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9월 4일)에 화랑대역을 다녀왔다.
단, 여기서 주의할 점 하나...! 이번에 포스팅할 화랑대역은 전철역 화랑대역이 아니라, 기차역 화랑대역이다. (평범한 전철역이라면 굳이 포스팅까지 할 이유가... ^^) 즉, 경춘선의 화랑대역,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작년 말에 경춘선이 일반 철도에서 전철로 바뀌기 전에 있던 화랑대역이다.
이 화랑대역은 지금은 폐쇄된 역이다.
작년 12월에 원래 철도였던 경춘선이 전철화 되면서, 새로 생긴 그 전철 구간에 이 화랑대역은 포함되지 않아 더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작년 12월 20일에 마지막 춘천행 기차를 떠나보내면서, 우리나라 철도 역사(歷史) 속으로 사라져버린 역이다.
다만, 화랑대역의 역사(驛舍)가 일제시대인 1939년에 지은 건물이라 문화유적으로서 가치가 있고, 또 화랑대(육군사관학교)가 바로 옆에 있다는 지정학(?)적 중요성도 고려해서, 비록 폐쇄된 역이지만 보존하기로 했다.
그런 역사적인 사항은 둘째치고라도, 대도시 서울에 남아있던 마지막 간이역이라는 점에서 무척 서정적인 느낌의 역이다.
화랑대앞 삼거리에 남아있는 열차 신호등.
서울 지하철 6호선의 화랑대역에서 내려 화랑대(육군사관학교) 쪽으로 좀 걸어가면, 위의 사진과 같은 삼거리가 나온다.
기차가 안 다니게 되니 삼거리에 원래 있던 철도 건널목도 사라졌지만, 신호등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트럭과 승용차가 가는 방향이 태릉선수촌 및 삼육대학교 쪽이고, 자동차가 전혀 안 보이는 오른쪽이 화랑대 방향이다.
(위) 육군사관학교 정문
이왕 화랑대 근처로 출사나가는 거, 화랑대에 괜찮은 꽃돌이(花郞은 꽃돌이란 뜻이 아니던가...!)가 하나 눈에 띄면 목에 새끼줄 걸어 확 끌고 오려 했다. ^^;;
이 날 내가 본 군인이라고는 화랑대 정문의 저 두 사람과 나중에 후문 쪽에서 본 두 사람이 전부였다. 국군 아저씨에게 들은 말이라고는 '여기는 군사지역입니다. 사진 찍지 마세요!' 하는 고함소리가 전부였고... ㅠ.ㅠ
드디어 자태를 드러낸 화랑대역...!
이미 문닫은 역이라는 점 때문에, 흑백으로 찍어봤다.
칼라 버전도 있는데, 역시 이쪽이 훨씬 아련하고 예스러운 느낌이 풍긴다. ^^
창문을 통해 본 역사 내부 - 피아노와 벤치가 남아있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쉬운 것이, 왜 내가 이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도 폐쇄되기 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아직 기차가 다니던 때에도 간이역이라서 이용객이 많지 않아, 삭막한 도시 속에서 사람 냄새 나는 전원 같은 느낌을 물씬 냈던 모양이다. 역사 안에 있는 저 피아노는 이용객 중 원하는 사람 아무나 다 칠 수 있었고, 커피믹스와 뜨거운 물을 항상 준비해두어서 이용객들이 무료로 마실 수 있었다고 한다. 거기다가 방명록까지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이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에 들린 소감을 쓸 수 있게 했었다고 하니, 여러가지로 독특한 분위기의 역이었던 셈이다.
아직 기차가 운행 중일 때 못 가본 게 정말 유감이다. ㅠ.ㅠ
역사 옆에 있는 화랑대역의 역사에 대한 설명판.
역사에서 다시 삼거리 쪽으로 가면서 본 철로의 표지판.
역사의 문이 잠겨있기 때문에 철로로 들어가보려면 다시 화랑대앞 삼거리의 신호등 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울타리 너무로 본 인적 끊긴 철도 앞에 서있는 화랑대역 표지판이 아스라한 느낌을 준다. 마치 울타리 이쪽의 시간과 저 건너편의 시간의 흐름이 전혀 다른 것 같은 느낌이다.
사람 대신 화랑대역을 점거한 고양이 삼총사. ^^
언젠가부터 서울시내에 길고양이들이 부쩍 늘었다.
화랑대역은 사람이 없는 곳이라 고양이들이 은신처로 삼기에 제격이었을 것이다. 나를 보자마자 얼른 저만큼 도망치더니, 내가 움직이지 않자 경계를 풀지 않은 태도로 천천히 돌아와서 나를 관찰(!)했다. ^^
최근에 읽었던 고양이 관련 에세이인 '이용한' 작가의 '명랑하라 고양이' 도 떠올랐다. 저 녀석들도 우리 인간처럼 이 지구에서 수천년간 한 자리 차지하고 살아온 존재들이다. 쓰래기 봉투 다 찢어놓아 지저분하다는 둥 밭의 작물을 헤쳐놓는다는 둥 하면서 덮어놓고 잡을 게 아니라, 뭔가 우리와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화랑대앞 삼거리 신호등에서 바라본 화랑대역 쪽으로 뻗은 철로.
어렸을 적에 무척 좋아했던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 의 한 장면 같다. ^^
누군가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니 사람과 기차가 없는 철로를 보면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하던데, 나는 옛날 영화 속으로 빨려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철로와 승강장에 있는 표지판들.
그런데 승강장에 있는 표지판(왼쪽 위)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나머지 두 표지판의 화랑대 한자 표기가 좀...
어찌된 영문인지, 화랑대의 화(花)를 화(化)로 해놓았다. ^^;; 그렇잖아도 이용객 적어서 적자만 나는 간이역의 표지판을 다시 만들 예산이 없었는지, 손으로 풀초머리(艹)를 써서 덧붙였다. 만일 어느 정도 규모있고 지금도 이용하는 역의 표지판이 저 모양이었다면,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문닫은 간이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런지, 오히려 인간적이고 해학적인 느낌이었다. ^^
(위) 철로 쪽에서 바라본 역사.
(아래) 위 사진의 역사 왼쪽에 있는 그림의 근접 촬영 버전. ^^
상하행 철로 위에 얹혀있는 나무로 된 건널목이, 이 곳이 서울역이나 용산역 같이 사람 바글거리는 곳이 아닌, 한적한 간이역임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어찌된 셈인지 내가 찍은 사진마다 역사의 삼각형 지붕이 대칭형인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사진 속에 나오는 그림처럼 비대칭형이다. 일제시대에 지은 역사는 이런 비대칭형 지붕을 가진 점이 특징이라고 한다.
역사 바로 옆에 있는 저 그림은 이 역에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역사를 지나쳐서 육군사관학교 쪽으로 뻗은 철로 주위의 풍경.
무인역이라는 표지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아직 기차가 다니던 시절에도 이용객이 너무 적어서 역무원을 따로 두지 않았다는 의미인지(물론 관리하는 사람이 아예 없을 수는 없을테고, 이 곳만 전담하는 역무원이 없었을 수도 있다는 뜻임.), 아니면 지금 폐쇄되어 역무원이든 승객이든 없다는 의미인지...
화랑대앞 삼거리에서 역사까지는 이런저런 잡풀들이 나있기는 해도, 그래도 사람 손이 좀 닿았는지 드문드문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역사를 지나쳐서 육사 쪽으로 계속 걸어가자 정말 풀이 무성했다. 다만 눈에 띄는 것 하나는, 역사 앞까지는 온갖 잡풀이 뒤섞여있더니 이쪽은 주로 강아지풀만 잔뜩 나있다는 점이다.
철로 주변을 뒤덮는 것으로도 모자라, 철로 위까지 점령한 강아지풀 군단.
육사에 가까워질수록 강아지풀이 점점 무성해졌다.
처음에는 철로 주변에만 깔려 있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철로 위까지 온통 강아지풀밭이다. 덕분에 철로 위를 밟으며 걷던 중에 좀 긴장했다. 긴바지를 입고 있어서 풀이 내 살에 직접 닿을 리는 없지만, 워낙 소심한 성격이라 혹시 유행성 출혈열이나 뭐 그런 무서운 병에 걸릴까봐... ^^;;
이 강아지풀은 식물계에 깜깜절벽인 내가 드물게 알고 있는 풀이름 중 하나다.
어려서 살았던 지역이 서울에서 드물게 수양버들, 나팔꽃, 분꽃, 강아지풀이 지천으로 널렸던 곳이라, 이 도시 촌닭 눈에도 익숙한 풀이기 때문이다. 그 때 동네의 어떤 아이가 강아지풀을 '개풀' 이라고 불렀던 것도 기억이 나고... (강아지풀이 다 자라면 개풀이 되는건가? ^^)
육사 후문 앞을 지나 춘천 방향으로 뻗는 철로.
강아지풀밭을 헤쳐나왔더니, 육사 후문이 보였다.
후문과 철로 사이에는 개천이 있어서, 후문 바로 앞으로는 개천을 건너는 다리가 있고, 철로도 개천 위로 뻗어 나간다.
개천 위로 지나는 철로.
아무 생각 없이 저 철로 위에서 아래 개천 쪽 사진을 찍다가, 기겁했다.
내 뒤편에서 자동차 한 대가 육사 안으로 들어가려고 철로 위를 지나는 순간, 내가 서있던 저 개천 위 철로 전체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사진 찍는데에만 신경쓰다가 발 아래가 요동을 치는데, 순간 철로가 무너져내리는 줄 알고 십년감수했다. ^^;;
전철 중앙선 / 경기도 양평의 간이역 석불역(http://blog.daum.net/jha7791/15791141)
구 화랑대역 철도공원 - 서울 마지막 간이역의 변신(http://blog.daum.net/jha7791/15791456)
'- 국내 여행기 > 서울(성북구 이외 지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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