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여행기/'15년 경주

20시간 동안 경주 여행하기(3) - 문무대왕릉(대왕암) / 감은사지(감은사 3층석탑)

Lesley 2015. 4. 19. 00:01

 

  ◎ 오전 10:30 ~ 오전 11:30 - 문무대왕릉(대왕암)

 

  읍천항에서 하서항까지 파도소리길을 따라 걸으며 주상절리 구경을 한 후, 문무대왕릉(대왕암)으로 가려고 버스를 타려했는데...

  애증(!)의 150번 버스가 조금 전에 떠나서 1시간을 낭비하게 생겼다. -.-;;  ☞ 경주 150번 버스에 대해서는 이전 글 참조 : 20시간 동안 경주 여행하기(2) - 읍천 벽화마을 / 파도소리길(주상절리)(http://blog.daum.net/jha7791/15791196)

 우리 둘 다 가급적 대중교통 이용하거나 튼튼한 우리의 두 다리를 이용하자는 생각이라, 택시는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1시간을 정류장에 앉아서 그냥 보내는 것도 너무 아깝고...  결국 지나가는 택시(경주에서도 작은 읍이라 전부 콜택시인데, 마침 손님을 내려주고 돌아오던 택시를 잡았음.)를 타고 문무대왕으로 갔다.

  하서항에서 문무대왕릉까지는 약 6.7킬로미터인데, 기사님이 택시비를 15,000원으로 하자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평소 택시 탈 일이 별로 없고, 또 타더라도 서울에서만 타서 미터기에 나오는대로만 택시비를 냈으니, 그 가격이 비싼 건지 어떤 건지 감이 오지를 않았다.  하지만 나보다 택시 경험 많은 친구가 말하기를, 택시로 달린 시간과 거리를 생각했을 때 그 정도면 적당한 가격이라고 했다.

 

 

저 멀리 문무대왕릉(대왕암)이 보이고, 모래밭에서는 갈매기들이 떼로 모여있고...

(서울에 닭둘기가 있다면 문무대왕릉 주변에는 갈매기가 있다...!)

 

 

젯밥에 삘이 꽂혀 오른편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갈매기 군단.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은 임종 때에 자신을 화장해서 그 유골을 대왕암에 안치하라고(혹은 대왕암에 뿌리라고) 유언했다.

  신라가 동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과 마주보고 있다 보니, 왜구에게 침략당하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문무왕은 죽어서 한 마리 용이 되어 바다를 건너오는 왜구를 막아 나라를 지키겠노라며, 자신을 육지가 아닌 바다 가운데에 있는 대왕왕에 장사지내게 한 것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말이 많지만, 죽어서까지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문무왕의 정신과 의지는 대단하다. 

 

  문무왕의 호국정신 때문에 문무왕은 무속의 신으로 모셔지게 되었고, 종종 문무대왕릉이 보이는 모래밭에서 굿이나 제가 벌어진다.

  그런데 굿이나 제에 쓴 음식을 제대로 수거 안 하고 바닷가에 그냥 내버리고 가는 경우가 종종 있는 모양이다. (정말 왜들 이러셔...!  공중도덕 안 지키면 굿이나 제의 효력이 동해 너머 태평양으로 날아가버린다고 내가 저주할 것임...!)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굿이나 제가 벌어지는 날이 곧 문무대왕릉 주위에 사는 갈매기들이 포식하는 날이라는 점이다.  행사 끝내고 남은 음식을 녀석들에게 던져주기 때문이다.  즉, 저 갈매기들은 1,300년 이상의 시간을 뛰어넘어 문무왕의 은혜를 입고 사는 셈이다.  이 날도 노인들이 모래밭에서 제를 올리고 있었는데, 제가 열리는 곳을 가운데에 두고 갈매기들이 왼편과 오른편에 각각 수십 마리씩 무리 지어 앉아 열심히 제를 지켜보고 있었다... 가 아니라, 열심히 '젯상의 음식' 을 쳐다보고 있었다. ^^

 

 

서비스컷! (9년 전 문무대왕릉에 갔을 때 찍은 사진.)

 

 

  9년 전에 처음으로 문무대왕릉에 갔는데(그 때도 이번에 동행한 친구와 함께 갔음), 늦겨울인데다가 첫차를 타고 가서 해가 막 떠오른 때였다.

  아직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막 떠오른 태양빛에 바다가 금빛으로 빛나던 풍경, 그런 바다 한복판에 우뚝 서있던 검게 보이는 문무대왕릉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9년간 문무대왕릉의 모습이 변했을 리는 없는데, 이른 아침에 보는 문무대왕릉과 점심 때가 다 되어 보는 문무대왕릉은 전혀 다른 느낌이다. (신비로운 느낌을 받고 싶으신 분은 가급적 이른 아침에 가시기를...  경제적 여건이 된다면 아예 택시 대절해서 새벽에 가서 해돋이 보는 것도 좋고...)

 

 

 

  ◎ 오전 11:30 ~ 오후 12:55 - 감은사지(감은사 3층석탑)

 

  9년 전에는 문무대왕릉만 봤지만, 이번에는 문무대왕릉과 관련이 깊은 감은사지도 세트(!)로 묶어 보기로 했다.

  지도만 봐서는 문무대왕릉에서 감은사지까지의 거리가 먼지 가까운지 가늠이 안 되었는데, 막상 걸어가 보니 그다지 멀지 않다.  도보로 20분 남짓 걸렸던 것 같다.  도보로 문무대왕릉에서 감은사지로 가려면, 바닷가가 아닌 차도를 따라 가다가 대종천에 놓인 다리(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감은사지는 말 그대로 '감은사의 터' 라는 뜻이다.

  즉, 감은사는 오래 전에 사라졌고 터만 남아있다.  그래도 쌍둥이 3층 석탑이 남아있고(그래서 학창시절 우리는 '감은사지 3층석탑이 어쩌구 저쩌구~~' 하며 외워야 했음. ^^;;)  또 감은사가 문무대왕릉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문무대왕릉을 찾아가는 사람이라면 이왕 간 김에 함께 보면 좋을 듯하다.

 

 

감은사지의 쌍둥이 3층석탑.

 

 

  감은사는 문무왕 때 공사를 시작한 것을 그 아들인 신문왕 때에 완성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정작 감은사 그 자체는 언제 사라졌는지도 불분명한데, 쌍둥이 3층석탑만은 1,300년의 세월 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대로 보존이 안 되어 여기저기 상한 곳이 많은 탑인데, 그 기나긴 세월 동안 이 땅의 왕조가 몇 번이나 바뀌고 외침이 몇 번이나 있었던 것을 저 자리에서 묵묵히 지켜보았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기특한 생각도 들고 안쓰럽다는 생각도 든다.

 

 

두 탑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라는데, 설명을 들어도 어디가 다른지 모르겠음. ^^;;

 

 

  처음에는 우리끼리 구경하고 있었는데, 마침 다른 관광객 대여섯명이 가이드와 함께 나타났다.

  덕분에 우리도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설명 중 건축학적인 부분이 꽤 많았는데 지금 머리 속에 남은 게 없다. -.-;;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시대에 따른 탑의 크기 변화에 관한 이야기 뿐이다.  이 쌍둥이 3층석탑이 불국사의 다보탑이나 석가탑보다 더 큰 이유가, 더 오래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는 불교에서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는 탑이 경배의 대상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며 불상이 경배의 대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대의 흐름 속에서 탑의 위상이 차차 낮아지면서 탑의 크기도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에, 탑의 크기를 보면 대충 어느 시대에 만든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감은사 복원 모형도.

(절문을 지나면 바로 쌍둥이 3층석탑이 있고, 금당이 당당히 버티고 있었음.)

 

 

쌍둥이 3층석탑 옆에 있는 금당터.

 

 

  그러나 감은사의 주요건물인 금당은 언제 사라졌는지도 알 수 없게 허무하게 사라져버렸고, 지금은 금당터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 저 금당터가 아주 독특하다.  사진상으로도 보이는데, 들판 위에 곧장 돌을 깔지 않고, 들판과 돌바닥 사이에 굄돌을 놓아서 어느 정도의 공간을 비워두었다.  그리고 그 빈 공간에는 원래 물이 있었다고 한다.  건물 아래에 웬 물이냐 싶겠지만, 다름이 아니라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저기 위에서 소개한 문무대왕릉의 주인공)이 이 절 안으로 들어오도록 인공연못(?)을 만들어 배려한 것이다...!

 

  그리고 위의 사진에서는 안 보이지만, 금당터 한쪽 끝에 지름이 사람 주먹 크기 정도 되는 하수도(?) 비슷하게 생긴 게 있다.

  금당 바닥의 물과 바닷물을 잇는 통로로, 그 통로를 통해 용이 된 문무왕이 동해에서 감은사로 드나들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래서 용이 다니는 구멍이란 뜻으로 '용혈' 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이 용혈은 그런 신성한 의미 말고도 건축학적으로도 의의가 있다고 한다.  금당 바닥에 물이 괴어있고 바로 옆에는 바다까지 있어서 항상 습기가 차는 통에, 목조건물인 금당이 상할 수 있다.  그래서 용혈이 습기를 빼내는 역할도 했다고 한다. (다행히 이건 건축학적인 내용인데도 가이드가 설명해준 게 기억난다...! ^^)

 

 

이게 뭡니까...!  제발 문화재에 낙서 좀 하지 맙시다...!

 

 

  저 위의 금당터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감은사지 주위는 허허벌판이다.

  발굴작업이 시작된 70년대부터 정부에서 신경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전에는 감은사지 주위에 민가와 논밭만 즐비했다고 한다.  그렇게 오랜 세월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남아있는 쌍둥이 3층석탑도 많이 상한 상태고, 금당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문화재의 가치가 뭔지 잘 모르던 시절이라, 근처에 사는 농부들이 아무 생각 없이 금당터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내가 탑에 낙서가 보이더라고 말했더니, 가이드 왈 "자기네 집 고친다고 금당터에 있는 돌도 마음대로 가져가서 썼는데, 오죽했겠어요."  모두가 어렵고 못 배웠던 시절에 자신이 귀중한 문화재를 파괴하는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 했을 이름 모를 농부를 욕할 수도 없고, 참 안타까운 일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12시 55분에 경주 시내로 들어가는 150번 버스를 탔다.

  파도소리길 걸으며 주상절리 구경하고, 문무대왕릉 거쳐서 감은사지까지 둘러보고, 문무대왕릉에서 감은사지로 가는 길 중간에 샌드위치집에 들려 새참(?)까지 먹었는데도, 겨우(!) 12시 55분이라니...!  역시 새벽 댓바람에 경주에 도착해서 7시 반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보람이 있었다.  여기저기 둘러보고도 시간이 남아도니 마음이 느긋해졌다. ^^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

  150번 버스 노선 중에 이 감은사지 근처에 '탑동' 이라는 정류장이 있다.  나는 그 탑이 'Top' 이라고 생각하며, 어째서 시골마을에 뜬금없이 영어 이름이 붙었을까 궁금해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쌍둥이 3층석탑이 있는 지역이라고 해서 이 동네 이름이 '탑동' 이었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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