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새

Lesley 2015. 6. 16. 00:01

 

  지난 토요일, 아파트 화단에 나타난 새끼새 한 마리가 주민들 사이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포스트를 쓸 때에는 어떤 새인지 몰랐는데, 댓글을 보고서 '산까치' 라는 것을 알았음! ^^)

 

  내가 사는 곳은 서울치고 공기가 깨끗해서 여러 종류의 새를 볼 수 있다.

  아파트 단지가 자그마한 산 바로 밑에 있는데다가, 가까운 곳에 구 안기부 청사가 있었던 탓에 이 지역이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여러가지로 건축 규제가 심했기 때문이다.  안기부 덕분에 환경이 깨끗이 보존되었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하여튼 서울치고 자연환경이 꽤 괜찮다.  그래서 참새, 비둘기, 까치 같이 서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새 말고도, 이름 모를 예쁜 새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심지어 몇 년 전부터는 까마귀까지 까악까악거리며 무리지어 날아다녀서 '전설의 고향' 분위기를 자아내는... ㅠ.ㅠ)

  하지만 새를 자주 보기는 해도 가까이에서 볼 일은 거의 없다.  베란다 너머 나무에 앉아있는 모습, 혹은 베란다 밖 화분 받침대에 햇볕에 쪼이려 내놓은 콩이나 깨를 몰래 먹는 모습 등 어느 정도 떨어진 상태에서만 보곤 했다.  아무래도 야생동물이라 사람을 경계해서, 신기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서려면 도망쳐버리기 일쑤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미용실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가 별 생각없이 시선을 내렸더니 바로 앞에 웬 자그마한 새가 보였다.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아파트 화단 앞에 난 돌바닥으로 된 길 위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것을 보니, 신기하다는 생각 보다는 좀 어이없다는 생각에 웃음이 다 나왔다.  처음에는 돌바닥 위에서 먹이라도 찾나 보다 했는데, 바로 앞까지 가도 눈만 깜빡이며 가만히 있는 게 아닌가!  다른 새라면 사람이 다가서면 얼른 날아갔을 것이다.  가까이서 보니 가슴과 배에 노란 솜털이 가득한 게 새끼새가 분명했다.  아직 나는 법도 제대로 모르는지 앙증맞게 통통 뛰어서 화단의 경계를 이루는 평평한 바위 위로 올라갔다.

 

 

(왼쪽) 어깨와 등 윗부분은 솜털로 덮여있음. (옛날 비옷인 도롱이를 입은 것 같음. ^^)

(오른쪽) 사진 찍을 때는 몰랐는데, 머리에 밤색 줄무늬가 여러 개 나있음. 

 

 

  아무래도 화단 주변의 큰 나무 어딘가에 있는 둥지에서 떨어진 듯했다.

  행여나 지나가는 어린이 또는 강아지에게 해코지 당할까봐 걱정이 되는데, 그렇다고 뭘 어떻게 해줄 수도 없었다.  일단 이 녀석의 둥지가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고, 또 둥지 위치를 알아낸다 한들 내가 둥지로 올려다줄 재주가 있을 리도 없고...  집에 데려가서 동물보호협회 같은 곳에 연락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기는 했는데, 전에 어디선가 '혼자 있는 새끼새 근처에는 어미새가 있으니, 괜히 다른 곳에 데려가지 말고 어미새가 데려갈 수 있게 두는 게 낫다.' 는 글을 읽은 것 같기도 했다. 

 

  고민하다가 녀석이 따가운 햇살 때문에 지친 것 같아서, 일단 집에 가서 물이라도 가져올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내가 집에 간 사이 무슨 일이 생길까봐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실제로 내가 새 앞에 있는 동안에도, 아파트 주민이 데리고 나온 푸들 한 마리가 새를 보고 킁킁거리는 일이 있었다.  개가 딱히 공격하는 태도를 보인 것도 아니고 새끼새 몸에 코를 가져다 댄 것도 아니건만, 새끼새가 어지간히 놀랐는지 머리 위의 보송보송한 솜털을 고양이털처럼 바짝 치켜세웠다. (무서운 상황에 처했을 때 어째서 '머리카락이 쭈뼛 서다' 라고 말하는지 아주 제대로 공부했음. -.-;;)   

 

 

앞모습을 보면 어린티가 더 많이 남.

(깃털이 제법 난 날개랑 꼬리와는 달리, 앞부분은 온통 솜털.) 

 

 

  그 때, 등산복 차림으로 지나가던 연세 지긋한 아줌마가 새를 보셨다.

  너무 예쁘다고 감탄하면서 새 종류가 뭐냐고 물어보시는데, 내가 알 리가 있나... ^^;;  둥지에서 떨어진 것 같다고 했더니, 딱해하면서 자리를 못 뜨고 계속 쳐다보셨다.  그러더니 나에게 계속 지켜보고 있으라고 하고 댁으로 가서 물과 생쌀을 가져오셨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쌀은 입에 대줘도 못 먹었지만, 다행히도 물은 몇 번이나 마셨다.  부리로 물을 머금고 고개를 하늘로 쳐들어 목구멍으로 넘기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  아줌마도 새가 물을 삼킬 때마다 "아유, 예뻐라~~  우리 애기(!) 많이 마셔~~" 하며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하셨다.

  나중에는 아줌마의 딸과 손자까지 새를 보러 출동하고, 우리가 그러고 있는 것을 보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궁금해하며 몰려들어 다 구경하고...  그 와중에 야생새 근처에 가면 조류독감 걸린다고 말씀하신 할아버지도 계셨다. (아이고, 할아버지~~  요즘 같아서는 우리 인간 근처에 있다가 메르스 걸릴까봐 새들이 무서워할 것 같은데요... -.-;;)

 

  그 때 어미새가 나타났다.

  물론 그 새가 "내가 얘 엄마다~~" 한 것은 아니다. ^^;;  하지만 생긴 모습 하며, 날개와 꼬리의 깃털 색깔 하며, 어미가 틀림없었다.  어미새는 새끼새가 있는 화단의 나무에 앉아서 짹짹거렸다.  아마 새끼가 둥지에서 사라진 걸 그제야 알고 찾아나선 모양인데, 사람들이 새끼 근처에 우글거려서 접근하지 못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새끼새가 스스로 날지도 못 하고(아예 못 나는 건 아닌데 겨우 1미터 정도 날더니 불시착. ㅠ.ㅠ), 또 어미새가 개나 고양이처럼 새끼를 입으로 물어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 옆에서 구경하시던 할머니 말씀처럼, 38선 사이에 둔 이산가족처럼 서로 손도 못 잡고 쳐다만 보는 상황이었다. 

 

  누구는 경비실에 연락하자는 둥 누구는 119에 전화하자는 둥 모두 설왕설래하고 있었는데...

  어찌어찌하여, 새를 화단 안쪽으로 옮겨 다른 사람이나 동물 눈에 안 띄게 하고, 나머지는 어미새에게 맡기는 것으로 결정났다.  혹시 몰라서 물과 생쌀은 새끼새 근처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모자(혹은 모녀? 아니면 부자나 부녀? ^^;;)가 안심하고 상봉할 수 있게 우리는 전부 그 자리에서 떠나는 것으로 1시간 남짓한 작은 사건은 종결~~!  뒷걸음 치면서 보니, 사람들이 멀찍히 떠나자 어미새가 새끼새 가까이 날아갔다.

 

 

지금도 이리 자태가 빼어나거늘, 장성한 후의 미모가 기대되는구나~~!

 

 

  어둑어둑할 때 집으로 돌악가면서 화단을 둘러보니, 녀석은 안 보이고 물과 생쌀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낮에 본 모습으로 보아서는, 제 힘으로 날아서 둥지로 돌아갔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면 어미새가 사람들 눈에 안 띄게 화단 한 구석에 숨겨놓았는지 어떤 건지...  부디 녀석이 솜털이 깃털로 변해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을 때까지, 둥지든 어디든 안전한 곳에서 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다른 새들처럼 가끔 우리집 베란다 앞 나무나 베란다 화분 받침대에서 모습을 보여주면 더욱 좋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