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여행기/'08년 부산

부산(1) - 부산지하철, 광안리

Lesley 2008. 10. 31. 20:29

 

 

  10월 28일부터 30일까지 친구와 함께 경주와 부산을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경주 여행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부산 여행 위주로 쓸까 합니다.

 

 

 

  그래도 경주에 대해 잠깐 말하자면...

 

  경주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로 4번째 갔는데, 이번 경주 여행은 지긋지긋했던 수학여행 때만큼이나 별로였습니다.

  해도 안 뜬 새벽에 일어나 기차를 5시간이나 탄 덕에 몸이 피로했던 탓도 있고, 마치 봄에 부는 황사처럼 흙먼지 섞인 바람이 강하게 불어 눈을 피곤하게 하며 목을 아프게 한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수많은 '머리 검은 짐승들'(!)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우리 때와는 달리 요즘 고등학생들은 중국이나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갑니다.(물론 요즘 환율이 폭등해서 앞으로는 그렇게 못 할 것 같지만...)  설사 그렇게 외국까지 가지는 못해도 제주도 정도는 가기 때문에, 경주에 온 학생들은 전부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중딩, 고딩도 가는 제주도를 30년 넘게 살면서 못 가본 나는 도대체 뭔지... ㅠ.ㅠ)

   이 학교, 저 학교에서 현장학습이니 뭐니 해서 줄줄이 왔는데,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본 관광버스를 전부 합친 것 보다도 이번에 경주에서 본 관광버스가 훨씬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많은 관광버스를 타고 온 초등학생들이 여기에서 떠들고, 저기에서 뛰어다니고...

 

  2년전 경주 갔을 때는 초봄이라 꽃샘추위로 많은 사람이 여행다닐 때가 아니어서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람에 밀려다닌 기억 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석굴암은 해돋이 본다고 주로 아침에 사람들이 몰려서 그런지, 우리가 간 점심 때는 사람이 적어서 방해받지 않고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천마총의 그 엄청나게 긴 줄과 불국사에서 떠들며 뛰어다니던 아이들...  특히 불국사에서는 그렇잖아도 어수선한 판국에 6학년 정도로 보이는 두 남학생이 대웅전 앞에서 싸움까지 벌였습니다. 가이드 설명 듣다 말고 몸싸움하는 애들에게 갑자기 밀린 일본 아줌마들이 당황해하고(요즘 우리 원화 가치가 폭락하며 상대적으로 가치가 급상승한 엔화 덕분에 일본 단체관광객들이 꽤 많았음), 일본 단체관광객을 인솔하고 왔던 가이드와 효도관광 온 듯한 할아버지가 뜯어 말리는 상황이... -.-;;

  천년의 고도라는 말이 도무지 실감 안 날 정도로, 무슨 도깨비 시장 다녀온 기분입니다.

 

 

 

  지금부터 부산 여행기입니다.

 

  경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2시 30분 버스를 타고 1시간만에 부산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참고로 경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부산행 버스는 30분 간격으로 계속 있고, 요금은 4,000원임)

  터미널이 부산지하철 1호선의 맨끝역인 노포동역과 이어져 있어, 노포동역으로 가서 1일권을 끊었습니다.

 

  ※ 부산지하철의 '1일권'

 

  : 자주 들리는 블로그 주인장께서 얼마 전에 부산을 다녀오셨는데, 그 분 여행기에서 부산지하철에는 서울지하철에 없는 1일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1장당 3,500원인데 하루종일 지하철을 탈 수 있어서, 부산에서 거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아주 편리합니다.

    왜 서울지하철에서는 1일권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방에서 출장이나 여행 목적으로 며칠간 서울로 올라와 지내야 하는 사람에게 아주 편리할텐데요.

 

  ※ 부산지하철의 특이한 점

 

 : 이왕 1일권 얘기가 나온 김에, 서울지하철과 다른 부산지하철 얘기를 몇 가지 더 써보겠습니다.

   첫째, 서울지하철은 안내방송이 한국어와 영어로만 나오는데, 부산지하철은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4개 언어로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이런 다국적 안내방송은 1일권과 더불어, 부산이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인상을 줬습니다.

  (추가 : 아, 요즘은 서울지하철에서도 중앙선 같은 일부 구간에서는 일어와 중국어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둘째, 서울지하철은 만 65세 이상의 노인에게 무료전철표를 줄 때, 무료전철표를 창구 앞 종이상자가 대충 쌓아놓고 신분증 확인 없이 알아서 가져가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래서 만 65세 미만인 사람도 늙은 얼굴과 약간의 뻔뻔함을 갖추면 무료전철표를 이용할 수 있음 -.-;;) 하지만 부산지하철에는 무료전철표를 무인발급기로 지급하고, 무인발급기에 신분증 인식기능이 있어서 주민등록증을 기계에 찍어야 무료전철표가 나옵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만 65세 미만인 사람이 남의 주민등록증을 빌려서 무료전철표를 이용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신분증을 찍어야만 한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무료전철표의 부당이용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만 65세 이상인 사람은 자신도 무료전철표를 이용해야 하고, 설사 평소 전철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은행이나 행정기관에 볼일 보러 갈 때 주민등록증을 휴대해야 하니까, 남에게 잘 안 빌려주려 하지 않을까요? 

  셋째, 서울과 마찬가지로 교통카드를 충전하는 기계가 있는데, 그 기계 이름이 '교통카드 자동보충기'입니다. (기계 이름 때문에 친구와 깔깔대고 웃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특별히 잘못된 이름도 아닌데 왜 그리 웃겼는지... ^^)

  넷째, 서울지하철의 일반석은 7명씩, 노약자석은 3명씩 앉게 되어 있는데, 부산지하철의 경우에는 일반석에 10명씩, 노약자석에 4명씩 앉게 되어 있습니다. (단, 그렇지 않은 차량도 있음)  

  다섯째, 부산지하철의 여자화장실에 있는 자판기에서 콘돔(!)도 판매합니다. (남자화장실이라면 몰라도 도대체 어째서 여자화장실에?... -.-;;) 혹시 언젠가 인터넷 기사에서 읽은 여성용 콘돔이라는 건가 하고 봤지만, 남성용 콘돔 맞더군요. 제가 서울지하철의 모든 여자화장실에 다 가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콘돔 자판기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시청역까지 가서 부산시청의 관광안내소에서 부산관광지도 한장 얻어, 2호선 광안리역으로 갔습니다.

  500미터 이상을 걸어서 도착한 광안리는 육지가 바다를 둘러싼 작은 만(灣)의 모양인데, 만의 한쪽 끝과 다른 한쪽 끝을 광안대교가 연결하고 있습니다. 광안대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다리로, 2002년 아시안게임 때 임시개통되었다가 2003년에 완공되어 정식개통되었다고 합니다. 

 

 광안대교와 광안리의 야경 - 실력부족으로 광안대교가 예쁘게 안 나와 유감입니다. -.-;;

 

 광안리 주변, 특히 양쪽 끝부분으로는 고층건물(주로 고급 아파트인 듯)이 많아서 건물에서 나오는 불빛이 밤하늘과 밤바다를 밝혀줘 멋진 야경을 볼 수 있습니다. 

 

 

수영구 문화센터 - 독특한 이름의 간판들이 걸려있는데, 가장 대박인 이름은 1층 가운데의 '여를만 경찰서'입니다. ^0^ 지금은 빈 책상만 두어개 있을 뿐 다른 기물도 사람도 없는 것이, 사람들이 몰리는 여름 피서철에만 운영하는 경찰서인 모양입니다.

 

 

  전날 경주에서는 콘도를 저렴한 가격에 이용했는데, 부산에서는 광안리 해변의 모텔에 묵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작고 낡았는데, 바로 옆에 큰 호텔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더욱 더 초라해보였던 '로즈모텔'...  이름만은 화려합니다. -.-;; 어차피 하룻밤 머물 뿐이고, 광안리 해변 한복판에 위치해서 바다가 잘 보인다는 점, 다음날 해돋이 보러가기 편리하다는 점을 보고 묵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5시 30분도 안 되어 일어나 부지런떨며 각자 디카만 챙겨들고 해돋이를 보러 해변으로 나갔습니다. 깜깜한데도 부지런한 어르신들이 조깅이나 산책을 하고 계셨습니다. 6시가 넘자 광안대교 너머 하늘 색깔이 조금씩 변해가고, 둘이서 부지런히 디카를 눌러댔건만 빛이 워낙 부족해서 떨림현상이 계속 일어나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지 못했습니다.

  열심히 찍었건만 마음에 쏙 드는 사진도 못 얻고, 하늘은 점점 밝아지는데 해는 안 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구름이나 해변 방향 때문에 원래 해돋이를 볼 수 없는 것 때문인 것 같고, 새벽이라 춥기도 하고, 거기에 배도 고파서, 결국 모텔로 돌아왔습니다.  밥 대신 빵을, 반찬 대신 TV 뉴스에 나오는 '리,만 브라더스'(이것들 땜시 우리 경제 뿐 아니라 나라 전체가 무너진다... ㅠ.ㅠ)를 열심히 씹으며 아침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친구가 소리를 빽 질러서 무슨 일인가 봤더니, 광안대교 너머 해가 떠오른게 아니겠습니까...!! -0-;;    바다에서 해가 솟아나오는 장엄한 해돋이 광경은 이미 물 건너갔고, 해가 광안대교에 걸린 모습이라도 남기려고 디카 꺼내서 모텔 창문 열어젖히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ㅠ.ㅠ

  

해뜨기 전과 해뜬 후 -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할 때부터 해뜰때까지 40분 넘게 걸릴지 상상도 못 했습니다.

 

  해돋이를 디카에 담지 못한 아쉬움을 '어차피 저 광안대교가 해돋이 망쳐'라는 말로 달래며, 다음 목적지인 '해동용궁사'로 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