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여행기/'13년 김해, 부산

김해(1) - 봉하마을

Lesley 2013. 11. 3. 00:01

 

  10월 마지막 주말에 남쪽으로 2박 3일짜리 여행을 다녀왔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 및 묘소가 있는 봉하마을에도 들렸다.

 

 

  항상 그렇듯이, 장황한 서론부터 풀어놓자면... ^^;;

 

  2박 3일짜리 여행의 동선 짜는 일로 골머리 좀 앓았다.

  이번 여행의 '초청자 겸 가이드'(?)가 김해에 살고 있고, 김해 바로 옆이 유명한 관광지이자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인 부산이다.  그러니 김해와 부산은 당연히 이 여행의 필수코스가 되는 것이고...

  마산도 여행코스에 집어넣어 볼까 생각했다.  내가 작년부터 고려 시대, 그 중에서도 원 간섭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마침 김해와 마산 모두 몽골이 일본을 공격했을 때 베이스캠프로 삼았던 곳이다.  그래서 그 시대 몽골군과 고려군에 관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산을 들리는 것을 고려해 본 것이다. (서울에서 목요일 밤 12시 정도에 버스 또는 기차 타고 출발해서, 금요일 새벽에 마산 도착해서 하루 동안 여기저기 구경한 후, 금요일 오후 5시쯤에 다시 김해로 빠지는...  거짓말 좀 보태면 극기훈련 수준이라고 할만한 일정이었음. -.-;;)

  그런데 인터넷으로 알아봤더니, 마산에 남은 몽골군의 흔적이라고는 '몽고정(夢古井)' 이라는 우물이 전부란다. -.-;;  겨우 우물 하나 보겠다고 마산까지 가는 것은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마산은 빼내고, 김해와 부산만 가기로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또 다른 문제 발생...!

  부산이야 갈 곳이 제법 많지만, 김해에서는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지...  김해 하면 당연히 고대 왕국 '가야' 가 떠오르지만, 솔직히 가야에 대해서는 아는 바도 별로 없고 관심도 별로 없다.

  그래서 갈만한 곳을 찾아 다른 블로그, 카페, 게시판을 뒤져봤는데, 뜻밖에도 봉하마을이 바로 김해에 있다는 것이다...! @.@  봉하마을은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던 곳인데, 그 곳이 김해에 있다는 것을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나... ^^;;  하여튼, 그렇게 봉하마을로 고고씽...!!!

 

 

 


 

 

 

  자, 본론 시작...!

 

  서울에서 기차 이용해서 봉하마을로 가려면...

  먼저, 서울역에서 김해의 진영역으로 가야 한다.  진영행 직행 기차가 하루에 서너 차례 다니는데, KTX 산천 기준으로는 2시간 반 정도 걸린다. (직행 시간이 안 맞을 경우, 우선 대구나 밀양까지 내려가서 다시 진영행으로 갈아타는 방법도 있음.)  그 다음에, 진영역에서 10번 버스 타고서 30분 정도 가면 종점인 봉하마을에 도착한다. (40~50분 간격으로 1대씩만 운행하니, 현지의 버스 시간표 숙지할 것!)

  나는 9시 10분에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가서 진역역에는 12시 안 되어 도착했는데, 10번 버스가 12시 반에 출발했기 때문에, 봉하마을에 도착했더니 이미 1시였다. 

 

 

감나무 뒤로 보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알고 보니, 진영(김해에 속하는 진영읍)이 원래 단감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10번 버스 타고 봉하마을까지 가는 중에도 무슨 단감 축제 알리는 현수막이라든지, 단감 관련한 이름 붙은 정류장을 여러 개 볼 수 있었다.  봉하마을에서도 관광객 상대로 단감을 상자째 내놓고 팔고 있는 할머니들이 눈에 띄었다.

 

 

어린이집에서 소풍 온 꼬맹이들. (아이고~ 어린이집 옷도 단감 색깔일세~~ ^^)

 

 

이 생가는 노 전 대통령의 사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함.

 

 

요즘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항아리들이 담 밑에 나란히 서있고...

 

 

묘역으로 가는 길에 늘어선, 새파란 하늘과 깃털 같은 구름과 멋진 조화를 이루는 샛노란 바람개비!

 

  

드디어 묘역에 도착.

 

  저기 앞의 두 아저씨 몸에 가려져 안 보이는 곳에 묘소가 있다.

  그리고 그 묘소까지 가는 길은,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떠나는 길에 수많은 지지자들이 남긴 작별의 말이 새겨진 돌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왼쪽 위) 묘소의 모습. 

(오른쪽 위와 아래) 돌판의 글 중에서 '부끄럽지 않은 대통령' 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꾸며' 가 눈에 확 들어왔음.

 

 

노란색 바람개비 뒤편으로 보이는 봉화산.

 

  봉화산은 유명세가 무색할 정도로 얕으막하다.

  높이가 200미터도 안 된다는, 그저 작은 시골 마을의 야산일 뿐이다.  그런데 좋은 사건도 아니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전국민이 다 아는 곳이 되어 버렸으니...

  이 산에는 바위로 된 봉우리가 두 개가 있다.  그 중 사진 속 바람개비 뒤편으로 보이는 덩치는 크고 위치는 좀 낮은 봉우리가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부엉이 바위' 다.  그리고 사진 위쪽 오른쪽 끝에 보이는 덩치는 작지만 더 높은 곳에 위치한 봉우리가, 봉화산의 최고봉이라는 '사자 바위' 다. 

 

 

부엉이 바위로 향하는 나무 다리가 망가져있어서 좀 위험해 보였음.

(가뜩이나 소심한 나, 망가진 다리가 내 육중한 무게를 못 견디고 무너져내릴까봐 심장이 쿵쾅쿵쾅... ^^;;)

 

  얕으막한 산이건만, 올라가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운동부족에, 서울보다 5도 이상 높은 기온과 따가운 햇살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이 날 내 무릎이 고생 좀 했다.  몸무게가 1킬로그램이 늘면 무릎에 실리는 하중이 3킬로가 늘어난다던가...  지난 여름 40여일이나 계속된 장마 때문에, 유일하게 즐기는 운동인 걷기운동을 소홀히 해서 체력이 떨어지고 살도 좀 쪘다.  거기에 제법 묵직한 가방까지 등에 들쳐메고 산을 오르려니, 무릎은 후덜덜, 숨결은 헐떡헐떡... ㅠ.ㅠ 

 

 

부엉이 바위의 현재 모습.

(혹시나 제2의 불상사가 생길까 걱정해서 출입을 금지한 모양임.)

 

 

(위의 왼쪽) 나를 보자마자 얼른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켬.

(위의 오른쪽) 비스듬하게 옆으로 눕기에, 왜 저러나 싶었는데...

(아래 왼쪽) 그냥 발라당 누워버려서는, 너무나도 관능적(?)인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0-;;

(아래 오른쪽) 속세에 초연해야 할 사찰의 견공이, 이렇게 카메라를 의식해서야... ^^;;

 

  부엉이 바위에서 사자 바위로 올라가는 길에 '정토원' 이라는 작은 사찰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임시로 안치되었던 곳이며, 장례를 전후해서 전국에서 온 수많은 참배객이 다녀간 곳이기도 하다.

  이 절을 지나칠 때, 절에서 키우는 듯한 개 한 마리가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는 게 보였다.  귀여운 생각이 들어서 사진 찍으려고 디카를 들이댔더니, 인기척을 느꼈나 눈을 떴다.  그러더니만... 그간 봉하마을 방문객들에게 어지간히 카메라 세례 받았던지, 알.아.서. 포즈를 취한다. (스타 의식 철철 넘쳐흐르는 개~~ ^^)

 

 

이쪽은 사찰 견공 2호...! ^^

 

  쪼그리고 앉아 사찰 견공 1호(저 위에 4장짜리 사진 주인공) 사진을 연달아 찍고 있는데, 뭐가 내 허리에 닿아서 깜짝 놀랬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찰 견공 2호의 등장...!  2호는 코끝으로 내 허리를 문질러 자기 존재를 알리더니, 내가 쳐다보자 1호처럼 누워버렸다. ^^

 

 

얘들아, 우리 만난지 3분도 안 된 사이잖아...  나보고 뭘 어쩌라는거니... ^^;;

 

  이 사찰 관계자로 보이는 아줌마가 지나가다가, 이 광경을 보고 웃으셨다.

  종이컵에 차를 담아 건네주시면서(역시 시골마을이라 인심이 좋구나~~ ^^), 개들이 눈치가 빨라서 자기들을 예뻐하는 것 같은 사람이 나타나면 저렇게 애교를 떤다고 하셨다.

 

 

사자 바위에서 내려다 본 봉하마을 풍경.

 

  고생해서 올라갔지만, 바위 아래 확 틔이는 마을 풍경을 보니 고생한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아래쪽 삼각형으로 보이는 부분이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이다.  풍수지리 같은 것은 전혀 모르지만, 그래도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쪽에는 푸르른 산이, 왼쪽에는 잘 정돈된 논이, 묘역을 감싸안고 있으니 말이다.

  사진 아래 왼쪽 끝에 보이는 논 위의 글씨는 아래쪽 사진 참조... ^^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라고 논의 벼를 쳐내어 글씨를 새겼음.

 

  페루의 나스카 평원 글씨처럼(비록 스케일은 훨씬 작기는 하지만...^^), 저 글을 제대로 보려면 사자 바위처럼 높은 곳에 올라서는 수 밖에 없다.

  꼭 정치적인 의미에서 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경구로 삼을만한 글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런 좋은 글씨를 평지에서는 읽지 못 하고, 높은 바위에 힘들게 오른 후에야 볼 수 있다는 것도, 사람이 고생을 해야만 얻는 것도 있을 것이라는 뜻으로 생각되었고... (꿈보다 해몽? ^^)

 

 

  이렇게 2시간 반짜리 봉하마을 나홀로 투어를 마친 후, 김해시내를 향해 다시 버스에 몸을 싣고 고고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