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여행기/서울(성북구 이외 지역)

도심의 가을 살짝 맛보기

Lesley 2010. 10. 15. 20:53

 

  어제(10월 14일) 오후, 창경궁, 창덕궁, 북촌을 '일부'만 '수박 겉 핥기' 식으로 후다닥 한 바퀴 돌았다. 

 

  원래 계획은 창덕궁, 그 중에도 창덕궁 후훤을 집중공략하는 것이었는데, 그만 일이 좀 꼬였다.

  우선 함께 가기로 한 일행(HS와 JO) 중 JO이 지각을 했고, 또 모두 점심을 거른 채 만난 통에 만나기가 무섭게 늦은 점심부터 먹으러 갔다. ^^;;  게다가 일이 꼬이려 그랬나, HS와 나는 처음부터 '창덕궁 간다' 라고 하고 만난 건데, 어찌 된 영문인지 JO만 창경궁 가는 걸로 알고 자신이 길을 안다면서 우리를 창경궁으로 데리고 갔다.

  이런 저런 일로, 2시 반쯤 창덕궁 들어갈 예정이었던 것이, 그만 4시 다 되어 창경궁으로 가게 된 것이다. -.-;; (뭐, 그 후에 어찌어찌하여 창덕궁도 결국 가기는 했음... ^^;;)

 

 

◎ 창경궁

 

   도심 속의 녹지대 창경궁

 

 

  창경궁은 한적했다.

  평일이기도 하고, 슬슬 폐관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도 하고, 창경궁이란 곳이 보존상태가 그다지 좋은 곳이 아니고 최근에야 복원작업 들어간 곳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관람객 북적이는 경복궁이나 창덕궁과는 달리,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좋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건...

  창경궁 입장권 뒷면에, 창경궁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짤막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그 중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사건도 창경궁에서 있었다 해서, 우리 모두 '거기가 어디지?' 하며 궁금해했다.  하지만 전각이 몇 개 안 남아 사도세자가 죽은 곳은 이미 헐렸는지, 아니면 우리가 못 찾는 건지, 하여튼 찾지 못 했다.

  나와 JO은 '못 찾으면 할 수 없지, 뭐...' 하는 식이었는데, HS는 꼭 알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언니에게 전화해서는 '나 지금 창경궁 왔는데, 사도세자가 어디에서 죽었는지 알아?' 라고 물었다.  그런데  HS의 언니 왈 '뒤주에서 죽었잖아!' (이 자매의 대화는 정말 지못미~~~ ^0^) 

 

 

창경궁 안에서 전각 안으로 들어가는 게 허용된 전각인 통명전(通明殿)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통명전은 신발 벗고 안으로 들어가는 게 허용된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 몇 명과 외국 여행객 한 사람이 우리보다 먼저 들어가 사진 찍고 있었다. 

 

 

통명전 내부 

 

 

  전부터 생각한건데, 사극에서 보는 궁궐 방 안의 모습과 실제 궁궐에서 보는 방 안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일단 천장의 높이...

  사극에서야 드라마다 보니 '궁궐이라는 곳은 이리 화려했소~~'라고 보여주기 위함인지, 아니면 각종 촬영도구를 설치하려니 그럴 수 밖에 없는지, 제법 널찍하고 천장 높이도 꽤 된다.

  하지만 실제 궁궐은 예전에 사람이 정말로 살았던 곳이라, 그 시절 사람들의 생활에 맞춰져 있다.  일단 천장이 낮은 편이다. 전에 19세기에 활동한 영국 여행가 겸 지리학자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의 여행기《조선과 그 이웃나라들》를 읽어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비숍 여사가 고종 시절 조선 남자들의 평균키를 165센티미터 정도 된다고 적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연히 여자들은 그 보다 10센티는 더 작았을테고...  그러니 그 시절에 지은 주거시설의 천장 높이는 지금보다 훨씬 낮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독특한 공간 활용법...

  한옥은 넓찍한 공간을 창호지문을 이용해 여러 개의 작은 방으로 나누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흔히 조선시대 건축물에 대한 설명을 보면, 이렇게 필요에 따라 공간을 넓게도 좁게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조상들의 지혜라고 한다.  분명 대가족 사회에서는 저렇게 하는 것이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나처럼 개인공간을 중요시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감한 공간 활용법이다. ^^;;  내 공간이 수시로 넓혀졌다 좁혀졌다 하면 불안정한 기분이 들 듯 하다.  그리고 문을 닫는다 해봤자, 결국 얇은 창호지문이다.  불빛에 비친 내 그림자와 문 밖으로 새어나오는 내 소리를 보고 들으면, 내가 뭐 하는지 밖의 사람이 다 알 수 있을 것 아닌가... ㅠ.ㅠ  

 

 

 

◎ 창덕궁

 

  이번에 가서 보니, 창덕궁의 관람방식이 좀 바뀌었다.

  창덕궁은 조선왕조 때의 궁궐 중 본래 모습이 제일 제대로 남아있는 곳이고,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해서, 그 동안 가이드 동반한 단체관람만 가능했다.  (단체여행객만 입장 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라, 개별관람객이라도 창덕궁 앞에서 기다렸다가 지정된 시간에 가이드 뒤를 쫓아 들어가야 한다는 뜻임.)  하지만 지난 봄부터 개별관람이 허용되었다는데, 후원(한때 일제시대 식으로 '비원'이라 불리웠던 곳의 원래 이름은 '후원'임)만은 여전히 가이드 동반 단체관람이다.

 

 

창덕궁쪽에서 바라본, 창덕궁과 창경궁 사이의 입구 

 

  이번에 처음으로 창경궁을 통해 창덕궁으로 들어가봤다.

   전에는 창덕궁과 창경궁이 바로 옆에 붙어있어도, 입구를 개방하지 않아 두 궁을 넘나들 수는 없었다.  그런데 지난 5월부터 저렇게 두 궁을 직접 통과할 수 있게 되었단다.  사실 우리는 어차피 창경궁으로 잘못 들어온 거 그냥 창경궁이나 구경하자 생각했는데, 저 문을 보고 즉흥적으로 창덕궁으로 넘어갔다. ^^

  우리랑 반대로 창덕궁 쪽에서 창경궁으로 넘어가는 이들도 있었는데, 좀 황당한 상황을 목격했다.  창경궁으로 들어가는 입장료 1000원이 아까워 그냥 잠깐만 들어갔다 나오겠다고 우기시던 아저씨...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ㅠ.ㅠ)

 

 

오후의 햇살을 등지고 선 전각의 지붕 

 

 

 

인정전 앞에 늘어선 품계석 

 

  사극의 주인공이 된 기분으로 정1품자리 품계석 앞에 가서 서보기도 하고...^^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 북촌의 한옥

 

  창경궁과 창덕궁을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대강 훑고 나왔을 때가 아직 바깥이 환한 5시쯤...

  곧장 헤어지기 뭣하기도 하고...  좀 걷다가 보니 북촌으로 가는 길 나타내는 이정표가 보여서, 발걸음 닿는대로 움직여봤다.  난 조금 더 안쪽 길로 들어가서 여기저기 보고 싶었다.  하지만 동행들이 다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표정들이라, 딱 한 군데만 들어가보고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패쓰~~~

 

 

오래간만에 보는 옹기종기 모인 장독들...^^ 

 

 

  우리집 베란다에도 장독이 있기는 하지만, 작은 것들이고, 아파트 특성상 몇 개 되지도 않는다.

  저렇게 옹기종기 모여있는 장독들은 참 오래간만에 보는 듯 하다.   저물어가는 저녁 햇빛 아래 윤기 반짝반짝 나는 녀석들을 보니 무척 귀여워 보인다. ^^ 

 

 

툇마루에 나앉은 가야금 한 쌍...!

 

 

  방 안에서는 가야금 선생님으로 보이는 50대의 아주머니의 지도하에, 비슷한 또래의 아주머니와 40대쯤 된 아주머니가 열심히 가야금 뜯고 계셨다.

 

  그렇게 초특급 도심 속에서 가을 기분 내는 것은 살짝 맛보는 것 정도로 아쉽게 끝났고...

  아무래도 북촌 한옥마을은 나중에 따로 시간 내어 혼자 가서 제대로 답사하고 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