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여행기/'09년 쓰촨(사천)성

쓰촨성으로 출발 - 장거리 기차여행

Lesley 2009. 8. 22. 14:13

 

 


1. 기차여행 첫날


  내 인생에서 가장 긴 기차여행을 하게 된 운명의 8월 1일...!
  진쥔과 7시 20분에 만나기로 해서 6시에 알람 맞춰놨는데, 여행 떠난다고 긴장되어 그랬는지 5시도 안 되어 저절로 깨버렸다.
  그 때부터 이런 저런 일 해놓고 나가서 진쥔과 기차역으로 갔다.  역시나 사람 많은 중국의 기차역답게 큰데다가 기차역 동선까지 정말 특이해서, 우리가 어디로 들어가 타야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덕분에 그 무거운 짐 짊어지고 한참 동안 헤맸다.  그 전날 미리 꾸려놓은 짐을 짊어졌을 때만 해도 제법 짊어질만한 무게였는데, 아침에 기차 안에서 먹을 7끼 분량의 식량을 넣었더니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거짓말 안 보태고 먹을 것 무게만 5킬로그램은 나가는 듯 했다.  진쥔 역시 식량이 너무 무겁다며, 어차피 중간에 베이징에서 기차 갈아탈텐데, 그 때까지의 식량만 사고 나머지는 베이징에서 살 걸 그랬다며 후회하고... ㅠ.ㅠ

 

  그런데 하얼빈에서 베이징까지 우리가 타고 간 기차가 중국에서 제일 빠르다는 동처주(動車組 또는 CRH : 동차조)였다.

  이 기차는 이전 두 차례의 중국배낭여행 때 탔던 기차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시설이나 속도가 훌륭했다.  기차 객실 안에 속도를 알리는 전광판이 있는데, 보통 시속 150~180킬로미터 정도 나오다가, 때때로 시속 200킬로미터 넘는 속도도 나왔다.  덕분에 서울-부산 구간의 4배 가까이 되는 하얼빈-베이징 구간을 8시간에 주파했다.

 

  역시나 그 전날 늦게 잔대다가 새벽 댓바람부터 일어나 설친 탓에 너무 피곤해서, 베이징까지 가는 8시간 내내 거의 잠을 잤다.

  전에 배낭여행 할 때는 아무리 봐도 전혀 지루하지 않던 드넓은 옥수수밭과 들판을 이번에는 못 보고 잠만 잔 게 좀 유감스러웠다.  그렇게 잠만 자다가 오후 5시쯤 베이징에 도착해서 다시 청두행 기차로 갈아탔다.  하얼빈에서 청두까지 직행으로 가는 기차가 없어서, 일단 하얼빈에서 베이징까지 가서 거기에서 다시 청두행 기차로 갈아타야 했다.  사실 우리의 목적지는 청두는 아니고 청두 바로 전의 더양(德陽 : 덕양, 청두에서 기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소도시)이었다. 

 


 ※ 중국 열차 등급


  여기서 소개하는 등급 말고 다른 등급의 기차도 있는 모양인데, 내가 타 본 적이 있는 기차의 등급만 소개하겠다.
  
 1. D 열차 (예를 들어, 기차 번호가 D72 등 D로 시작함.)
   - 조금 전에 본문에서 소개한 그 '동처주(動車組 : 동차조)'란 기차로, 현재 중국 기차 중 가장 빠름. 기차역에 가보면 CRH라고도 표기되어 있음.
CRH는 China Railway High-speed의 약자라고 함.
 
 2. Z 열차 (기차 번호가 Z531 등 Z으로 시작함.)
   -  즈다터콰이리에처(直達特快列車 : 직달특쾌열차). D 기차가 등장하기 전까지 가장 빠른 기차였음. 

 

 3. T 열차 (기차 번호가 T764 등 T로 시작함.)
  -  터콰이리에처(特快列車 : 특쾌열차).  위의 두 종류의 열차는 운행횟수가 그다지 많지 않은데 반해, T 기차는 운행횟수가 많은 열차 중 가장 빠른 열차임.  

 

 4. K 열차 (기차 번호가 K821 등 K로 시작함.)
  -  콰이수리에처(快速列車 : 쾌속열차). 보통열차와 함께 가장 흔한 기차인 듯 함.

 

 5. 네자리 숫자 열차 (기차 번호에 알파벳이 안 들어가고 2535 등 아라비아 숫자 네 자리로만 표기됨.)
  - 푸통리에처(普通列車 : 보통열차).  우리나라로 치면 몇 년 전에 사라진 비둘기호에 해당하는, 정말 느려터지고 모든 역에 죄다 서는
열차임. 이 푸통리에처의 잉쭤(硬座 : 경좌)에 앉아서 장거리 여행을 하게 되면 정말 죽음임... ㅠ.ㅠ

 

 

(상) 하얼빈에서 베이징까지 가는 D 열차의 이등석 기차표.

(하) 한국, 중국을 통틀어 내가 지금까지 구입한 기차표 중 가장 비쌌던 402위안(한화 약 8만원)짜리 기차표.

 

 

 ※ 중국 열차의 좌석 등급


 1. 루안워(軟臥 : 연와) - 직역하면 '부드러운 침대'인데, 4명이 하나의 침실을 쓰는 침대칸으로 가장 비쌈. 침대칸이 상하로 2개씩 양쪽으로 마주보고 있는 구조임.

 

 2. 잉워(硬臥 : 경와) - '딱딱한 침대'라는 뜻으로, 6명이 한 칸씩 쓰게 되어 있어서 상중하 3개씩 양쪽으로 되어 있는 구조임. 루안워와는 달리 하나의 침실로 되어 있는 게 아니라 오픈되어 있는 구조임.

 

 3. 루안쭤(軟座 : 연좌) - '부드러운 의자'란 뜻으로, 우리나라의 무궁화호나 새마을호 같은 일반 열차의 좌석을 생각하면 됨.

 

 4. 잉쭤(硬座 : 경좌) - '딱딱한 의자'란 뜻으로, 거의 90도짜리 의자인데다가 좌석간 간격도 좁아서 매우 불편함.  당연히 이 4등급의 좌석 중 가장 저렴함.

 

 

  그런데 베이징에서 기차 갈아타며 좀 놀랐던 사실... 
  중국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어지간한 기차역마다 마치 공항처럼 X-ray로 짐을 검사한다.  그런데 이번에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베이징역에서 베이징서역으로 가느라 지하철을 이용했더니만, 이제는 기차역 뿐 아니라 지하철역에서까지 X-ray로 짐검사를 하고 있었다.  분명히 5년 전에 베이징 갔을 때는 지하철에서는 그런 검사 안 했는데...  작년 올림픽 때 보안이 엄청 강화되었다더니 그 일로 그런 건지, 아니면 최근 위구르 자치구에서 일어났던 위구르족과 한족의 유혈충돌로 그리 된 건지...


  어찌되었거나 더양으로 가려고 청두행 기차를 갈아탔다.

  그런데 베이징까지 타고 온 D 열차와는 완전히 다른 네 자리짜리 보통열차라 속도가 엄청 느렸다.  그 안에서 1일 오후 9시부터 3일 오전 5시까지 32시간을 있었는데, 굳이 보통열차라는 이름을 들먹이지 않아도 창 밖으로 풍경이 지나치는 속도만 봐도 D 열차와는 속도가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여튼 그렇게 청두행 기차에 몸을 실고서 소등 전에 양치질만 대강 했다.

  (중국 기차는 일반 좌석은 안 그렇지만, 침대칸의 경우에는 10시쯤 강제소등을 해서 의무적으로 잠을 자야 한다. ^^;; 그렇게 강제 취침하고 있으면 나중에 내릴 무렵 되면 그 차량의 차장이 와서 깨워준다. ^^)  우리 둘 다 하루 종일 무거운 짐 가지고 낑낑거리느라 땀을 흘려서 샤워를 하고 싶었지만, 기차 안이라 고양이 세수 외에는 곤란했다.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다 못 씻어서 더러운데...' 하는 말을 주고받는 걸로 서로를 위로하며 침대칸 위로 올라 몸을 뉘었다.

 


2. 기차여행 둘째날

 

  기차여행 이틀째였던 8월 2일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별짓 다 했다.

  mp3로 음악을 듣다가(그런데 하얼빈역에서 무거운 배낭 짊어지고 분투하면서 목에 걸고 있던 이어폰 줄을 본의 아니게 잡아당겨서, 이어폰이 고장나 한 쪽이 안 들렸다...ㅠ.ㅠ), 그것도 지루해져서 전자사전에 넣어둔 소설을 이것저것 대강 읽었다.  나중에는 이것 저것 하다 하다, 혹시나 하고 가져간 1학기 때 교과서로 공부를 다 했다...! (얼마나 심심했으면 기차 안에서 공부를 다 했겠는가...! ㅠ.ㅠ)  내가 침대칸에 누워 교과서를 펼쳐드니, 진쥔이 너무 웃겼는지 킬킬대면서 발로 나를 차고...  그러더니 자기 역시 별다른 방법이 없었는지, 공부나 한다면서 영자신문을 펼쳐들었다. ^^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날이 한국에 있는 친구 JW의 생일이었다.
  짤막하게나마 생일 축하한다는 인사하려고 IP카드를 이용해 전화를 하려 했으나, 도통 전화가 터지지 않았다.  계속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둥의 메세지가 나오기에 애초에 등록할 때 내가 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했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내가 쓰는 IP카드가 하얼빈과 그 부근에서만 쓸 수 있는 카드였다.  덕분에 생일축하 메세지 전하는 일은 물 건너 가버렸다. (JW아, 믿어줘! 나 정말 네 생일 안 잊었다구...! 잊기는 커녕 너한테 연락하려고 무진장 애썼단 말이야...! ㅠ.ㅠ)

 

  아, 그리고 이 날 일어났던 제일 황당한 사건...
  아침에 진쥔이 늦잠을 자기에 계속 자게 놔두고 혼자서 가볍게 아침식사 하려고 선반 위에 올려둔 큰 배낭에서 먹을 것을 꺼내려 했다.   선반이 남자들 키보다도 높은 곳에 있어서 바닥에서 배낭을 뒤지는 건 불가능 했기에 침대 위에 올라가 먹을 것을 꺼내는데, 황당하게도 갑자기 종아리에 쥐가 났다...! ㅠ.ㅠ  남들은 늦잠 자거나 아니면 컵라면이나 빵 등으로 아침 먹고 있는데, 거기에서 비명을 지를 수도 없고 정말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다. ㅠ.ㅠ
  내가 때때로 밤중에 자다가 다리에 쥐나서 고생하곤 하지만, 아침에 그것도 뭐 좀 먹겠다고 가방 뒤지다가 다리에 쥐 난 적은 또 처음이었다.  나중에 진쥔에게 이 얘기 했더니, 심심해 죽겠는데 그런 재미있는 광경을 못 봐서 너무 아쉽다고 막 웃고... ^^;;

 

 

3. 기차여행 셋째날

 

  새벽 4시 밖에 안 되었는데 진쥔이 나를 깨웠다.
  1시간 후면 목적지인 더양에 도착하니 일어나서 짐 챙기라고 했다.  진쥔은 이미 하차할 준비를 다 끝낸 듯 했다.  전에는 몰랐는데 이번 여행을 위한 기차표 구할 때부터 보니, 은근히 성질 급한 듯 하다. ^^

 

  그런데 종착역 거의 다 갔다고, 기차 안의 물이 떨어졌다...! ㅠ.ㅠ 

  2박 3일간 못 감은 머리는 기차 안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그래도 남의 집 방문하는 건데 최소한 세수와 양치질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잠 덜 깬 상태로 세면도구 챙겨들고 세면대로 간건데, 우째 이런 일이... ㅠ.ㅠ  

  그렇잖아도 지성피부인데다가, 자다 일어났으니 얼굴에는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데, 그런 상태로 진쥔네 집에 갈 생각을 하니 너무 난감했다.  하지만 어쩌겠나,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을...  할 수 없이 1회용 물수건으로 얼굴 대강 문지르고 껌 하나 씹는 걸로, 세수와 양치질을 대신했다.

 

  이윽고 더양역에 거의 도착하게 되어 짐을 짊어졌는데, 정말 놀랐다...!
  하얼빈에서 출발할 때 그렇게 무거웠던 짐이, 이제는 제법 짊어질만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가벼워졌다.  역시 7끼분의 식량이 사라지니 무게가 확 달라졌다.  2박 3일 내내 똑같은 빵과 컵라면 먹느라 우리 둘 다 질렸었는데, 하얼빈과 베이징에서 무거운 짐 옮기느라 하도 고생을 해서, 어떻게든 짐의 무게를 줄이겠다는 일념으로 억지로 먹어댄 보람이 있었다. ^^

 

  더양역에서 택시를 타고 진쥔네 도착했을 때는 오전 5시 반 정도 되었다.  

  우리를 맞는 진쥔의 엄마는, 아무래도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막 잠에서 깨어난 모습이셨다.  그런 부스스한 모습을 뵈니, 세수도 못 하고 양치질도 못 한 채 온 내가 좀 덜 민망하게 느껴져서 기뻤다... ^^;;  그렇게 내 인생 최고로 긴 기차여행을 끝맞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