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부터 절친하게 지낸 친구가 원래는 책과 담 쌓고 지내는 스타일인데, 갑자기 지난 해 독서에 열을 올렸습니다.
비록 그 후에 남친과의 애정이 깊어지고 결혼준비로 동분서주하게 되면서, 독서 같은 건 저 멀리 내던져버리긴 했지만... -.-;; 하여튼 그 친구가 독서에 재미 붙이던 때에 돈도 아낄 겸 서로 갖고 있는 책을 맞바꿔 읽었습니다.
그렇게 친구에게 받은 책 중에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이 들어있어서 좀 놀랐습니다.
제가 다자이 오사무란 작가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대학 1학년 때였던가, 2학년 때였던가... 하여간 그 때 Paper 라는 잡지(처음엔 젊은이들이 많이 드나드는 카페, 음반사, 서점 등에 무료로 배포했었는데, 나중에는 경영난이라도 겪었는지 유료로 전환되어 버렸다는... -.-;;)에 실린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에 대한 짧은 글 덕분이었습니다. 잠시 관심을 가졌지만, '인간실격'이란 제목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압박감(보통 이런 제목의 책은 엄청 난해하고 지루하니까... ^^)과 당시만 해도 일본 문화에 대해 막연히 갖고 있던 거부감과 무지함이 어우려져 그냥 잊어버렸습니다. (오늘날 내가 일본 드라마와 영화를 주구장창 다운받아 보게 될 거라고, 그 당시는 상상도 못 했음. -.-)
그런데 '사양'에 대한 저의 감상을 말하자면...
솔직히 말해서, 저는 어째서 이 책이 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의 일본에서 그렇게 인기를 끌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당시 일본의 패망으로 '일본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며 대동아 공영을 이룰 것이다'라는 허황되지만 절대적인 믿음이 박살나버려 절망과 허무감에 쌓여있던 일본 젊은이들은 '사양'에 크게 공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원래도 유명한 작가였던 다자이 오사무는 최고의 인기 작가로 떠올랐고, 그런 다자이 오사무가 애인과 동반자살을 했을 때 많은 팬들이 그 뒤를 따랐다고 합니다. (그저 너무 지루하고 밋밋하다는 생각만 하며 '사양'을 읽은 저로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일임. 그렇게 지루한 책 쓴 작가가 자살했다고 따라 죽다니? -0-;; 나한테 이 책을 빌려준 친구 또한 어떤 감동을 느끼거나 주인공들의 감정에 공감을 했을지...?)
그런데 요즘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름 아닌, 우연히 알게 된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미시마 유키오'의 신랄한 평가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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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에서 퍼 온 미시마 유키오의 일생
미시마 유키오 (三島由紀夫)
Mishima Yukio
1925. 1. 14 일본 도쿄[東京]~1970. 11. 25 도쿄.
일본의 소설가.
본명은 히라오카 기미타케[平岡公威].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20세기 일본 최고의 소설가로 인정받고 있다. 고위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나 도쿄에 있는 귀족학교인 가쿠슈인[學習院]에 다녔고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신체검사에서 군 복무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아 군수품공장에서 근로봉사를 했다. 종전 뒤 도쿄대학[東京大學]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며 1948~49년에는 일본 대장성(大藏省) 금융국에서 일했다. 첫 소설인 〈가면의 고백 假面の告白〉(1949)은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비정상적인 성적(性的) 취향을 감추어야 하는 한 동성연애자를 비범한 문체로 묘사한 자전적인 성격을 띤 작품이다. 이 소설로 커다란 명성을 얻은 뒤 글 쓰는 일에 전념했다.
작품집 〈한여름의 죽음 眞夏の死〉(1966)에 실린 단편 〈우국 憂國〉은 그의 정치적 견해를 보여주는 소설로 자신의 종말을 예언한 작품이다. 여기서 그는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 할복자살하는 젊은 장교를 존경 어린 어조로 묘사하고 있다. 옛날 일본의 엄숙한 애국심과 무사정신에 깊이 매혹되었던 그는 전쟁 뒤의 풍요로워진 일본 사회와 물질주의적이며 서구화된 일본 국민을 여기에 대비시켜 비난했다. 그 자신도 이들 서로 다른 가치관들 사이에서 어느 것을 택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개인생활에서는 본질적으로 서구식의 생활방식을 유지했고 서구 문화에 대해 폭넓은 지식도 갖고 있었지만 일본이 서양을 모방하는 것에 대해서는 호되게 비판했다. 그는 일본의 전통 무술인 가라테[空手]와 검도를 부지런히 연마하는 한편 무사정신을 보존하고 좌익 봉기가 일어나거나 공산주의자들이 공격해올 경우 천황(일본 문화의 상징)을 보호하는 데 이바지하려는 생각으로 약 80명의 학생들을 모아서 논란의 여지가 많은 '다테노카이'[楯の會]라는 사병대를 조직했다.
1970년 11월 25일 미시마는 〈풍요의 바다〉의 마지막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뒤, 4명의 '다테노카이' 추종자들과 함께 도쿄 시내 근처에 있는 육상 자위대 본부에 들어가 총감실(總監室)을 점거했다. 그는 발코니에서 밖에 모인 1,000여 명의 자위대원들에게 10분 동안 연설을 했는데, 그 내용은 전쟁과 일본의 재무장을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평화 헌법을 뒤엎으라고 촉구하는 것이었다. 군인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미시마는 전통적인 방식, 즉 칼로 자신의 배를 가르면 옆에 서 있던 추종자가 목을 치는 방법으로 할복자살(셋푸쿠[切腹])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많은 억측을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작가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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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일본의 강점으로 고통받았던 우리 한국인으로서는 '재수없는 일본인'의 표상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요즘 일본에서 설치는 극우파들에게는 사무라이 정신을 잇고 일본의 앞날을 제시한 사람으로 떠받들려지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정치적 성향은 차치하고, 인생 자체가 다른 사람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 가정 분위기와 성장 과정
여왕처럼 군림했던 할머니가 손자를 독점하려 했기 때문에 같은 집에 사는 어머니와는 할머니 몰래 비련의 연인처럼 하교길에 잠깐씩 만나야 했고(웬 멜로 드라마?), 할머니의 남성혐오와 신경질 덕분에(할머니는 방탕했던 할아버지에게 성병에 감염되어 평생을 심한 신경통으로 고생했음.) 또래 남자애들과 뛰어 놀지 못하고 여자애들처럼 인형놀이만 하며 여동생과 조용히 놀아야 했습니다.
◆ 성적 취향
생전에도 동성애자 내지는 양성애자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결혼해서 딸도 낳았다는 점에서는 양성애자로 봐야겠죠?
이 사람이 쓴 '금색'은 동성애자를 등장시킨 소설인데 1950년대에 그런 소설을 썼다는 건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금색은 그 내용의 파격성 때문인지 우리나라에는 번역본이 안 나온 걸로 알고 있는데, 저의 강한 집념으로 학술정보서비스 사이트에서 고려대 일문학과 석사 학위 논문을 찾아 줄거리를 읽고야 말았답니다. (저는 회사에서 일거리가 없을 때, 이러고 살아요~~ 일거리가 없다고 다운받은 영화를 보면 '저 인간은 근무시간에 대놓고 놀고 있네'라는 소리 들을테니, 한문이 잔뜩 섞인 논문이라도 컴퓨터 화면에 띄어놓아야 그럴 듯 하게 보이겠죠? ^^;;)
제가 대학 다닐 때, 한 일본 작가가 미시마 유키오와 자신이 동성애 관계였다는 책을 출판했고, 미시마 유키오의 유족이 그 책을 판매금지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해서 우리나라 신문에도 보도되었습니다.
◆ 죽음
위의 미시마 유키오의 생애에 나와 있듯이, 일본 자위대원들에게 전쟁과 일본의 재무장을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평화 헌법을 뒤엎으라고 촉구하는 연설을 하고, 할복자살했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 덕분에, 미국이나 유럽쪽에서는 가장 유명한 일본 작가가 미시마 유키오랍니다. (작품이 아닌 죽음으로 더 유명해진 작가라니...)
◆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미시마 유키오의 악평
미시마 유키오가 다자이 오사무를 싫어한 이유는 여러가지입니다.
첫째, 미시마 유키오는 평생동안 몇 번이나 여자들과 동반자살을 기도했고, 결국은 동반자살한 다자이 오사무를 나약한 인간으로 봤습니다.
기계체조나 냉수마찰만 했어도 다자이 오사무의 나약한 성격을 뜯어고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패전 직후 일본 문학계의 스타였던 다자이 오사무를 직접 만난 자리에서 대놓고 '나는 당신이 싫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할머니가 집안에만 가둬키우는 통에 엄청 허약하게 자란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이 패전하기 전에 징집되어 신체검사를 받았다가 허약하다고 탈락했습니다. 천황에 대한 충성심이 넘쳐나는 우익적인 정치성향을 갖고 있었던 만큼, 신체검사 탈락으로 군대를 못 갔다는 것에 큰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권투, 검도, 공수도로 몸을 단련해서 튼튼해졌죠.)
둘째, 탐미주의자였던 미시마 유키오는 다자이 오사무의 얼굴을 엄청 싫어했답니다. (이 부분에서 그만 경악... -0-;; )
셋째, 여자와 동반자살을 하려면 30세 이전의 젊은 시절에 해야지, 30세가 넘어서는 동반자살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39세에 여자와 동반자살한 다자이 오사무를 싫어했습니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자살하는 판국에 나이를 따지다니... -.-;; 아마도 탐미주의자였기 때문에 아름답지 않으면 연인과의 동반자살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식으로 생각했던 듯... 저로서는 알기 힘든 정신세계... 하여튼 이 사람의 생각대로라면, 이미 만 30세가 되었거나 혹은 만 30세를 코 앞에 두고 있는 저와 제 친구들은 동반자살할 자격도 없음... -.-'')
꽤나 흥미로운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지요?
도서관에 있는 미시마 유키오와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찬찬히 읽어보며, 이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어렴풋이나마 분석해볼 생각입니다. 천황을 중심으로 뭉칠 것과 일본의 재무장 등 정치적 이유(물론 우리가 보기에는 정치적 망상이죠... -.-;;)로 자살한 작가와 그 작가가 무척이나 싫어했던, 연인과 정사한 또 다른 작가...
그리고 제가 이 사람들 책 읽고나서 지치지 않고 여력이 된다면, 미시마 유키오의 스승이며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도 읽어볼 생각입니다. 이 '설국'은 일본 여배우 유민의 베드신이 나온다고 하여 화제가 되었던 영화 '신(新)설국'의 원작인 동명소설과는 다른 작품입니다.
(참고로, 유민의 누드 보려는 엉큼한 생각으로 극장을 찾았던 이 땅의 남정네들, 이 지루한 영화보다가 졸려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는... 특히 주인공 남자랑 유민이 70년대 한국영화처럼 '나 잡아봐라~~'식으로 서로 쫓고 쫓기는 장면이 대사도 배경음악도 없이 3분이나 계속되자 영화감독을 죽이고 싶어했다는 후문도 있음 -0-;;)'
그런데 정말 묘한 게... 이 가와바타 야스나리도 자살했습니다.(헉, 일본의 유명한 작가들은 죄다 자살...? -0-;;)
이 작가는 30대 후반에 자살한 다자이 오사무나 40대 중반에 자살한 자기 제자인 미시마 유키오와는 달리, 충분히 살만큼 산 70대의 몸으로 자살했는데요... -.-;; 자살 이유에 대해서는, 제자의 할복자살에 충격을 받아서라는 둥, 노벨문학상까지 받았건만 스스로의 문학적 재능에 한계를 느껴서라는 둥, 여러 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여튼 올 1사분기의 독서 대상은 이 세사람의 작품입니다.
그런데 사족일지 모르는 글을 첨가하자면...
일본이 2번이나 노벨문학상 타는 동안, 어째서 우리나라의 거장인 '토지'의 박경리 선생님은 노벨상 근처도 못 가보는 걸까요?
우리나라 정부는 우리의 훌륭한 문학작품을 홍보하는 일도 안 하고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건지? 그렇다고 다른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여러가지로 많이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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