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을 떠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고, 이제 여기서 만나 좋은 인연 맺었던 친구들과 헤어질 때이다.
어제(15일)에 주뺘오( ☞ '운동회 휴가 동안 생긴 일(2) - 대담한 러시아 학생들 (http://blog.daum.net/jha7791/15790723)' 참조 )와 작별인사 겸 저녁을 먹었다.
주빠오네 과에서 단체로 16일에 상하이 여행을 가는데, 내가 여기 떠난 후에야 돌아올 예정이란다. 그러면 내가 떠날 때 작별인사 할 수가 없으니, 미리 작별인사 하기로 했다. 원래는 14일에 주뺘오와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약속시간 직전에 주빠오네 선생님이 갑자기 그 과 회의를 소집하시는 통에 취소되었다. 그래서 어제 저녁에 주뺘오, 주뺘오의 두 친구와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주뺘오의 이 두 친구에 대해 잠깐 말하자면...
리팡(李芳), 한후이(韓慧)라는 이름의 이 두 여학생은 각각 당안(檔案)과(우리나라로 치면 문헌정보학과 비슷한 학과인 듯.)와 영어과를 전공 중이다. 리팡은 주뺘오와 같이 자전거 동아리에서 활동 중이고, 한후이는 영어과 전공자이지만 개인적으로 주뺘오의 전공인 복장학과(의상학과)에 관심이 있어 청강생 비슷하게 복장학과 수업 듣는 중이다.
작년 주뺘오의 생일에 초대받고 갔다가, 이 두 여학생을 만났다. 그 때 나는 생일이라고 한데다가 만나는 시간도 저녁시간이어서, 당연히 밥 먹게 될 줄 알고 저녁을 안 먹고 나갔다. 하지만 학교 안의 아기자기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씩 시켜놓고 조각케익 오물거리며 40분 정도 영화 이야기만 하다가 돌아왔다. (그 사연 듣고서 어떤 분이 ‘무슨 교양 높은 60대 주부들의 다과회 같다.’라고 하셨음. ^^)
주뺘오가 전에 나에게 말했던 쓰촨식 물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주뺘오가 우리를 안내한 곳은 지난 학기에 진쥔이 살던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쓰촨 음식점인데, 진쥔이 ‘쓰촨 요리 맛을 제대로 내는 집이다.’ 라고 했던 곳이다.
과연 쓰촨 사람이 쓰촨 요리 맛 제대로 낸다고 말할 정도로 엄청 매웠다. 주뺘오가 ‘너는 쓰촨 여행도 다녀왔다면서 어떻게 이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냐?’ 하며, 나 떠나기 전에 먹여주겠다고 벼르던 요리인 수이주훠위(水煮活魚)...!!! 정말 혓바닥과 입술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맵고 얼얼했다.
누가 쓰촨 요리 아니랄까봐 엄청나게 매웠던 수이주훠위(水煮活魚)
쓰촨성 만큼이나 매운 음식을 즐기는 후난(湖南 : 호남)성 출신인 주뺘오는 팍팍 잘도 먹었다.
하지만 나와 두 여학생은 물고기가 어찌나 맵던지, 물고기 살 두어 점 먹고 오이 한 조각 먹고, 물고기 조금 더 먹고 또 오이 한 조각 먹고... 그렇게 오이로 배를 다 채워버렸다. ^^;;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주뺘오가 작별선물이라면서 도장을 주었다.
그렇잖아도 지난 번에 만났을 때 무슨 말을 하다가 도장 이야기가 나왔었다. 내 도장은 고등학교 때 전교생이 장애인단체에 같이 주문한 것이라고 했더니, ‘한국에서는 아직도 도장을 쓰냐?’ 하며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는 내 도장이 크기가 얼만한지, 재질은 무엇인지, 어떤 글씨체인지 등등 이것저것 묻기에, 왜 그러나 싶었다. 아마 그 때 이미 도장을 선물할 생각이었나 보다.
도장 파진 모양을 보니 기계로 판 것 같지가 않아서 ‘네가 직접 만든 거냐?’ 했더니, 룸메이트 중에 전에 그런 알바를 해 본 아이가 있어서 부탁해서 팠다고 했다. 다만 도장집은 자기가 직접 만들었다고 해서 ‘역시 복장학과 학생이네~~’ 하며 우리 모두 소리내어 웃고... ^^
완전히 한 셋트로 받은 고풍스러운 선물이다. ^^
식사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내 중국생활에 나름 기념비적인(?) 일이 두 개 있었다.
첫째, 한국에서도 대학 졸업 후 한 번도 안 쳐본 당구(포켓볼)를 중국에서 다 쳐봤다.
한후이도 몇 년 동안 안 쳐봐서 다 잊었다고 했고, 리팡은 아예 쳐본 적이 없다고 했고... 덕분에 주뺘오의 독무대였다. 나와 리팡이 한 개씩, 한후이가 두 개 집어넣었고, 나머지는 몽땅 주뺘오 차지였다. ^^
둘째, 캠퍼스를 반으로 가르는 도로 창수루(長壽路)와 C취 사이의 쇠창살을 통과해서 C취 안으로 들어갔다.
지난 학기 신종 인플루엔자 때문에 학교의 어지간한 문이 다 통제되었을 때, 중양홍으로 가야 하는데 멀찍이 돌아가는게 너무 귀찮아 쇠창살을 기어서 문을 넘어간 적은 있다. -.-;;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며 서있었는데, 마침 어떤 중국 여학생이 스파이더맨처럼 쇠창살을 잡아타고 넘어가기에, 나도 ‘그래,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는 게 맞는 거지.’ 하면서 같이 넘어갔다. ^^;;
그런데 이번에는 쇠창살을 넘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 쇠창살 사이를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제대로 된 문으로 가자니 너무 멀어서, 한후이가 뜨거운 물 길으러 가는 시간에 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학생 기숙사는 온수가 아예 안 나와서, 하루에 두어 차례씩 온수통 들고 다니며 뜨거운 물을 날라서 세수를 하거나 빨래를 해야 함.)
그런데 내 몸이 그 쇠창살 사이로 나가게 될 지 정말 몰랐다. 이런 뚱뚱한 몸도 그럭저럭 빠져나갈 수 있는데, 날씬한 도둑이 쇠창살 통과하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다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쇠창살 설치한 게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나... ^^;;
하여튼 중국에 와서 쇠창살을 넘어가보고, 쇠창살 사이로 빠져나가보고, 별 경험을 다 해본다. ^^
이 날 작별 기념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어째 인물 사진들은 죄다 흔들려 나왔다.
아쉬운대로 이 날 헤어진 뒤에 QQ( ☞ '후룬호, 몽골 민속촌, 교회(성당?) (http://blog.daum.net/jha7791/15790712)' 참조) 를 통해서 주뺘오가 나에게 보내준 사진과 전에 주뺘오네 과 전시회 가서 내가 찍었던 사진이라도 올려볼까 한다.
한후이(왼쪽)과 주뺘오(오른쪽)
아마 복장학과 전시회 첫날에 찍은 사진인 듯 한데, 역시 복장학과 전공자에, 복장학과 수업 일부러 따로 듣는 청강자여서 뭔가 다르다. ^^
평소에는 그냥 평범해 보이는 주뺘오인데, 이 사진 속에서는 포즈가 뭔가 남다르고 분위기도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듯 하다. 한후이의 머리 모양과 옷은 보헤미안 분위기가 솔솔 풍긴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신발이 독특하다. (나도 저런 거 한 켤레 사고 싶어...!! ^^)
주뺘오의 작품
주뺘오네 과 전시회 구경가서 찍은 사진이다.
나처럼 미적인 감각 빵점인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뭔가 전위적인 느낌이 흐른다. ^^;;
다만 이 때 전시회 구경가서 조금 아쉬운 일이 있었다. 나랑 같은 유학생 기숙사에 사는, 이번 학기에 처음 온 한국 유학생 4명을 데리고 갔다. 어찌어찌 하다가 알게 된 사이인데 그렇게 알게 된 것도 인연이고, 항상 자기들끼리 뭉쳐다니는 걸 보니, 내가 처음 여기 와서 중국인들을 만나고 싶어도 어떻게 만나야 할 지 몰라 고민했던 모습도 떠오르고 해서 함께 간 것이다. 전시회 구경 보다는 가서 중국인들과 어울리고 얘기 좀 해보라는 뜻이었는데, 그 날이 주말이어서 그런가 중국인이 거의 없었다. ㅠ.ㅠ
이제 하얼빈에서 지낼 날이 겨우 2주 남짓 남았다.
먼저번 왕산산과 미리 작별한 것을 시작으로, 어제는 주뺘오와 작별했고, 앞으로도 줄줄이 작별할 일만 남았다. 그 동안 곤란한 일을 겪기도 했지만, 그래도 1년 넘게 지내면서 정도 많이 든 곳이다. 이제 곧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많이 섭섭하다. 좋은 인연 맺은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도 섭섭하고, 하얼빈과 헤어지는 것도 섭섭하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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