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연락하지 말자던 사람이 계속 연락하는 심리는 뭘까?

Lesley 2015. 2. 3. 00:01

 

  원래 이 글은 지난 연말에 쓴 것이다.

  그런데 한해를 마무리 짓거나 새해를 시작하는 글로는, 너무 꿀꿀한(!) 사연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연말연시 분위기가 가신 지금에야 올린다.  하지만 막상 올리려니, 그 동안 내가 올렸던 글 중 어떤 것과도 비슷한 구석이 없어서 역시 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마음을 정리하는 뜻에서 주저리주저리 써보겠다.  심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글을 쓰다 보면 복잡한 내용이 차곡차곡 정리가 되어 마음이 어느 정도 편해지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차피 여기는 내 블로그니, 비도덕적이거나 불법적인 내용만 아니라면 신세 한탄을 하든 뭐를 하든 내 마음이다~~!)

 

 

 

  재작년 여름에, 인간관계에서 큰 문제를 겪었다.

  어차피 우리가 겪는 문제 상당수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러니 어지간한 문제라면 굳이 블로그에 올릴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이미 1년 반 전에 있었던 일을, 지금에 와서 새삼스레 포스팅하는 것도 좀 그렇고...  

  하지만 이 일이 지난 10년 이내에 겪은 인간관계 문제 중 최고수준이었기 때문에, 이 일로 꽤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았다.  일이 터진 이유도 황당했지만 그 후로 일이 전개되는 모습도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정말이지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만일 다른 사람이 겪은 일이었다면, 그게 말이 되느냐고 생각하며 꾸며낸 이야기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혹은 너무 황당한 나머지 웃기기까지 해서 방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 일이다 보니, 우습기는커녕 화만 마구 치솟았다. ㅠ.ㅠ  그리고 이제 일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다시 이어지고, 이제는 정말로 끝이구나 여기면 또 이어졌다는 점에서도 정말 특이한 사건이었다.

 

  재작년 여름 몇 년 간 친분을 쌓고 지냈던 A가 나에게 잘못을 저질렀다.

  A에게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지만, 당하는 내 입장에서는 타격이 큰 일이었다.  더구나, 어쩌면 A가 그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어서, A에게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아달라고 미리 당부까지 했더랬다...!  A의 행동 자체도 문제였는데, 그런 행동을 하지 말라고 미리 당부까지 한 일을 기어이 저질렀으니, 더욱 화가 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일은 시작일 뿐이었다.  

  A는 그 후로도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보였다.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내면서, 주말에 B와 함께 셋이서 영화를 보자는 내용을 덧붙인 것이다.  A의 말도 안 되는 짓 때문에 내가 오랫동안 준비한 일이 엉망이 되어 화가 잔뜩 나는 상황인데, 미안하다는 말 한 줄 쓰고는 태연하게 영화 보자는 소리를 덧붙이다니...  당하는 내 입장에서는 강펀치 한 대 제대로 맞은 것 같은 심각한 일이었다.  그런데 정작 일을 저지른 A는 그저 남의 발 슬쩍 밟은 정도로만 여기며,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면 다 해결될 거라 가볍게 생각하고 있으니 더욱 울화통이 터졌다.

  더 기막힌 것은, A가 함께 만나자던 B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  그렇잖아도 자기 때문에 화가 잔뜩 나있는데 내가 싫어하는 B까지 불러 만나자니, 이게 무슨 황당한 상황인가?  이쯤 되면 뻔뻔한 건지, 무신경한 건지, 혹은 양쪽 다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시쳇말로 뚜껑이 완전히 열렸다!


  

  여기에서 주된 사연은 잠시 멈추고, 이 사연의 조연(?)인 B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B란 사람은 처음부터 나하고는 성격, 사고방식, 관심사 등 무엇 하나 통하는 게 없었다.

  그런데도 적당히 상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가 일대일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 어떤 모임으로 엮인 사이였기 때문이다.  만일 B와 관계를 끊을 경우, 모임의 다른 회원들과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뒤늦게야 알았지만 B와 관계 끊었어도 다른 회원들과 별 문제없이 잘 지낼 수 있었음. -.-;;)  하지만 호감 가지 않는 사람과 만나는 건 역시 피곤한 일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B에 대한 거부감이 점점 커졌다. 


  비록 서로 통하는 구석이 없는 사이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더라면 관계가 그럭저럭 유지되었을 지도 모른다.

  문제는 B가 조금이라도 친분 생긴 사람에게 마구 달라붙는 스타일이었다는 점이다.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내용의 문자나 카톡을 수시로 보내는가 하면, 나에게 연락을 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끝에는 항상 "근데 우리 언제 만나요?" 라며 보채곤 했다. (그 네 단어 짜리 문장에 제대로 질린 나머지, 지금도 누군가가 나에게 그 말을 하면 소름이 끼칠 정도임. ㅠ.ㅠ)  B 역시 우리 사이에 어떤 공통점도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지는 않은데, 도대체 왜 그렇게 만나자고 졸라대는 건지...  그게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만나서 딱히 할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위에 쓴 것처럼 애초에 우리 사이에는 공통된 화제거리가 없었으니까.  B는 항상 자신이 만나자고 해놓고는 정작 만나서는 아무 말 없이 스마트폰이나 만지작거리기 일쑤였다. (어차피 스마트폰이나 만지작거릴 생각이라면, 그냥 집에서 자기 혼자 스마트폰 마음껏 만지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면 교통비나 커피값도 안 들고 좀 좋아? -.-;;)  나에게 B와 만나는 일은 시간 낭비에 돈 낭비일 뿐이었다.

 

  좀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되었는데, B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타인의 의견이나 감정은 무시한 채 타인을 자기 뜻대로 휘두르려는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임의 다른 회원이 한 말처럼 '버릇없이 자란 막내의 전형적인 스타일' 이었다.  그렇게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면 차라리 혼자서 원하는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면 좋으련만, 또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 하고 다른 사람에게 달라붙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누군가(혹은 무언가)를 좋아하면, 남들에게도 그 사람 또는 그것을 좋아하도록 강요(?)하며 휘두르려 했다.  게다가 말은 또 어찌나 함부로 하는지...  작정하고 상대방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한다기보다는, 자신의 말이 상대방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 못 하고 아무 말이나 생각나는대로 내뱉는 사람이었다. (즉, 눈치가 지독하게 없어서 타인에게 원한을 사는 유형의 사람... -.-;;)

  그런 성격 탓에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하며 지낸 사람이 없어서 인간관계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과 단계적으로 가까워지는 법을 알지 못 해서, 이제 막 친분을 쌓아가는 단계의 사람에게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해서 질리게 만들었다.  즉, '인간관계에 서툼 → 상대방 기분을 상하게 해서 관계 파탄남. → 주위에 친구가 남아나지를 않다 보니 조금이라도 친분 생긴 이에게 지나치게 달라붙어 도에 넘치는 행동을 함. → 상대방이 질려서 떠남.' 의 악순환이었다. 

 

  나중에 일이 터진 후에야 알았지만, 그 모임에서 나 말고도 B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회원이 여러 명 있었다.

  나 혼자서 B 문제로 고민하고 나중에는 B와 연락을 끊고 지내는 동안, 그 사람들과 B 사이에도 이런저런 사건들이 있었다.  더 웃긴 것은, B가 눈치가 없어 그런 것인지 의도적으로 그런 것인지, 이 사람에게는 저 사람이 자신을 무척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고, 저 사람에게는 이 사람이 자신과 돈독한 것처럼 말해놓았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서로가 같은 처지인 줄 모르고, 자신만 빼면 모두가 B와 잘 지내는 줄 알고 B에 대한 고민을 다른 이에게 털어놓지 못 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사람도 B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있고, 저 사람도 B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있고...  여러 회원이 B에게 불편한 마음을 품게된 것은 결국 그 모임의 해체로 이어졌다. (이 사람 저 사람이 B로 인해 겪은 사연들을 다 쓰자면, 이 블로그에 따로 카테고리를 만들어야 함.  포스트가 10개 이상은 나올테니... -.-;;)  

 

  하지만 신기하게도, A는 그런 B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B는 모임의 다른 회원인 C를 무척 좋아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C가 다른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게 싫다." 라고 말하곤 했다. (B가 C를 유별나게 좋아하는 것도 여러 사람에게 스트레스가 되었음.  B 혼자 좋아한다면야 누가 뭐라고 하겠느냐만은...  C에게 별 관심 없는 사람들한테까지 수시로 C의 근황을 알리는 문자나 카톡을 보내 어떤 반응(맞장구)을 이끌어내려고 해서, 사람을 피곤하게 했음. ㅠ.ㅠ)  A는 그런 B에 대해 "그 나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걸 그렇게 솔직히 말할 수 있다니, 요즘 세상에 드문 순수한 사람이다." 라고 말했다.  내 눈에는 '유아기적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특정인에 대한 강한 독점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똑같은 말을 듣고도 A가 나와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리는데 놀라기는 했지만, 굳이 그 일로 A에게 이러쿵 저러쿵 할 생각은 없었다.  A가 B를 좋게 보든 나쁘게 보든, 그것은 A의 권리니까.  원래 그렇지 않은가, 세상 사람이 모두 칭찬하는 사람이라도 내가 싫으면 싫은 거고, 반대로 세상 사람이 전부 욕하는 사람이라도 내가 좋으면 좋은 거다.  그래서 A를 만날 때마다,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A가 좋게 보는 B까지 덤으로 만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싫은 사람과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결국 내가 B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생겼다.  이유는 비교적 사소한 일이었는데, 그 동안 쌓아왔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더 이상 B와 가식적인 친분을 유지하는 건 무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내가 B를 싫어한다는 것을 A에게도 밝혔다.

  그 전에도 A에게 몇 번 암시를 주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A가 눈치를 채지 못 한 것 같아서, 이 때 처음으로 내가 B를 싫어한다고 분.명.히. 말한 것이다.

 

  하지만 그 후로도 A는 우리 세 사람이 함께 모이는 자리를 만들려 애썼다.

  B와 만나기 싫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A는 계속해서 그런 자리를 마련하려 해서 나를 난처하게 했다.  비록 나는 B를 싫어하지만, A가 B와 친하게 지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A의 사생활이라고 생각해서 참견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A는 나에게 B와 친분을 유지할 것을 강요하며 내 사생활에 참견하는가 하는 불쾌감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A가 우리 모임에서 제일 연장자라서, 자기딴에는 어떻게든 회원들끼리 잘 지내도록 다독여야 한다는 큰언니 노릇 비슷한 의무감을 느끼는 모양이라고, 애써 좋게 생각하며 불쾌감을 눌렀다. (게다가 천만다행이게도 A가 그런 자리를 만들려 할 때마다 B에게 사정이 생겨서 모임에 나오지 못 했고, 나중에는 나에게 사정이 생겨 1년 가까이 세 사람이 함께 모일 일이 없었음.)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런 상황이다 보니, B와 함께 영화를 보자는 A의 문자를 받고서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을 수 밖에 없었다.

  절대로 그런 행동하지 말라고 미리 당부까지 한 일을 A가 저질렀다는 것만으로도 화가 났다.  그런데 한 술 더 떠서 내가 싫어하는 사람까지 불러서 함께 만나자고 하다니, 이게 무슨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란 말인가...  설마 불난 데 부채질 하려고 작정이라도 한 걸까?

 

  그런데 얼마 후에 그야말로 식스센스(!)급 반전이 벌어졌다. 

  모임의 또 다른 회원인 D에게서 들은 말이 정말 황당했다.  놀랍게도 A는, 내가 B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0-;;  D가 "Z(나)가 그렇게 깐쪽거리고 말 함부로 하는 인간은 너무 싫다고까지 말했다는데, 그 말을 듣고도 어떻게 Z가 B를 싫어한다는 것을 모를 수가 있나?" 라고 물었더니만...  A가 했다는 대답이 정말 걸작이다.  그런 말을 들은 것은 사실이지만 친밀감의 표시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  남자들이 사실은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입으로는 육두문자 잔뜩 섞인 말 주고받는 것처럼, 나 역시 B에 대해서 거친 말로 친밀감 드러낸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0-;;  그 말을 전해듣던 순간의 어처구니 없는 기분이라니...!

  물론 내가 여자답게 나긋나긋하고 예쁘장한 말투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거친 표현을 쓰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A의 눈에는 내가 도대체 어떻게 보였기에, B에 대해 '깐족거리며 말 함부로 하는 인간' 이라고 한 것을 B에 대한 친밀감을 거칠게 표현한 것이라고 여긴 걸까...  더구나 그 말을 A에게 할 때, B에게 화를 낸 직후라 잔뜩 흥분해서 핸드폰에 대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설마 고함 지르는 것조차 친밀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나? -.-;;)

 

  그리고 내가 B를 싫어하는 줄 A가 전혀 몰랐다고 하니, 떠오르는 또 다른 의문점이 있으니...

  내가 B를 싫어한다고 말한 후에도 A가 우리 세 사람이 모이는 자리를 마련하려 해서, "B를 왜 자꾸 부르려고 하냐?  B는 부르지 말고 우리끼리 만나자." 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A는 그 말을 어떤 뜻으로 받아들였던 걸까?  내 생각에는, 세상 누구라도 "아무개는 부르지 말고 우리끼리 만나자." 는 말을 듣는다면, 말하는 이가 아무개를 싫어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 것 같은데... (설마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나? -.-;;)

  나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이 A에게는 전혀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B를 두고 A와 내가 했던 말들이, 알고 보니 함께 주고받은 '대화' 가 아니라 각각 상대방 모르게 혼자서 한 '독백' 이었다!

 

  이렇게 기막힌 일이 잇달아 벌어지자, 시간이 지나며 화가 점점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화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하지만 이 때까지는, 적어도 최악은 아니었다.  이쪽에서 미리 당부까지 했거만, 어떻게 그 정도까지 무신경 하게 굴어서 기어이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지만...  그리고 이쪽에서는 분명히 화까지 내면서 진지하게 말한 것을, 어떻게 별 것 아닌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지만...

  어쨌거나 A가 일부러 일을 저지른 게 아니라는 점 하나만 보고, 그 동안 쌓은 친분을 생각해서라도 어떻게든 마음을 추스리려 했다.  그렇게 혼자 씩씩거리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고 있었는데...

 

  어이없게도 A가 먼저 서로 연락을 하지 말자고 나섰다. -.-;;

  A가 사과의 글을 남겼기에, '당신이 고의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나는 정말로 화가 난다.  감정을 가라앉힐 때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는 요지의 답장을 했다.  그랬더니 A는 '지금쯤이면 화가 풀렸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 같다.  앞으로 당신에게 어떤 연락도 하지 않을테니, 당신 또한 연장자에 대한 예의로 나에게 연락할 필요없다.' 라는 글을 다시 남겼다.  

  그렇잖아도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일이 연달아 벌어지면서, 뒤통수와 앞통수를 번갈아 가며 몇 번이나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A쪽에서 먼저 연락을 하지 말자고 하니, 감정을 도무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제.대.로. 폭발해버렸다.  피해자 쪽에서는 그래도 관계를 완전히 망가뜨리지 않으려고 부글거리는 심정 다스리려 노력하고 있는데, 정작 가해자 쪽에서 앞으로 연락하지 말자고 나서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경우란 말인가?  

 

  그 글을 마지막으로 A에게서 더 이상 연락이 안 왔고, 그렇게 그 일이 끝나나 싶었다.

  그런데 두어 달 지나서 갑자기 A가 휴대폰 문자를 보냈다. -.-;;  뜬금없이 태풍 이야기와 함께 추석 잘 보내라는 문자를 보낸 것이다.  어떤 연락도 하지 않겠다던 쪽에서 먼저 연락을 하는 것을 보니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도대체 이 문자는 또 무엇인가, 그냥 무시해버려야 하나, 그렇게 고민하다가 나도 추석 잘 보내라는 답장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내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다.  일련의 사건으로 A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시쳇말로 사차원적인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 A가 서로 연락하지 말자던 자신의 말을 어기고 다시 연락을 했을 때, 또 사차원적인 행동이 시작되었구나 하고 깨끗이 무시했어야 한다.  그런데도 굳이 답장을 해서 상대방에게 여지를 남겼으니...

 

  A는 내 답장을 받고난 후로 문자나 네이트온을 통해 몇 번 더 연락을 했다.

  두 번째로 연락을 받았을 때에야 내가 지난 번에 답장을 한 게 빌미가 되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더 이상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쪽에서는 두어 차례 더 연락을 했다.

  차라리 자신이 먼저 연락 끊자고 했던 말을 취소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며 연락을 했더라면, 그나마 덜 황당했을 것이다. (물론, '이 사람은 어린애도 아닌데 왜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짜증이 잔뜩 나긴 했겠지만... -.-;;)  그런데 마치 우리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혹은 그 사건 후로도 계속해서 친분을 유지했던 것처럼, 그리고 자신이 먼저 연락하지 말자는 제의를 한 적 없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안부 묻는 문자나 네이트온 쪽지를 보냈다.  이쯤 되니, 이제는 화가 난다기 보다는 섬칫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A의 문자와 네이트온 메시지를 무시했더니, 어느 날 아예 전화가 왔다! -0-;;

  아마 그 해 11월 초가 아니었나 싶다.  저녁에 집 근처 학교 운동장으로 운동을 나갔는데 A가 전화를 했다.  마침 다른 사람과 통화중이어서 그 전화를 받지는 않았다. (물론 통화중이 아니었더라도 그 전화를 절대로 받지 않았겠지만...)  통화를 끝내고서 보니,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 표시가 떠있었다.  어둑어둑한 운동장 한복판에서 A의 전화번호가 찍힌 부재중 전화 표시를 보니, 나 자신이 무슨 공포영화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ㅠ.ㅠ

 

  친구들은 이 사건 초기만 해도 자기 일 아니라고 깔깔거리며 재미있어 했는데(-.-;;), 일이 그 지경이 되자 수상하다느니 무섭다느니 한 마디씩 했다.

  병원에서 일하는 친구는 "치매라는 게 꼭 노인만 걸리는 게 아니다.  요즘은 30대나 40대에서도 은근히 많이 발병한다." 라며, A가 자기 스스로 연락 끊자고 한 사실을 정말로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겠느냐며, A에게 감정이 안 좋더라도 일단은 A 본인 또는 A와 친한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서 병원에 가보라고 말해주는 게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다시 A와 연결되기 싫어~~ ㅠ.ㅠ)

  른 친구는 "자기 쪽에서 먼저 연락을 끊자고 강하게 나오면, 네가 마음이 약해져 먼저 화해를 청할거라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네가 정말로 연락 끊어버리자,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꼴이 되어 당황해서 먼저 연락하게 된 것이다." 라며 나보다 더 흥분해서 씩씩거렸다. (그래서 오히려 내 쪽에서 달래야 했음. -.-;;)

  또 다른 친구는 스토커가 분명하다면서 내 휴대폰 번호를 바꾸는 게 좋겠다고 했다.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라 진지하고 걱정스럽게 한 충고였다.  그래서 내가 어쩌다가 친구에게 이런 충고 들을 정도로 황당한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었나 하는 생각에 기가 막혔다. ㅠ.ㅠ

 

  그 후로 해가 바뀌고 더 이상은 연락이 없어서, A와의 인연이 정말로 다 끝났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작년 8월이었나 9월이었나, 그 부재중 전화 사건 후로 10개월은 연락이 없던 A가 뜬금없이 다시 안부 묻는 글을 남겼다.  정말이지, 그 안부글을 보고 하마터면 심장마비 일으킬 뻔했다. ㅠ.ㅠ  이번에도 마치 우리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 마냥 아주 자연스럽고도  뜬금없는 내용의 글을 남긴 것이다.

  그걸 처음 본 순간에는, 정말 머리 속이 온통 하얗게 변한 것처럼 아무 생각도 안 났다.  하지만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제는 화도 안 나고 무섭지도 않고 그저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어 헛웃음이 다 나왔다.

 

  그 안부글을 무시해버린 뒤로는 더는 연락이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이 정말로 끝났다는 보장은 없다.  지금껏 이제는 끝이겠거니 하고 생각할 때마다 다시 후속편(?)이 이어졌던 것처럼, 어쩌면 또 몇 달 후에 다시 불쑥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 -.-;;

 

  이 사건은 여러가지로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시작인, 내가 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한 일을 A가 아무 생각없이 저질렀다는 사실은, 정작 이제 와서는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그보다는 A라는 사람과 몇 년이나 친하게 지냈건만, 내가 A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점이 훨씬 충격적이다.

  도대체 나란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람 보는 눈이 없는가 하는 생각에, 한동안 자괴감까지 느꼈더랬다.  해체된 모임의 또 다른 회원이 A를 처음 만나고서 부정적인 반응 보일 때만 해도, 그저 그 사람이 A에 대해 아직 잘 몰라서 그러겠거니 했다.  그런데 일이 이 지경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사실은 A와 몇 번이나 만났던 나야말로 A에 대해 정말로 몰랐다...! ㅠ.ㅠ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과거에 A가 했던 말이나 행동을 돌이켜보니, '그러고 보니 그 때도 뭔가 이상하긴 했다.' 식으로 재해석(?)이 된다.  그 일은 그 일대로 기분 나쁘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어째서 그 당시에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냥 넘겼다가, 일이 다 터진 후에야 깨닫게 되는 건지...  어떤 친구의 말마따나, 내가 뭔가 좀 덜 떨어졌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ㅠ.ㅠ

 

  그 일이 재작년 초여름에 벌어졌으니, 벌써 1년 반 이상 지난 일이다.

  이제는 이 일에서 완전히 벗어났으면 한다.  잊을만하면 몇 달에 한 번씩 겪게 되는 '놀라움 + 무서움 + 짜증스러움 + 기막힘' 의 부정적 감정 4종 선물세트는 이제 정말 사절이다...! 제...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