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찔레꽃 - 임형주, 이연실, 장사익의 노래 / 고려 공녀의 한이 서린 꽃

Lesley 2015. 5. 14. 00:01

 

  작년까지만 해도, 찔레꽃이라는 게 어떻게 생긴 꽃인지 몰랐고 또 관심도 별로 없었다.

  그저 소설 등에서 종종 찔레꽃이라는 꽃 이름을 접하면서 '그런 꽃이 있구나.' 하고 말았는데...  작년에 임형주가 부른 찔레꽃이란 노래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찔레꽃이 어떤 꽃이지?' 하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형체는 모른 채 노래로 먼저 다가온 찔레꽃이 꼬리에 꼬리를 잇는 식으로 나와 얽히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5월이 되자 활짝 피어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찔레꽃.

(폰카 성능이 왜 이 모양인가... 꽃잎이 겹쳐 보이네... ㅠ.ㅠ)

 

 

  내가 자주 산책 나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찔레꽃나무가 모여 있는 화단이 있다.

  교정과 주택가를 나누는 붉은 벽돌로 된 담벼락을 따라 제법 많은 꽃나무가 늘어서 있다.  그래서 매년 5월 즈음해서 노란 꽃술을 단 하얗고 작은 꽃들이 잔뜩 피어나곤 했다.  하지만 나란 사람이 그런 쪽으로 워낙 무심해서 별 생각없이 지나쳤다.  그러다가 작년 이맘 때야 우연히 꽃나무 아래에 있는 꽃 이름이 써진 팻말을 보게 되었는데, 그 작고 하얀 꽃들이 바로 찔레꽃이었다...! ^^;;

 

 

 

  자, 그러면 여기서 찔레꽃을 소재로 한 노래를 몇 개 소개하자면...

 

 

  먼저 나로 하여금 찔레꽃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해준, 임형주의 '찔레꽃' 노래가 있다. 

 

1.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 배고픈 날 하나씩 따먹었다오 /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2.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 하얀 발목 아프게 내려 오시네 /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꿈 / 산등성이 넘어로 내려 오시네

3.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우는 밤 / 초가집 뒷산길 어두워질 때 /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찔레꽃의 소박하고도 연약한 모양새를 보니, 임형주가 부른 찔레꽃 가사가 더 마음에 와닿았다.

  시골 마을의 어떤 아이가 일 나간 엄마를 집에서 혼자 기다리는 마음을 읊은, 따뜻하면서도 애잔한 내용의 가사다.  그런 가사에 임형주 특유의 미성까지 더해지니 더욱 서정적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이 노래가 리메이크곡을 모은 앨범에 실려 있고, 또 전에 몇 번 들은 것처럼 귀에 익었다.  그래서 원곡이 따로 있는지 알아봤는데...

 

 

  원곡은 1970년대에 이연실이란 가수가 부른 '찔레꽃' 이다.  

 

1.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2.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  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꿈 / 산등성이 넘어로 흔들리는 꿈

3. 엄마 엄마 나 죽거든 앞산에 묻지 말고 / 뒷산에도 묻지 말고 양지쪽에 묻어주 / 비 오면 덮어주고 눈 오면 쓸어주 / 내 친구가 날 찾아도 엄마 엄마 울지 마

4. 울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 기럭기럭 기러기 날아갑니다 / 가도 가도 끝도 없는 넓은 하늘을 / 엄마 엄마 찾으며 날러갑니다

5.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우는 밤 / 시골집 뒷산길이 어두워질 때 /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 마루 끝에 나와앉아 별만 셉니다

 

  '가을밤' 이란 동요의 멜로디를 가져와 가사를 새로 붙여서 불렀다는데, 임형주의 찔레꽃보다 길다. 

  이연실의 찔레꽃 중 1, 2, 5절이 임형주의 찔레꽃 가사에 해당한다.  가사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슷하다.  즉, 일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시골집 어린 아이의 마음을 노래한 것이다. 

 

  그런데 이연실의 찔레꽃 중, 임형주의 찔레꽃에는 빠진 3절과 4절 가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이 노래 속 아이는 이미 죽은 아이다...! ㅠ.ㅠ  임형주의 찔레꽃만 들으면, 그저 아이 혼자 집에 남아 엄마가 언제 돌아올 지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기다리는 내용인데...  이연실의 찔레꽃을 들으면, 그 아이는 엄마에게 아이답지 않은 조숙한 유언까지 남기고 죽었다.  그런데 죽어서도 엄마를 그리워하며 영혼이나마 날아다니며 엄마를 계속 찾고 기다린다는 내용이다.

  맨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앉아 별만 셉니다.' 라는 부분은, 임형주 버전으로 듣느냐 아니면 이연실 버전으로 듣느냐에 따라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  전자라면 그저 아이가 밤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마루에 앉아 기다린다는 내용이 되지만, 후자라면 아이의 영혼이 생전에 살던 집 마루에서 엄마를 기다린다는 내용이 된다. 

  내가 삭막한 세상 살면서 감성이 부족해진 건지 어떤 건지...  이연실의 찔레꽃을 듣고 나니 노래 속 아이가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무섭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앞으로 어두컴컴 할 때 혼자서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산책 겸 운동 나가면, 찔레꽃 근처로는 감히 못 갈 것 같다. ㅠ.ㅠ 

 

  그리고 3절의 멜로디만 다른 부분과 다르게, 미국 노래인 클레멘타인(Clementine)의 멜로디를 쓰고 있다.

  마침 클레멘타인이 아버지와 죽은 딸의 사연을 노래한 것인데, 찔레꽃도 엄마와 죽은 아이(클레멘타인과 다르게 아들인지 딸인지는 모르겠지만)의 사연을 노래한 곡이다.  다만, 클레멘타인이 죽은 딸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부른 노래라면, 찔레꽃은 거꾸로 죽은 아이가 엄마를 기다리던 옛 추억을 되새기거나 혹은 몸은 무덤 속에 있지만 영혼은 살아있을 때처럼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는며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95년에 장사익이 발표한 찔레꽃이 있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이연실이나 임형주가 부른 찔레꽃처럼 구체적인 사연을 담은 노래는 아닌데, 역시 슬픈 감성을 지닌 노래다.

  아니, 이 노래에서는 아예 찔레꽃에 어떤 사연이 담겨 슬픈 게 아니라, 찔레꽃 그 자체가 슬프고 서럽다고 나온다. 

 

 

 

  이쯤 되니, 어째서 찔레꽃을 소재로 한 노래는 전부 구슬픈 건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찔레꽃의 꽃말부터 찾아봤는데, 꽃말부터 슬프다. (그래서 찔레꽃 노래는 다 슬픈가...)  

  찔레꽃 꽃말은 고독, 신중한 사랑, 가족에 대한 그리움, 자매간의 우애, 외로움 등 다양한데, 대체적으로 서글픈 꽃말이다.  다만, 찔레꽃 꽃말 중 '자매간의 우애' 만은 따뜻한 말이지 서글픈 말이 아니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는데... 

 

  찔레꽃과 고려시대 공녀에 얽힌 전설을 알고 나면, '자매간의 우애' 라는 꽃말이 찔레꽃의 또 다른 꽃말인 '가족에 대한 그리움' 과 겹쳐져 슬픈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고려시대에 어떤 산골 마을에 병든 홀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찔레-달래 자매가 있었다.  당시 고려는 원나라에게 눌려지냈기 때문에(즉, 역사책에서 '원 간섭기' 라고 부르던 시절이라서), 매년 고려 처녀들을 원나라에 공녀로 바치곤 했다.  그런데 그만 이 자매가 공녀를 차출하던 관리들 눈에 띄게 되었다.  언니 찔레는 자매가 모두 원나라로 끌려가면 병든 아버지는 누가 돌보느냐며, 동생 달래만은 공녀에서 빼달라며 관리들에게 사정했다.  그래서 찔레 혼자 공녀로 떠나게 되었다.

  찔레는 원나라에서 고향과 가족을 너무 그리워하다가 병에 걸려 앓아누웠고, 찔레의 주인은 그런 찔레를 딱하게 여겨 고향으로 보내주었다.  그렇게 10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왔건만, 찔레를 기다리는 건 엄청난 비극이었다.  아버지는 큰딸이 원나라로 끌려갔다는 소식에 목을 매어 자살해버렸고, 달래는 언니와 생이별 한 것으로도 모자라 아버지마저 잃게 되자 그만 미쳐서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찔레는 행방은 고사하고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동생을 무작정 찾아 헤매다가, 결국 산길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 

  찔레가 죽은 그 자리에 피어난 꽃이 바로 찔레꽃이고,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했던 마음이 찔레꽃 향기로 남았다고 한다.  정말 장사익의 찔레꽃에 나오는 가사대로, 찔레꽃 향기가 너무 슬퍼서 목놓아 울고 밤새워 울만한 사연이다. 

 

 

 

  그리고 이건 무척 의외였는데, 찔레꽃이 들장미라고 한다!

 

  나는 여지껏 들장미라는 게 우리가 흔히 보는 장미와 똑같이 생긴 줄 알았다. -.-;;

  그저, 똑같은 개라도 집에서 키우면 애완견이고 주인 없이 야생 생활을 하는 개를 들개라고 하는 것처럼, 장미도 집이나 화원에서 키우면 그냥 장미라고 하고 들판에서 자라면 들장미라고 하는 줄 알았다.  이런 잘못된 지식의 원천(?)은 바로 예전에 읽은 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 다.  만화책 표지 한가운데에 캔디와 다른 등장인물이 있고 그 주위에 장미 몇 송이가 있어서, '들장미 = 야생에서 피는 장미'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찔레꽃이 들장미였다니...  찔레꽃도 장미라서 일반 장미처럼 줄기에 가시가 있기 때문에, 줄기를 만질 때 조심하지 않으면 찔린다고 한다.  꽃은 일반 장미보다 훨씬 작고 연약하고 생겼던데, 그 밑에 가시를 숨기고 있었다니...  역시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