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 생활기/'09~'10년 흑룡강대학 어학연수기

하얼빈 빙설대세계(氷雪大世界) : 일명 빙등제 (上)

Lesley 2009. 12. 31. 19:23

 

 

  어제(12월 29일) 저녁 학교에서 유학생들을 단체로 빙설대세계(氷雪大世界 : 빙쉐따시제)에 데려가 관람시켜줬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빙설대세계에 대해 설명하자면...

 

  보통 하얼빈의 유명한 겨울축제를 빙등제(氷燈節 : 빙덩제)라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가서 사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그 축제는 빙등제가 아니고 빙설대세계이다.

  전부터 하얼빈에 얼음으로 만든 조각 축제인 빙등제와 눈으로 만든 조각 축제인 빙설제가 유명했는데, 비교적 최근에 이 두 축제 보다 더 큰 규모로 얼음조각, 눈조각을 모두 볼 수 있는 빙설대세계라는 축제를 시작한 것이다.  즉, 빙설대세계와 빙등제는 별개의 축제이다.  보통 '빙등제 간다', '빙등제 보러 가자' 하니, 가끔 사정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이 규모가 훨씬 적은 빙등제로 잘못 찾아가는 모양이다. ^^  (빙설대세계는 타이양다오(太陽島 : 태양도)에서 하는 것이니, 택시 기사한테 자오린(兆麟 : 조린) 공원에서 하는 빙등제 보러 가자고 하지 마세요...! ^^)
  2010년의 빙설대세계가 제11회 축제이다.  내가 이 포스트 쓰고 있는 때가 아직 2009년인데, 뜬금없이 왜 2010년 빙설대세계 이야기를 하느냐...  사실 내가 어제 구경한 그 빙설대세계가 2010년 제11회 축제이기 때문이다. ^^  빙설대세계는 매년 1월 초에 개장하고, 이번 11회 빙설대세계는 2010년 1월 5일에 개장한다.  하지만 보통 정식개장 이전인 그 전해 크리스마스 무렵부터 관람객을 받기 시작한다.
  빙설대세계를 관람하기 제일 좋은 때가 정식 개장 2, 3일 전이라고 한다.  정식개장 한 후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구경하거나 사진찍기 힘들고, 너무 일찍 가면 아직 얼음조각과 눈조각이 완성 되지 않아 몇 가지 볼거리를 못 보게 되기 때문이다.

 

 

  저녁 6시 20분까지 A취로 집합하라 하여, J씨와 집 근처에서 만나 함께 갔다.

  빙설대세계는 아름다운 얼음조각과 눈조각으로도 유명하지만, 끔찍한 추위로 더 유명하기에, 우리 둘 다 완전무장을 한 모습으로 만났다.  나는 몸에 착 달라붙는 한국산 얇은 내복을 입고, 그 위에 다시 양모와 면을 섞어 만든 두툼한 하얼빈산 내복을 겹쳐 입은 후, 청바지를 입었다.  위에는 반팔 내복과 긴팔 내복을 겹쳐 입은 후, 모(毛)로 된 옷을 입고 다시 조끼를 입었다.  그 동안 목도리 없이 살았는데 딱 한 번 가는 빙설대세계 때문에 사자니 돈이 아까운 생각이 들어, 여행할 때 쓰는 버프를 세 개나 목에 감았다. (덕분에 목이 조금 졸리는 느낌이었음. ^^)  발에는 일반양말과 수면양말을 겹쳐 신고, 수면양말 바닥에는 함께 간 J씨가 아닌 또 다른 J씨가 나눠준 핫팩을 하나씩 붙였다.
  추위를 많이 타는 J씨는 나보다 한 술 더 떴다.  아래는 4겹이나 입었다 했고, 위에도 내복 위에 폴라티를 두 겹으로 겹쳐 입고 그 위에 두꺼운 털 후드티를 또 입었다. 그런데 어디 등산이라도 가는 것마냥 두툼한 배낭을 들쳐매고 왔기에,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맙소사...  남편의 오리털점퍼란다...!! -0-;;  본인도 이미 오리털점퍼를 입고 있건만, 그것만으로도 못 견딜 정도로 추우면 한 겹 더 껴입으려고 남편의 큼직한 오리털점퍼를 배낭 안에 꼭꼭 눌러넣어 온 것이다. (다행히 남편 것까지 껴입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음 ^^)

 

  그렇게 무장을 하고서 A취 집합장소로 갔다.

  수백명은 되는 유학생들과 몇몇 선생님들, 십여명의 중국학생(유학생 사무실 드나들며 사무실 일 돕는 학생들)들이 학교 버스 대여섯 대에 나눠타고 출발했다.  이날 최저기온이 영하 27도라더니, 버스 유리창에 성에가 잔뜩 끼어 가는 동안 바깥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거의 도착할 무렵이 되어, 선생님이 '모두 8시 반까지는 차로 돌아와야 한다. 8시 반에 학교로 출발한다'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시계를 보니 이미 7시 반이 넘어서 시간이 촉박하겠다 싶어 마음이 조금 급해졌다.

 

 

빙설대세계의 입구

 

  수백명의 학생들이 한 번에 입구로 몰린 통에, 입구에 사람들 한 줄로 서게끔 세워놓은 철제구조물이 여러 차례 휘청거렸다. -.-;;

  저 앞에서 직원들이 학생들의 학생증을 일일이 검사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어, 그 추운 날씨에 20분은 서있었던 듯 하다.  그런데 얄궂게도 그렇게 발 동동 거리면서 수백명의 학생이 한 덩어리로 서있었던 덕에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견딜 수 있었다. ^^

  입구를 통과하며 보니 이미 8시...  어차피 너무 추워서 30~40분 밖에 구경 못 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래도 버스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까지 딱 30분 밖에 없다니 촉박하게 느껴졌다.
  

 

관광객을 위한 마차를 끄는 말

 

  입구를 들어서자 마자 보인 건 멋진 얼음조각이 아니라, 영하 27도의 혹한에 끌려나온 말이었다.

  나도 J씨도 그 말이 너무 안쓰러웠다.  아무리 이미 털옷(?) 입고 있는 동물이라지만, 이런 끔찍한 날씨에 노동이 웬 말이냐...ㅠ.ㅠ

 

 

화려한 얼음조각 

 

  저 멋진 건물들이 모두 얼음으로 만든 것들이다.

  하얼빈을 관통하는 송화강이 얼었을 때 그 얼음을 잘라 내어 끌어다가 저렇게 얼음 조각을 만든다고 한다.  얼음조각에 설치한 전등 덕분에 정말 화려하다. 

 

 

온통 초록색으로 빛나는 얼음조각들

 

  작년 빙설대세계의 주제가 '디즈니랜드'였다더니, 올해의 주제는 이 나라 저 나라의 유명한 건축물인 모양이었다. 

  아, 2007년 1월 제8회 축제에서는 그 해 한국주간을 맞아 광화문, 경회루, 수원 화성 등 우리나라 건축물과 안중근 의사,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간 올해는 한국 관련 건물 조각이 없는 게 유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