 그렇고, 얼핏 들으면 미국노래 '클레멘타인' 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 노래에서는 딸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없으니, 클레멘타인에 나오는 부녀에 비하면 빛나 부녀는 훨씬 행복한 셈이다.

  그리고 이 노래에는 특이하게도 '얄리 얄리 얄리셩' 하며 고려가요 '가시리' 의 후렴구가 나온다.  처음에는 여자 목소리로 나즈막하게 읊조리는 가사를 알아듣지 못 했는데, 인터넷을 뒤져 가사를 찾아보니 '얄리 얄리 얄리셩' 이었다.  오~ 가시리 일부분을 여기에서 듣게 될 줄이야!

 

  '마술피리' 는 예전에 '더 클래식' 이 불렀던 '마법의 성' 처럼 몽환적인 가사와 분위기를 지닌 노래다.

  원하는대로 어디든 갈 수 있고, 심지어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게 해주는 마술피리에 관한 노래다.  듣다 보면, 따사로운 햇살 아래 푸른 초원 위에서 손을 맞잡고 뛰어다니는 소년과 소녀가 절로 떠오른다. (소년과 소녀가 입은 옷은 알프스풍이면 딱일 듯... ^^)

 

  '유년의 언덕과 바람, 키요라' 는 처음에는 그냥 그랬는데 몇 번 들어보다가 좋아하게 된 곡이다.

  처음에는 '키요라' 가 사람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어느 나라 이름인가 했다. (어쩐지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이름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  그런데 뉴질랜드의 원주민 언어로 '안녕하세요, 건강하세요' 라는 뜻이라고 한다.  어째서 그 말이 노래 제목에 들어갔는지는 모르겠다.  혹시 예민이 이 노래를 뉴질랜드에 머물면서 작곡한 건지 어떤 건지...  하여튼 이 노래도 두 가지 버전으로 번갈아가며 듣는데, '산골소년의 사랑 이야기' 만큼이나 무서운(!) 중독성이 있다. ^^

  내가 예민의 노래 중 처음으로 좋아했던 '산골소년의 사랑 이야기' 에는 후속곡이라 할 수 있는 노래가 있다. '산골소년의 사랑 이야기'  속의 소년이 성장한 후에 유년시절 소녀와의 기억을 떠올리는 내용을 담은 '기억속에, 그 애가 있었네' 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유년의 언덕과 바람, 키요라' 가 '산골소년의 사랑 이야기' 후속편으로 느껴진다.  

 

  위에 소개한 곡은 전부 잔잔하고 따뜻한 느낌의 곡인데, 그렇다고 예민 노래가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새벽 빛자루들의 춤'(이건 연주곡임.)'농부의 들녘', '식물원 가는 길' 등은 무척 발랄하고 경쾌한 느낌의 곡이다. 

 

  올해 상반기 내내 나의 총애를 듬뿍 받았던 S.E.N.S.의 곡과 드라마 '한성별곡'의 OST는 이제 안녕이다~~~!

  올여름은 지금까지 예민의 노래와 함께 보냈고, 남은 여름 역시 예민의 노래와 함께 하게 될 듯하다.  더운 여름을 이런 산뜻한 음악과 함께 하니 불쾌지수가 조금은 낮아지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