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서점 등

이육사의 '연인기' / 선물 받은 책도장

Lesley 2019. 10. 9. 00:01

 

 

  이육사(본명은 이원록 또는 이원삼) 란 문인 학교 다닐 때 교과서를 통해 알았다.

  '청포도' 나 '광야' 등 이육사의 시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었다.  이육사가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에 투신해서 여러 번 옥살이를 했던 인물이니만큼, 이육사의 시에도 저항정신이 철철 넘쳐흘렀다.

 

  하지만 그 때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아무래도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라는 사실만으로 감동 수준이 쭉~~~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  요즘 듣는 팟캐스트 '김태훈의 책보다 여행' 에서 진행자가 웃기면서도 씁쓸한 맛이 남는 에피소드를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고전이란 책들은 누구나 제목은 알지만 정작 누구도 읽지 않는다' 는 요지의 말을 하면서, 서점에 갔다가 '교과서가 죽인 책들'(!) 이란 책을 봤다면서 게스트와 한바탕 웃었더랬다.  그 책 제목을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쳇말로 웃프다.

  이육사의 작품 뿐 아니라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린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인데, 이제와서 생각하면 모두 훌륭한 것들이지만 당시에는 '무념무상 + 무감무취' 상태로 배웠을 뿐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구나~~ -.-;;)  교과서 편저자들이 어떤 작품을 교과서에 올리기로 결정한 데에는 분명히 '이런 우수한 작품은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널리 읽혀야 한다' 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교과서에 올라간 순간, 그 작품들은 교과서에게 죽임을 당하는 운명을 맞게 된다.  원래 교과서란 것이 동서고금 모든 학생들에게 환영받지 못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차분히 음미해야 할 좋은 작품' 이 난데없이 '시험을 위해 공부해야 할 지겨운 작품' 로 변신(!)할 수 밖에...

 

  그런데 재작년이었나 언제였나, '역사비평' 이란 잡지를 한 권 구입했다.

  역사비평이라는 이름의 역사 관련 대중학술지가 있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때까지 구입한 적이 없었다.  대학 시절에 서점에서 두어 번 들쳐봤다가 내 수준에는 버거운 잡지라는 걸 알고 관심을 끊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그 잡지의 목차를 보다가 관심 가는 항목이 실린 것을 보고 충동구매(!)했다.  하지만 얄궂게도, 내가 역사비평을 구입한 계기가 되었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에 와서는 내용은 고사하고 제목이나 주제가 뭐였는지도 기억하지 못 한다.  오히려 그 잡지에 같이 실려있어서 덤(!)으로 읽은 이육사 부분만이 머리 속에 남게 되었다. 

 

  그렇게 역사비평 덕분에 알게 된 이육사의 수필이 '연인기' 다.

  제목만 보면 사랑 이야기일 것만 같다.  하지만 연인기의 연인은 연인(戀人)이 아니라 연인(戀印)이다.  즉, 각별히 아끼던 도장에 관한 사연을 담은 글이다.

  역사비평에 실린 글은 이육사의 시 '청포도' 에 관한 새로운 해석에 관한 것이었다.  그 글의 저자는 청포도에 대해 기존과 다른 주장을 하면서, 그 근거로 이육사의 또 다른 작품인 '연인기' 의 내용을 들었다.  연인기가 원래도 짤막한 산문이다. (책의 판형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본 책 기준으로는 6페이지 밖에 안 됨)  그런데 역사비평 속 글의 주제가 연인기가 아니다 보니 그나마 그 짧은 내용도 일부만 실려 있다.  그런데도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끄는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이육사의 여러 시와 산문을 모은 책을 구입했는데, 이제껏 연인기만 읽었다. (나머지도 언젠가는 읽을 날이 오겠지... ^^;;) 

 

  연인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에는 시서화에 능한 사람들이 훌륭한 인재(도장 재료)에 스스로 조각을 해서, 자신의 글이나 그림에 낙관으로 찍기도 하고 자기 책에 장서표로 찍기도 하는 풍습이 있다.  이육사는 어린 시절 사랑방 문갑 속에 여러 인재가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도장을 만들고 싶어 탐을 냈는데, 자라면서 한학 대신 신학문을 익히게 되며 자연히 도장에 대해 잊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 남경(난징)에서 지내던 시기에 골동품점을 자주 드나들다가, 모시칠월장을 새긴 비취 인장을 하나 손에 넣게 되었다.  그 인장을 너무나 아껴서 밤에 손에 든 채 자기도 했고, 고향과 부모형제가 그리울 때면 인장을 들고 모시칠월장을 외우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나중에 상해(상하이)로 옮겼다가 귀국하게 되었는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할 수 없는 친한 이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게 되었다.  그 중 이육사와 각별한 사이인 S란 사람에게는 반드시 '목숨 이외에 사랑하는 물품' 을 기념품으로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척이나 아끼던 비취 인장에 '贈 S, 1933. 9. 10, 陸史' 라고 새겨서 S에게 주고 헤어졌다.

  이육사는 귀국한 후에 중국에 남은 S가 생각날 때면 S에게 주었던 인장도 떠올렸다.  연인기를 쓰던 시점을 기준으로 10년 가까운 세월 S의 소식을 알지 못 했다.  하지만 S가 자신에게 받은 인장을 몸에 지닌 채 천대산 모퉁이를 돌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떠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S와 인장의 무강을 빌며 이불 속에서 모시칠월장을 외워보리라 생각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연인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설명이 필요하다.

  사정 모르는 사람이 읽으면, 굳이 설명 같은 게 필요 없는 감상적인 글로만 보일 것이다.  얼핏 보면, 문인답게 감수성 넘치는 태도로 고전시가가 새겨진 도장 하나를 발견해서 아끼다가 친우에게 이별 선물로 주고서, 10년이 지나도록 그 친우와 도장을 잊지 못 하고 그들의 무사안녕을 빌었다... 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상의 줄거리만 파악한 것일 뿐이다.

 

  역사비평 114호에 실린 도진순 교수의 '육사의 청포도 재해석 - 청포도와 청포, 그리고 윤세주' 라는 글에 의하면, 연인기에는 다음과 같은 속사정이 있다.

 

  이육사는 연인기 속 주인공(?)인 비취 인장을 중국 남경(난징)에서 구했다.

  그런데 이육사가 남경에 머물렀던 것은 여행이나 유학 같은 평범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이육사는 28세 되던 1932년에 독립운동을 위해 남경 근처에 있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학했다.  다음 해 졸업하고 한 달 정도 남경에 머물던 중에 비취 인장을 손에 넣게 되었다.

  골동품점에서 구한 인장 하나가 이육사에게 매우 특별했던 이유는, 인장에 새겨진 모시칠월장 때문이다.  이육사는 어려서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워서 한문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이육사의 시나 산문은 한문의 느낌이 나기도 하고, 아예 한시를 짓기도 했음.)  그렇게 익힌 한문 중에서 '시경' 에 나오는 '빈풍칠월' 을 좋아해서, 훗날 형제들과 함께 빈풍칠월을 적은 12폭짜리 병풍을 만들어 어머니의 수연 선물로 드리기도 했다.  그런데 비취 인장에 새겨져 있던 모시칠월장이 바로 이 빈풍칠월이다.

 

  이육사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졸업하고 몇 달 후 상해에서 귀국하면서, 인장을 윤세주(연인기에 S라는 이니셜로 나오는 인물)에게 줬다.

  윤세주는 이육사와 같은 직장을 다닌 동료이기도 했고, 함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서 수학한 동지이기도 했다.  각별히 아끼던 물건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 할 지도 모르는 각별한 동지에게 이별 선물로 준 셈이다.

  연인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육사는, 약 10년 간 소식이 끊긴 S가 이육사에게 받은 인장을 갖고 천대산 모퉁이를 돌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떠나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S와 인장의 안녕을 빌며 모시칠월장을 외워보겠노라 다짐한다.  연인기가 발표되기 몇 년 전에 윤세주는 중국 무한(우한)에서 조선의용대 창설을 주도했다.  그리고 연인기가 발표되던 1941년 1월에 윤세주를 비롯한 조선의용대는 화북지방으로 올라가 항일운동을 하기로 결정하고 북상하기 시작했다.  이 때 조선의용대의 출발지가 중경(충칭)이었는데, 연인기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천대산이 바로 중경 근처에 있다.

 

  결국, 연인기는 이육사가 한 때 아끼다가 친우에게 선물한 인장을 떠올리며 쓴 감상적인 수필이 아니다.

  고향인 조선땅에서 일제에 항거했던 이육사가, 이국에서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일제에 항거한 동지이며 친우인 윤세주의 무사함을 빌며 동지의식을 드러낸 수필이다.  즉, 청포도나 광야처럼 연인기도 일종의 저항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육사의 연인기를 포스팅하게 된 계기는 얼마 전에 친구에게 선물 받은 책도장이다.

  회사일로 정신없이 지내던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힐링이 필요하다고 해서, 얼마 전에 같이 창덕궁의 후원 나들이를 다녀왔다.  내친 김에 창덕궁에서 멀지 않은 인사동에도 가서 돌아다니다가, 언젠가부터 인사동에 수제 도장(패션 도장)이란 이름으로 등장한 도장을 파는 곳에 들렸다.  다른 가게처럼 잠깐 구경이나 하고 나가려고 했는데, 난데없이 친구가 "도장 하나 사줄까?  너 책 좋아하니까 책도장으로 쓰면 되잖아." 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얼떨결에 도장 하나 득템했다...!

  갑자기 왜 도장을 사주냐고 물었더니만, 한동안 회사에서 일이 너무 많아서 정신없이 사느라 돈을 쓸 기회가 없었다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면 돈 좀 써야 한단다.  아무래도 이 친구에게 일을 더 많이 시키라고 그 회사에 투서라도 해야 하나 보다. (친구의 과도한 근무는 나의 선물로 이어질지니~~~!!! ^^)

 

  그러고 보니 꽤 오래 전에 인사동에서 형형색색의 예쁘장한 도장을 보고 포스팅한 적이 있다.  인사동 수제 도장 / 도장의 추억(http://blog.daum.net/jha7791/15791056)

  그 때에도 도장에 마음이 끌리기는 했지만 굳이 살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단체로 맞춰서 지금까지 은행용으로 쓰고 있는 도장도 있고, 또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중국 친구에게 작별 선물로 받은 도장도 있어서, 새로운 도장을 사는 건 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일도 아니고, 다른 축하하거나 기념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뜻밖에도 새 도장을 선물받으니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뻤다.

 

 

 

내 띠에 맞춰서 고른 뱀 문양 도장. 

 

 

  친구는 나무 문양이 예뻐 보인다며 권했고, 도장 점포 주인장께서는 용비어천가를 새긴 도장을 권했지만...

  이 몸이 고른 것은 뱀 문양이다.  일단 내가 뱀띠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문화권에서는 뱀이 재물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에는 집에 또아리 튼 뱀(혹은 구렁이)을 재신으로 모시고 함부로 내쫓지 않았다나 뭐라나...  이 도장을 보면서 도장 덕분에 로또 1등에 당첨되는 소박한(?) 꿈이 이루어 지는 게 아닐까 하는 망상의 나래를 펼쳐봤다. ^^;;

 

  역시, 나는 이육사 같은 인물과는 너무나 다른 범인이며 속인이다.

  이육사는 대단한 재능을 지닌 문인이며, 동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고 위험한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17번이나 옥고를 치렀다.  그리고 위에 썼듯이 '연인기' 에는 도장을 매개로 해서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독립운동 동지에 대한 깊은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러나 나는 친구에게 받은 도장이 로또 당첨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하는, 지극히 세속적인 바람이나 품고 있으니...

 

  하지만 친구에게 받은 도장 덕분에동안 잊고 지냈던 이육사의 연인기를 다시 떠올렸다.

  웬지 모를 예감 같은 게 든다.  혹시 아나, 나도 이 도장을 애지중지 하며 간직하다가 친분 깊은 누군가와 헤어질 때 선물로 건네주게 될 런지...  이육사의 도장에는 모시칠월장이란 고전이 새겨져 있었지만 내 도장에는 내 이름 석 자가 새겨져 있다.  상대방에게 멀리 떠나서도 나를 잊지 말라는 바람(혹은 협박? ^^)이 담긴 작별 선물이 될 지도 모르겠다.

 

 

인사동 수제 도장 / 도장의 추억(http://blog.daum.net/jha7791/15791056)