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계에 송승헌이 있다면, 견공계에는 내가 있다!
저녁에 운동 겸 산책 나갈 때마다 보게 되는 '견공계의 송승헌'(!) 을 소개하려 한다.
항상 길거리에 앉아있는 하얀색 잡종견인데, 주인이 장난 삼아 그랬는지 개의 눈 위로 송승헌처럼 진한 송충이 눈썹이 그려져 있다. ^^;; 저 눈썹은 지난 겨울부터 있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눈썹 색깔이 점점 흐려졌다. 그러다가 어느 날, 다시 새까맣게 변했다. (주기적인 눈썹 성형?)
지금은 익숙해져서 별로 안 웃긴데, 처음 봤을 때는 정말 웃겼음. ^^
성능 떨어지는 폰카로 찍어 거친 느낌이 드는 저 사진에는, 작은 사연이 하나 있다.
녀석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찍으려고 쪼그리고 앉아 손뼉을 치며 불렀더니, 항상 밖에 있는 개답게 낯을 안 가리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왔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까지만 해도, 우리 사이에는 아주 우호적인 분위기가 흘렀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녀석의 얼굴 가까이에 들이댔더니, 녀석이 시큰둥하게 얼굴을 저쪽으로 돌려버리는 게 아닌가? 그래서 녀석의 얼굴을 한 손으로 붙잡아 내 쪽으로 돌리고 다른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이댔더니만, 갑자기 이빨을 드러내며 크아앙~~~ 소리 내며 덤비는데... 정말이지, 십년 감수했다. ㅠ.ㅠ
하마터면 내 인생에서 세 번째로 개에게 물리는 일을 겪을 뻔했다. (코흘리개 시절에 맛있게 진지 드시던 개님을 감히 만졌다가 물린 적이 두 번이나 있음.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 는 속담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몸으로 체험한 나... -.-;;)
그 일로 저 녀석을 다시 봤다.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특히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눈썹 그린 게 귀엽다며 쓰다듬어 줄 때마다 덮어놓고 꼬리를 흔들며 좋아하기에, 마냥 순둥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마지막 자존심은 지킬 줄 아는 강단 있는 견공인가 보다. ^^;;
결국, 녀석의 행동 반경 밖(녀석은 목줄을 하고 있음.)으로 떨어져서, 녀석이 무언가에 정신 팔린 사이에 한 장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공연
나의 단골 운동 겸 산책 코스인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가, 지난 주에는 저녁마다 무언가 하느라 시끌벅적했다.
한쪽에서는 학생들과 근처 주민들 상대로 이런저런 공연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캐리커처 그려주거나 부침개를 즉석에서 부처 팔기도 하고... 지금이 대학가의 축제기간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행사인지 모르겠다. (← 원래 이 단락은 이 문장에서 끝이었는데...) 알고 보니, 요즘 대학가에서는 가을에도 축제를 한다고 한다. -.-;; 그렇다면, 지난 주가 한예종 가을 축제 기간이었나?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내가 이 행사를 처음 알게 된 날에는 구급차가 와있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한 대도 아니고 두 대씩이나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무슨 시위 현장이나 운동경기 행사도 아닌데, 뭐가 위험하다고 구급차가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혹시, 내가 운동 겸 산책하러 한예종으로 나오는 시간 말고 다른 시간에는, 참가자들이 부상 입을만한 행사도 있었던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세월호 사건 이후 사람들이 안전문제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져서 각별히 조심하는 것인지... 하긴,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사물놀이와 접시 돌리기.
(사진상으로는 잘 구별이 안 가지만, 중간에 혼자 앞에 나와 있는 사람이 막대기로 접시를 돌리고 있음.)
예술학교라는 이름값 하느라 사물놀이나 실내악 협주단 공연 같은 것을 하는데, 역시 연령대에 따라 공연 취향이 확 갈린다.
지난 화요일인가 수요일에 있었던 사물놀이 공연 때는, 학교 주변에 사시는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몰려와 구경을 하셨다. 원래도 이 학교를 산책 코스로 삼고 계신 어르신들이 많은데, 저런 좋은 구경거리까지 생겼으니... 아마 그 자리에 계셨던 어르신들, 한예종 근처에서 거주하는 보람을 팍팍 느끼셨을 거다. ^^
실내악 협주단 공연이 있었던 금요일 저녁에는, 어르신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아무래도 가벼운 클래식곡과 팝페라곡 위주다 보니, 관객 대부분이 한예종 재학생인 듯한 젊은이들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브리엘의 오보에'.
(그렇잖아도 구닥다리 폰카인데, 어두울 때 찍은 사진이라 더 엉망인... ㅠ.ㅠ)
운동하러 나온 거라서 그냥 곁눈으로 슬쩍 보며 지나칠 생각이었는데, 다음 곡이 '가브리엘의 오보에(Gabriel's Oboe)' 란 사회자의 말에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영화 '미션' 의 주제곡인 '가브리엘의 오보에' 는 학창시절부터 좋아하던 곡인데,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지난 달 교황의 방한 때 오페라 가수 조수미가 축하곡으로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 를 부르면서, 요즘 다시 내 총애(?)를 받게 되었다. 넬라 판타지아가, 원래 오보에 위주의 연주곡인 '가브리엘의 오보에' 에 가사를 붙여 만든 노래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보에라는 악기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영화 '미션' 을 보고서야 알았다. ^^;; 그 영화의 주인공인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이 남미 원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클라리넷 비슷하게 생긴 악기(물론, 이 악기가 바로 오보에 ^^)를 부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악기의 차분한 음색과 '가브리엘의 오보에' 의 고요하면서도 장중한 선율이 잘 어울려서, 이제는 오보에 하면 당연히 '가브리엘의 오보에' 이 떠오른다.
저 날 협주단 앞에 나와 오보에를 부르던 연주자가 젊은 여자인 것이 좀 아쉽다. 중년의 남자가 나와서 오보에를 불렀더라면, 영화 '미션' 속 가브리엘 신부의 모습과 딱 맞아떨어졌을텐데...
'가브리엘의 오보에' 의 다음곡이 '헝가리 무곡' 이었는데, 여기에서 좀 황당한 일이 있었다.
사회자가 곡명을 '헝가리안 댄스(Hungarian Dance)' 라고 소개하는데, 못 들어본 곡명이여서 내가 모르는 곡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연주가 시작되자, 그 곡이 내가 '헝가리 무곡' 이라고 알고 있는 곡이라는 것을 알았다. -.-;; 사실, '헝가리안 댄스' 란 말을 들으면 '헝가리 무곡' 이 딱 떠오르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왜 그 순간에는 연결이 안 되었을까? 확실히 지난 몇 년, 내가 스마트폰을 자주 만지작거리면서 머리가 나빠졌나 보다. ㅠ.ㅠ
역시 내가 좋아하는 'You raise me up'.
(이 날은 내 귀가 아주 복 터진 날이었음...! ^0^)
지난 주 행사가 가을 축제인지 아니면 다른 문예활동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좋았다.
요즘처럼 여러가지로 삭막하고 하수상한 시절에, 사람들 마음을 잠시나마 달래주었으니 말이다. 내가 대학 다닐 때와는 다르게, 학교가 학생들 위주로만 행사를 기획하지 않고, 학교 주변에 사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행사를 마련하는 역시 괜찮은 발상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http://blog.daum.net/jha7791/15790837)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농약 주사 맞는 나무(http://blog.daum.net/jha7791/15790983)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예술적(?)인 눈사람(http://blog.daum.net/jha7791/15791046)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봄꽃 - 이상기온으로 한꺼번에 핀 봄꽃(http://blog.daum.net/jha7791/15791074)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벚꽃이 활짝 피었어요!(http://blog.daum.net/jha7791/157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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