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번 여름방학 계획은, 러시아 국경지대를 1주일 이내로 가볍게 둘러보고 나머지 방학 기간 동안 죽어라 공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복병(이사 문제)에게 발목 잡혀 거의 3주일 가까이를 보냈더니 진이 다 빠져서, 여행이고 뭐고 다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행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1학기 때 배웠던 거나 제대로 복습하여 기초를 탄탄히 하여, 2학기 때는 1학기 때처럼 수업 진도 따라가느라 허덕이는 일 없도록 해보자 결심했다.
그런데 7월의 마지막 월요일이었던 27일 오전, 진쥔이 문자를 보내 자신이 집으로 갈 때 함께 가겠느냐 물었다.
진쥔의 집은 북방지역인 하얼빈에서 한~~ 참~~ 떨어진 남방지역의 쓰촨성(四川省 : 사천성)이다. 말이 같은 나라지, 하얼빈에서 집을 오갈라치면 넓디 넓은 중국을 종단해야 할 판국이라, 시간도 많이 걸리고 교통비도 많이 든다. 그래서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그렇게 1년에 두 차례만 집에 다녀올 수 있다. 이번에도 지난 겨울방학 이후 반 년만에 집에 돌아가게 된 건데, 함께 갈 생각 있는지 물어온 거다.
사실은 지난 학기에도 한 번 나에게 방학 때 자기 집 가는 거 생각해보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나 역시 쓰촨성에 가서 컴퓨터 그래픽 같아 보일 정도로, 도무지 이 세상의 풍경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은 주자이고우(九寨溝 : 구채구)를 꼭 한 번 보고 싶기는 했다. 하지만 추위는 참아도 더위는 못 참는 나인지라, 푹푹 찌는 여름에 남방으로 가는 걸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날씨 선선해지는 다음 학기 10월쯤 주말 끼여서 수업 며칠 빼먹고 다녀오자 하고 마음 먹었다. 진쥔도 그 후로는 더 권하지 않았고...
그런데 갑자기 자기랑 쓰촨성 가지 않겠느냐는 문자를 받고 나니...
방학 시작할 무렵부터 이사 문제니, 친한 친구들과의 이별이니 해서 뒤숭숭했던 터라 기분 전환이 필요할 듯 하여, '에라~~ 아무리 더워도 설마 죽기야 하겠어. 거기나 가보자.' 하고 결정했다. 하얼빈을 떠난 뒤로 이 때까지 아직 귀국하지 않고 칭따오(靑島 : 청도)의 중국친구 집에 머물고 있던 B에게 전화했더니만, B가 '언니, 솔직히 언니가 방학 동안 집에 있는다고 공부하겠어요? (그래, 내 이미지는 이렇구나...-.-;;) 10월에 언니 혼자 가겠다고 해도 꼭 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데려가 준다고 할 때 그냥 가요~~'라고 말했던 것도, 그렇게 결정한 이유 중의 하나였고... ^^;;
그래서 그 날 오후에 푸다오 수업하러 온 진쥔에게 함께 가겠다고 했더니, 막 시작하려던 수업 때려치우고 벌떡 일어서며 '어서 기차표 사러 가자.'라고 한다... ^^;;
알고 보니 나한테 그렇게 문자 보내놓고는, 내가 안 갈 줄 알고 오전 중에 이미 기차역 가서 자신의 표를 샀다고 한다. (헉...! 반나절을 못 기다리고 벌써 표를 사버리다니, 이런 때 보면 은근히 성질 급하다... -.-;;) 워낙 인구가 많아 원래도 기차표 사는 게 쉽지 않은데다가, 여름방학이라 귀향하는 학생들이나 휴가 떠나는 사람들도 많아 더욱 표를 구하기 힘든 때라, 기차역 가는 도중에 진쥔은 무척이나 조바심을 냈다. (정작 나는 '표 없으면 안 가는거지, 뭐~~' 하는 식이었음. -.-;;)
그런데 의외로 손쉽게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진쥔이 나보고 정말 운 좋다고 말하기에, 내가 '나 원래 운 좋아. 착한 사람은 반드시 좋은 보답을 받게 되지.'라고 했더니, 지난 번에 망친 IELTS 시험 다시 볼 때 내 운 좀 자기한테 나눠달란다. ^^
그나저나 여행이라는 게 죄다 돈덩어리인데, 예상 못 한 쓰촨성 여행으로 예상 못 한 지출이 생긴 것 때문에 가슴이 쓰리다.
진쥔이 숙식은 제공한다 했으니 그래도 돈이 좀 덜 들겠군 싶었는데, 웬걸... 쓰촨성 성도인 청두(成都 : 성도)까지 가는 편도행 기차표 사느데만, 약 700위안(한화 약 140,000원)이 들었다. 나중에 하얼빈 돌아올 때에도 또 그만큼의 돈 들여서 기차표 사야할테니... 에구구... ㅠ.ㅠ
하얼빈으로 돌아오면 여행 때 쓴 돈 일부라도 벌충할 겸, 살도 뺄 겸, 겸사겸사 하루에 1끼만 먹어야 하나 보다... 어흐흑...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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