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전 04:00 ~ 7:30 - 경주 고속버스터미널 도착, 아침 식사
처음에는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가서 경주에서 하룻밤 묵을 생각이었다.
우리가 버스보다 기차를 좋아하기도 하고, 또 하루 온종일 경주를 돌아다니려면 몸이 고단할테니, 전날밤 버스에서 앉아 자는 것보다는 숙소에서 편하게 누워자며 에너지(!)를 비축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인생은 예측불허... 알고 보니 4월 5일부터 경주에서 벚꽃축제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래서 벚축축제 시작 이틀 전인데도, 게스트하우스고 모텔이고 간에 저렴한 곳은 동이 났고 남은 곳은 가격이 확 올라있었다.
그래서 숙소를 잡지 않아도 되도록, 서울에서 밤 11시 55분에 출발해서 경주에 새벽 4시 즈음해서 도착하는 야간고속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사실은 9년 전에 이 친구와 함께 경주에 갈 때도, 이번처럼 야간고속버스를 타고 4시 조금 넘어서 도착했더랬다. (9년이란 시간의 간극을 넘나드는 데자부~~~ ^^)
원래 내 계획은 6시 반에 고속버스터미널 길건너편에서 출발하는 150번 버스의 첫차를 탈 생각이었는데...
친구가 왜 꼭 그 첫차를 타야하느냐며 아침밥부터 먹고 버스 타자고 하는 통에, 계획 급수정...! ^^;; 9년 전에는 PC방에 들어가 날이 밝는 걸 기다렸는데, 다행히 지금은 경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24시간 영업하는 맥도날드가 생겼다. 맥도날드에 들어가 커피 한 잔씩 시켜놓고 여행계획도 의논하고 밀린 이야기도 나누며 2시간 가까이 시간을 보냈다. (경주 고속버스터미널 또는 시외버스터미널에 새벽 일찍 도착하는 여행객들에게 시간 때우기 장소로 강추! 여기 말고는 24시간 문여는 곳이 없는 듯...)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봤더니, 경주 버스터미널과 맥도날드 중간에 있는 부강식당 이란 곳이 아침 6시부터 문을 연다고 해서 찾아갔다.
음식맛은 터미널 근처에 있는 식당답지 않게 괜찮았다. (보통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 근처 식당은 뜨내기 손님 상대로 하는 곳이라 그런지, 어차피 항상 손님이 들끓어 그런지, 그냥 그런 경우가 많음.) 음식맛도 괜찮고, 일하시는 분들도 친절하시고... 나는 오래간만에 육개장을, 친구는 갈비탕을 시켰는데, 내가 시킨 육개장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
육개장이 얼큰하고 국물이 진해요~~ ^^
◎ 애증의 150번 버스
세상 살다 보니 이제는 버스한테도 애증을 느끼게 된다. -.-;;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여행 첫 목적지인 경주의 양남 읍천항으로 가려면,150번 버스(시내버스지만 좌석버스임.)를 이용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데 이 버스 배차간격이 1시간 정도 된다. (정확히 1시간도 아니고 55분, 70분 식으로 들쭉날쭉~~) 게다가 기점과 종점에서의 출발시간만 알 수 있을 뿐, 중간 정류장의 출발시간은 알 수가 없다. 몇몇 정류장에는 그 정류장에서의 출발시간이 붙어있지만, 대부분은 그런 것 없다. 기점 또는 종점에서의 출발시간과 자신이 이용하는 정류장까지 걸리는 시간을 각자의 상상력(!) 내지는 신기(!)를 발휘해 계산해서, 시간 맞춰 정류장으로 나가야 한다.
내가 배차간격이 너무 길다고 버스회사와 경주시청을 성토(?)하자, 친구가 중요한 문제를 지적했다.
한 시간에 한 번 밖에 안 오는 버스인데도 우리가 타면서 보니 좌석이 다 안 차있더라고, 즉 150번 버스가 장사가 잘 되는 노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몇 년에 한 번 오는 우리 같은 여행객을 위해 버스를 많이 투입하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흠... 듣고 보니 친구 말이 맞다. ^^;; 버스회사라고 땅 파서 장사하는 건 아닐테니까...
어쨌거나 자가용 없이 온 우리 같은 뚜벅이 여행족 입장에서는 좀 난감했다.
경주로 여행가는 분들 중에 양남(읍천 벽화마을, 파도소리길과 주상절리)이나 양북(문무대왕릉, 감은사지)을 대중교통 이용해서 가실 예정인 분들은 150번 버스 시간에 각별히 유념하시기 바란다. 다행히 지난 포스트에 소개한 경주문화관광 홈페이지(http://guide.gyeongju.go.kr/deploy/index.html)에 시내버스 노선도와 시간표가 나와있으니, 참조하시기를...
◎ 오전 08:30 ~ 오전 10:30 - 읍천 벽화마을, 파도소리길(주상절리)
경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도로 건너편에 있는 정류장에서 7시 30분에 출발하는 150번 버스를 탔다.
벽화마을이 있고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 파도소리길의 입구가 있는 읍천항으로 가는데 1시간 정도 걸렸다. ('읍천 정류장' 에서 하차) 경주 면적이 넓다 보니, 150번 버스가 말이 좋아 시내버스지, 어지간한 곳의 시외버스 수준으로 한참 나간다. 경주 시내에서 읍천항까지 43킬로미터 아니면 44킬로미터라고 봤던 것 같다. 서울에서 휴전선까지의 거리가 38킬로미터인데, 서울과 휴전선 사이에는 의정부시, 동두천시, 연천군 등 3개의 행정구역이 있다. 지방 소도시 정도로 생각했던 경주, 알고 보니 진짜 진짜 지~~인~~짜~~아~~ 넓다... -.-;;
잠시 삼천포로 빠져서...
읍천항까지 가면서 버스 차창 밖으로 월성 원자력 발전소를 봤다. 이미 설계 당시의 수명이 끝난 월성 1호기를 재가동 하네 마네 하는 문제로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곳이다. '월성 1호기 재가동 결사 반대' 또는 '월성 원전 주변 갑상선암 발병 소송인단 모집' 같은 글이 적힌 현수막이 버스가 지나는 길 곳곳에 걸려있었다. 멀리 살면서 하루 찾아온 나도 심란한데, 월성 원자력 발전소 근처 사는 사람들은 정말 속이 말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읍천항 도착! 우와~~ 동해다! ^0^
읍천항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벽화.
아래 장군 그림은 공중화장실(!) 맞은편의 벽화임.
(읍천은 공중화장실 주변 환경도 이렇게 예술적이랍니다~~ ^^)
벽화를 구경하며 남쪽으로 천천히 걷다 보면, 문득 나타나는 파도소리길 입구.
파도소리길은 읍천항에서 하서항까지 1.7킬로미터 정도 이어진다.
그저 걷기만 하면 30분 안에 다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실제로는 1시간 반 가까이 걸렸다. 깨끗하고 한적한 바다 풍경을 감상하다가 주상절리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 되기 때문이다.
나중에 파도소리길을 다 걷고서 문무대왕릉(대왕암)에 가려고 택시를 탔을 때, 택시 기사님 왈 "파도소리길이라고 해봤자 볼 것도 없는데 뭐하러 멀리서들 오는지 모르겠어요." ^^;; 기사님, 기사님처럼 그 풍경 매일 보는 사람들이야 별 감흥 없겠지만, 우리처럼 어쩌다 보는 사람들에게는 볼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습니다...!
멀찍히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사이좋게 서있는 게 보임.
드디어 주상절리가 보이기 시작~~!
다른 사람들이 여기 다녀와서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니, 주상절리라는 게 중학교 지구과학 교과서에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나도 그렇고 함께 간 친구도 그렇고, 이번 여행 전에는 주상절리란 말을 들어본 기억조차 없다. (혹시... 우리가 중학교를 다녔다고 착각하고 살았을 뿐, 사실은 안 다녔었나... -.-;;) 얼핏 들으면 순수 한국어처럼 들리는 주상절리는, 주상(柱狀 : 기둥으로 된 모양)에 절리(節理 : 용암이 냉각하면서 생긴 수축으로 혹은 지각변동으로 비교적 규칙적으로 생긴 금이나 틈)가 생긴 것을 뜻하는 지질학 용어라고 한다.
경주 양남면 읍천항에서 하서항에 걸쳐 군데군데 있는 주상절리는, 약 2,000만년 전에 현무암질의 용암이 흘러나오다가 차가운 바닷물에 닿아 급속히 식으면서 생겼다고 한다. 대부분의 주상절리는 수직 방향으로 형성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지역의 주상절리는 특이하게도 수평 방향으로 형성되는가 하면, 아예 부채꼴 모양으로 형성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향으로 형성된 것이 주요 특징이라고 한다.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
(육안으로 보면 정말 크고 멋있는데, 사진으로 제대로 담아내지 못 해서 안타까움... ㅠ.ㅠ)
파도소리길 중 뜬금없었던 야자수 구간.
아무리 한반도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고 해도 그렇지, 웬 야자수를 가로수로 썼단 말이냐...
사철 더운 지방에서 싱싱함을 뽐내야 할 야자수가, 지난 겨울 추위에다가 찬 바닷바람까지 견디느라 지푸라기 코트를 하나씩 입고서는 지팡이를 세 개씩이나 짚고서 겨우 버티고 있다. (불쌍한 야자수...! ㅠ.ㅠ)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지푸라기 코트로 꽁꽁 싸매었는데도 추위를 못 이겨서, 초록빛이어야 할 야자수잎 상당수가 누렇게 변해버렸다는 사실... -.-;;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올려놓은 돌멩이 위에, 나도 하나 올렸음.
(꼭대기의 새하얗고 예쁜 돌멩이가 내 돌멩이~~ ^^)
여기도 부채꼴 주상절리.
(거세게 부딪쳐오는 파도에도 꿋꿋히 버티는 주상절리를 보니, 내가 괜히 뿌듯한... ^^)
오레오 쿠키를 마구마구 깨부수어 물 위에 흩뿌려놓은 모양새.
내가 오레오 쿠키를 부수어서 뿌려놓은 것 같다고 하자, 친구가 깔깔대며 웃었다.
자기도 그 생각했다면서,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상상력이 빈곤하냐고 했다. (아니지요~~ 우리 마음 속에 아직 동심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증거지요~~ ^^)
육각형 또는 오각형의 단면이 가장 명확히 보였던 '누워있는 주상절리'.
위의 '누워있는 주상절리' 를 확대한 모습.
다른 주상절리에서는 보기 힘든 누워있는 모습이라, 학술적으로나 자연유산으로서나 가치가 높다고 한다.
지질학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나로서는 학술적 가치는 잘 모르겠고, 그저 건축자재를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주상절리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아무런 설명 없이 본다면 인공적으로 만든 건축용 돌기둥 중에서 불량품(!)인 것들만 한 곳에 따로 쌓아두었다고 생각했을 듯하다. (미안해, 주상절리~~ ^^;;)
파도소리길이 끝나는 하서항 부근에도 예쁘장한 벽화가 있음.
완전히 한 폭의 그림이로세!
(오른쪽은 푸르른 벽화! 왼쪽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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