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자주 들리는 블로그에 갔다가 '只在此山中 雲深不知處'라는 문구를 봤습니다.
웬지 제가 알고 있는 한시 한 편이 연상되어 인터넷을 뒤져봤더니, 중국 당나라 때 가도(賈島)라는 시인이 지은 尋隱者不遇(심은자불우 : 은자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했네)라는 제목의 유명한 시였습니다.
松下問童子 (송하문동자) 소나무 아래에서 아이에게 물었더니
言師採藥去 (언사채약거) 스승님은 약초 캐러 가셨다고 하더라
只在此山中 (지재차산중) 이 산 속에 계시기는 하지만
雲深不知處 (운심부지처) 구름이 짙어 계신 곳을 알 수 없다고 하더라
제가 이 시를 보고 떠올렸다는 시는,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 활약한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지은 선시(禪詩)인데,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이 자주 인용하여 더욱 유명해진 시입니다.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을 밟으며 들길을 갈 때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말아라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마침내 후인의 길이 될지니
백범 김구 선생은 이 시를 자주 애송했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친필휘호로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1948년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평양에서 열린 남북협상에 참가하고자 38선을 넘을 때, 이 시를 읊으면서 "내가 이번에 38선을 넘는 것을 어리석고 무분별하고 쓸데없는 짓이라고 사람들은 말을 하지만, 난 분명히 말 할 수 있다. 난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는 항상 책임을 질 줄 안다." 며 "나중에 반드시 나의 행적을 평가할 날이 올 때가 있다." 라고 한 일로, 이 시는 더 유명해졌습니다. 덕분에 이 시를 서산대사가 아닌 김구 선생이 지은 걸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제가 어째서 가도의 시를 보고 서산대사의 시를 떠올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두 시는 특별한 연관이 없는데 말입니다.^^
가도의 시에 나오는 화자는 어떤 가르침을 받고자 어렵게 은자를 찾아나섰으나 결국 헛걸음을 하게 된 인물인 듯 합니다.
그래서 이 시에서는 탈속적이고 신비한 분위기가 풍기면서도, 만나려던 이를 못 만난데서 느껴지는 허망함도 묻어납니다.
그에 비해 서산대사의 시에 나오는 화자는, 남에게 가르침을 받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깨달음을 얻으려 하는 인물로 보입니다.
즉, 가도의 시에 나오는 화자에 비해 훨씬 적극적인 인물인 듯 합니다. 게다가 그냥 들길도 아니고 눈 덮힌 들길을 간다고 표현한 걸로 보아서, 깨달음을 얻기 위한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긴 깨달음을 얻기 위한 길이 쉬운 경우가 어디 있겠느냐만은... ^^;;)
그런데 이 화자는 그 험난한 행보 속에서도, 그냥 혼자서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추구하는 길이 나중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될 것을 염두에 두고서, 신중히 발걸음을 옮기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면서, 뭔가 비장하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가도의 시를 보고서 서산대사의 시를 연상한 것은, 시의 분위기가 비록 전혀 다르기는 하지만, 두 시 모두 어떤 것(깨달음 또는 가르침)을 추구하는 사람의 마음을 표현했기 때문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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