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여행기/'19년 영월

영월(3) - 청령포 / 장릉

Lesley 2019. 4. 26. 00:01


  ◎ 청령포


  영월에서의 두 번째 날 아침, 숙소에서 나와 청령포로 갔다.

  청령포는 조선의 6대 국왕인 단종이 허울 뿐인 상왕 자리에서도 쫓겨나 귀양살이를 하던 곳이다.  하지만 청령포에 머문 지 얼마 안 되어 장마철이 되자, 청령포 주위의 물이 불어나 위험하다며 영월관청으로 옮기게 했다고 한다. 

 


유배지로 안성맞춤인 입지를 갖춘 청령포.

지금도 배를 타지 않으면 못 들어감.



  청령포에 가보면, 어째서 세조와 그 측근들이 단종을 청령포로 유배보냈는지 알 수 있다.

  청령포강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인데, 삼면을 강이 둘러싸고 있고 나머지 한면은 산인 고립지역이다.  그러니 외부에서 단종과 연락하기도 힘들었을 테고, 단종 역시 탈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단종을 내쫓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백성들의 동정심이 어린 단종에게 쏠려있으니 단종을 저 멀리 바다에 있는 섬으로 보내기는 좀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고 육지의 어지간한 곳으로 보내자니 혹시 탈출이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을 테고...  그러니 영월의 청령포를 보고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잘 지내시오~~' 라는 핑계로 귀양 보내기 딱인 장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소나무 숲 한복판에 단종 유배지가 있음.



단종이 머물렀다는 곳.



  다만, 지금의 저 건물은 단종이 실제로 머물렀던 곳은 아니라고 한다.

  단종은 죽고 한참 지난 숙종 때에야 복위되었다.  그리고 숙종의 아들인 영조가 이미 사라진 단조의 유배처를 재정비하도록 명령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단종의 처소를 향해 허리 굽혀 인사하는 소나무.



  청령포의 단종 유배지 주변에는 소나무가 잔뜩 있다.

  특이한 것은 상당수 소나무가 절이라도 하는 것처럼 유배지를 향해 허리를 굽히고 있다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이런 광경을 보고, 미물인 소나무조차 단종이 쫓겨났어도 정통성 있는 왕이라는 것을 알고서 예를 갖추는 것이라고 여겼다.  영월에 가기 전에도 그런 사연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는 했지만, 단종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사람들이 적당히 지어낸 이야기겠거니 했다.  그런데 직접 가보니 정말로 유배지를 가운데 두고 소나무들이 허리를 굽히고 있는 모양새다...!

  그 중에서도 위의 사진에 나오는 소나무는 허리를 굽힌 수준을 넘어서, 아예 땅바닥에 머리를 대고 엎드릴 것만 같다.  아마 꼿꼿한 선비들 눈에는 충정과 의리를 아는 소나무로 보였을 것이다.




  ◎ 장릉


  청령포 구경을 끝내고 곧장 점심을 먹으러 가려다가,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근처 장릉에도 들리기로 했다.

  장릉은 단종의 능으로, 대부분의 조선 왕릉이 경기도 지역에 있는데 비해 장릉만 멀리 강원도 영월에 있다.  단종이 영월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결국 한양으로 돌아가지 못 하고 영월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에 있는 장릉에 올라가기 전에 그 아래에 있는 단종역사관에 들렸다가 허걱~~ 했다.

  매년 4월 하순에 열린다는 단종문화제 관련 홍보물이 있던데, 그 중에 '정순왕후 선발 대회' 라는 게 있다.  얼핏 생각하면 춘향이 선발 대회와 다를 게 없는 지역 행사 같고, 또 한 나라의 왕비 역으로 선발된다면 경사일 것만 같다.  하지만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가 10대에 남편을 잃고 고생하며 외롭게 살다가 80세가 넘어서 한 많은 인생을 끝낸 것을 생각하면, 참...  함께 보던 친구도 "차라리 고추아가씨가 훨씬 낫겠다." 라고 한 마디 했다. ^^;;   



단종이 왕으로서 죽지 못했기 때문에

장릉도 산중턱에 있는...



  단종은 왕으로서 죽지 못 했기 때문에, 능이 있는 위치가 보통의 조선 왕릉과 많이 다르다.

  다른 조선 왕릉은 평지에 동산(?)을 만들고 그 위에 왕을 묻고 봉분을 만든다.  하지만 단종의 경우에는, 엄흥도란 의로운 영월 사람이 몰래 시신을 수습해서 사람들 눈에 잘 안 띄는 산에 묻어주었기 때문에 산중턱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또 계단을 올라야 했다...! ㅠ.ㅠ  요 몇 년 사이 저질체력(!)이 되어서 전날 한반도 지형에서 계단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무겁고 아팠다.  아직 그것도 안 풀렸는데 또 다시 계단이라니...  결국 친구는 고지(?)를 눈앞에 두고 더는 안 올라가겠다며 나 혼자 올라가라고 했다.



무인석이 없다는 장릉의 모습.



  장릉에는 문인석만 있고 무인석은 없다고 한다.

  원래 조선 왕릉에는 문인석과 무인석을 같이 세워둔다.  왕이 살아있을 때처럼 문신과 무신 모두에게 보필을 받으라는 뜻이라고 한다.  하지만 단종의 경우에는 무인들을 내세운 정변으로 쫓겨난 왕이기 때문에, 일부러 장릉에는 무인석을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장릉에서 내려다 본 아래 풍경.



  정자각이니 뭐니 하는 왕릉에 딸린 부속건물들이 전부 아래에 있다.

  다른 왕릉 같으면 당연히 봉분 근처에 있을 텐데, 장릉은 봉분이 산에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봉분과 부속 건물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그렇잖아도 마음 졸이며 살다가 억울하게 죽은 어린 왕인데, 제삿밥 먹을 때마다 산에서 평지까지 힘들게 오가느라 죽어서도 고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월(1) - 한반도 지형 / 탄광문화촌(http://blog.daum.net/jha7791/15791563)
영월(2) - 별마로천문대 / 석항트레인스테이 / 석항역(http://blog.daum.net/jha7791/15791564)

영월(4) - 고씨동굴 / 김삿갓문학관(http://blog.daum.net/jha7791/157915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