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2009년 2월 블로그 정상화 계획...!

Lesley 2009. 2. 2. 11:02

 

  작년 10월 말 부산을 다녀와 부산여행기를 올리고서, 블로그 포스트를 좀 더 살찌우겠노라 마음먹고 열심히 계획을 세웠다.

 

 

 

  계획은...?

 

  첫째, 중국영화 '미인초'와 '발자크와 소재봉(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소녀)'의 감상문을 '문화대혁명기의 성장기'라는 카테고리로 묶어 올리며, 아울러 두 영화의 남자 주인공이며 이미 포스팅한 '황후화'의 주인공 중 하나인 '유엽'에 대해서도 좀 정리해서 올려보고...

 

  둘째, 일본의 중국 침략시기에 일본인으로 태어났으나 중국인의 양녀로 중국에서 성장하여, 중국의 국민가수 및 배우로 활약하다가, 일본의 패망 후 친일부역행위를 한 죄로 사형판결까지 받았으나 극적으로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겨우 목숨을 구하고, 일본으로 귀환한 후 자국의 외교관과 결혼했다가 남편의 사망 후에는 국회의원까지 지낸 파란만장한 인생의 주인공 이향란( '야마구치 요시코'가 본명이지만 중국이름인 이향란으로 더 유명함)의 일대기를 정리해서 올려본 후...   (드라마가 별거냐? 이 사람 인생이 한 편의 드라마다)

 

  셋째, 중국 마지막 황제로 유명한 부의의 동생 애신각라 부걸과 일본 귀족 딸로 그와 정략결혼해야 했던 사가 히로 부부의 사연을 그린 일본 드라마 '유전의 왕비, 마지막 황제'(부걸과 히로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조 ☞ http://blog.daum.net/jha7791/10320185)의 줄거리와 시대적 배경, 결국 가해자인 일본인의 시선으로 만든 이 드라마의 맹점을 짚어보고...

  (아울러 비슷하게 정략결혼의 희생물이 되었던 우리나라의 영친왕과 일본 왕족인 이방자 여사의 사연을 다룬 '무지개를 건너는 왕비'도 이 드라마와 함께 비교하여 올릴까 했는데, 이 드라마는 저 드라마보다 더 짜증스러워서 그만 뒀다. 아마도 우리 역사와 관련된 거라 더 속터졌었나 보다... -.-;;)

 

  넷째, 먼저번 1편 올리고서 손 놓아버린 성혜랑의 '등나무집'에 관한 후속 포스트도 마저 정리해서 올리면서, 역시 성혜랑이 쓴 '소식을 전합니다'에 대해서도 전부는 아니어도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유명인사들(예를 들면, 시인 조지훈의 부친 조헌영씨 등)이 어찌 월북했으며 결국 남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어떻게 밀려났는지 등의 소식도 올려보고자 했다.

 

 

  원래 계획은 그랬다...

  그래서 결론은...?  

 

  결론은... 계획만 거창하게 잘 세웠고, 해놓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계획대로라면 부산여행기 올린 2008년 11월 초에 곧장 위의 작업에 들어가서 이미 모든 걸 끝맞친 상태여야 하는데, 지금은 이미 2009년 2월이고 내 블로그에는 위의 네 가지 포스트 중 어떤 것도 올라오지 않은 상태이다... -0-;;

 

  이게 다 마성의 바화(바람의 화원), 애증의 바화 때문이다. 

  두 달 넘는 시간 동안 바화에 푹 빠져서 허우적대느라, 블로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시청률은 거지같은 드라마가 매니아층의 호응도는 가히 폭발적이니, 그 매니아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서 바화에 관련된 온갖 떡밥을 찾아다니고, 나중에는 아예 매니아들끼리 떡밥을 자체생산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소수자의 결속이라는 게 원래 다수자의 결속보다 강하고 끈끈한 법이니, 나 역시 그 속에서 엄청난 소속감을 느끼며 같이 날뛰었고...

  그래도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바화에서 어느 정도 빠져나와(아직도 완전하게 빠져나온 것은 아니다... -.-;;), 이제는 바화 대신 블로그질에 빠져드는 중이다.   이왕 블로그에 빠져든 거, 차라리 이 기회에 작년 11월에 하려다 못 한 포스팅이나 해야겠다.

 

 

 

  아, 그러고보니 두번재 포스팅 계획의 주인공인 이향란은, 바화의 주인공인 문근영이 영화 '댄서의 순정'에서 불렀던 야래향(夜來香)을 처음 불렀던 가수이기도 하다. (음... 이런 식으로 바화와 또 다시 인연을 맺는구만... -.-;;)

  이 노래는 당시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일본 패망 후 이향란이 일본인이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중일전쟁 직후 반일감정이 팽배해있던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게다가 이향란이 그 동안 중국인인 척 활동했다는 괘씸죄도 걸렸고(사실 이건 이향란 본인의 뜻이라기 보다는, 소속사의 농간이었던 듯 하지만...), 또 그 당시로서는 꽤 선정적으로 해석되었던 가사 때문에 금지곡이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대만의 등려군이 이 노래를 리메이크 하면서 다시 대륙에서도 인기를 끌게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화교 출신 가수인 주현미가 한국어로 번안해 부른 적이 있다.

 

 

 

  하여튼 이제 슬슬 기지개를 좀 펴고 바화 때문에 내던졌던 정신줄 찾아, 주인 잘못 만난 탓에 아사 직전인 내 블로그에게 포식 좀 시켜주고 정상화 시켜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