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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다 다카시의 '디스커넥트 인간형이 온다'

Lesley 2023. 1. 9. 00:01

 

  지난 달(벌써 작년이구만...)에 '오카다 다카시' 라는 일본 정신과 의사가 쓴 '디스커넥트 인간형이 온다' 를 읽었다.

  사실은 같은 저자가 쓴  '심리 조작의 비밀' 을 몇 년 전에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어서 포스팅하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 책은 뒤로 밀려버렸고 '디스커넥트 인간형이 온다' 부터 소개하게 되었다.  '심리 조작의 비밀' 은 '뇌부자들(정신과 의사들의 진짜 정신과 이야기)' 이라는 팟캐스트를 통해 알게 되어 읽었는데 정신과 의사가 쓸 법한 책이다.  ☞ 팟캐스트(3) - 뇌부자들(정신과 의사들의 진짜 정신과 이야기) https://jha7791.tistory.com/15791634   그에 비해  '디스커넥트 인간형이 온다' 는 정신분석이나 심리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미래 예측에 관한 쪽에 방점을 찍고 있다.

 

 

SF 소설 같은 느낌의 표지.

 

  그나저나 이 책 표지 디자인을 누가 했나 궁금하다.

  미래 예측에 관한 책이라고는 해도 굳이 표지를 이렇게 해야 했는지...  책의 정체성(!)을 헷갈리게 만드는 표지 디자인이다. 

  표지 꼭대기에는 SF 영화에 나오는 제국이나 군대의 휘장 같은 문양이 박혀있다.  표지 가운데 그림은 우주 공간으로 걸어들어가는 사람의 검은 그림자다.  '디스커넥트 인간형이 온다' 라는 제목에 쓴 폰트는 글자에 지진이라도 난 듯 갈라진 모양이다.  이 책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SF 소설로 착각하기 딱이다.  상상력이 지나치게 풍부한 사람이 본다면 아예 사이비 종교에서 펴낸 음모론 넘치는 전도용 책자로 생각할 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는 현대인을 '공감형 인간' 과 '디스커넥트형 인간' 으로 구분한다.

  공감형 인간은 인류의 역사에서 다수를 차지했던 유형이다.  흔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인간은 주위 사람들과 친근한 감정 교류를 하고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  가족, 학교, 회사, 국가라는 공동체가 원만히 운영되려면 타인에게 공감할 줄 알고 그 공감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공감형 인간이 많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바람직한 인간상으로 여겨진 유형이다.

  그에 비해 디스커넥트형 인간은 남에게 무관심한 편이고 비사교적이며 자기 취향을 중시한다. (한 마디로 '나는 혼자서도 잘 놀아요' 과에 속하는 사람들)  가족 공동체나 마을 공동체에 속하는 게 생존과 직결되었던 농경 시대야 말할 것도 없고, 핵가족이니 1인 가구니 하는 게 늘어난 산업화 시대에 들어서도, 기본적으로 인간은 주위 사람들과 연결되어야 제대로 생활할 수 있고 또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그래서 디스커넥트형 인간은 이상한 사람 또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배척당했다.  사회 생활에서 남들보다 뒤쳐질 가능성이 높은 유형이기에 결혼을 하는 데에도 불리했고, 설사 결혼하더라도 원만한 부부 생활이 힘들다 보니 후손을 남기기 힘들어,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소수자였다. 

 

  그런데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면서 인터넷 등 첨단 기술이 발전하며 세상이 바뀌었다.

  사회 부적응자 취급받던 디스커넥트형 인간이 생존하기에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IT 시대에 등장한 직업 중 상당수는(대표적으로 프로그래머) 전통적인 직업만큼 타인과의 교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터넷 덕분에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생필품을 사들일 수 있고 얼마든지 취미활동을 즐길 수 있다.

  물론 깊은 산속에 들어가거나 무인도로 떠나지 않는 한 어떤 식으로든 타인과 교류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전과 비교했을 때 디스커넥트형 인간이 살아가는 데 유리해진 시대가 온 것은 확실하다. 

 

  여기까지는 보통 사람들도 쉽게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인데...

  저자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 흥미로운 예측을 한다.  디스커넥트형 인간이 다수가 되고 공감형 인간이 소수가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위에 썼듯이 그동안에는 디스커넥트형 인간이 후손을 남기기 힘들었다.

  그런데 21세기에 새로 등장했거나 각광받게 된 직업 중에는 디스커넥트형 인간이 적응하기 쉬운 것들이 많고, 심지어 디스커넥트형 인간이 공감형 인간보다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이제 디스커넥트형 인간이라고 무조건 루저 취급 받지 않는 세상이 되었고, 디스커넥트형 인간끼리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디스커넥트형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바람직하지 못 한 환경' 에서 자라게 될 것이다.  디스커넥트형 부모는 자식보다 자기들의 직업적 성취나 취미 생활을 우선하기 때문에, 아이에게 컴퓨터나 스마트폰 같은 것을 던져주고 혼자 놀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아이는 공감형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과 다르게, 자기 부모와 정서적 교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부모 같은 디스커넥트형 인간으로 자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이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세대에 걸쳐 반복된다면, 어느 순간 이 세상은 소수자였던 디스커넥트형 인간이 다수자로 변할 것이다.  그러면 사회 시스템이 디스커넥트형 인간에 맞게 변할 것이고, 오히려 공감형 인간이 살아가기에 불리해 질 것이다.

 

  디스커넥트형 인간과 공감형 인간 중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인간상일까?

  전통적 관념에 따르면 '디스커넥트형 인간은 차갑고 이기적이며 공감형 인간은 따뜻하고 인간적이다' 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게 간단하게 잘라 말하기 힘들다.

  공감형 인간은 애착 또는 애정이란 것 때문에 '우리' 와 '그들' 을 쉽게 구분짓고, 이는 차별로 이어지기 쉽다.  애착을 느끼는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따뜻한 배려를 아끼지 않지만, 자신과 상관없는 이들에게는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공격적으로 나가기도 한다.  인류 역사 속에 나타난 많은 비극(전쟁이나 학살 등)이 아이러니하게도 공감능력 뛰어나다는 공감형 인간들로 인해 일어났다.  자신과 다르고 자신이 애착을 느끼는 부류 이외의 사람들을 차별하고 배척하는 성향 때문이다.

  오히려 디스커넥트형 인간은 무리 짓는 것을 싫어하고 특정인에게 애착을 잘 느끼지 않는 성향 때문에, 공평과 정의에 부합하는 인간형이라 할 수 있다.  얼핏 보면 비사교적이고 냉담한 스타일로 보이지만, 상대가 가족이나 친구나 동료라는 이유로 남들보다 편의를 봐주는 일도 없고, 상대가 남이라는 이유로 텃세니 뭐니 하는 것을 부리며 괴롭히는 일도 없다.

 

  저자는 디스커넥트형 인간이 다수가 되는 세상이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저자의 나라 일본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복지 천국이라고 부러워 하는 스웨덴을 예로 든다.  스웨덴은 복지 시스템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이 양육과 부모 봉양은 사회에 맡기고 자유롭게 직업적 성취를 이루고 취미 활동을 즐길 수 있다.  아이 양육 문제로 직장을 그만 두냐 마느냐 하며 부부싸움을 벌이고 부모 봉양 문제로 형제자매끼리 갈등을 겪는 다른 나라 사람들 입장에서는 부럽기 짝이 없는 나라다.  일찍부터 부모의 품이 아닌 국가가 제공하는 시설(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개인주의적으로 자라기 때문에 각자의 삶을 즐기는데 익숙하고 쓸데없이 남에게 참견하는 일도 없다.

  요즘 말로 매우 쿨하게 살아간다.  스웨덴 정부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으나, 스웨덴의 뛰어난 복지 제도가 스웨덴 사람들을 디스커넥트형 인간으로 바꾸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웨덴을 천국 같은 나라라 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웨덴 사람들의 자살율과 범죄율(특히 살인이나 강간 같은 강력 범죄)은, 빡빡한 삶을 살아가는 일본인보다 몇 배나 높다.  또한 스웨덴의 노인 복지 현황을 조사하려 일본에서 찾아간 사람을 붙들고, 스웨덴 양로원의 노인들은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다.  일찍부터 부모 자식 간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란 스웨덴 사람들은 양로원에 들어간 늙은 부모를 자주 찾지 않고, 한때 쿨하게 살았던 스웨덴 노인들은 이제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 굶주려 외국인을 붙잡고 안 놔주는 지경이 된 것이다.

  인터넷 혁명이니 뭐니 하는 최첨단 기술의 발달로 세상이 디스커넥트형 인간을 양산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스웨덴의 사례를 보면 그런 변화가 무조건 좋은 것인지는 의문이다.

 

  정말 디스커넥트형 인간이 세상의 주류가 되는 시대가 올까?

  얼마 전 친구를 만났을 때 이 책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결혼은 경제적 기반을 어느 정도 갖춘 사람들이 많이 하는 것이니, 예전 같으면 사회 생활이 힘들었을 디스커넥트형 인간이 IT 기업 같은 곳에서 근무하며 돈을 모아 비슷한 성향의 사람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기들과 비슷한 후손을 퍼뜨리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라는 점에서는, 저자의 주장을 납득했다.  다만 디스커넥트형 인간이 세상의 보편적 인간 유형이 되는 데에는 수백년은 걸릴 것이라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아마 공감형 인간으로서 디스커넥트형 인간에게 느끼는 거부감 때문에, 이성적으로는 일리 있는 주장이라 여기면서 감정적으로는 거부감을 느낀 게 아닐까 한다.

  저자 역시 지금의 추세가 계속되어 디스커넥트형 인간이 일반화되는 세상이 될 지, 아니면 또 다른 큰 변화가 생겨 세상의 흐름을 바꾸어 다시 공감형 인간들의 세상이 될 지는, 확언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후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아마 저자 스스로도 공감형 인간에 속할 것이기에 디스커넥트형 인간들의 세상이 도래하는 것에 거부감과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디스커넥트형 인간과 공감형 인간, 둘 중 이 세상을 차지할 최후의 승자는 과연 어느 쪽일까?

  저자는 '이제 그 해답을 알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 는 문구로 책을 끝냈다.  내가 살아 숨쉬는 동안 그 해답을 직접 볼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어느 쪽이 되었든 결과를 알고 싶다는 호기심도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결과를 아는 것이 두려워서 내가 사는 동안에는 과도기(?)가 유지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